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좋은 트렌드 소식을 엄선하여 받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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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나
2021-09-29

한국 인포그래픽 그루, 장성환이 사물을 대하는 법

내게 영감을 주는 사물을 3가지만 꼽는다면.

장성환 대표는 한국 인포그래픽 분야에서 그루 같은 존재다. <주간동아>, <과학동아>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다 2003년 ‘디자인스튜디오 203(현 203 인포그래픽연구소)’를 설립했다. 인포그래픽을 연구하고 생산하다 보니 어느덧 글로벌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실력자가 되었는데, ‘인포그래픽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말로피에 국제 인포그래픽스 어워드’에서 2018년부터 내리 3년간 수상한 것만 봐도 짐작 가능하다. 장성환은 잡지 발행인이기도 하다. 2009년부터 홍대앞을 기록하는 동네 잡지 <스트리트H>를 매달 만들었고 7년 전부터는 잡지 발행과 함께 인포그래픽 포스터를 한 장씩 만들었다. “그걸 도대체 왜 하는 거야”라는 시선도 있었지만 매월 인포그래픽 포스터를 만드는 일은 세계에서 그가 유일하다.

 

그가 사랑하는 도시는 뉴욕이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1년에 한두 번은 뉴욕을 방문했다.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베이스 기지로 삼아 하루 3만 보 넘게 걸으며 활기 넘치고 매력적인 디자인 신을 눈에 가득 담았다. 뉴욕에서 그가 가장 매료되었던 곳은 누가 운영하냐에 따라 제각각의 특색이 살아있는 동네 서점!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꿈 중 하나였던 서점 주인을 그도 실현해볼 참이다. 홍대앞 사무실, 자그마한 공간을 동네 서점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발행과 함께 매월 제작하는 인포그래픽 포스터

뉴욕에서 기억에 남는 서점을 이야기해주세요.

‘스트랜드 북스토어’는 보유하고 있는 책들을 늘어놓으면 18마일(35km)이라 홍보하는 중고 서점이었어요. 영화 <언페이스풀>에서 다이안 레인이 폭주했던 장소로, 이렇게 크고 멋진 중고 서점이 있다는 점에서 질투가 날 정도였죠. 수 백 개의 갤러리가 모여있는 첼시에 자리한 ‘프린티드 매터’도 서점이라 한정하기 어려운 영감의 장소였어요. 예술가가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해 만든 온갖 인쇄물을 판매했죠. 뉴욕에서 만난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이 시대에 필요하다고 여기는 철학과 가치를 표현하는 장소처럼 느껴졌어요. 


이공삼에서 선보이는 서점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203이 직영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 서점 커넥티드 북스토어와 협업하는 구조가 될 거예요. 우리가 공간을 대여하고, 그들이 운영하고, 기획은 함께 하는 방식으로 디자인과 예술이 특화된 서점을 준비하고 있고요. 우리가 잘하는 방식으로 큐레이션을 진행해보려 합니다. 예를 들어 주제가 ‘바우하우스’라면 이를 정교화한 인포그래픽 포스터를 만들어요. 그 시절을 관통한 디자이너의 관계도를 표현하고 거점이 되었던 세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바우하우스 디자인이 훗날 어떤 건축가와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게끔 보여주고 함께 읽어야 할 책 리스트도 소개합니다. 텍스트 정보인 책을 시각적 맥락으로 엮어 직관적으로 보여주려 합니다.

'디터 람스' 인포그래픽 포스터

매달 발행하는 잡지는 그 달의 주제를 담은 포스터를 포함하고 있어요. 어느새 75장이 넘었습니다.

2015년 5월부터 매월 인포그래픽 포스터를 1건씩 지금까지 만들어왔습니다. 지인들조차도 얼마나 오래 만들겠냐고 걱정했지만 지금까지 지속한 것이 우리의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2014년 신년호를 기점으로 <스트리트H> 매거진을 리뉴얼했는데 당시 인포그래픽을 중심에 두었어요. 7주년 기념 전시에서도 홍대앞 골목 지도, 인포그래픽으로 표현한 인물 인터뷰 등 매거진의 주요 콘텐츠를 인포그래픽 포스터로 설명해두었죠. 좋은 것은 구구절절하지 않고 간단하고 단단해야 하죠.

