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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음
2022-09-29

낭만을 만드는 디자인 스튜디오, 라이프이즈로맨스

‘건축, 공간, 브랜딩’을 아우르는 사람들

©LIIR

효율이라는 단어의 대척점에는 낭만이 있다고 생각했다. 혹자가 “굳이 왜?”라고 묻더라도 “좋아서”라고 답할 수 있는 것. 자신만의 감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태도에서부터 시작한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다. 건축과 공간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의 낭만을 구현하는 회사 ‘라이프이즈로맨스LIIR’다. 라이프이즈로맨스는 디자인 디렉터 허슬기 실장과 현장 및 경영총괄을 맡은 심우창 실장을 필두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건축, 인테리어, 브랜딩, 조경 등을 총체적으로 다룬다. 디자인 언어로 누군가의 이상을 현실에 가져온다. 설계한 도면을 통해 누군가의 낭만을 공간 곳곳에 심어 놓는다. 효율적으로 낭만을 실현하는 일이다.

Interview with 라이프이즈로맨스

허슬기 실장
(왼쪽) 심우창 / 실장. 현장 및 경영총괄 – 건축. 인테리어의 현장에 관한 전체적인 관리 및 경영관련업무
(오른쪽) 허슬기 / 실장. 디자인디렉터 – 건축. 인테리어. 브랜딩. 조경 등의 전체적인 디자인디렉팅
©LIIR

라이프이즈로맨스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라이프이즈로맨스의 시작은 우연이자 필연이었어요. 샛노란 빛이 온종일 드는 삼청동 아틀리에를 계약한 그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 작고 따뜻한 공간에 어떤 이름을 붙여주는 게 좋을지 고민하다가 문득 ‘라이프 이즈 로맨스(Life Is Romance)’라는 문구가 떠올랐어요. 사명으로 사용하기엔 너무 길고 어렵겠다는 생각에 다른 선택지를 고민하던 중 우연히 예전에 쓴 일기를 발견한 거예요. 2015년 직장인으로서 썼던 일기를 보고, 2016년 백수였던 제가 다시 글을 덧붙였더군요.

사리당 ©LIIR
요즘의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버리고 떠날 생각만 하는 것 같다. 이 낭만병부터 고쳐야 하는 게 급선무다. 라이프 이즈 로맨스는 즉 불치병이다. — 2015년 일기 중 / 작년의 허슬기가 앓고 있던 낭만병은 여전히 고치지 못했고(아니, 고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고쳐야 할 필요가 없어졌고) ‘라이프 이즈 로맨스’는 여전히 내 삶을 쌓아가는 방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혀 있다. 퇴사 전 낭만적이지 않았던 삶에서 사소한 감상마저 잃어버리면 내 인생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작성한 메시지. (중략) 나는 낭만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나의 이 로맨틱한 불치병이 절대 치유되지 않았으면 한다. — 2016년 일기 

순간 짜릿하더라고요. 거창한 마음을 먹고 창업한 게 아니라 부담이 없었어요. 우리가 잘하는 ‘건축, 공간, 브랜딩’을 총체적으로 다루며 누군가 꿈꾸는 공간을 실체로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에 지금까지 운영하게 됐습니다.

사리당 ©LIIR

건축부터 인테리어, 브랜딩 디자인까지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맡고 있습니다. 라이프이즈로맨스LIIR(이하 리르)의 아이덴티티가 명확해진 시점은 언제인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공간, 나의 집, 나의 건물에 대한 소망이 있어요. 하지만 이를 실체화할 때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요. 그래서 누군가의 낭만을 대신 완성해 줄 수 있는 디자인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혹자에게 낭만은 환상 같은 단어일 수도 있겠지만, 저희가 정의 내리는 낭만은 달라요. 누군가가 가진 상상을 구체화해 현실로 구현해 내는 것. 현실과 맞물린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방향을 제안하는 것이거든요. 낭만이 공간에 녹아들 때 비로소 공간이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라이프이즈로맨스(LIIR) 삼청동 오피스 ©LIIR

오피스 위치가 삼청동이더라고요. 리르 오피스 전경은 어떨지 궁금해요.

