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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0

각양각색 마을의 이야기가 담긴 스테이

지랩(z_lab)이 말하는 지역성
지랩은 지역과 사람에 기반해 지속 가능한 공간을 선보이는 창조적 디자인 집단이다. 그들은 제주도와 서울의 서촌 지역을 중심으로 한 건축 디자인을 선보이며,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스테이’라는 개념을 정립해왔다. 마을을 섬세히 관찰한 흔적이 드러나는 공간 디자인에는 건축가의 어떤 고민이 있었을까.
2014년 지랩의 제주도 '눈먼고래' 프로젝트는 '한국농어촌건축대전 본상'을 수상했다 ⓒ김재경, 이병근

건축 디자인을 기반으로 기획, 브랜딩 등 공간에 다양성을 덧입히는 작업을 해온 지랩(z_lab). 지금은 숙박업소를 칭하는 단어로 두루 사용되지만, 당시 펜션을 넘어서는 서비스를 선보이는 획기적인 ‘스테이’라는 개념을 확고히 하는 데에 기여했다. 탁월한 감각으로 지역과 소통하며 동네마다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스테이를 만들어낸 지랩은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이한다.

 

회사를 설립한 2014년 9월의 프로젝트 ‘눈먼고래’는 제주도 조천읍에 자리한 돌집을 최대한 원형을 살려 완성했다. 지랩은 이 프로젝트로 ‘한국농어촌건축대전 본상’을 수상하며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지랩은 처음 사무실의 문을 열었던 서울 서촌을 비롯해 우연히 인연이 닿은 제주도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전개해 나갔다. ‘2021 제주건축문화대상 대상, 특선’을 비롯해 ‘2022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2023 제주건축문화대상 대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빛을 발휘한 데는 그간의 수많은 고민이 켜켜이 쌓여 있을 터. 제주도에만 약 50개의 스테이를 지은 지랩 노경록 대표에게 지역이 가진 특성과 그것을 잘 보존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등을 물었다.

2011년 '제로 플레이스' 프로젝트로 합을 맞춘 경험을 토대로 2014년에 세 명의 대표가 지랩을 공동 설립하게 됐다 ⓒ김재경

Interview with 노경록

지랩(z_lab) 대표

지랩 노경록 대표의 프로필 | 자료 제공: 지랩

– 여러 강연에서 ‘로컬리티’, 즉 지역성을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대표님이 정의하는 지역성이란 무엇일까요?

1차적으로는 지역의 색채이겠지만, 포괄적으로는 문화적 맥락을 포함해 심지어는 스테이의 호스트처럼 개인도 지역의 정체성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실무에서 다루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개념이죠. 지랩은 창업 이후 운 좋게도 제주도라는 지역 색채가 또렷한 섬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어 지역성을 디자인으로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렇지만 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선 신도시에도 지역성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프로젝트의 디자인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프로젝트가 특별해질 수 있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살리는 과정을 통해 지역성이 정립된다고 생각하니까요.

 

– 2014년부터 약 10년 동안 지랩을 운영하면서 지켜온 철칙이 있나요?

지금까지 제주에서만 약 50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한 마을당 하나의 프로젝트만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어요. 최대한 같은 리에는 프로젝트 하나만 하고싶어요. 외부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 보이는 마을마다의 색깔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동네마다 가옥의 규모가 다르기도 하고, 내륙 마을과 해안가의 마을에는 차이가 있죠. 마을마다 지닌 색채를 건축적으로도 잘 반영하고 싶어요.

 

– 건축은 물론, 가구와 경험까지도 디자인하는 지랩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하나요?

