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간은 그 공간을 만든 사람과 공간을 찾는 사람을 닮기 마련이다. 이함캠퍼스를 만든 두양문화재단 오황택 이사장은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꾸준히 소개하고자 예술 작품을 수집해 왔다. 한평생 사업가로 살아오면서 몸소 배운 것은 소비자의 눈에 내 제품이 유리해 보여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다른 것과 견주어 봤을 때 내 것이 단연 돋보여야 한다. 내 제품의 강점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 소비자 또한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오황택 이사장은 자신이 번 돈이 사람들의 안목을 높이는 데 쓰이길 바란다.
그는 인터뷰 중 간송 전형필 선생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막대한 재산을 문화재를 사들이는 일에 사용해 후대에도 그 가치가 영원할 수 있는 공간을 남긴 것처럼 말이다. 오황택 이사장은 간송미술관을 남긴 전형필 선생에는 못 미치지만, 자신의 재산 또한 그 액수보다 더 높은 가치를 만드는 데 활용된다면 기꺼이 내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쓰면 사라지고 마는 소비가 아닌 문화의 힘을 택한 오황택 이사장은 자신이 행한 일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며 소탈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가 꾸린 이함캠퍼스는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Interview with
오황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

ㅡ 4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단추 회사는 서울에 자리 잡고 있어요. 대체로 많은 인구가 몰리는 지역에 예술 공간을 조성하곤 하죠. 경기도 양평, 그중에서도 지금의 부지를 택한 이유가 궁금했어요.
처음부터 양평에서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문화 공간이다 보니 자연 친화적인 곳이 평온하겠더라고요. 큰 규모의 땅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어쩌다 보니 3,200평 정도의 부지를 확보하게 됐고 허가를 받아 설계에 들어갔어요. 당시 다른 건축물과 비교해 봤을 때 생각보다 큰 규모였어요. 법이 언제 바뀔지 모르니 허가가 났을 때 최대한 지어야 했죠. 원래는 뒷산과 주차장 부지는 내 것이 아니었어요. 어떤 공간으로 문을 열지 고민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금씩 주변 부지까지 확보하다 보니 지금의 1만 평 규모가 완성된 거예요.
ㅡ 이런 문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소득이 높아지면서 문화 예술이 확산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문화가 돈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전에는 팝송을 들어도 공짜로 들었어요. 해적판으로 공유가 됐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전부 라이선스가 있기 때문에 돈을 지급해야 하죠. 이건 사람들의 수준이 높아져야 실현되는 일이에요. 좋은 걸 보여줘야 좋은 것에 대한 기준이 생기죠. 저는 사람들에게 좋은 걸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소비자가 좋은 것을 요구하면 좋은 제품이 나오기 마련이에요. 그렇게 되다 보면 덴마크 가구가 수입되는 것처럼 우리나라 가구도 수출되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큰 회사들이 많이 만들어지겠죠.

ㅡ 김개천 건축가에게 이함캠퍼스를 의뢰하고 1997년 설계에 돌입했어요. 당시 건축가의 나이가 서른 중반이었다고요.
처음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에게 의뢰하려고 했어요. 그렇게 지으면 건축가의 명성을 업고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다 우연히 김개천 건축가를 만났어요. 당시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는 젊은 건축가였죠. 그와 건축 이야기를 나눴는데 말이 잘 통했어요. 이 사람과 하면 내가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ㅡ 지금이야 우리나라에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흔한 건축법이 아니었어요.
저는 뭐든 미니멀한 걸 좋아해요. 요즘은 화려한 것에도 눈길이 가서 조금은 취향이 달라졌지만 단순한 걸 좋아하는 마음은 늘 있죠.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건축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를 알게 됐어요. 그의 건축물을 보면 특별한 게 없는데 그 자체로 좋더라고요. 무언가를 배워서 습득한 게 아니라 그런 미니멀한 것에 본능적으로 끌렸어요. 노출 콘크리트는 마감을 안 하니까 미니멀하죠. 취향에 맞는 소재가 노출 콘크리트라고 생각해서 의뢰했을 뿐이에요. 마침 김개천 건축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고요. 공사를 하던 시기에는 사람들이 건축물을 보고 왜 짓다 마냐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웃음)