리르의 첫 아틀리에는 삼청동 적벽돌 건물 2층이었어요. 15평 아담한 크기라 겉으로 봤을 때 화려하지는 않지만, 삼청동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죠. 적벽돌 외벽 위에 직접 만든 간판을 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진을 찍곤 했어요. 제게 너무 소중하고 고마운 곳이었거든요. 구성원이 늘면서 사무실의 이전이 필요했고, 서울 곳곳에서 발품을 팔았습니다. 근데 삼청동 골목의 분위기를 잊을 수 없더군요. 다시 돌고 돌아 삼청동 골목으로 돌아왔어요. 오래된 주택을 식당으로 바꾸어 사용하던 공간이었죠. 낮은 대문을 열고 공간에 들어서면 작은 마당이 펼쳐지며 건물로 통합니다. 살려야 할 부분과 고쳐야 할 부분이 명확하게 보였죠. 한눈에 봐도 저희에게 꼭 알맞은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라이프이즈로맨스(LIIR) 삼청동 오피스 ©LIIR

처음 공간을 얻을 때는 현장에 하듯 작은 마당을 근사한 조경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어요. 근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는 말이 있죠? 멋지고 화려하게 꾸미진 못 했어요. 그렇지만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엿볼 수 있고 항상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오는 곳이에요. 이 작은 공간이 참 좋아요.

라이프이즈로맨스가 시공한 '스테이 무울' ©LIIR

리르는 일상에 낭만을 더한 공간을 구축해요. 특히 ‘스테이 무울’이나 ‘삼화 여인숙’처럼 옛 정취와 현대적인 감각을 연결한 스테이를 조성한 작업이 눈길을 끕니다. 일반적인 단독 주택과 스테이 공간 모두 사람이 오랜 시간 머물고 활동하는 장소지만, 고려해야 할 점이 분명 다를 것 같습니다.

모든 프로젝트들의 공간을 기획할 때, 공간의 기능 설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완성물이 아름답다는 것을 디폴트로 여기는 편이고요. 실질적으로 사람이 생활하고 머무는 주거공간과 일시적으로 사람이 머물다 떠나는 스테이의 가장 큰 차이는 수납공간일 거예요. 주거 공간에서의 수납은 비교적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고 사용성에 용이하도록 짧은 동선을 선호합니다. 반면, 스테이에서는 꼭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 수납을 위한 공간 낭비를 최소화해요. 게스트를 위한 수납과 호스트를 위한 수납은 완벽히 분리돼야 하는 것이죠.

삼화여인숙 ©LIIR

오래된 공간을 재해석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재료, 형태, 구조, 공간감 등 모두 중요하겠지만 어떤 점을 중요시 여기는지 궁금해요.

사용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떤 방법으로 공간에 반영할지 고민합니다. 저희가 작업한 춘천 ‘삼화여인숙’의 경우를 말씀드릴게요.

삼화여인숙 ©LIIR

클라이언트는 무려 50년이나 운영됐던 오래된 여인숙을 발견했는데 골목에서부터 보이는 색 바랜 간판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합니다. 오래도록 이방인이 드나들었을 이 공간이 다시금 춘천 여행자들에게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하기를 바랐죠. 이를 통해 삼화여인숙의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을 테고요. 그래서 클라이언트는 공간을 리모델링해도 이전 이름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삼화여인숙 ©LIIR

저희가 이 프로젝트를 위해 고안한 메인 콘셉트는 ‘archive’인데요. 과거부터 현재까지 삼화여인숙에 축적된 시간이 앞으로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제안 드렸습니다. 다시 말해 기록을 보관하는 장소란 뜻이지요. 또 ‘삼화’라는 단어와 ‘여인숙’이라는 단어에서 착안해 ‘꽃갈피’라는 키워드를 떠올렸습니다. 공간 곳곳에 기록과 관련된 요소가 있어요. 옛 정취와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삼화여인숙과 방문객들이 함께 새롭게 만들어 갈 공간을 상상하며 작업했답니다.

