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을 외치며 사람들의 사연을 웃음과 감동, 위로까지 전하는 인스타툰으로 전달하는 일러스트레이터 키크니는 팔로워가 109만 명이 넘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처음에는 독자들이 보낸 간단한 요청과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한 컷 만화로 시작했다. 독자들의 엉뚱한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유쾌하게 받아 치는 작가의 재치에 사람들은 좋아요와 댓글로 답했다.
폭발적인 반응에 힘을 얻은 키크니 작가는 본격적으로 독자에게 사연을 받아 그를 만화로 그려주는 시리즈를 시도했다. ‘사연을 그려드립니닷!’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시리즈는 이제 키크니를 대표하는 콘텐츠가 되었다. 사연자의 이야기에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더해진 만화는 웃음과 눈물, 감동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각 만화에는 사연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댓글로 가득하다.
이처럼 키크니의 만화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소통’을 말할 것이다. 작가도 스스로 독자와의 소통에서 힘을 얻는다고 말할 정도다. 지금까지 스마트폰 화면으로 소통했던 키크니 작가가 올가을, 새로운 소통방식에 도전했다. 바로, ‘전시’다.
일단은 해보겠습니닷!
작가가 온 힘을 쏟아 준비한 전시는 이름부터 남다르다. <일러, 바치기>. 중간의 쉼표가 알려주듯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숨어있다. 하나는 작가의 일러스트를 독자에게 바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자가 작가에게 자기 일상을 일러바친다는 뜻이다. 평소 언어유희를 즐겨하는 작가의 특징이 전시 제목에도 나타났다.
단순히 만화 컷만 나열한 전시는 작가도, 전시 기획자인 청엠아트컴퍼니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장소부터 고민해서 선택했다. 오래된 다세대주택을 전시와 팝업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 ‘신사하우스’가 그곳이다. 그리고 21개의 방을 만화의 한 장면으로 구현하여 관객이 만화로 들어온 듯한 경험을 할 수 있게 꾸몄다. 관객은 방을 이동하며 키크니 작가의 스토리텔링을 따라가게 된다. 이에 관객은 박장대소를 하다가 점점 가슴이 찡해지더니 마지막 층에서 큰 위로를 받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
한번 웃겨보겠습니닷!
모든 전시가 그러듯이, <일러, 바치기>도 작가 소개와 일대기로 시작한다. 수줍음이 많아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작가는 역시나 거대한 자화상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그리고 허구 100%인 연대기로 웃음을 전한다. 시작은 그럴듯하여 고개를 끄덕이다가 점점 뭔가 이상함을 알게 되는 작가의 연대기는 ‘작가가 꿈꾸는 미래인가?’라는 착각할 정도로 구체적이다. 허무맹랑한 꿈도 진지하면 이뤄진다고 했던가. 왠지 마음속으로 ‘작가님, 파이팅!’을 외치게 된다.
3개의 건물(A~C동)에서 진행되는 <일러, 바치기>는 건물마다 대표 감정이 있다. 전시의 시작인 C동의 감정은 ‘웃음’이다. 그래서 C동에는 키크니 작가의 만화 중 유머의 비율이 높은 만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볍게 시작했지만, 이젠 다음 편을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높은 ‘으라차차 키크니 작명소’부터 키크니 작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된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까지. 작가의 재치를 엿볼 수 있는 만화와 작업들이 화면에서 튀어나와 입체 조형물로 구현되었다.
전시 작품은 평소 키크니 작가의 만화를 즐겨 보던 사람이라면 어떤 장면인지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만화와 싱크로율 100%를 자랑한다. 전시를 더 재밌게 보는 팁을 하나 밝히자면, 후다닥 사진만 찍지 말고 벽에 써진 문구를 자세히 읽어보고 전시장 구석, 구석을 살펴봐야 한다. 특히 노트북이나 수첩 등 전시된 소품들을 자세히 보면 깨알같이 숨겨둔 웃음 포인트를 찾을 수 있다.