ㅡ 완공은 생각보다 빨리 됐어요. 시공을 시작한 지 1년 뒤인 1999년에 어느 정도 마무리됐죠. 보편적으로 건물을 짓는다고 하면 담아내고 싶은 걸 딱 정해두고 조성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이사장님은 공간부터 만들고 의미는 후에 찾은 케이스예요.
전시를 열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공간이 필요했어요. 처음에는 저도 미술쪽으로 아는 것이 회화 그림밖에 없었기 때문에 회화 전시를 열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개성 있는 미술관이 못 되더라고요.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것 같았죠. 그래서 회화 작품을 전시하는 일은 포기하고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흘렀죠. 15년 전 우연히 유럽 빈티지 가구를 접하게 됐어요. 그때 당시 눈에 들어왔던 게 인더스트리얼 가구였는데 제품이 녹슨 게 참 마음에 들었어요. 심지어 가격도 저렴했고요. 처음에는 취향에 맞는 몇 개만 구매하려고 했는데 조건이 좋아 많이 들여오게 됐고 그것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가구를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ㅡ 수집하기 위해 주로 찾는 곳이 있다면요?
많이 보러 다니다 보니 이제는 제 눈도 점점 높아지고 웬만한 데는 다 다녀와서 소더비 옥션이나 크리스티스 옥션에 가서 구매하는 편이에요. 그런 곳을 가야만 희귀한 아이템이 있고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게 있어요. 어딜 가든 볼 수 있는 건 사지 않죠.


ㅡ 이함캠퍼스를 보면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미술관 내부에서도 사이사이로 해가 들어오고 어디에 눈을 두든 조경도 잘 가꾸어져 있죠. 오리가 사는 작은 연못도 인상적이고요. 공간을 설립할 때 의도한 부분이었나요?
건물과 관련해서 디테일한 부분은 전부 건축가의 의지예요. 디자인은 간섭하지 않고 건물이 세워졌으면 하는 위치와 함께 대략적인 구조만 안내해 드렸어요. 지금의 이함캠퍼스 모습은 제가 아닌 설계자의 의도죠. 다만 건축가가 조경 쪽은 모른다고 해서 속으로 기뻐했어요. 원체 전정에 관심이 많은 터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구나 싶었거든요. 그때부터 돌도 사서 연못에 두고 나무도 심고 제 감각에 의지해 꾸몄어요. 원하는 모습이 정해져 있던 건 아니고 하다 보니 계속 변화하는 지금의 이함이 될 수 있었죠. 호암미술관에 있는 희원 정원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ㅡ 김개천 건축가와 한국식 정원을 만들고자 한다고 들었어요.
이함캠퍼스라는 공간이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편안하게 정원도 구경하고 쉴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라요. 그렇게 되기 위해 도움을 주는 시설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현재 구상 중이죠. 보통 미술관에 가면 전시만 보고 나오는 경우가 많죠. 자연 속에서 무언가 느끼는 것도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아직은 공터인 정원 부지에 있는 참나무를 중심으로 주변 꽃도 구경할 수 있게 가꿀 예정이에요. 작년에 둘레길을 만든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고요.

ㅡ 이사장님의 얘기를 듣다 보면 이함캠퍼스는 ‘완공’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건물을 지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거듭해서 새로운 공간을 기획하니 말이에요.
기본 프레임은 만들어졌어요. 다만 물리적으로 더 정돈할 필요가 있고 해보고 싶은 게 아직 남아 있어 차츰차츰 보완해 나갈 생각이에요.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ㅡ 개인적으로 다른 학문은 필요할 때 찾아 배우면 되지만 예술적 감수성은 누적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술을 향유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예술은 생존에 영향을 주지 않아요. 몰라도 살아갈 수 있죠. 하지만 삶이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예술이 꼭 필요해요. 굉장히 섬세한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영역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어요. 삶의 방향을 알기 위해 철학을 배운다면 예술은 철학이 제시한 방향을 걸어가며 얼마나 다양한 시각을 포착할 것인가에 대한 여부를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ㅡ 재단에서 운영하는 또 다른 공간 건명원이 문을 연 지 올해로 벌써 10주년이 되었어요. 무료 교육기관이다 보니 관련 비용을 책임지는 이사장님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는데 개관 당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요.
처음 문을 열 때 그리 대단한 곳이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보편적인 교육 기관에서도 철학이나 예술 공부는 할 수 있으니까요. 외국에서 모셔 온 교수진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내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로만 생각했죠.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사람들이 이런 일을 안 벌리더라고요. 하더라도 금방 그만두고요. 나는 단기간에 큰 성과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리고 건명원을 나온 학생들이 어떤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어요. 공부시켰으면 그다음은 자기들이 알아서 해야죠. 무언가를 깨달았으면 깨달은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괜찮은 시민이 된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냐고 물어오는 질문에 답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좋은 뜻을 안고 시작했지만 이걸로 이루고 싶은 건 딱히 없거든요. 성과에 대한 건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급하는 것뿐이에요.
ㅡ 인터뷰를 하다 보니 특히 젊은 세대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잘 느껴져요. 아무리 여유가 있더라도 재단을 운영하는 일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돈을 쓰는 일인데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선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선행은 내 밥그릇을 줄이면서도 실천하는 게 선행인데 난 충분히 먹고 여행도 하면서 나머지 돈으로 이 일을 하고 있잖아요. 물론 더 여유를 부려서 전세기도 타고 비싼 호텔 방에서 머무르면 있는 돈을 다 쓸 수 있겠지만 그건 내 체질에 안 맞아요. 어찌 보면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쥐여주는 마음 같은 거예요. 기꺼이 행하는 거죠. 재단을 통해 영속성을 확보하고자 하고요.