 

인포그래픽을 설명할 때 한국 속담을 예로 든다고요.
인포그래픽을 한 문장으로 정확하게 설명하는 속담이 있어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주변에 넘쳐나는 데이터는 굴러다니는 구슬에 불과하지만 이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보기 좋게 시각화하면 그것은 진짜 정보, 사람들을 일깨우는 지혜가 될 수 있어요. 인포그래픽은 무질서한 데이터를 하나의 이야기로 꿰어내는 작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34567890이라는 숫자가 있어요. 의미가 없는 숫자의 나열이죠. 이 상태는 데이터이고 여기에 하이픈(-)을 넣으면 전화번호의 꼴을 갖추죠. 이 상태가 인포메이션, 정보입니다. 이 정보를 그래픽화하는 일이 남았는데 전국 냉면 맛집 전화번호 DB를 구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육수의 유형에 따라 구조화해볼까요? 어떤 집은 동치미 육수를 사용하고 어떤 집은 소육수를 사용하고. ‘육수 취향별 냉면 맛집 연락처’로 한 번 더 구조화한 것이죠. 이 정보를 그래픽으로 만들면 인포그래픽이 되는 거예요.

평양냉면, 경향신문, 20180721 - 203 인포그래픽연구소가 주제와 기획, 방향을 제안해서 진행한 프로젝트. 언론사 최초로 외부 전문사와 지면을 통 한 전면 인포그래픽과 온라인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을 동시에 제작했다.

인포그래픽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정보를 시각화하고 전달하려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타센 출판사에서 <정보 그래픽의 역사>라는 책을 공동 출간한 산드라 렌트겐은 몇 해 전 말로피에 서밋에서 데이터 시각화의 진화를 중세부터 현재까지 인포그래픽으로 설명했어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인식할 수 있어요. 성당이나 절과 같은 종교 시설을 생각해 보세요. 종교가 좋은 의미의 도식화, 시각화에 많이 신경 쓴 분야라 할 수 있죠. 중세에 문자와 책은 집권층이 독점해야 하는 영역이었으니 백성들에게는 종교의 권위를 설명하기 위해 상징과 아이콘을 많이 사용했죠. 성당이라는 장소 자체가 어떻게 보면 입체적인 인포그래픽이었어요.

 

데이터 시각화의 좋은 예시로 나이팅게일의 로즈 다이어그램을 꼽는다고요.  
19세기 최고의 통계 그래픽 중 하나로 꼽히는데, 다이어그램의 형태가 장미 모양을 닮아 그렇게 불리죠. 나이팅게일이 우리가 아는 ‘백의의 천사’ 이런 이미지가 아니라 실은 파이팅이 넘쳤다고 해요. 전장에서 병사를 치료하다 어느 순간, 부상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병원의 열악한 위생 환경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만든 거죠. 글이나 표로는 예산 확보가 부족하니 800여 장의 복잡한 보고서를 시각 자료로 축약해 로즈 다이어그램을 만든 거예요. 하버드 비즈니스는 데이터의 시각화를 일컬어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아이디어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라 말한 바 있어요. 인포그래픽은 현시대에 디자이너뿐 아니라 직장인, 사업가 모두에게 유용한 기술이죠.

해외여행 짐 싸기 인포그래픽 포스터- 스트리트H 2017년 9월 호 게재. ‘말로피에 어워드 26’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앞으로 구상하는 인포그래픽 작업이 궁금합니다.

맞아요. 아직도 많습니다. 제 야망이 고양이 ‘모모’를 안고 영화 속 악당처럼 세상의 모든 정보를 쓸모 있고 재미있는 지식으로 시각화하는 것인데요. 그중 하나가 얇고 작은 아코디언 북 형태의 책으로 일명 ‘처음 해봅니다만’ 시리즈에요. 소재는 ‘서울에 올라와 첫 월세방 구하는 법’과 같은 것이 될 수 있을 것에요. 월세방 하나 구하려 해도 알아야 할 것이 많은데 인터넷이나 유튜브에는 정보가 굉장히 흩어져 있어요. 이런 정보를 인포그래픽으로 한눈에 이해되게 정리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책값은 2천 원 정도로 하고 사회 초년생을 위한 10개 시리즈를 만들어 나중에 조카나 동생에게 두고두고 물려주게 하고 싶어요.

 

*Oh! 크리에이터 인포그래픽 디자이너 장성환 편 인터뷰 전문은 이곳에서 확인하세요.

 

 

장성환이 꼽은, 내게 영감을 주는 사물 3

 

1932년 영국에서 조지 카워다인이 디자인한 조명. 스프링을 활용해 손쉽게 각도 조절이 가능한 최초의 조명으로 데스크 램프의 클래식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앵글포이즈 이전의 조명들은 각도를 조절할 때 관절 부분에 달린 나사를 조였다 풀었다 해야해서 많이 번거로웠다. 그러나 스프링의 장력을 이용한 앵글포이즈는 원하는만큼 미세한 조정이 순식간에 가능하다.

