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좋은 트렌드 소식을 엄선하여 받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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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인
2022-11-22

결국 지고야 마는, 그럼에도 계속되는 코미디

개체가 가진 불완전성을 포착하는 류현민 작가

Dinosaur hunting ⓒHYUNMIN RYU

여느 때와 같이 인스타그램 탐색 탭을 훑던 중 한 사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중에 떠 있는 공룡 풍선을 향해 총구를 겨눈 앳된 소년. 그리고 이어지는 소년의 다채로운 얼굴들. 누군가는 의미를 잘 모르겠다고 말할 것도 같은 이 작업에 담긴 이야기는 무엇일까. 류현민 작가를 만나 내내 가지고 있던 물음들을 건넸다.

Interview with 류현민 작가

Daegu_palm tree pattern ⓒHYUNMIN RYU
Eight eyed boy ⓒHYUNMIN RYU
Son & mother ⓒHYUNMIN RYU

ㅡ 2020년부터 시작한 ‘김세현(KIM SAEHYUN)’ 프로젝트는 이듬해 곰마 그랜트(Gomma Photography Grant*) 1위를 수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조카를 사진에 담게 된 연유가 무엇이었는지.

아마 작업을 지속할 동력이 바닥을 보인 시기였을 거예요. 자연스럽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존재에 몰두했던 것 같아요.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조카, 세현이의 순간들을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작업이죠. ‘김세현’ 프로젝트는 완결을 두지 않고 되도록 러프하게 접근하고 있어요. 미리 구상해둔 장면 외에도 번뜩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즉흥적으로 촬영하고, 세현이가 보내준 사진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작업이 중구난방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 방식마저 사랑합니다. 이 작업이 제게 곧 동력이에요.

*다양한 장르에서 작업하는 사진작가에게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콘테스트

ㅡ 세현 군은 작업에 참여하는 일에 어떤 마음인가요?

사실 아이들은 사진 찍는 행위를 그다지 반기지 않을 지도요. 놀이공원에서도 저희들은 놀기 바쁜데 부모들은 가만히 서서 포즈를 취하라고 하죠. 다들 ‘내가 한 번 찍혀준다’라는 심정으로 장단을 맞춰주는 것 아닐까요.(웃음) 그래서 세현이와의 작업에 놀이를 섞고 있어요.

Battle ground ⓒHYUNMIN RYU
Refusing photographer’s pose direction #1~#3 ⓒHYUNMIN RYU
Self portrait manipulated by Saehyun #1~#3 ⓒHYUNMIN RYU

어느 날은 세현이가 책가방을 맨 모습을 찍고 싶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촬영을 거부하더라고요. 머리를 흔들고 몸을 배배 꼬면서 투정 부리는 장면을 몇 컷 담은 후에 세현이에게 보여줬더니 또 재미있어하는 거예요. ‘외삼촌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 것’도 작업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슬쩍 제안했죠. 세현이의 감정, 즉 피사체의 거부 반응 역시 하나의 요소로 작업 안에 받아들였다고 할까요.

〈Self portrait manipulated by Saehyun〉역시 같은 맥락이에요. 저도 촬영할 기분이 영 나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사진가와 피사체의 권력관계가 전복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세현이에게 포토샵 프로그램의 기능을 알려주고 마음대로 작업할 수 있게 자유권을 줬어요. 그런 뒤 저는 멀찍이 떨어져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재미를 느꼈는지 어느새 세현이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더라고요. 세현이와의 작업은 액션과 플랜보다 ‘리액션’이 더 중요해요.

ㅡ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작가님이 사진 매체와 조우한 첫 순간이 궁금해져요.

사진은 생계를 위해 시작했어요. 사촌 형의 인쇄 스튜디오에서 프린트 오퍼레이터(operator), 사진 리터쳐(retoucher)로 일을 배웠습니다. 일 특성상 고객 대부분이 사진가였는데, 물 흐르듯 작업을 진행하려면 그들과 대화가 통해야 하잖아요. 배움에 필요성을 느껴 대학에 입학해 사진을 전공했어요. 이후 런던으로 넘어가 공부하면서 예술에 흥미가 생겼고요. ‘전시장에 변기를 둬도 예술이 된다니!’ 사회에서 통용되는 문법에 노이즈를 줘도 괜찮은 필드, 그리고 그게 미덕인 필드. 정해진 루틴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저를 이끌었어요.

Extinguisher, 2009, pigment print ⓒHYUNMIN RYU

ㅡ 작가로서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가 첫 프로젝트에 가장 깊이 묻어날 것도 같은데요. ‘낄낄 웃다’라는 의미의 〈GIGGLE〉은 어떤 작업인지.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출시됐을 때 친구들과 누가 빵을 입에 많이 넣는지 내기하는 장면을 찍으면서 낄낄대곤 했어요. 그때가 제 인생 통틀어 가장 불행한 시기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학교에 앉아있기 싫어도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꼼짝할 수 없었으니까요. 시지프스(sisyphos) 신화 속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올려야 하는 노동의 ‘영속성’이 학교에서 받은 고통을 친구들과의 장난으로 해소하는 일련의 과정에서도 보인 거죠.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전제 조건인 중력과 그 중력에서 벗어나려는 개인, 개인이 행하는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는 불완전성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Centipede, 2009, pigment print ⓒHYUNMIN RYU
Dog, 2010, pigment print ⓒHYUNMIN RYU
Measuring tape #2, 2011, pigment print ⓒHYUNMIN RYU

