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아니, 두 ‘플라뇌르’*가 있다. 영감의 숲을 한가롭게 배회하는 산책자 그리고 그 산책자를 총총 뒤따라온 또 한 사람. ‘별게 다 영감’이라고 말하는 기록자 ‘숭’이 일군 무성한 이 숲을 은밀히 따라가다 보니,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별(別)것’이었던 것들이 그의 호기심 레이더에 포착되는 순간 ‘특별(特別)’한 영감이 되어 싹을 틔우고 있던 것! 깜짝 놀라, 앞장서는 그를 불러세우자 확성기를 들고 대답하는 숭이다. “여기에도 좋은 영감이 있어요~!”
*플라뇌르 : 한가롭게 거니는 사람. <별게 다 영감>에도 등장하는 언어다.
마케터이자 작가, 그리고 기록자라고 소개하는 이승희(숭) 마케터는 블로그에 ‘배달의민족’을 예찬하는 글로 그곳의 마케터가 되어 커리어를 쌓고, 2018년부터는 영감노트(@ins.note)라는 계정을 만들어 일상에서 모은 소소한 영감들을 아낌없이 나눠왔다. 그 꾸준한 호기심과 큰 목소리를 품은 기록은 그간 많은 이들을 매력적인 영감의 세계로 불러모았다. 다녀간 가게, 스크롤하다 발견한 계정, 지나가다 발견한 간판, 주변인과의 대화… 나열된 정보와 추상적인 생각들은 그의 노트와 SNS 계정에 얹히는 순간 유쾌한 영감이 된다.
그가 지난 4년간 모아온 영감들을 모아 엮어 새롭게 출간한 책 <별게 다 영감>이 2주 만에 중쇄를 찍은 사이, 어느덧 해가 바뀌어 있었다. 연말을 돌아보고 새해를 맞아 새로운 다짐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기록을 위한 노트와 펜! 자기만의 영감을 찾고자 눈을 번뜩이고 신발을 고쳐 신은 이들을 위해, 특별한 산책으로 초대한다. <별게 다 영감> 안에 잠든 영감들을 깨우며, 숭과 함께 유유히 걸어 볼까?
황선우 작가님의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재밌게 읽고 있어요. 원래는 일에 관한 책인 줄 몰랐는데, 일하는 여성에 관한 책이더라고요. 인상 깊었던 구절 중 하나는 ‘실패했다고 느끼더라도 다시 전진하는 그 용기가 더 중요하다’였어요. 새해에는 도전했다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도 많고 연말에 한 해를 정리해 보면 ‘왜 이건 중간에 멈췄지?’ 하며 자책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 구절을 보고 그냥 다시 꾸준히 하는 용기를 가지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하나는 ‘에너지 흡혈귀’라는 말이에요. 제가 21년도에 힘들다는 얘기를 친구들에게 많이 했는데, 그걸 에너지 흡혈귀라 한다고 해요. 제가 친구들의 에너지를 쪽쪽 빨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기보다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 나눴던 대화는, 친구와 하고 싶은 것과 한계 등을 생각하며 새해 계획을 세우다가 그 친구가 말하는 거예요. 개그맨 이경규한테 ‘영화가 계속 망하는데 그냥 개그맨이나 하지 왜 영화를 만드냐’라고 했더니 이경규 씨가 ‘개그맨은 나의 직업이고 영화감독은 나의 꿈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요. 그래서 저도 제 꿈을 위해 직업적인 일 외에도 계속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근에는 제주도에 갔다 왔어요. 연말에 다녀온 여행이라 그런지, 제주라는 지역을 관광하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터라 무척 좋았어요.
어떤 분야든 새롭게 시작하는 순간이 다 처음인 것 같아요. 블로그 포스팅 마케팅을 하고 싶다고 마음먹어서 막 다이어리에 썼던 처음, 브런치에 글을 발행해서 페이스북에 공유했던 처음… 이런 것들이 기억에 남는데, 스스로 창피한 마음이 있는데도 그냥 질렀거든요. 다들 내가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걱정도 되었고요. 선언하듯 처음을 던지면 오글거리고 부끄럽잖아요, 그게 저에게 있어 처음의 인상이에요.
또 올해는 작년에 제대로 못 한 유튜브도 열심히 하고 싶은데, 다시 하면 그 처음의 인상이 들 것 같아요. 누군가는 ‘이승희 유튜브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할 수도 있고, 재미없어서 끌 수도 있을 텐데 그런 반응들이 다 신경 쓰이겠죠? 그런 창피한 마음 반, 그래도 그냥 ‘GO’ 하자는 마음 반이 늘 있어요.
아침에 운동하는 것, 달력이나 일정 관리 어플에 매일 할 일을 쓰는 게 저만의 리추얼이에요. 운동으로는 헬스 PT를 하는데, 원래 매일 하다가 주 3회로 하고 있어요. 또 출퇴근 시간에 책을 읽었는데 코로나로 재택을 하게 된 이후로 안 읽게 되어서, 아침에 일어나 책 읽는 걸 새로 루틴으로 삼았어요.