지랩의 대표 세 명이 각각 다른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게 아니라 한 프로젝트에 모두 참여합니다. 저희 이외에도 건축 및 공간 디자인, 브랜드 디자이너, 시각 디자이너가 한데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만약 5평의 소규모 건축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적어도 다섯 명이 함께합니다. 다양한 인원이 모여 여러 의견을 주고 받으며 콘셉트를 점진적으로 확고히 하죠. 이 과정을 거치기에 건축주도 수긍하고, 대중에게도 공감을 살 수 있는 하나의 건물이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랩의 첫 제주도 프로젝트 '눈먼고래'에는 돌담으로 둘러싸인 야외 욕조가 설치되어 있다 ⓒ김재경, 이병근

제주도의 다양성

– 흔히 제주도는 여행자의 동선에 따라 동부와 서부로 구분합니다. 제주 곳곳에 스테이를 짓기 위해 여러 마을을 둘러본 건축가의 입장에서 제주의 지역별 특성은 어떻게 다른가요?

저는 4등분으로 나누고 싶어요. 동북, 서북, 남서, 남동 이렇게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확실한 건 서쪽과 동쪽의 차이가 크긴 해요. 연예인 이효리가 제주도로 이주하며 상대적으로 서쪽에 자리한 애월읍이 먼저 개발되었죠. 동북 지역의 특징은 예전부터 바람이 워낙 심한 동네여서 척박한 환경이었다는 점입니다. 도시인 제주시로 이사하고 싶었던 분들이 전통적인 돌집이나 땅을 팔고 나간 뒤 타지역 사람들이 유입되었죠. 그래서 육지에서 제주도로 이사한 분들이 동북 지역에 정착을 많이 하신 편이예요. 자연스레 지랩의 초창기 프로젝트도 동북쪽에 집중되었어요.

 

– 섬 중앙에 높은 한라산이 자리한 지리적 특성과 바람이 많이 부는 기후적 특성은 제주도의 집에 어떤 차이점을 안겨주었나요?

북동쪽과 서남쪽을 기준삼아 대각선으로 세찬 바람이 불어요. 그렇다 보니 북동과 서남쪽은 확실히 집의 층고가 낮고, 심지어는 바닥이 땅속에 묻혀 있는 집도 많아요. 반면에 예부터 귤나무가 많이 나던 한라산 아래 지역 남원읍은 집들이 대부분 남향이에요. 이 마을의 집들은 상대적으로 채광이 좋고, 땅도 널찍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제주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마을의 특성이 정말 다양하다는 걸 느꼈어요. 독특한 이름의 마을도 정말 많아요. 한국어에서 찾아보기 힘든 ‘선흘’, ‘와흘’과 같은 이름이 존재해요. 지랩 프로젝트 중에는 마을 이름에서 얻은 모티프를 디자인적으로 해석한 프로젝트도 꽤 있습니다.

 

– 제주의 지역성을 잘 보존하기 위해 자료 조사는 어떻게 진행하나요?

제주의 주거 유형에 관한 논문을 가끔 찾아보기도 하고, 제주 도립박물관이나 민속촌에 직접 가기도 해요. 기본적으로는 평소에 경험하는 제주를 밑바탕으로 해요. 직관적으로 디자인하기도 하고요. 토속적인 면을 잘 살리고 싶기도 하지만, 안전이나 단열처럼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있는 그대로 보존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에요. 이 토속적인 부분을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답게, 더 독특하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제주 산방산 아래의 '재재소소' 프로젝트로 지랩은 '2023 제주건축문화대상'을 거머쥐었다 ⓒ이병근
산과 돌, 나무가 자연스레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완성한 '재재소소'의 실내 ⓒ이병근

– 10년 동안 지랩을 운영하면서 전개한 프로젝트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초창기 프로젝트들은 재료나 건축적인 요소에 집중해왔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가구 스타일링처럼 내부를 채우는 요소에 더 관심을 두었어요. 이제는 사람들이 마당의 잔디밭과 같은 조경에도 신경을 쓰더라고요.

