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픽션이 3년 만에 전시 <논-픽션Non-Fiction>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그동안 스캇, 닉, 프레디, 잭슨, 태오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편적인 이야기를 전한 것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는 처음으로 슈퍼픽션을 이루는 세 사람 – 송온민, 이창은, 김형일이 현실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표현했다. 픽션인 캐릭터들이 논픽션인 현실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관객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Interview 슈퍼픽션
송온민, 이창은, 김형일
올여름, 슈퍼픽션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에 전시가 열려서 더 바빴을 것 같아요.
이창은 <논-픽션>은 갤러리 ERD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전시였기에 준비하는 중에는 매우 바빴어요. 최근에는 갤러리 ERD 부산 옆에 있는 GS 주유소와 협업하여 그곳의 옥상과 담벼락에 벽화 작업을 했고요.
송온민 삼성전자와 협업한 프로젝트가 8월 초에 공개돼요. 갤럭시 워치 4에 탑재되는 화면인데, 캐릭터 3종을 개발해서 상황에 따라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모션그래픽이에요.
김형일 갤럭시 워치 4 화면 디자인은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작업하기도 했고, 웨어러블 기기 화면인지라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돼요.
<논-픽션>은 3년 만의 단독전이에요. 이번 전시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셨나요?
김형일 지금까지 닉, 스캇, 프레디, 잭슨, 태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작업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우리 세 명의 이야기를 캐릭터에 빗대서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전시 제목이 <논-픽션>인 이유도 허구가 아닌 진짜 우리 이야기를 하는 전시이기 때문이에요.
캐릭터의 이야기를 하던 세 분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루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송온민 캐릭터들의 각 아이덴티티와 이야기는 우리가 상상하면서 만든 거예요. 그래서 작업을 할 때마다 샌프란시스코는 어떤 문화를 향유하는지, 무엇이 있는지를 조사해야 했어요(슈퍼픽션 5명의 캐릭터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다는 배경을 가진다). 이는 우리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작업이 어려운 요인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논-픽션>은 우리 자신에서 시작하는 전시이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감정만 밖으로 꺼내서 캐릭터로 표현하면 되었어요.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사람들, 나 자신과 싸우고 있는 나, 커다란 곰처럼 인생의 무거운 짐을 안고 가는 사람… 모든 작품에 공감이 되었지만 전과 달리 살짝 어둡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송온민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 셋 다 마음이 답답했나 봐요. 신기하게도 각자 작업을 했는데도 일맥상통하는 작품들이 탄생했어요.
김형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걸 끄집어 내는 거라서 약간 어두워진 것 같아요.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감정은 달라도 뭔가 통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고요. 만약 추억에 대한 전시였다면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서 밝은 장면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전시 <논-픽션>을 통해서 마음속의 답답함을 꺼내는 계기가 되었겠네요.
송온민 일방적으로 답답함을 토로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보다는 “누구나 내면에 우울함을 가지고 있어요. 당신도 지금 답답하지 않나요?”라고 말을 건네는 것에 가깝죠.
김형일 우리 이야기에 무조건 공감해달라는 게 아니라 “저는 이런데, 당신도 이런가요?”라고 물어보고 위로를 해주고 싶었어요. 저는 형들의 작업을 보고 ‘나도 답답한데 형들도 답답하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위안을 받았거든요.
그렇다면 전시를 진행하고 있는 지금, 세 분의 답답함은 조금 해소되었나요?
김형일 작품을 구상하고 작업할 때는 약간 우울했지만 막상 전시장에 작품을 설치할 때는 기분이 갠 상태였어요. 그래서 ‘아, 내가 작업할 때는 좀 어두웠구나’하고 잊힌 기억이 떠올랐죠.
이창은 전시장에 작품을 설치할 때는 일기장을 다시 열어보는 기분이었어요. 작업은 2~3월에 하고, 작품 설치는 7월에 했기 때문에 마음의 상태가 변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작품을 설치하면서 그때의 감정이 다시 떠올랐죠.
본인의 이야기를 5명의 캐릭터에 빗대서 표현한 이유가 궁금해요.
이창은 어두운 내용을 캐릭터에 빗대서 표현하면 우울함이 희석되면서 때로는 귀엽고 즐겁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도 캐릭터가 그를 중화시킬 테니까요.
김형일 팀으로 활동하다 보면 각자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게 어려운 점인데, 슈퍼픽션은 캐릭터를 통해서 각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송온민 우리에게는 뭘 표현해도 다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각자 이야기를 해도 통일된 이야기처럼 들린다는 장점이 있죠. 슈퍼픽션만의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해요.
슈퍼픽션은 작은 것까지도 함께 논의해서 작품을 완성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각자 작업을 진행했다고요.
이창은 두 번째 전시 <프레디>는 철저한 회의와 논의를 통해 작품 순서와 위치까지 정했어요. 그런데 <논-픽션>처럼 각자의 생각을 표현하고 따로 작업한 건 슈퍼픽션을 시작한 이래로 처음인 것 같아요.
김형일 하지만 한 공간에 걸려야 하기 때문에 튀지 않기 위해서 대략적인 정보만 공유했어요. ‘지금 내 감정은 이래서 이런 걸 그려보고 싶다’ 이 정도 내용만 공유하고 작업에는 서로 관여하지 않았죠.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한 조언은 했어요. 예를 들면 ‘이 작품은 크게 프린트했으면 좋겠다’ 정도?
