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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3

꽃망울 터지는 머리카락… 에바 알머슨 개인전

한국이 사랑하는 스페인 화가 에바 알머슨 대규모 전시
“올라(Hola)!” 곱슬거리는 단발머리 아래 달랑거리는 붉은 색 귀걸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웃을 때마다 큰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목을 받아 수줍어 하면서도 작업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순수한 열정을 내비치던 스페인 출신의 화가 에바 알머슨(Eva Armisen)이다. 머리카락에서 알록달록 꽃이 피어나고, 나비가 포르르 날아가는 사랑스러운 ‘머리카락 숲’ 소녀 그림으로 유명한 작가는 마치 자신의 작품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최근 2년 동안 어느 때보다 작업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작가가 신작을 한아름 들고 한국을 찾았다. 5월 13일부터 12월 4일까지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 <에바 알머슨, 안단도(Andando)>를 위해서다.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를 위해 한국을 찾은 작가 에바 알머슨 ⓒYoojay

에바 알머슨은 1969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리스본에서 활동하는 화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리트벨트 아카데미와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LA, 멜버른, 싱가포르, 리스본 등 해외 많은 도시에서 전시를 열었다. 무엇보다 한국은 작가가 경력 초기 시절부터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서두르는 한국 현대인에게 작가의 작품이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까. 작가의 생애 첫 대규모 개인전을 연 나라도 바로 한국. 2018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은 보통 비주류로 여겨지는 현대 여성 화가라는 벽을 깨고 관람객 40만 명을 모으며 흥행했다. 국내에서 엔제리너스, 농심, 코렐, 스킨푸드 등 생활 브랜드와 협업하며 인지도도 높아졌다.

ⓒYoojay

“한국에 방문한 지 13년째예요. 환대해주는 한국에게 고마워요. (대규모 개인전처럼) 제가 상상할 수 없던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 만족스럽습니다.” 이번 전시는 2018년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 2019년 세종미술관에서 열린 <에바 알머슨 삶(Vida)>전에 이은 세 번째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장르가 포함돼 회화 작품 뿐 아니라 벽화, 대형 조형물, 드로잉, 애니메이션 등 150여 점으로 구성된 역대 최대 규모 전시다. 대다수 작품이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신작이라는 점도 눈 여겨 볼 만하다.

ⓒYooJay

“이렇게 큰 공간을 채우는 전시를 하게 된 건 처음입니다. 전시를 어떻게 설계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전시 제목이자 주제는 ‘안단도(Andando)’, 스페인어로 “걷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움직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어요.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보기도 하면서 그린 작품들입니다.” 작가는 예술이 마치 일기장 같아서 본인에게 의미 있는 것을 기록하는 수단이라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틀어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기억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작품으로 남겼다고 설명했다.

ⓒYooJay

가족, 사랑, 주체적인 삶 등을 친근하고 낙관적으로 그리면서 ‘행복 전도사’라는 수식어가 붙은 에바 알머슨은 과연 코로나19 기간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도시 봉쇄, 외출 불가 등 일상을 완전히 바꾸는 제약들에 많은 사람들이 우울하고 외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작가는 예술로 기여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자가격리자들의 초상화’ 시리즈. 코로나19 봉쇄기간 동안 자가격리 중인 사람들을 그린 초상화 100여 점으로, 이번 전시장에는 일부를 선별해 걸었다.

ⓒYooJay

“스페인에서는 전체 도시가 봉쇄됐어요. 일주일이면 끝날 줄 알았던 기간이 두 달이 넘으면서 그동안 미처 몰랐던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어요. 친구, 친구의 친구 등 주변인에게 사진과 이야기를 전달받아 100여 점의 작품을 그렸어요. 작업실이 온갖 초상화 사진과 회화로 가득했죠. 팬더믹을 거치면서 우리가 연결과 공감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고, 미술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줄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됐지요.”

작가를 유명하게 만든 ‘머리카락 숲’을 가진 소녀 작품들도 곳곳에 보였다. 머리카락에서 활짝 핀 꽃들이 자라나 사방으로 펼쳐진다. “머리는 생각하고, 상상하고, 행동을 바꿀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기관이에요. 머리카락은 머리에서 흘러나온 생각과 감정이죠.” 사랑, 자연 등 소녀의 머리카락에서 흘러나온 온화한 생각과 감정들은 관람객의 마음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Yoojay

전시의 피날레는 ‘드레스’다. 인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선택을 하는데, 우리가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이 우리의 인생을 만든다. 작가는 이러한 선택을 ‘옷’에 비유했다. 우리가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보여줄지에 대한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며 어떤 옷을 걸칠지, 어떤 옷을 벗어 던질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전시장 천장에는 부풀린 치마 같은 섬유 조형물들이 매달려 있고, 조형물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벽면에는 그 조형물들로 구성된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활짝 웃고 있는 그림이 걸려 있다. 작가의 진취적인 삶의 태도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Yoojay(왼쪽), Eva Armisen(오른쪽)

잊고 있던 포근한 감정들을 깨우는 에바 알머슨의 개인전 <에바 알머슨>은 용산 전쟁 기념관 특별전시실에서 5월 13일부터 12월 4일까지 진행된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2만 원.

유제이 객원 필자

장소
전쟁기념관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9
일자
2022.05.13 - 2022.12.04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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