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도 정말 수많은 팝업이 열렸습니다. 헤이팝이 기사와 헤이맵을 통해 다룬 팝업·전시의 수를 세어봤더니 약 800개였습니다. 실제로 이보다 훨씬 많은 팝업이 대중을 만났겠죠. 팝업이 넘치는 상황 속에서도, 몇몇 팝업은 정교하고 흥미로운 기획으로 더욱 오래 회자할 겁니다. 연말을 맞아, 헤이팝 에디터들은 한 해 동안 직접 방문하고 취재한 팝업 중 개인적으로 오래 기억할 듯한 팝업을 골랐습니다. 에디터 네 명이 각자의 기준으로 선정한 올해의 팝업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페리티지 타임리스〉
주최 페리카나
기획 콘텐츠베이커리
진행 기간 2024.11.01 – 2024.11.10
헤이팝에서 여러 팝업을 취재하면서 팝업 또한 콘텐츠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좋은 책이 그러하듯, 좋은 팝업 역시 경험하는 동안에는 흥미롭고, 경험을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에도 마음에 남는 것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아, 그 행사 괜찮았지’ 회상할 정도로 인상적인 팝업도 존재한다. 지난 11월 열린 〈페리티지 타임리스〉 팝업 전시가 그중 하나다. 〈페리티지 타임리스〉는 치킨 브랜드 페리카나가 주최한 사진전이다. 브랜드의 역사가 42년이라는 점에 착안해 한국 현대사의 지난 40년을 복각, 재현한 사진을 전시한 것이다.
이 팝업을 근사한 기획으로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우선 적절한 공간을 선정하고 콘셉트에 맞게 꾸며두었다는 것. 1960년대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한 스튜디오 ‘한남하우스’를 전시 공간으로 택했는데,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반영한 사진들과 공간이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또 각 전시실과 포토존, 굿즈존에 시대상을 반영한 소품을 알맞게 배치해 몰입도를 높였다. 둘째, 브랜드와 팝업 전시 사이의 연결고리가 충분히 납득 가능했다. 1980년대 경제 성장기, 2000년대 밀레니엄 시대, 최근 팬데믹 시대를 거치는 동안 치킨은 언제나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메뉴였다. 그 시기를 모두 겪어 온 브랜드인 페리카나가 ‘치킨과 함께한 한국인의 희로애락’을 주제로 사진전을 여는 것은 어색하지 않았다.
셋째, 그러면서도 의외성이 있었다는 점. 다소 외람된 의견일 수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오랜 세월 한결같은 이미지를 유지해 온 페리카나가 이토록 섬세한 전시를 열었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이 있었다. 브랜드의 이미지를 좋은 방향으로 낯설게 하고 새로운 호감을 느끼게 하는 팝업이었다. 마지막으로 브랜드의 든든한 파트너인 가맹점주의 사진과 인터뷰를 전시한 점이 특히 좋았다. 어떤 브랜드든 함께하는 사람이 있고, 그들 모두 각자의 역사를 가졌다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으므로. 김유영 기자
〈개화의 방〉
주최 오티에이치콤마(Oth,)
기획 오티에이치콤마(Oth,)
진행 기간 2024.10.31 – 2024.11.10
코어팬들의 애정을 바탕으로 몰입감 높은 팝업을 진행했던 스몰 브랜드가 있다. 일상과 여행에서 얻은 영감을 오감으로 풀어내는 브랜드 오티에이치콤마(Oth,)의 팝업 전시 〈개화의 방〉이다. 팝업 전시로는 이례적으로 N차 관람이 이어졌으며, 열흘 동안 다녀간 사람의 수만 3,500명이 넘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브랜드의 팝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기록이다.
