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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나
2021-05-03

집 자체가 ‘양태오 컬렉션’, 그가 아끼고 곁에 두는 기물들

자동차나 명품 옷 대신 토기나 그림을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어요.

9년 전, 건축가 김영섭 선생이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동한 후 양태오는 계동 한옥의 새 주인이 되었다. 능소화와 소나무 가 각각 한 그루씩 있어 ‘능소헌’, ‘청송재’라 이름 붙인 두 채의 한옥은 그가 사는 집이자 일터이기도 하다.

양태오의 한옥은 한국의 도자와 예술품이 한옥과 조화로운 이 집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디자이너 톰 브라운이 내한했을 때 능소헌을 디너파티 장소로 삼고, 마샤 스튜어트가 극찬했다는 한옥이 이곳이다. 놀라운 것은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기물 하나하나가 시간을 들여 모아온 양태오의 컬렉션이라는 것.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사람의 소비 성향이 점차 드러나기 마련인데, 저는 자동차나 명품 옷 대신 토기나 그림을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어요.”

1 양태오가 디자인한 작품으로 궁궐도를 재해석한 드고네이 코리안 컬렉션

2020년 2월. 영국의 핸드페인팅 벽지 브랜드 드고네이de Gournay에서 ‘코리안 컬렉션’을 제작했다. 세계 0.1%의 부호가 소장한다는 영국 왕실 브랜드에서 최초로 제작한 한국 컬렉션의 주인공은 양태오다. 평소 고미술 컬렉션에 일가견이 있었던 그는 궁중화와 민화를 대표하는 궁궐도와 책거리에서 각각 영감을 얻어 두 가지 컬렉션을 선보였다.

 

 “드고네이 파리 쇼룸에서 컬렉션을 처음 발표할 때 쇼윈도에 책거리 작품을 설치했어요. 그 자리에 섰다는 것도 영광이지만, 그때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을 잊지 못해요. 어? 한국에 궁중화와 민화라는 장르가 있어? 민화에 책거리가 있어? 오롯이 책을 주제로 삼은 그림의 형식이 있었다는 문화에 사람들이 놀라워했어요. 디자인과 예술 분야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들에게 중국이나 일본이 아닌 한국의 옛 그림을 알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을 경험했어요. 디자이너로서의 책임감 같은 것도 어렴풋이 느꼈어요.”

2 방탄소년단의 RM도 사랑해 마지않는다는 피에르 잔느레의 가구들

 “킨포크 도산에서 열린 피에르 잔느레 전시에도 참여했는데요. 피에르 잔느레 가구의 매력은 정말 너무 많지만 그가 가구를 제작한 스토리가 한 편의 영화 같아요. 르 코르뷔지에의 사촌 동생이었던 그가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인도 찬디가르에 갔다, 병원과 관공서를 건축하면서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건축물과 생활에 어울리는 가구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프랑스인의 시선이 아니라 인도에서 나온 재료와 기술을 사용한 가구였다, 또 그 가구들이 한동안 잊혀 있다가 눈이 밝은 역사가의 눈을 통해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 이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완벽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면, 누구나 이런 기회를 한 번쯤 꿈꾸어보겠죠.”

3 석지 채용신의 초상화

“초상화 컬렉션은 수량 자체가 많지 않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에 있는 초상화 개수를 조사했을 때, 1000점이 안된다고 했거든요. 초상화가 그려진 이유는 대부분 가문에서 제사를 지내고 사당에 모시려는 용도였어요. 어떤 가문이 망하지 않는 이상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힘든 작품이죠. 석지 채용신 초상화는 제가 가장 아끼기도 하고, 돈을 번 이후 가장 큰돈을 지출하며 산 작품입니다. 조선 말기의 어진 화가였던 석지 채용신이 상인을 그린 초상화인데 서울옥션에서 구입했어요. 눈빛에서 오랜 연륜과 해박한 지식이 읽히죠. 처음 걸어두었을 때 형형한 눈빛에 압도되는 경험을 했어요. 당시에는 한 올의 머리카락이라도 다르게 그리면 영혼을 담고 있지 않다고 하여 최대한 실제 모습과 같게 그리려 노력했고, 내면과 품성까지 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조선 시대의 초상화를 세계적으로 ‘미화되거나 우상화되지 않은, 정직한 초상화’라 평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죠. 조만간 어떤 박물관에서 석지 채용신의 초상화 전시를 하는데, 저도 당연히 전시에 빌려 드릴 거예요. 제가 소장한 작품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될 수 있다는 것도 매우 기쁩니다. ”

4 권영우, 하종현 화백의 단색화

“1970, 80년대에 작업하신 단색화 작가들은 수행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해요. 뜯어내고, 메우고, 칠하고 또 칠하는 고행에 가까운 행위를 반복하시잖아요. 완벽한 점 하나, 완벽한 비율을 위해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 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이렇게 힘든 것이라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되고요. 컬렉션을 하면 할수록 제 작업이 점점 평범해지는 느낌이에요. 빼고, 빼고 계속 빼게 되어요. 쓸데없는 행위, 불필요한 장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40년이 지난 단색화 그림, 그리고 천 년도 넘은 토기, 세르주무이 조명, 영국에서 만든 콘솔, 이들을 한데 두었어요. 그리고 생각해요. 사람의 혼이 담긴 작품에서 느껴지는 불변함, 변치 않는 디자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요.”

에디터
CURATED BY 김만나
15년간 피처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네이버 디자인판 편집장으로 온라인 미디어를 경험하고 있다. 유머 감각 있고 일하는 80세 할머니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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