류현민 작가는 ‘철없는 장난’이 그가 앞으로 펼쳐갈 세계의 기원임을 느꼈다. 그의 친구들은 〈GIGGLE〉 프로젝트 속 피사체가 되어 함께 일하던 공장의 유니폼을 착용한 채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와 그 위를 지나는 부속품, 귀가 멍하도록 울려대는 소음…. 중력과도 같은 시스템에 몸의 흐름을 맞춰야만 했던 무력함이 몸을 감싸고 있지만, 비이성적인 실험을 감행하는 결단에서 그는 일종의 해방감을 맛본다. 끝내 개가 될 수 없음에도 그 행세를 하고, 공중을 가를 수 없음에도 소화기 통을 메고 하늘로 오르려는 것. 작가가 이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이유는 개인의 불완전성에 천착하기 때문이다.

 

 

ㅡ 말씀하신 내용은 〈GIGGLE〉 을 포함한 전체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이기도 해요. 다른 작업에서도 그 흐름을 짚어본다면.

Milk, 2012, single channel video, 2’31” ⓒHYUNMIN RYU

〈Milk〉는 자동문 중앙에 우유갑을 두고 문이 정해진 지점을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일명 ‘우유 지키기’ 놀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업이에요. 여기에서도 앞서 말한 영속성을 찾을 수 있어요. 언젠가는 실패할 게 뻔한 실험이잖아요. 제 체력이 한계에 다다르면 문이 닫히면서 우유갑이 찌그러져 우유가 쏟아지겠죠. 무력한 개인과 정해져 있는 시스템 같은 요소가 군더더기 없이 표현된 작업이라 저를 잘 드러냈다고 생각해요.

Ice cream MIC., 2011, mixed media installation, dimension varidble ⓒHYUNMIN RYU

〈Ice cream MIC.〉 역시 중력 앞에 놓인 불완전한 개인을 이야기하죠. 아이스크림과 마주 보게 설치된 사진은 제가 어릴 적 달구벌 웅변대회에 참여했을 때를 담고 있는데요. 어린아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일은 무섭고 어렵거든요. 그럼에도 본인 의견을 피력하기를 당연시하던 사회가 주는 불편한 감정들을 녹였어요. 내 목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길 원하지만, 결국은 그 기대에 부응하고 마는 개인의 심정이랄까요.

ㅡ 사진에서 가장 잘 드러나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제 작업물이 어느 공간에나 동일하게 전시되기를 바라지 않아요. 공간에 따라 형태나 방식이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가령 ‘A 갤러리’에 걸린 ‘ㄱ’ 작품은 ‘ㄱ_A ver.’이 되고, ‘B 갤러리’에 걸린 ‘ㄱ’ 작품은 ‘ㄱ_B ver.’이 되면서 인스톨레이션 뷰가 달라지면 좋겠어요. 단일 사진이나 전시를 통해서는 작품의 원본을 파악할 수 없었으면 하는 게 지금 생각이에요.

편집권을 관람자한테 주는 방식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김세현’ 시리즈를 전시할 때 전시 주제와 섹션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12살 초등학생의 전형을 보여줄 수도 있고, 사진 매체가 가진 불완전성을 보여줄 수도 있잖아요. 저는 최대한 다양한 소스를 펼쳐놓고 관람객들이 임의로 편집해 작품을 소화하기를 바라요. 작품이 갖는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

Rubber boat ⓒHYUNMIN RYU
Quick selection_stamp tool_level_0,1.47,122 ⓒHYUNMIN RYU
2021 Changing clothes #1, #2 ⓒHYUNMIN RYU

ㅡ 요즘 가장 몰두하는 것은.

아무래도 세현이와의 작업을 꾸준히 잘 하는 일이요. 앞으로 10년은 계속하고 싶은데 곧 다가올 세현이의 사춘기를 고려해 보면 위기가 아닐까요.(웃음) 그럼에도 작업에 담길 여러 변화들이 기대가 돼요. 세현이의 외향과 개성도 변하고, 저와 세현이 사이의 관계는 물론 사진 매체의 환경도 변할 테죠. 우리는 카메라라는 기계로 어떤 순간을 포착하지만, 포착 직후 그 순간은 과거로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어차피 지나갈 과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셔터를 누르게 되는 힘, 이마저도 중력일까요?

ㅡ 작가님이 ‘좋은 작업’이라고 여기는 작업은 어떤 특성을 갖나요.

저는 똑똑하게 잘 덜어내는 게 관건이라고 봐요. 장식적이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굳이 선택하지 않고 잘 제거했을 때 만족도가 큰 편이에요. 친구들에게 가끔은 ‘예술’ 보다 ‘예술적’인 것이 더 가치가 높지 않겠냐고 이야기하는데요. 여름에 미숫가루를 마시면서 만화책을 볼 때, 이 또한 정말 예술적인 순간이잖아요. 반드시 정의 내릴 필요 없는 수많은 순간들을 포착하고 싶어요.

에디터
CURATED BY 김가인
사소한 일에서 얻는 평온을 위안 삼아 오늘도 감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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