꽃이나 잎을 납작하게 만들어 장식하는 ‘압화’를 주제로 한 〈개화의 방〉은 촉감, 음악, 향 등을 적절하게 배치해 관람객의 몰입도를 높였다. 전시장 내에 있는 까치밥나무를 직접 채집해 표본지에 붙여 팝업에 방문한 날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오티에이치콤마의 대표이자 크리에이터인 예진문의 진심 어린 기록물은 팝업 N차 관람을 만든 주요인이다. 작품과 함께 선보인 오티에이치콤마의 압화 도구들은 현장을 다녀간 많은 이들의 손에서 또 다른 결과물을 만들고 있을 거다. 예진문 대표가 팝업을 준비하면서 그렸던 그림이다. 김기수 기자
〈RIIZE : ON THE SING STREET〉 팝업
진행 기간 2024.09.21 – 2024.10.06
케이팝 그룹 라이즈가 지난 9월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엠엠성수’에서 팝업스토어 〈RIIZE : ON THE SING STREET〉를 진행했다. 올해 헤이팝에서 취재한 여러 개의 케이팝 팝업 중 라이즈의 팝업을 꼽은 이유는 청춘을 함께하는 대학생을 콘셉트로 네 개의 챕터를 구성해 팬들이 즐기기 좋은 ‘과몰입’ 콘텐츠를 기획했기 때문.
라이즈가 데뷔 전 발표한 곡 ‘메모리즈(Memories)’에 이어 작곡가 켄지와 또 한 번 호흡을 맞춘 ‘콤보(Combo)’ 뮤직비디오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구현한 첫 번째 챕터는 메모리즈부터 가장 최신곡 콤보까지, 팬들과 라이즈가 함께한 여정을 회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두 번째 챕터는 ‘겟 어 기타(Get A Guitar)’와 ‘붐 붐 베이스(Boom Boom Base)’를 연상케 하는 포토존이다. 일렉 기타와 구식 TV, 순간포착된 멤버들의 필름 인화 사진 등 다채로운 소품으로 꾸며졌다. 그뿐 아니라 대학교 과방을 연상케 하는 생생한 포토존, 팝업 콘셉트에 맞춰 발매한 MD 바시티 자켓, 실제 통화 음질을 구현한 체험형 전화 부스까지 팝업에 방문한 이들을 만족시키기 충분했다.
데뷔 일주년을 맞은 라이즈가 팝업 공간으로 선택한 엠엠성수는 하나은행 〈달달팩토리〉, 짐빔 〈짐빔괴식당〉, 티르티르 〈FIND YOUR TIRTIR〉 팝업스토어 등 주로 브랜드의 대형 팝업 공간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공간 선정에서 알 수 있듯 〈RIIZE : ON THE SING STREET〉는 그간 열렸던 라이즈의 팝업 중 가장 큰 규모로 기획됐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가수의 데뷔 일주년은 다른 이벤트보다도 중요한 이벤트다. 데뷔 일주년을 축하하는 목적이 있는 만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탄탄히 준비했음을 느낄 수 있는 팝업이었다. 이신영 콘텐츠 매니저
〈Apple TV+ 파친코〉 팝업
주최 Apple TV+
기획 프로젝트 렌트
진행 기간 2024.08.24 – 2024.09.08
팝업을 여는 여러 목적이 있지만 그중 ‘즐거움’은 팝업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제공되어야 할 요소가 아닐까. 팝업은 전시와는 또 다른 성질을 띠기 때문에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방문객의 참여를 유도할 때 더 단단한 의미를 전달한다.
지난 8월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애플 TV의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2’ 팝업스토어는 파친코가 드라마에서 전하는 핵심 이야기를 참여형 오프라인 콘텐츠로 여실히 풀어냈다. 팝업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세 가지 콘텐츠를 프로젝트 렌트 2, 3, 6호점을 모두 활용해 서로 독립된 공간에서 다르게 표현했다.
그중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게임장을 실제로 구현한 6호점 공간은 단연 인상적이었다. OTT IP를 활용하는 팝업에서는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에 들어가 인물의 행위를 따라 하는 것이 가능하다. 방문객이 실제 구슬을 튕기는 파친코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정교하게 게임 기기를 만들어 연출한 것은 극에 몰입하는 것과 동시에 재미를 선사했다. 팝업 참여자에게 역할과 행위를 주는 기획은 생각보다 더 큰 힘을 지닌다. 올해 내가 스쳐 간 팝업을 떠올렸을 때 직접 구슬을 튕겼던 장면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처럼. 김지민 기자
글 heyPOP 편집부
정리 김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