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9

3월 서울에서 가장 낯선 경험, 리움미술관 티노 세갈전

“사라지기에 더 선명하다” 낯선 몰입을 즐기는 법

3월, 리움미술관에서 티노 세갈(Tino Sehgal)의 개인전이 열린다. 조각이나 회화 등 고정된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그의 작업은 우리가 흔히 ‘전시’라 믿어왔던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물리적 실체가 없는 작품, 설명 없는 전시장, 사진 촬영 금지. 낯선 경험 앞에서 당혹감을 느낄 관람객을 위해 전시의 감상 포인트와 비하인드를 정리했다.

티노 세갈 전시 포스터. 디자인 김영삼. 출처: 리움미술관

1. 기록 없는 작품과 작가의 독특한 이력

티노 세갈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지 실체가 없는 작업을 한다는 데 있지 않다. 1976년 런던에서 태어나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는 대학에서 정치경제학과 안무를 공부했다. 무언가를 끝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 그리고 찰나에 사라지는 신체의 움직임을 다루는 감각은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구성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이라 부르며, 전시장 안에 물리적 형체 대신 사람의 목소리와 움직임만을 채워 넣는다.

세갈은 작업을 유지하는 방식에서도 기존의 틀을 거부한다. 사진과 영상, 도록 같은 기록을 남기지 않으며, 작품 거래 역시 서면 계약서 없이 구두 합의로만 진행한다. 이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카텔란의 바나나는 소모품일지라도 이를 작품으로 증명하는 ‘인증서’라는 물리적 기록을 남긴다. 반면 세갈은 이러한 최소한의 장치조차 두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전시는 “기록 없는 작품은 어떻게 보존되고 기억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남긴다.

전시장 입구와 티노 세갈의 모습. 출처: 리움미술관

2. 가벽을 걷어내고 드러낸 리움의 공간

리움미술관 M2 외관 모습. 출처: 리움미술관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뿐만 아니라 리움의 공간 자체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된다. 장 누벨(Jean Nouvel)이 설계한 리움 M2는 유리 외벽과 전시 박스가 맞물리는 독특한 구조를 지녔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기존의 전시용 가벽들을 모두 걷어내고 공간의 원래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다.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리움 건물의 골조와 내부 시설들이 노출되며, 관객은 건축의 민낯과 작품이 조우하는 풍경을 마주한다. 특히 M2 지하 1층 공간에서는 3점의 ‘구성된 상황’이 6주마다 교체되며 전개된다. 관객은 해석자들과 마주치며, 작품을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존재를 넘어 그 상황을 작동시키는 일부가 된다.

3. 작가의 시선으로 다시 배치된 리움의 소장품

전시장 곳곳에는 티노 세갈이 선택한 리움의 소장품 38점이 배치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작품 하나하나를 돋보이게 하거나 연도·작가별로 분류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작품들 간의 ‘연결’에 집중한다. 어떤 조각은 받침대 없이 바닥에 놓여 있고, 또 다른 조각은 관객에게 정면이 아닌 뒷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한다.

출처: 리움미술관

특히 한국 조각의 선구자인 김정숙의 작업을 장 아르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업과 나란히 배치한 장면은 이러한 시도를 잘 보여준다. 서구 미술사 거장들과 한국 작가의 작업을 대등한 위치에서 연결함으로써, 기존의 미술사적 위계보다는 작품 간의 조형적 연관성을 우선시했다. 관람객은 익숙했던 소장품이 놓인 위치와 맥락의 변화를 통해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마주하게 된다.

티노 세갈의 전시는 관객의 기억에만 남는다. 같은 장면이 반복되더라도, 완전히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인스타그래머블한 것’ 자체가 전시의 요소가 되는 요즘, 티노 세갈의 전시는 낯선 경험이다. 오직 지금, 여기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작가가 사라진 뒤에도 남는 것일까? 어쩌면 사라지기에 더 선명해지는 경험 그 자체가 예술일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을 기록하고 저장하는 시대이기에 지금 이 순간에만 머무는 경험은 오히려 더 드물다. 이번 전시는 정답을 찾기보다,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만나는 경험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김지오 기자
취재협조 리움미술관

프로젝트
티노 세갈
장소
리움미술관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일자
2026.03.03 - 2026.06.28
주관
리움미술관
링크
홈페이지
김지오
자기만의 길을 걷는 브랜드와 사람이 궁금합니다

콘텐츠가 유용하셨나요?

0.0

Discover More
3월 서울에서 가장 낯선 경험, 리움미술관 티노 세갈전

SHARE

공유 창 닫기
주소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