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2

‘텍스트 힙’의 시대, 요즘은 이렇게 읽는다

리딩 파티부터 교환 독서까지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며 독서 인구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 독서실태에 따르면, 성인 전체 독서율은 40.3%.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10명 중 6명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텍스트 힙(Text-Hip)’의 시대가 왔다.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그 열기에 불을 지폈다. 문학과 책을 다루는 SNS 계정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오프라인에서도 ‘책’을 다룬 행사는 많은 이들이 다녀갔다. 지난 6월 열린 ‘2025 서울국제도서전’은 5일간 15만 명이 방문했고, 입장권은 온라인 사전 예매 단계에서 조기 매진됐다. 11월 14일부터 열리는 독립 출판 축제인 ‘2025 서울 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에는 역대 최다인 251팀이 참가한다. 

출처: sibf_official

왜 지금 독서는 ‘힙한 문화’가 됐을까. 그 배경에는 독서 시장의 주류가 20·30세대 젊은 독자들이기 때문이다.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독서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20대로 74.5%를 기록했다. 성인 평균 독서율 40.3%를 훌쩍 웃도는 수치다.

 

시를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포엠매거진’을 운영하는 배동훈 대표는 이 현상을 이렇게 해석한다.
“숏폼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책을 안 읽죠. 그만큼 독서는 특별한 취미가 됐어요. ‘활자를 읽는다’라는 행위 자체가 나를 멋있고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니까요.”

 

전체 독서 인구가 줄어든 지금,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자기표현의 수단이기도 하다. 다만 소비층이 젊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독서가 ‘힙한 문화’가 된 것은 아니다. 독서가 개성 있는 취미로 자리 잡으면서, 이를 소비하고 즐기는 방식 또한 달라지고 있다. 이제 독서는 책을 혼자 읽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함께 읽고 나누는 등 독서를 즐기는 방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 독서 모임 대신 ‘리딩 파티’

서울리딩파티 현장. 출처: 예스24

 

요즘 독자들은 모임 대신 파티를 연다. 책을 미리 읽고 오지 않아도 된다. 읽어야 하는 책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심지어 누가 오는지도 모른다.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되고, 파티 내내 앉아서 책만 읽어도 된다. 한 권의 책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나누기보다, 책 좋아하는 사람끼리 가볍게 만날 수 있는 기회. 최근 유행하는 ‘리딩 파티’의 모습이다.

 

리딩 파티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건 지난 9월 ‘제1회 서울 리딩 파티’가 성황리에 막을 내린 뒤부터다. 인스타그램 매거진 계정 ‘포엠매거진’(@poemmag), ‘푸더바’(@ptb_mag), ‘픽글’(@pick_geul)이 모여 기획·운영했고, 예스24가 후원사로 나섰다. 100개의 티켓은 예매 오픈 3시간 만에 매진됐다. 파티는 블라인드 북을 받아서 읽거나 파티원과 랜덤으로 책을 교환하는 등 진지한 토론 대신 유쾌한 이벤트 위주로 진행됐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밴드를 좋아하면 콘서트장에, 뮤지컬을 좋아하면 극장에 갈 수 있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덕질 공간’이 없거든요. 그래서 저희 같은 소비자들이 직접 즐길 거리를 만들기 시작한 거죠.”

― 배동훈 포엠매거진 대표

2. 독후감 대신 ‘교환 독서’

출처: 은행나무 인스타그램

또 다른 독서 문화는 ‘교환 독서’다. 여러 사람이 같은 책을 돌려 읽으며 밑줄이나 메모 등의 감상을 공유하는 독서법이다. SNS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최근엔 출판사들이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과거 책 출간에 앞서 책을 무료로 받아 읽고 온라인에 서평을 남기는 ‘서평단’을 모집하는 게 관례였다면, 이젠 많은 출판사가 ‘교환 독서단’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은행나무는 지난 9월 편집자와 마케터가 교환해 읽은 책 『외계인 자서전』을 독자들에게 다시 보내 출판사와 독자 간의 교환 독서 이벤트를 마련했다. 창비는 한강의 책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각각 읽고 10월 17일에 열린 오프라인 파티에서 책을 교환하는 ‘교환 독서 파티’ 하이브리드 행사를 진행했다.

 

교환 독서가 호응을 얻는 이유는 독서의 적적함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는 원래 혼자 하는 게 당연한 취미였다. 그러나 교환 독서는 책 한 권을 여러 사람과 공유한다는 감각을 만든다. 독서를 ‘함께 하는 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교환 독서에 참여한 독자들은 교환 독서는 책을 읽는 행위에서 나아가, 책을 통해 우정을 쌓는 문화라는 감상을 남긴다.

3. 랩 배틀 대신 ‘창작 배틀’

출처: 긁적 인스타그램

심지어 독자들은 ‘읽는 것’에서 나아가 ‘쓰는 것’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대표 사례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긁적’ 계정(@glgzuk)에서 지난 2025년 7월부터 한 달 반 가량 진행된 ‘대학교 시 배틀’이다. 

 

‘대학교 시 배틀’은 총 12개 대학의 국어국문학과, 국어교육과, 문예창작과 학생 48명이 참여했다.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됐고, 인스타그램을 통한 독자 투표와 기성 시인들의 심사로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가 1위로 선정됐다. 단순히 SNS 이벤트라기엔 대중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총 480만 조회수와 4만 2,000개가 넘는 게시물 ‘좋아요’ 수를 기록했다. 결승선에서는 이소호, 김승일, 양안다 시인 등 총 7인의 시인이 심사에 참여하며 공신력을 높였다.

 

시 배틀을 기획한 긁적 계정의 김동욱 에디터는 “시가 음악처럼 쉽게 소비됐으면 좋겠어요. 음악 앱 들어가서 별생각 없이 재생을 누르듯, 잘 몰라도 그냥 읽게 되는 문화가 생겼으면 해요. 그래서 ‘랩 배틀’에서 이름을 따 온 ‘시 배틀’을 만든 거죠. 잘 모르는 사람도 ‘이게 더 좋다, 아니다’ 얘기할 수 있는 즐거운 대화거리가 되도록요.”라고 설명했다.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새로운 독서 문화. 주목할 만한 점은 독서 문화가 그저 책을 읽거나 사는 행위에서 나아가, 파티, 교환, 교류 행사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서점과 도서관에서 벗어나 책을 다양한 즐길 거리를 퍼뜨리고 있다. 하나 분명한 점은 독서 문화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서서 기획한 ‘리딩 파티’나 ‘시 배틀’처럼, 앞으로 얼마나 더 다양한 독서 문화가 탄생할지 기대된다. 

김은빈 객원기자

김은빈
서울과 로컬의 브랜드를 인터뷰하고, 글을 씁니다. 규모와 상관 없이 가치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는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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