 

– 지랩의 건축가로서 요즘 하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스테이의 투숙객들이 어떤 서비스를 조금 더 누릴 수 있도록 디자인할까, 어떻게 하면 다른 객실에 머무는 사람들과도 교류를 하며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결국 스테이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고민인데요. 과거 독채를 선호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최근에 작업했던 ‘스테이 느릇’의 경우처럼 하루에 10팀 정도 묵을 수 있는 독채가 모여 있는 형식의 스테이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죠. 운영적인 측면에서 무인화를 지향하게 되지만, 지랩이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호스트와 투숙객이 조금이나마 교감하는 부분이에요. 조식처럼요. 지금의 스테이는 기존 독채 스테이보다 고도화되고, 호텔은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요소가 가미된 중간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채의 독채가 하나의 스테이로 구성되어 마치 마을과 같은 '스테이 느릇' ⓒ이재석
투숙객 간의 교류를 도모하기 위해 마련한 '스테이 느릇'의 공용 공간 ⓒ이재석

여행의 중심이 된 스테이

– 동선을 기준으로 숙소를 예약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스테이를 찾아 그 주변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스테이를 더욱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요?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2박 3일 정도 머무르는 편이 좋습니다. 하루 머무는 것보다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거든요. 입실을 하고 마을의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고, 다른 날에는 온전히 객실에서 머물며 식사나 술을 즐긴 뒤 스파를 할 수도 있겠죠. 예약한 스테이에 방문하기 전에 그곳이 지닌 이야기를 탐색하고 간다면 더욱 감회가 다를 겁니다.

경험 디자인에 있어 가장 많은 고민이 담긴 '조차' 프로젝트 ⓒ문성주, Moble
스테이 '조차'가 위치한 조천읍의 마을 전경 ⓒ문성주, Moble

– 수많은 지랩의 작업 중에서도 경험 디자인에 있어 고민이 가장 많았던 공간은 어디인가요?

작년에 했던 ‘조차’라는 스테이가 있습니다. 조천읍의 바닷가 바로 앞에 위치하고, 그 바다는 밀물과 썰물 때 모습이 극적으로 달라져요. 물이 들어오면 잔잔한 항구였다가 물이 빠지면서 거친 현무암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와 해의 모습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간의 구성에 반영하고 싶었어요. 계속해서 치밀하게 투숙객의 입장에서 시뮬레이션을 진행했죠. 작은 뒷길을 통해 들어서면 세 개의 건물이 만나는 중앙의 작은 홀을 통해 입실이 가능해요. 처음 손님을 맞이하고 안내하는 순간부터 그 다음 저희가 산정한 적정 시간대마다 사용할 경험의 도구를 배치했어요. 한가운데에 쇼파를 넣지 않고 커다란 평상을 놓은 것도 풍경을 감상하도록 하기 위해서죠. 주방에서는 낙조를 감상할 수 있고, 저녁으로 넘어가면서 욕조에서 낮은 시선으로 풍경을 감상하게 됩니다. 이처럼 경험 디자인이라는 게 세세할수록 좋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치밀하면 작위적이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습니다. 그 감도를 조절하는 게 저희 몫이라고 생각해요.

풍성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사유 조차함'에는 책과 차, 향이 담겨있다 ⓒ문성주, Moble
바다가 내다 보이는 조차의 실내 ⓒ문성주, Moble

– 오래된 돌집의 특정 부분을 살려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는 지점에서 재생 건축이라 말할 수 있겠어요. 재생 건축을 넘어 도시 재생에 관한 논의가 활발한 요즘, 놓치지 말아야 할 중점은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건 도시의 다양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건축입니다. 최신 기술과 유행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언제나 존재하겠지만, 도시가 지닌 잠재성은 날 것과도 같은 모습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곳에 거주하는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들이 사는 데 불편을 느낀다면,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일만이 최우선은 아닐지도 몰라요. 기왕이면 개발을 천천히 진행해서 후손들이 다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 지역이 지닌 본질을 해치지 않기 위해 건축가들에게는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결국 재생 건축은 도전적인 사람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오래된 건물에서 남길 부분과 남기지 않아도 되는 요소를 구분하는 일도 다양한 변수가 생길 위험을 껴안고 진행하는 일이거든요. 결국 직접 부딪쳐 보는 용기와 노하우가 쌓일 때까지 시도하는 끈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채은 기자

자료 제공 지랩(z_lab)

성채은
희망과 다정함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 낙천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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