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그의 다채로운 면모를 알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널리 알려진 도시의 풍경뿐 아니라, 그가 사랑한 자연과 빛까지 두루 살필 수 있도록 전시를 세심하게 구성한 것. 두 미술관이 2019년부터 협의한 결과로 탄생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전시를 담당한 이승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에게 이번 기획전의 의의를 물었다.
Interview 이승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라는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라는 제목의 ‘길’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우선 호퍼의 작품 속 작가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장소로 향하는 길을 의미한다. 또한 그곳에서 호퍼다운 방식을 전개하고, 하나하나 연결되어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기는 모습, 나아가 우리가 그 길 위에서 호퍼를 조우하는 순간을 상징한다.
— 서울시립미술관은 2019년부터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협의해 이 전시를 기획해 왔다.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서울시립미술관은 공립미술관으로서 세계 유명 미술기관과 소장품 교류를 추진하여 글로벌시대에 문화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이에 지난 2019년 《데이비드 호크니》(2019. 3. 22.~2019. 8. 4. 서소문본관)와 2021년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2021. 12. 21.~2022. 5. 8. 북서울미술관)을 개최한 바 있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과 휘트니미술관이 2019년부터 협의를 시작하여 서울 전시 에디션으로 기획한 결과이다.
— 이번 전시는 오랜 시간 휘트니미술관과 공동으로 연구해 새로이 도출된 에디션이기도 하다. 서울시립미술관과 휘트니미술관이 진행한 이번 에드워드 호퍼 연구는 어떤 의의를 지니는지 듣고 싶다.
에드워드 호퍼라 하면 흔히 현대인의 고독과 우울한 도시 풍경을 그린 작가라고 알고 있지만, 그의 삶과 예술세계는 그 범주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한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호퍼만의 스타일을 완성하기까지 그는 여러 장소에 대한 독특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섬세한 관찰에 자신만의 기억과 상상력을 더한 화풍을 평생에 걸쳐 발전시켰으며, 그의 작품 세계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모습보다 훨씬 다채롭다.
— 삽화나 잡지 표지 그림 등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하는 작품도 대거 선보였다.
전시는 미술관 전관(1, 2, 3층)에서 개최된다. 그중 1층의 상당 부분을 호퍼의 아카이브와 삽화를 활용하여 〈호퍼의 삶과 업〉으로 구성하였다. 이 섹션은 크게 여정, 삽화, 호퍼 부부, 작가의 말과 글, 그리고 다큐멘터리로 나누어 작가의 예술과 삶의 행적을 세세히 전달하고자 했다.
— 이번 전시는 ‘에드워드 호퍼’ ‘파리’ ‘뉴욕’ 등 총 7개 섹션으로 나뉜다. 이렇게 섹션을 구분한 이유를 들려 달라.
전시는 2, 3, 1층 순서로 볼 수 있고, 전시 섹션은 주로 호퍼가 방문한 지역들로 구분되어 있다. 언급했듯 각각의 지역은 호퍼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곳으로, 작가의 자취가 생생히 느껴지는 장소이다. 그곳에서 호퍼다운 독보적인 예술이 점진적으로 전개되었다. 각 섹션을 거치며 거장이 되기까지 호퍼가 쏟은 예술에 대한 사랑과 노력, 그에 따라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주목해서 관람했으면 좋겠다.
— ‘에드워드 호퍼’ 하면 바로 떠오르는 도시의 풍경뿐 아니라 목가적인 풍경이 담긴 작품 역시 다수 전시된다.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목가적인 풍경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호퍼는 자신을 만족시키는 모티프를 찾기 위해 종종 뉴욕을 떠나 새로운 곳을 여행했다. 그런 그가 평생에 걸쳐 몇 번이고 거듭 방문한 곳은 손에 꼽힌다. 호퍼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도시와 관련된 화풍이 그가 『시스템: 비즈니스 매거진』에 기고한 소비, 급여와 승진, 보험을 주제로 한 글과 함께 수록된 삽화가 유사하다면, 그가 뉴욕을 벗어나 방문한 미국의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에서의 작업들은 편안하다. 또한 야외 작업은 호퍼의 그림에서 중요한 ‘빛’을 유연하게 다루는 방법을 그에게 터득하게 하였다.
— 특히 ‘조세핀 호퍼’를 조명한 섹션이 인상 깊다. 조세핀 호퍼를 조명하는 섹션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에드워드 호퍼의 삶에 조세핀 호퍼는 어떤 의미였다고 생각하나?
에드워드 호퍼의 배우자이자 유일한 여성 모델로 알려진 조세핀 니비슨 호퍼(Josephine Nivison Hopper)(1883-1968)는 에드워드 호퍼의 훌륭한 조력자였고 이를 이번 전시를 통해 알리고 싶었다. 조세핀은 과묵한 에드워드 호퍼와 달리 활달한 성격으로 예술 딜러, 컬렉터, 큐레이터 및 기자들과 교류하며 작품을 홍보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조세핀은 그의 전시 이력, 작품 판매 등 상세한 정보가 적힌 장부 관리를 30년 이상 지속하는 등 매니저의 역할도 수행했으며, 에드워드 호퍼의 사망 이후 거의 2,500여 점에 달하는 호퍼의 작품과 자료 일체를 휘트니미술관에 기증한다. 말수가 적은 편이던 에드워드 호퍼가 언급하지 않은 작품의 세부 사항을 조세핀이 세세하게 기록한 덕분에, 장부는 그의 작품 생애에 대한 핵심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를 지니게 다.
—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줄까?
호퍼의 시선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그는 대상과 공간을 세심히 관찰하여 포착한 현실을 호퍼 특유의 빛과 그림자, 대담한 구도, 시공간의 재구성 등을 통해 자기화한다. 이런 의미에서 호퍼의 그림은 풍경 너머 내면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모습은 우리와 닮아 있다. 그것이 밤 공원에 홀로 앉아있는 어떤 이의 모습뿐만 아니라 마천루와 대비되는 낮은 건물의 지붕, 바닷가의 작은 모래언덕일지라도 말이다.
각자의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과 성향이 얽혀 있기에 내면을 표현하고 서로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호퍼는 현대인의 일상과 정서를 누구보다도 훌륭히 그려내어 전달하고 있다. 여러모로 지친 우리들이 호퍼의 작품을 대면한다면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 김유영 기자
자료 제공 서울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