평소에도주로계획을세우시고하루를움직이시는편이세요?
여행 같은 건 계획을 안 세우는데 일상은 철저하게 세우려고 해요. 계획을 세워놓으면 덜 불안하거든요. 그렇게 하면 10개 중 3개는 해요. 또 계획을 세우고 쓰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사실 질문하는 능력도 저한테 무척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궁금한 게 진짜 많아요. 그래서 사실 에디터님한테도 오늘 궁금한 게 되게 많아요.(웃음) 그 외에는 호기심을 갖는 능력과 작은 것도 크게 소리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걸 좋다고 널리 알리는 능력이요. “여기 이런 거 있어요~’, ‘이 동네 이곳이 잘한대요~’, ‘얘가 이거 진짜 장점이에요~’ 이렇게 많이 바이럴하는 게 저의 능력 중 하나예요.
약간확성기같네요!
네, 그래서 별명이 ‘확숭기’거든요(웃음). 떠벌리는 걸 되게 잘해요. 블로그에 글 하나 쓰면 그것을 캡처해서 업로드하고 퍼뜨리죠.
소소문구 인스타그램을 인용해 ‘페어링’을 소개했는데요. 그래서 그런 게 아니더라도 소소문구의 디깅노트와 제 책을 페어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작은 영감 메모들을 많이 모았듯이, 한 가지를 깊이 파서(digging) 기록하는 노트잖아요. 본인만의 일상의 작은 기록들을 모으기에 딱 좋은 노트예요. <별게 다 영감> 인증 후기를 보면, 다들 새해에 사소한 것들도 다 기록하자는 다짐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디깅노트와 같이 페어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제주 여행에서 행복을 이행시로 써 놓은 가게를 봤어요. ‘행하면복이온다’. 모든 것은 움직여야 시작되는 건데 저도 그걸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레코드 즉, 좋은 기록이라는 것도 결국 내가 계속 실행했던 것들의 모음이잖아요. 그래서 꼭 최고 기록을 좋은 기록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매일매일 꾸준히 기록하고 싶어요. 그래서 올해 세운 계획도 ‘매일 계속하기’ 같은 것들이 많아요. 꾸준히 글쓰기, 공부하기, 운동하기… 그래서 누가 듣기에는 조금 식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요. 또 다른 하나는 정채봉 작가님의 <첫 마음>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인 “날마다새로우며깊어지고넓어진다.”예요. 새해 목표로 다짐하기 좋은 문장이에요. 날마다 새로워지고 깊어지고 넓어지고 싶어요.
뉴스레터를 매일 봐요. 시사 경제 뉴스레터랑, 영감받은 것들을 모아서 보내주는 뉴스레터, 공간에 관련된 걸 봐요. 뉴스레터는 양껏 받아보는 편이에요. 그런데 올해부터는 신문을 보려고 구독할까 말까 고민 중이에요. 매일 사용하는 물건은 다이어리나 펜. 워낙 많이 쓰고 있어요. 오브젝트 노트도 쓰고 소소문구 노트도 쓰고, 어플과 아날로그 노트 자유자재로 병행해서 사용해요.
또 저는 진짜 ‘막귀’거든요. 그래서 랜덤 재생을 무척 좋아해요. 유튜브 뮤직이나 바이브 플레이리스트에서, 만약 오늘 성시경의 ‘내게 오는 길’이 생각나면 그걸 듣고 그 뒤로 알고리즘으로 재생되는 비슷한 곡들을 랜덤으로 듣는 거죠. 우연히 ‘이 노래 좋은데?’ 하고 얻어걸리면 저장을 해 놓고요. 유튜브 중에서는 ‘리플레이’라는 채널을 좋아해서, 그분이 큐레이션 해 주는 음악을 들으며 작업해요.
랜덤이라고하니, 우연히발견되는행복도있겠네요!
은근히 제가 음악을 많이 ‘디깅’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에 대해서는 차라리 모르는 곡에 나를 노출해두려고 해요.
작년에 박웅현 CD님과 <책은 도끼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같은 분야를 다루고 있지만 세대가 달라서, 서로 다른 질문과 답변이 어우러질 때 정말 좋더라고요. 어떤 점은 닮았고, 또 어떤 점은 배울 수 있고요. 그와 이야기할 때면 마치 고전 문학을 읽는 느낌이에요. 또 어떤 세계를 꾸며보고 싶은가 하면, 세대가 아예 다른, 예를 들면 어린이와도 콜라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꼭 영향력 있는 분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제가 35살인데, 15세, 25세, 45세, 55세… 이런 콜라보를 해 보고 싶기도 해요. 세대 별로 생각하는 것들이 정말 다를 테니까요.
(176p) 바쁜가운데에서도한가로운때, ‘망중한’을즐기는숭님의방법은?
