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팝업, 전시 소식 등 꼭 알아두면 좋은 트렌드 레터 받아보기

공간, 팝업, 전시 소식 등 꼭 알아두면 좋은 트렌드 레터 받아보기

2025-02-20

도시인을 위한 최소한의 리트릿, 페즈 ①

한남동에 등장한 커뮤니티 몰
ⓒ페즈

Briefing

페즈 

누구나 탈출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잿빛 건물과 소란 속에 사는 도시민이라면 그 주기는 더욱 자주 찾아온다. 마음이 갑갑하고 주변 공기마저 텁텁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떠난다. 바다를 보기 위해 열차를 타거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캠핑을 가거나, 여섯 시간이 넘게 걸리는 휴양지로 훌쩍 떠나기도 한다. 그런데 꼭 어딘가로 떠나야만 하는 걸까.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에서 편히 숨 쉴 방법은 없는 걸까.

지난 11월에 개관한 페즈를 수식할 문장은 아주 많지만, 하나를 꼽자면 ‘도심 속 힐링 공간’이라 말하고 싶다. 광장에 앉아 새소리를 듣고, 재즈를 배경 삼아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 생태 공원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물이 흐르는 공간에서 요가를 체험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모두 페즈라는 한 공간에서 이뤄진다. 페즈는 말한다. 이 모든 행위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이라고. 덕분에 우리는 멀리 떠나지 않아도 빌딩 숲에서 감각하지 못한 고요와 안정을 느낀다. 힐링이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기획된 콘텐츠들은 공간 디테일과 맞물려 몰입감 높은 리트릿*을 유도하고 있었다.

 

* 리트릿(retreat) 일상에서 벗어나 깊은 휴식을 통해 회복하는 일
index 1

커뮤니티를 위한 최소 단위의 도시

페즈는 모로코 페즈 올드시티(Fes El Bali)에서 영감받았다. 모로코의 가장 오래된 도시인 페즈는 ‘열 채의 집이 하나의 단위로 묶여 공동의 빵집과 우물을 공유하는 최소 단위의 도시이자, 다원적 민주주의 표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다원적 민주주의는 도시의 한 부분이 전체와 똑같은 가치를 가질 때 이뤄진다. 즉, 도시 한 구석을 보고도 전체를 알 수 있는 도시가 민주주의 도시다.

* 출처: 승효상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2012, 안그라픽스

페즈(FEZH)는 힐링을 위한 커뮤니티 필수 요소들을 한곳에 모은 ‘최소 단위의 도시’가 되고자 했다. 광장, 갤러리형 매장, 음악&도서 라이브러리, 리트릿 공간, 주말 마켓 등 다양한 공동 시설을 통해 작은 도시 역할을 한다. 모든 공간은 힐링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페즈(FEZH)의 이름 역시 도시 페즈(Fez)에 힐링(Healing), 한남동(Hannam Dong)을 뜻하는 알파벳 H를 합성해 만들었다.

index 2

동네 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 몰

ⓒ페즈

지속 가능한 상업 공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셜미디어를 통해 쉽게 화제가 되고, 또 금세 잊히는 시대라면 더욱 사려 깊은 접근이 필요하다. 페즈는 커뮤니티 몰을 지향한다. 커뮤니티 몰은 태국 방콕에 널리 퍼진 개념으로 지역 공동체인 커뮤니티와 몰이 합쳐진 단어다. 대형 쇼핑몰에 비해 규모는 작더라도 로컬 브랜드 영입과 다양한 행사 등을 통해 지역민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소문을 타고 찾아오는 고객만으로는 공간이 지속되기 어렵다. 페즈는 한남동 지역 커뮤니티를 우선으로 고려했다.

“우리의 의도는 먼저 커뮤니티를 구축한 다음, 쇼핑몰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Our intention is to build first a community, then a mall).”

– 더 커먼스(the Commons)

태국 방콕 통러 지역에 있는 커뮤니티 몰 ‘더 커먼스(the Commons)’는 공간을 만들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둬야 할지 지향점을 일러준 곳이다. 페즈는 동네 주민들이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다 편히 들를 수 있는 공간을 목표로 했다. 진입 허들을 낮추기 위해 전면부를 개방형으로 설계했고, 그 광장에서는 주말 마켓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광장뿐 아니라 갤러리, 리트릿 스페이스, 생태 정원 등 모든 공간을 개방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index 3

경험 수집가의 최선의 선별

임종현 페즈 대표는 스스로를 경험 수집가라 소개한다. 달리 말하면 페즈에 녹아든 모든 요소를 몸소 경험했다는 뜻이다. 페즈를 구상한 건 2020년이다. 종점을 알 수 없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불안과 고립을 느꼈던 임종현 대표는 그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기 시작했다. 발리의 문화를 경험하고, 명상 습관을 들이고, 요가를 배운 것도 그래서다.

