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에너지 넘치는 젊은 인재의 합류는 에르메스 재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올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조엘 리프는 이런 기대에 부흥하듯 ‘증강된 솔로(solos augmentés)’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첫 전시를 선보였다. ‘증강된 솔로’란 전시에 초대된 작가 뿐만 아니라 작품과 연관된 다른 작가들도 함께 공간에 참여하도록 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구성하려는 접근 방식이다.
첫 전시로 프랑스 아티스트 마리옹 베르붐(Marion Verboom)을 초대한 것은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조엘 리프의 시선으로 채워진 라 베리에흐 공간은 조금 더 친밀해졌다. 베르붐의 파스텔톤 입체파 조각상 ‘아크로니(Achronie)’와 그의 파리 보자르 스승 리차드 디컨(Richard Deacon)의 드로잉과 조각, 93년생 세라믹 아티스트 클로에 베르느레이(Chloé Vernerey)의 다양한 포르셀린 다기들, 그리고 디자이너 투쉬-투쉬(touche-touche)의 폴리에스테르 잔해로 만들어진 의자 세 점 등 물질과 형태, 컬러들이 모두 다른 듯 비슷한 연계를 보여주는 한편, 서로 실제로 영향을 주고받은 일곱 명 작가들의 작품이 대화하는 듯 친근하게 공간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르붐은 파리 보자르(Beaux-Arts)를 2009년에 졸업하고 암스테르담의 드 아뜰리에(De Ateliers)에서 2년간 수학했다. 현재 작가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기둥 형식의 조각 작품 ‘아크로니’는 2016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각 모듈은 지수 알파벳의(exponentiel alphabet) 문자 역할을 하며 구성에 따라 메시지가 달라진다. 이번 전시 <크리셀레판틴(Chryselephantine)>의 메인 작품 역시 ‘아크로니’다. 막상 따라 읽기도 어려운 단어를 전시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크리셀레판틴은 작가가 아폴로 신전이 있는 그리스의 고대 도시 델포이(Delphi)의 어느 안내판에서 발견한 단어라고 한다. 크리셀레판틴은 금과 상아로 만든 조각상을 의미하는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 개발된 용어로, 전통적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올림피아의 제우스 동상이 좋은 예다. 금과 상아가 재료로 사용된 조각상이어야 했던 것은 시간이 흘러 아르데코 시대에는 청동이 금을 대체해 사용되기도 하는 등 역사적, 기술적, 지적 맥락의 변화에 따라 조각의 형태와 사용되는 재료도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크리셀레판틴이 매체로서 가진 잠재력과 적절한 재료, 스타일의 변형에 관해 탐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것이 오랫동안 작가가 연구하고 발전시켜온 아이디어다.
현대적 크리셀레판틴이라는 아이디어에 형태를 부여하고 수년에 걸쳐 발전시킨 ‘아크로니’는 고대의 금과 상아가 아닌 금보다 더 반짝이는 또 다른 재료인 유리와 다양한 형태와 색감을 표현하기 용이한 세라믹으로 발전됐다.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밝은 무채색과 유채색이 섞여있는 모습은 확실히 오늘날의 다양성을 반영한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브뤼셀을 방문하는 동안 접한 문화적 유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두 가지 조각상이 추가되었는데, 금세공 아틀리에를 상징하는 톱니바퀴와 브뤼셀 오페라 하우스(Théâtre de la Monnaie)의 오케스트라에서 플루트 수석으로 연주했던 증조부로부터 물려받은 낡은 플루트 형태의 조각상이 그것이다. 세라믹으로 제작하고 금색을 입힌 플루트와 화려한 원색을 뽐내는 크리스털 조각 작품은 벨기에에서의 첫 개인전의 특별함을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거기에 처음으로 전시장에 함께 전시된 주형들 덕분에 관객들은 조각품과 그것이 탄생된 과정까지 구체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은 함께 전시된 작가 일곱 명의 작품이다. 여러 작가의 작품들이 한 공간에 있지만 서포트하는 역할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부대끼지 않는다. 서로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면서 관람하다 보면 마리옹 베르붐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것이 큐레이터 조엘 리프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작가로서 성장하도록 도움을 준 스승 리차드 디컨의 작품부터 부드러운 형상화에 대한 접근 방식의 영향을 준 입체파 조각가 앙리 로렁(Henri Laurens)의 청동 조각상. 그리고 동시대 아티스트 모드 마리(Maude Maris)의 입체적 형태에 집착하는 그림은 ‘아크로니’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시각 예술과 응용 예술 분야를 섞었다는 점인데 손이 가진 특수한 ‘제스처’를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도예가 클로에 베르느레이, 암석으로 변신한 폴리에스테르 파편으로 만들어진 디자이너 투쉬-투쉬의 의자는 공예나 디자인이 순수예술과 얼마만큼 크로스오버가 가능한지 보여주고 있다. 실제 관람객들은 의자에 앉을 수 있는데, 이런 시도는 전시장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는 것과 동시에 작품과 친근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셈이다.
이번 개인전은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서신 교환이라는 ‘증강된 솔로’ 콘셉트의 하이브리드식 전시를 선보였다. 공예적 기술이 적용된 작품이 가진 감수성을 느끼는 것을 목표로 한 조엘 리프의 첫 번째 큐레이션, 그리고 마리옹 베르붐의 첫 번째 벨기에 개인전은 전시장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질감, 색, 형태, 기술만큼 많은 감정을 교차시키는 아름답고 신선한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글 양윤정 객원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