ㅡ 국내 1위 단추 제작 기업을 운영 중이에요. 재단 이사장과 사업가의 마인드는 조금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돈을 잘 벌 수 있었던 이유를 꼽아본다면 무엇일까요?
무조건 한 가지 방향은 있었어요. 월급쟁이가 되지 말아야겠다. 돈이 좋은지 나쁜지는 돈을 많이 번 후에 따져보자는 마음이었죠. 계산을 해봤더니 월급쟁이로는 도저히 집을 살 수 없더라고요.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수박 장사를 하더라도 나는 장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장사는 승부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있거든요. 아무리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해도 월급은 제한된 범주 내에서 들어오는데 개인 사업은 그 범주를 뛰어넘을 수 있어요. 제한된 수익은 개인의 역량을 한정시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비굴해지지 않기 위해 생업으로 일을 택하게 됐죠. 해가 바뀔 때마다 올해 더 잘난 사람이 오면 나는 망한다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그렇게 45년간 스스로 부추기기는 했지만 일등이 된 건 다 운이 좋아서예요. 인복이 많았고 이쪽 업계를 넘보는 사람도 안 나타났거든요. (웃음) 나는 내가 돈을 벌었다기보다는 돈이 벌렸다고 생각해요.


ㅡ 앞으로 이함캠퍼스를 통해 해보고 싶은 전시가 있는지 궁금해요.
지금 보유하고 있는 소장품을 보여주기만 해도 시간이 다 갈 것 같아요. 품목이 매우 많고 계속 모으고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이함캠퍼스 전시의 주축은 디자인이 될 거예요. 수집한 가구를 비롯해 조명이나 소품도 언젠가 전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 정도만 해도 여생이 모자랄 것 같아요.


TPO
오황택 이사장이 꼽은 인상적이었던 예술 공간

무엇이든 예전엔 감동을 받았어도 지금 보면 그만큼의 감동이 없을 수 있어요. 그래서 아주 확신에 차서 말할 수는 없지만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 지중미술관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나오시마 섬에 가서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을 쭉 둘러봤어요. 평범한 듯하면서도 한 걸음 돌아서면 새로운 공간이 나오는 설계가 인상 깊었죠. 들어가는 공간의 입구마다 각기 다른 특징도 있고 자연 친화적으로 지은 것도 눈에 들어왔어요. 지금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방식과 유사한 건축물이 많지만 그가 처음 만들 때만 해도 특별했거든요.
장소 이함캠퍼스
주소 경기 양평군 강하면 강남로 370-10
대지면적 12,047㎡
건축면적 898㎡
연면적 1,215,57㎡
운영 (재)두양문화재단
건축 김개천 건축가
규모 9개 동
운영시간 화요일 – 금요일 10:00 – 19:00, 토요일 – 일요일 10:00 – 19:30 (매주 월요일 휴무)
*3편에서 계속됩니다.
글 김지민 기자
사진 표기식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이함캠퍼스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앞으로도 미완으로 남을 복합문화공간, 양평 이함캠퍼스
: file no.1 : 25년, 무엇이든 담아내는 상자가 되기까지
▶ : file no.2 : 기꺼이 행하는 마음으로 채워진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