그의 궤적은 모두 페즈에 녹아들었다. 발리에서 느낀 포용과 배려를 공간 곳곳에 심었을 뿐 아니라, 리트릿 스페이스, 티하우스, 바 등을 채울 전문가는 직접 경험한 이들로 섭외했다. 가장 좋았던 요가 강사에게 프로그램 디렉팅을 부탁하고, 바를 위해 칵테일 제조와 디제잉을 배웠다. 무슨 분야든 직접 경험해야 판별할 수 있는 눈이 생긴다는 기준 때문이다. 덕분에 브랜드 입점 없이 전문성을 갖춘 자체 숍만으로 공간을 채우게 됐다.

index 4

배려와 포용의 시대

인도네시아 발리는 자연 환경과 서구식 휴양 문화를 배경으로 독특한 문화가 발달한 도시다. 개인의 기호를 존중하고, 이방인을 포용하는 발리의 분위기를 페즈의 콘텐츠에 녹이기 위해 애썼다. 달라이 라마의 생활 지침서에 나오는 구절 ‘Be Gentle With the Earth’를 곳곳에 새기고 지구, 타인, 동물, 더 나아가 나 자신을 배려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했다.

장애인이나 고령자도 어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배리어 프리 환경을 구축했고, 모든 성별이 편히 사용할 수 있는 젠더 중립 화장실을 설치했다. 광장에 있는 카페 미나앤폴은 다양한 선택지를 존중하는 의미로 오트, 락토 프리, 디카페인 등 음료 옵션을 변경하는 데에는 별다른 추가 요금을 받지 않는다(통계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약 10%가 카페인에 민감하고, 65%가 유당 소화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지구, 타인, 동물을 향한 포용과 배려는 앞으로도 페즈에서 진행하는 모든 콘텐츠에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할 예정이다.

index 5

골목의 분위기가 녹아든 건축물

공간 설계는 ITM의 유이화 건축가가 맡았다. 임종현 대표는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에서 그의 부친 이타미 준과 건축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모습을 보고, 페즈의 콘셉트를 가장 잘 구현해 줄 수 있는 건축가라는 확신이 들었다(임종현 대표와 유이화 건축가는 2008년 월간 「디자인」 주관으로 진행한 도쿄 건축 여행을 함께한 인연이 있다). 실제로 첫 미팅부터 ‘한남동 커뮤니티 몰’이라는 공간 콘셉트에 대한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졌다.

유이화 건축가가 설계에서 중요하게 고려한 사항 중 하나는 한남동 골목길에서 느껴지는 친숙함과 편안함을 공간에 담아내는 것이었다. 하여 주재료를 벽돌과 나무로 선택했다. 자연의 재료가 가진 따뜻한 색감과 질감 덕에 오래된 골목과 이질감이 없는 차분한 분위기가 완성됐다. 벽돌은 흙의 질감을 그대로 보이고 싶어 몇 번의 실험 끝에 완성한 맞춤 제작 재료다. 나무는 표면을 탄화시켜 사용함으로써 공간에 깊이감을 주는 동시에 나무의 색이 변하는 시간을 늦췄다.

index 6

탐험과 발견의 여정

페즈의 동선을 오직 편의와 친절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점수를 매기기 어렵지 않을까. 페즈는 탐험과 발견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미로처럼 이어진 구조,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모호한 계단,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갤러리 공간. 지하광장부터 최상단 리트릿 스페이스까지 마치 퍼즐을 맞추듯 소용돌이 같은 동선을 따라야 한다. 덕분에 계단을 오르는 동안에도 지루하지 않다.

ⓒ페즈

건물 내부의 수직적·수평적 동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공간의 접점마다 또 다른 곳을 마주하게 된다. 유이화 건축가는 독특한 동선을 통해 방문객이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는 여정을 하길 바랐다. 호기심에 끌려 광장을 찾은 사람들은 마치 오래된 도시의 골목을 탐험하듯 각 공간을 경험하면서 정신적 고요함으로 나아가게 된다.

페즈

 

장소 FEZH

주소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657-133

건축면적 287.89㎡

연면적 1,195.55㎡

건축 및 인테리어 설계 (주)아이티엠유이화건축사사무소(대표 유이화)

시공 (주)더프레임종합건설(대표 최석환)

구조 황경주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진구조엔지니어링(대표 김윤진)

기계 서원이엔씨

전기 한국티이씨

토목 유진이엔지

조경 더가든(대표 김봉찬)

조명 비츠로(대표 고기영)

뮤직바 인테리어 시공 이녹스(대표 김영)

건축음향 (주)아키사운드 (대표 임우승)

*2편에서 계속됩니다.

 김기수 기자

사진 황지현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페즈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도시민을 위한 최소한의 리트릿, 페즈

       : file no.1 : 한남동에 등장한 커뮤니티 몰

       : file no.2 : 경쟁하지 않는 무언의 상업 공간

       : file no.3 : 탐험과 발견의 기쁨

장소
페즈
주소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11길 41
크리에이터
건축 및 인테리어 설계ㅣ(주)아이티엠유이화건축사사무소(대표 유이화), 시공ㅣ(주)더프레임종합건설(대표 최석환), 구조ㅣ황경주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진구조엔지니어링(대표 김윤진), 기계ㅣ서원이엔씨, 전기ㅣ한국티이씨, 토목ㅣ유진이엔지, 조경ㅣ더가든(대표 김봉찬), 조명ㅣ(주)비츠로앤파트너스(대표 고기영), 뮤직바 인테리어 시공ㅣ이녹스(대표 김영) 건축음향ㅣ(주)아키사운드 (대표 임우승)
김기수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음주가무 애호가

콘텐츠가 유용하셨나요?

0.0

Discover More
도시인을 위한 최소한의 리트릿, 페즈 ①

SHARE

공유 창 닫기
주소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