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일본 도쿄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결심하게 한 여러 설레는 이유 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있는데, 바로 도쿄역에서 도보 7분 남짓 거리에 위치한 도쿄 크리에이티브 뮤지엄(CREATIVE MUSEUM TOKYO)에서 열리고 있는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기둥전 – 그리고 무한성으로(アニメ「鬼滅の刃」 柱展 ーそして無限城へー)〉 전시다.

*「귀멸의 칼날」스토리 : 일본, 다이쇼 시대. 숯을 팔며 살아가던 마음씨 고운 소년 탄지로는 어느 날 혈귀의 습격으로 가족을 잃고 만다. 게다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동생 네즈코는 혈귀로 변해 버린 상태였다. 잔혹한 현실에 압도당해 버린 탄지로. 탄지로는 여동생을 인간으로 되돌리고 가족을 살해한 혈귀를 해치우기 위해 ‘혈귀 사냥꾼’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인간과 혈귀가 자아내는 슬픈 남매의 이야기. (출처: 애니플렉스 공식 홈페이지)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흥행한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은 고토게 코요하루 작가가 슈에이샤 점프 코믹스에서 1권부터 23권까지 출간한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누적 발행 부수 1억 5천만 부를 돌파할 만큼 일본 내에서는 폭 넓은 세대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품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사 유포터블(ufotable)이 2019년 TV 애니메이션〈귀멸의 칼날: 카마도 탄지로 입지편〉으로 첫 시즌을 선보였다.
흑백 만화책 속에서 미처 표현하기 어려웠던 화려한 검술 스킬, 화면 전환 효과, 캐릭터의 음성 등을 유포터블이 높은 퀄리티로 구현하며 귀멸의 칼날은 본격적인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고, 2021년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5억 달러 이상의 수익 달성, 국내에서는 관객 수 218만 명을 기록하며 많은 이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귀멸의 칼날 전시 중 최초로 ‘주(柱)’에 주목하다

애니메이션을 주제로 한 보통의 전시는 주인공 서사에 주목하여 스토리를 전개, IP 콘텐츠를 제작한다. 하지만 지난 11월 애니메이션 5주년을 기념하며 개최된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기둥전 – 그리고 무한성으로〉 전시는 다르다.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가 아닌 그를 둘러싼 주(柱) 9명에 주목했다.
여기서 주라는 단어가 생소한 이들도 있겠다. 극 중에서 주(柱)는 혈귀를 해치우는 비밀 조직 귀살대의 최고위 검사로, 주인공 탄지로가 성장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장인물들이다. 혈귀로부터 가족들이 몰살당해 분노에 휩싸인 탄지로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조언해 주고, 확고한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어떤 위험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면모를 지닌다. 그 때문일까. 귀멸의 칼날 독자들 중에서는 이런 주들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팬 층이 두텁다.
5m의 높은 층고, 1,200㎡ 규모 공간에서 선보이는 전시

각 주의 서사와 명장면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게 기획된 이번 전시는 일본 도쿄에 위치한 대형 전시 공간 도쿄 크리에이티브 뮤지엄에서 열렸다. 1,200㎡ 규모의 전시장, 5m에 달하는 층고는 한정된 공간 제약에서 벗어나 작품을 보다 입체적으로 연출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애니메이션, 만화, 음악, 디자인, 현대 미술 등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작품과 창작자를 조명하여 연간 4회의 대규모 전시만을 개최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기획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9개의 대형 스크린에 상영되는 주의 ‘호흡’

입장 전, 9개의 주 일러스트가 그려진 입장 티켓 중 하나의 티켓을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한 티켓은 앞으로 관람할 전시 체험 콘텐츠에 꼭 필요한 준비물이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자. 전시의 두 번째 메인 공간에서는 주의 호흡(검술)과 서사에 대해 면밀히 살펴볼 수 있다. 인물의 성격, 특징, 좋아하는 것, 마음가짐, 구사하는 호흡에 대한 설명 등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상세히 나타낸다.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으로 화제가 되었던 염주(불꽃) ‘렌고쿠 쿄주로’에 대한 내용 중 기억에 남았던 구절을 예시로 들면 아래와 같다.
가족을 소중히 여겼던 렌고쿠 쿄주로
렌고쿠에게 가족은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였다. 특히 어머니에게 배운 가르침을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았고, 그것이 그의 행동과 신념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독한 수행을 거쳐 염주가 되다
렌고쿠는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염주로 성장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수행을 이어가며 강한 검사로 거듭났다.

주가 전시된 각각의 구역에서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명장면이 상영된다. 귀멸의 칼날을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아마 이 공간을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매 시즌마다 한 명에서 두 명 남짓의 주가 등장하는 스토리 특성 상 9명이 한곳에 모여 호흡을 뽐내는 모습은 〈귀멸의 칼날: 합동 강화 훈련편〉을 제외하고는 볼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천장까지 빼곡히 전시된 원화 1,000점

수천장의 원화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높은 층고를 활용해 바닥부터 천장까지 1,000점 이상의 애니메이션 원화를 전시했다. 음영을 구분하기 위해 칠해둔 색, 장면의 순서를 표기한 숫자, 애니메이션화가 되기 전 제작자들이 남겨둔 메모들이 그대로 적혀있다. 꼭 명장면이 아니더라도 스틸 컷의 종류가 다양해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혈귀들의 수장 키부츠지 무잔이 있던 그 장소, 무한성

천장과 바닥의 경계가 없으며 끝없이 펼쳐지는 시공간. 귀멸의 칼날을 하나의 공간으로 설명하라 한다면 ‘무한성’을 택하겠다. 무한성은 혈귀들의 수장 ‘키부츠지 무잔’과 가장 강한 전투력을 지닌 상현 혈귀들이 머무는 은신처와 같은 곳이다. 독자들에게 상상 속 미지의 공간이었던 무한성을 전시장에 생생히 구현했다. 벽면에 부착된 거울은 공간감을 확장시키고, 문풍지 너머로 보이는 혈귀들의 실루엣은 무한성에 실제로 온 듯한 현장감을 느끼게 했다.
주를 테마로 한 미식 경험까지

전시 기간 동안은 주를 테마로 한 메뉴를 제공하는 컬래버레이션 카페가 운영된다. ‘토미오카 기유’의 연어 크림 파스타, ‘시나즈가와 사네미’의 차슈 쪽파 중화 파스타 등 각 주의 개성을 반영한 9종의 테마 요리가 준비되어 있다.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기둥전 – 그리고 무한성으로〉는 오픈 이후 51일 만에 방문객 84,000명을 넘어서며 아직까지도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전시다. 주가 사용하는 무기를 실제 크기로 구현한 조형물은 물론 이번 전시를 위해 녹음한 캐릭터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 천장부터 벽면 그리고 바닥 전면을 활용해 준비한 영상물까지 본 기사에서 다루지 못한 다채로운 전시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도, 캐릭터 전시 기획 및 제작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도 영감을 줄 이번 전시는 3월 2일까지 계속된다. 전시가 열리는 CMT는 도쿄역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은 편이니 직접 방문해 전시를 꼭 감상해 보길 추천한다.

글 이신영 콘텐츠 매니저
자료 제공 및 출처トルツメ OHANA, 크리에이티브 뮤지엄 도쿄 공식 홈페이지·X(구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