프로젝트 PICK

삼척 사유의 숲 ©LIIR

삼척 사유의 숲

‘마치 해외의 리조트에 온 듯한 착각을 주는 공간, 방에서 수영장으로 풍덩 뛰어들 수 있는 지극히 이국적인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라는 건축주의 추상적인 니즈는 코시국 해외여행을 꿈꾸던 수많은 사용자들에게 숨통을 트여줄 수 있는 완벽한 휴가를 위한 공간으로 실현됐습니다. 대나무 담장 속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색의 커튼과 건물을 따라 흐르는 곡선의 이국적인 수영장.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설명이 가능한 사유의 숲 프로젝트를 통해 낭만이 구체화될 때 공간이 가지는 힘을 온전히 느꼈어요. 고된 만큼 보람이 컸던 프로젝트였습니다. 결과물 사진을 업로드하자마자 일과가 불가능할 만큼 수많은 댓글과 메일, 전화를 통해 예약 문의를 받았거든요. 저는 예약을 도와드릴 수 없는데 말이죠.

테오리아 ©LIIR

전주 테오리아

몇 달 전 뉴스를 보는데 낯익은 산세가 보이더라고요. 까맣게 타 부서져 내린 건물 잔해가 눈에 띄었어요. 분명 어제까지 멀쩡히 공사 중이던 동해 현장이었죠. 새벽녘 누군가의 방화로 큰 산불이 났거, 흔적도 없이 타고 사라진 현장에는 금속 구조물만 남아 있더라고요. 목구조 건물을 싹 다 타고 집터로 예상되는 흔적뿐이었죠. 클라이언트의 오랜 소망이 깃든 집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입니다. 이를 보듬는 따뜻하고 행복한 공간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추가 설계 비용 없이 무너진 집터 위에 새롭게 쌓아 올릴 신축 건물을 설계했고, 이 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지금, 그 부지에는 화마의 흔적을 지우고 더욱 아름다운 미래를 담아낼 새 공간이 지어질 예정이랍니다. 클라이언트의 슬픔을 달래며 낭만이 채워질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 있어서 무척 뜻깊었던 프로젝트였어요.

입셀오피스 ©LIIR

리르는 ‘시간이 지나도 가치 있는 공간’을 만듭니다. 그동안 다양한 지역의 스테이, 카페, 오피스 등을 디자인해 왔는데요. 타임리스한 공간 디자인은 어떤 디테일에서 비롯된다고 여기나요?

수많은 공간이 부지불식간에 생기고 사라집니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리르가 디자인을 대하는 방법은 일관적입니다. 오래도록 쓸모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공간의 수명을 결정짓는 부분입니다. 사용자의 니즈를 고려해 공간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잘 만들어 내는 게 핵심이죠. 필요 동선을 파악해 프로그래밍하고, 이를 건축 언어로 해석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사용자의 생활패턴을 분석해 조명과 조도를 계획하고, 공간에 알맞은 가구를 짜 넣는 일도 주요한 요소죠. 기초적이고 당연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쓸모’를 만들어 내는 우리의 디테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델문도 B동 ©LIIR

다음 행보와 확장 계획에 대해 들려주세요.

리르는 건축부터 인테리어, 브랜딩, 조경, MD, 촬영까지 공간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맡고 있어요. 다양한 공간을 설계하고 만들어내며 생겼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몇 가지 사업을 분리 및 확장해서 진행하고 있어요. 그 가운데 건설사 오운아파트먼트(own apartment)와 이미지스튜디오 알지비콜렉터(rgb collector)를 간단히 소개 드리고 싶어요. 리르의 설계를 온전히 실현하고 구체화하여 디테일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디자이너블한’ 건설사 오운아파트먼트(own apartment)를 창업했는데요. 매번 신축현장설계를 하며 우리의 디자인을 최대한 적확하게 구현해줄 수 있는 건설사를 직접 설립했죠. 건설업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전국 방방곡곡 수많은 현장들을 시공하고 겪었던 노하우를 집약했답니다. 오운아파트먼트가 만들어내는 건축물 속 리르가 디자인을 담당합니다. 이렇게 실현된 낭만의 공간은 알지비콜렉터를 통해 사진과 영상 형태로 기록됩니다. 우리의 낭만은 현실이 됩니다. 언제까지나 마음속 낭만을 실현할 수 있는 회사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에디터
CURATED BY 김세음
글쓰기를 즐기는 디자인 전공자.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아름다움과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면면이 조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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