 

데얀 수직은 그의 저서 <사물의 언어>에서 앵글포이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앵글포이즈의 스위치를 켜고 적당한 위치를 향하도록 움직여 놓는 것은 일을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상점에서 셔터를 올리는 일이나 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일과 흡사하다. 촉각과 청각을 비롯해서 모든 감각이 거기에 관여한다. 스위치를 딸깍하고 켜는 것은 ‘방해하지 마시오’라는 푯말을 내거는 것과 같다.”

 

어린 시절부터 사용해온 데스크 램프의 원형이 사실 앵글포이즈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30대가 넘어서였다. 이제는 앵글포이즈를 흉내낸 조명이 아닌 오리지널 모델을 애용하고 있다. 폴 스미스와 협업한 화려한 버전도 가지고 있지만 검정색의 오리지널 모델을 가장 좋아한다. 무언가를 준비하거나 일에 집중하려 할 때 이 사물은 내게 의식의 제구와 같다. 집중해서 글을 쓸 때면 천정등을 끄고 앵글포이즈만 켜고 작업한다. 컴퓨터로 글을 쓰지만, 그 글에 영감을 비춰주는 것은 LED가 아닌 이 오래된 전기 조명이다.

아톰의 생일을 기념하는 대형 박스를 구입한 건 2003년이다. 1952년부터 1968년까지 <소년>이라는 잡지에 연재한 로봇 만화 ‘우주소년 아톰’의 주인공 생일을 기념하는 상품이다. 박스에 표시된 아톰의 생일은 2003년 4월 7일이다. 2003년은 내가 203을 창업한 해이기도 하다.


이 박스는 책상 위에 구현한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주제가를 담은 도넛 LP, 인형, 트럼프, 당시 그대로 재현한 만화책. 가장 놀라운 것은 데스카 오사무 작업실에서 금방 들고 온 듯한 원고를 재현한 것이다. 연필선의 흔적과 말풍선 위 손글씨 대사, 그 위에 붙인 사진식자 등이 매우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당연히 컴퓨터 이전의 작업인지라 손과 펜의 느낌, 붓으로 채색한 결까지 볼 수 있다.


한국에도 훌륭한 만화 작가들이 있지만 이렇게 과거의 자료를 잘 보존하고, 치밀하게 재현해 만화 속 생년도에 생일축하 박스를 만든 기획력과 실천력에 자극받았다. 작업을 하면서 나는 ‘작업의 끝’을 정하지 말자는 생각을 굳게 했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에토레 소트사스가 1969년에 올리베티사 의뢰로 디자인한 휴대용 타자기다.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처음 이 물건을 보았을 때 휴대용 컴퓨터 또는 전동 워드프로세서인 줄 알았다. 군더더기 없는 본체의 선과 선명한 붉은색, 재질감 등은 전 시대의 유물이라 생각할 수 없는 경지였다.

 

군입대 전, 군복무에 유용할것이라는 생각에 상경대 건물에 있던 타자실에서 타자기 연습을 했었다. 그 곳에서 올리베티 타자기를 처음 만져봤다. 군대에서는 클로버라는 국산 타자기에 먹지를 몇장씩 끼워 문서를 복제하는 작업을 했었다. 제대 후 복학해서야 대우의 워드프로세서 르모를 거쳐 삼보트라이젬 XT 퍼스널 컴퓨터를 썼다. 이후 애플의 매킨토시를 사용하며 제품 디자인에 안목이 높아졌지만 올리베티 타자기가 주는 감동은 여전히 크다. 흔히 말하는 시대를 뛰어넘는 디자인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컴퓨터를 쓰는 지금도 키보드를 고르는데 까다로운 편이다. 타자기를 썼던 감각 때문일 것이다. 키가 눌리는 느낌과 깊이감, 그리고 롤러에 감긴 종이를 타격하는 충격음과 행을 바꿔주는 레버의 소리는 일반 기계와는 다른 물체라는 것을 매번 느끼게 한다.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에서 주인공 숀 코넬리는 재능있는 흑인 소년에게 자신의 글을 타자기로 따라치게 하며 글의 리듬을 익히게 한다. 타자기는 글자를 생산하는 기계지만 영감을 끌어내는 악기, 피아노와 같은 사물이기도 하다. 

 

내방 한쪽에 놓인 이 빨간 사물의 용도를 단번에 알아맞힌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 이 타자기가 내 작업에서 직접적인 생산 도구는 아니지만 글을 쓰고 싶어하는 내 안의 욕망을 꺼지지 않게 지켜봐주는 존재다.

에디터
CURATED BY 김만나
15년간 피처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네이버 디자인판 편집장으로 온라인 미디어를 경험하고 있다. 유머 감각 있고 일하는 80세 할머니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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