그러고 보니 전시 작품 대부분이 대형 프린트 작품이고, 조형물도 크네요.
송온민 개인적으로 대형 작품을 좋아해서 크게 프린트했어요. 확실히 크기에서 주는 힘이 있거든요.
이창은 슈퍼픽션의 캐릭터가 관람객과 비슷한 크기로 있으면 작품에 감정 이입이 더 잘 될 것 같아서 크게 작업했어요. 그런데 막상 설치하고 나니 공간에 비해 작품 크기가 너무 커서 답답하고, 시야에 옆의 그림이 들어와 집중을 방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을 경험 삼아 다음 전시 때는 작품 크기를 조절하려고 해요.
실크 스크린, 조형물, 러그, 피규어 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했다는 점 역시 이전과 다른 새로운 시도였어요.
김형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말고 크고 물성이 있는 걸 해보고 싶었어요. 디지털 작업을 물성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더 다양하게 하고 싶었어요.
이창은 이전의 전시 작품들이 약간 단조로웠다면 <논-픽션>애서는 여러 방법을 통해 우리 생각을 담으려고 했어요. 피그먼트 프린팅으로 질감을 표현하고, 실제 공간을 느낄 수 있는 설치물 안에 영상 작업을 담고, 수작업 느낌을 위해 실크 프린팅을 하는 등… 디지털 작업을 실제화하려는 우리의 고민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송온민 <아파트먼트(2021)>의 건물 외형은 콘크리트로 제작하고 싶었는데 여러 상황 때문에 실현하지 못했어요. <Me Myself & I(2021)>이라는 설치 작품도 틀 안에 조형물을 넣어서 꽉 찬 느낌을 내고 싶었는데 잘 표현되지 않아서 틀을 포기해야 했죠. 더 극대화하고 싶은 작품들이 몇몇 있었는데 못해서 아쉬워요.
전시 <논-픽션>의 키워드를 꼽으라고 한다면 ‘일상의 답답함’인 것 같아요. 세 분은 언제 답답하다고 느끼시나요?
김형일 내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무언가가 내 앞에 나타났을 때요. 20대 때는 일이 안 풀리면 내가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노력을 하면 당연히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여겼죠.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육아를 하면서 내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심지어 이는 제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서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더라고요.
이창은 코로나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통제를 당하는 지금이 제일 답답한 것 같아요. 성인이 된 이후로 구속이나 통제를 당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내 삶이 통제당하고 있음을 느껴요. 이런 감정은 <Weak Reception(2021)>가 탄생한 계기가 되었죠.
송온민 정말 잘하는 사람의 작품을 봤는데 저는 그걸 표현할 수 없을 때 너무 답답해요. 움직임과 편집 센스, 컷 감각이 좋은 작품을 보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안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답답해지면서 고민을 많이 하죠.
답답함을 해소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면 살짝 알려주세요.
송온민 음악을 들으면서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해요. 그때는 머리가 탁 비워지면서 아무런 생각이 안 들고 명상하는 기분이 들어요. 하루 중 제일 중요한 시간이에요.
김형일 여행지까지 운전하면서 아내와 수다를 떠는 시간이요. 복잡한 생각 없이 정해진 목적지까지 운전만 하면 되고, 여행을 떠난다는 기분 좋은 설렘까지 있어서 그런지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데도 마치 처음 이야기하는 것처럼 서로 재밌게 이야기를 나눠요.
이창은 운동을 하면 답답함이나 스트레스를 주는 일을 잊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주짓수를 했었는데 집중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공격을 당하니까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래서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은 개운하더라고요. 요즘은 축구를 하는데요. 축구도 몸을 움직이는 거니까 하다 보면 집중이 되고 답답함도 해소돼요. 또, 비슷한 일을 하는 멤버들끼리 모여서 하는 거라 대화를 나눌 때도 즐거워요.
전시 <논-픽션>도 끝날 날이 얼마 안 남았네요. 다음 전시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김형일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앞으로 꾸준히 전시를 하자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전시는 평소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계기가 되고, 동시에 우리 작업을 눈으로 펼쳐 볼 수 있는 기회라 또다시 생각이 정리되도록 도와주거든요.
송온민 <논-픽션>에서는 각자의 이야기를 표현했지만, 다음에는 우리 감정과 생각을 슈퍼픽션 캐릭터의 일상에 대입해서 표현해보자는 이야기도 했어요. 전시는 시작하면 시원하면서도 아쉬움도 크게 남아요. 다음 전시는 이번에 아쉬웠던 점을 보완하면서 준비해야죠.
이창은 경험 부족으로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고 때문에 우리의 바람이 100% 충족된 건 아니지만,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전시에서는 우리가 표현하고 싶어 하는 걸 잘 구현할 수 있었으면 해요.
전시 포스터에 그려진 세 명의 캐릭터는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는 것일 수도, 혹은 각자의 이야기를 동시에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슈퍼픽션은 전시 오픈 전, 각 캐릭터를 한 명씩 공개하고 마지막에 같이 모여 있는 장면을 공개했다. 이는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셋이서 하나의 소리를 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시 <논-픽션>의 대표 이미지이자 슈퍼픽션을 의미하는 이 포스터는 전시 굿즈인 쿨링백에도 그려져 있다.
자료 협조 슈퍼픽션, 갤러리 ERD
CURATED BY 허영은
다양성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내서 보고, 듣고, 읽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