저는 이 단어가 너무 좋아요. 이 시간을 즐길 때는 핸드폰 알람 등을 다 꺼놓고 침대에 누워 멍 때리고 있거나, 선이 없는 백지 노트에 제 생각을 쓰레기통처럼 적기도 해요.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나 생각이 많을 때 노트에 그것들을 ‘버려두고자’ 하거든요. 끄적이면 답답했던 게 풀리고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공간 기획자나 브랜드 디렉터, 유튜버로도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투자자’요. 한 강연에서도 ‘앞으로 투자자가 될 숭입니다’라고 얘기했는데요.(웃음) 전 어떤 것에 투자한다는 것은 감각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감을 잡고 투자하는 거잖아요. 마케터는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알고 기획하는 사람인데, 그런 투자 감각까지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줄곧 했어요. 실제로 투자자분들은 시장을 정말 빠르게 파악하고 마케터들보다 사람들의 심리를 더 많이 알기도 해요. 예를 들어 애플에서 정말로 자동차가 나오면, 마케터는 어떤 식으로 기획할지 고민할 텐데, 한 단계 더 앞서서 ‘사람들이 이걸 좋아할 테니까 여기에 투자해야겠다’ 까지 가고 싶어요.
확신이필요한직업이네요. ‘잘되게만들거야’가아닌, ‘무조건잘돼’라는마인드로요.
예전에 대표님도 저희한테 ‘너 맨날 성수동에 사람들이 좋아할 어떤 곳 생긴다, 뭐 한다 하는데 그러면 뭐가 잘 될지 투자도 해 볼 수 있지 않느냐, 근데 왜 노는 데까지만 생각하느냐’ 하고 말씀하셨거든요. 결국 투자자로 불리고 싶다는 말은 조금 더 거시적인 시각을 갖고 싶다는 뜻인 것 같아요. 공간 기획자, 브랜드 디렉터, 유튜버, 투자자…라고 해도 결국은 다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전 마케팅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 일이 재밌어서 다른 것들도 하고 있으니까요.
(346p) 숭님이위안받는한강은무엇인가요?
‘배달음식’이요. 그래서 사실 배달의민족에서 일할 때도 정말 ‘찐팬’이었거든요. 그러다 다른 걸 (한강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예를 들면 글쓰기요. 하지만 스트레스 받을 때 위로받을 수 있어서 글을 썼는데, 그러다 보니 글 쓰는 일이 자꾸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여전히 배달음식, 그리고 독서가 저의 한강이에요. 책 읽으면 현실을 잠시 잊게 해 주잖아요. 스트레스 받을 때는 책을 막 10권씩 읽어요. 다 읽는 게 아니라 막 보는 거예요. 그땐 ‘아,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구나’ 싶죠.
매주 영화 한 편씩 보기요! 짧은 콘텐츠에 익숙해진 뇌를 ‘팝콘 브레인’이라고 하던데, 제가 그렇거든요. 작년에 영화를 한 세 편 봤나…? 긴 콘텐츠에 몰입을 못 하겠더라고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익숙해져 있고, 성격도 급하다 보니 스킵해서 볼 때도 많아요. 그래서 영화를 재밌게 보는 사람들이 늘 부러워요. 영화에도 좋은 영감이 많잖아요. 그래서 숙제처럼 매주 영화 한 편씩 보고 기록하는 걸 올해 계획으로 세웠어요. 그것의 Reason Why는 ‘긴 호흡의 콘텐츠를 소비해 보고 싶어서’!
플로피 서울의 ‘타월북’이라는 제품이요. 수납장에 꽂아둔 타월은 책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걸 반영해 책처럼 디자인한 ‘타월북’이라는 제품을 만들었어요. 재밌는 발상이지 않나요? 심지어 예뻐요! 이제 화장실 한켠에도 타월북으로 수건을 진열해두고 싶을 것 같아요. 공간 그 어디에도 예쁘지 않은 것을 두고 싶지 않으니까요. 심지어 이슬아 작가와 콜라보를 하기도 했더라고요. 이렇게 관점을 달리하다 보면 재미있게 시도해 볼 것이 끝도 없이 나올 것 같아요.
브리타 정수기. 원래 자취하면서 생수를 주문하곤 했는데 매일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에 죄책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그러다 친구의 추천으로 브리타 정수기를 구매했는데, 플라스틱이 나오지 않을뿐더러 생수가 집 안에 자리를 차지하지 않아서 좋더라고요. 주기적으로 필터만 갈아 끼워 주면 돼요.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환경을 지킬 수 있는 소비를 계속하고 싶어요.
콜린스 인센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영감을 줄 때가 있죠.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주역은 단연 ‘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워낙 인센스를 좋아해서 많이 모으는데, 콜린스 인센스는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할 때 보이는 곳곳의 섬세함이 센스 있고, 뚜껑을 집게로 꼽아두고 향을 피우는 패키지도 정말 간편하고 예뻐요. 인센스 보관함이 빈티지 약통같이 예뻐서 모으고 싶기도 하고요. 향은 또 왜 이리 좋은지! 매일 킁킁대며 느끼고 있답니다.
자료 협조 이승희
CURATED BY 소원
디자인을 하고 글을 씁니다. 따뜻한 햇살과 아이스 카페라떼를 원동력 삼아 책을 읽고 영감을 얻고 콘텐츠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