살짝 울려보겠습니닷!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C동을 나와 B동으로 가면 뭉클함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는 반려동물이 내 곁을 떠난 사연, 가족과 친구의 사랑을 보여주는 사연, 괴롭고 힘든 일상을 토로하는 사연 등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 만화들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만화에 들어온 듯한 전시 디자인은 만화 속 사연의 주인공 마음마저 간접 경험하게 만든다. 가장 가슴 아팠던 방은 유기견의 심정을 기다란 실로 표현한 곳이었다. 관객은 천장에서부터 내려와 시야를 방해하는 긴 실들을 헤치고 전시를 봐야 한다. 이는 산에 버려지는 유기견의 시야와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한편, 전시는 2D인 만화가 어떻게 다채롭게 변신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스마트폰 화면에 갇혀 있던 만화는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해 시간과 움직임을 지닌 존재가 되고, 커다란 조형물로 만들어져 함께 사진을 찍는 포토존이 되기도 한다. 매체의 변화는 만화에 담긴 작가의 메시지를 200% 전달한다.
감동을 전하겠습니닷!
층 수가 올라가면 관객의 감정은 감동으로 바뀐다. 키크니 작가의 만화는 힘든 일상을 위로하는 내용도 많다. 지금 잘 살고 있는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방황하는 독자들에게 잘하고 있다고 어깨를 토닥이고, 우리는 모두 소중한 존재임을 상기시키며 앞으로 나갈 힘을 전한다. 용기를 북돋는 작가의 메시지는 설치 작품으로 더 큰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그래서 4층을 오르락내리락해도 전혀 힘들지 않다. 오히려 깊은 여운만이 가슴에 남는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번 전시는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그래서 전시장 곳곳에는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요소들이 많다. 빈티지 느낌이 나는 사진 기계로 셀카를 찍어 전시장 벽에 붙이고, 4면의 벽을 가득 채운 도화지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고, 고민과 걱정거리를 종이에 적고 꾸겨서 통에 버리는 등 관객의 적극적인 전시 참여는 곧 관객이 전시의 일부가 되게 한다.
굿즈도 만들어보았습니닷!
A동은 굿즈샵으로, 통장을 텅장으로 만들어 줄 전시 굿즈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작가의 첫 개인전인 만큼 <일러, 바치기>에는 정말 다양하고 다채로운 굿즈들이 준비되어 있다. 이곳에서도 작가의 재치와 유머를 엿볼 수 있다. ‘우리 집 비어’라는 이름을 가진 맥주 글라스, 개빡시계와 안빡시계가 붙어있는 양면 탁상시계 등 의미를 곱씹으면 피식 웃게 되는 제품들이 많다. 이외에도 작가의 상징인 후드티셔츠, 귀여운 메시지가 담긴 키링, 떡 메모지 등 종류가 다양하여 취향과 필요에 따라 골라 담으면 된다.
또, 이번 전시장에서는 키크니 작가의 콜라보레이션 제품도 구매할 수 있다.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를 본뜬 쿠키, 양쪽 그림이 달라 더 멋진 양말, 키크니의 캐릭터로 만든 팬던트 등 독특한 콜라보레이션 제품 역시 전시장에서만 판매된다.
그럼에도 전시장에서의 추억을 오래 남기고 싶다면, 2층으로 올라가 오직 <일러, 바치기>에서만 찍을 수 있는 인생네컷을 찍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진을 찍으면 키크니 작가의 일러스트가 함께 프린트되어 더 기억에 남을 선물이 될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키크니 작가의 첫 개인전인지라 방문하는 사람이 많다. 작가와 전시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제주도를 포함, 전국 각지에서 전시를 보러 가겠다는 독자들이 남긴 댓글로 넘쳐난다. 그래서 주말에는 대기 줄이 길 수도 있으니 감안하자. 또, 전시를 보기 위해서는 사전 예약도 필수다. 전시 티켓은 티켓링크와 네이버 예약에서 가능하다. 부디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키크니 작가의 유쾌한 재치와 따뜻한 마음을 충분히 느끼고 즐기기를 바라겠습니닷!
글 허영은 객원 필자
자료 제공 청엠아트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