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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진
2021-09-27

본질만 남기는 디자인, 켈리타앤컴퍼니 최성희

꼭 가봐야 할 영국식 프라이빗 정원 6곳과 영감의 화방 3.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게 본질이고 디엔에이겠죠. 그러니 디자인도 그래야만 하는 이유에서 출발해서 끝도 거기서 나야 하는 거예요. 시대와 환경이 굉장히 많이 바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브랜드의 존재 이유가 있거든요. 본질이 있는 거죠.”

지난 7월 22일 성북동 켈리타 아뜰리에에서 만난 최성희 대표는 본질이란 말을 거듭했다. 사진 촬영 틈틈이 네 시간여 이어진 대화의 주제는 최근 포트폴리오에서 시작해 정원, 개인 생활, 그가 아끼는 문방사우로 옮겨갔지만 사실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은 같은 얘기예요.”

그가 이끄는 켈리타앤컴퍼니Kelita & Co.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묵직한 이름들과 일하는 디자인 회사다. 업력 초기 주력한 분야는 클라이언트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한 명함, 초청장, 달력 등을 포괄하는 비스포크 스테이셔너리. 국내외 기업의 의뢰가 이어졌고 값싼 기성품을 사용하던 관행은 변하기 시작했다.

 

이후 작업 영역은 자연스레 브랜딩 전반으로 번진다. 백미당, 고메이 494(F&B), 동인비, 손앤박(뷰티), 스테이트타워, 빌리브, 나인원 한남(건설), 국립국악원, 서울공예박물관(공공기관)… 각계에서 두고 회자되는 아이덴티티가 그의 손에서 나왔다. 2001년 회사를 열고 지류함을 마련하던 때부터 20주년을 맞은 지금까지 켈리타가 하는 일은 사실 변하지 않았다. 빼고 또 빼서 정수를 남기는 일, 본질로 예를 다하는 일.

켈리타앤컴퍼니가 본질만을 남긴 아이덴티티 디자인. 자료 제공 | 켈리타앤컴퍼니

일전의 인터뷰 중에서 “좋은 디자인은 그럴 듯한 것이 아니라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란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켈리타앤컴퍼니의 프레젠테이션의 엔딩 페이지에 적곤 하는 말입니다. “그럴 듯한”, “무엇 같이”, “무엇처럼” 해달라는 건 사실 그렇지 않다는 말이거든요. 결국 내가 아니라 남처럼 해달라는 말이 됩니다.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거지요. 좋은 디자인은 결국 그래야만 하는 것이 되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입에 단 디자인,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좋은 디자인으로 남기는 힘듭니다. 물론 그런 디자인들도 요새 인기가 있습니다만 저는 가운데에서, 코어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서요.

 

코어를 찾아내는 과정은 어떻게 됩니까.

어렵고도 어쩌면 쉬운데요. 제가 충분히 알고 공감할 수 있는 분야를 맡습니다. 제 스스로가 즐길 수 있어서 잘해야 코어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프로젝트 기간만이라도 완전히 올인해서 그 가운데로 들어가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이 브랜드가 가져야 하는 위치는 어디이고, 어떤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나를 소비자 입장에서 느낍니다.

 

직관적이네요.

네, 쉬워요! 브랜딩이라는 것은 뭔가 하나 만들고 파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끝까지 사용하고, 재구매가 일어나고 오랜 시간 뒤 땅에 버려지고 다른 것으로 태어나기까지의 시간을 내다봐야 해요. 이런 관점을 취하면 좋은 브랜드와 나쁜 브랜드는 쉽게 구분할 수 있지요. 곧 제가 하고 싶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고요.

 

디자이너의 성북동 아뜰리에. Ⓒ designpress (이명수)

올해 켈리타앤컴퍼니가 20주년이 됩니다. 달라진 것이 있을까요. 익어간다고 해야 할지요.

지금까지 맡은 프로젝트가 몇 건인지 모를 정도로 많이 했지요. 하지만 익어가고 있다… 는 아니에요. 익어야 될 때가 지났는데 맨날 안 익고 있고요. (웃음) 물론 노련해지는 부분이 있겠지만 모든 프로젝트는 ‘브랜뉴’를 원하거든요. 남들이 안한 것, 처음 보는 것, 뻔하지 않은 것. 때문에 익은 상태에서 작업하면 큰일나요. 지금도 프로젝트 계약을 하는 순간 설레고 겁이 납니다. 편치 않은 감각이 많이 일어나요. 이런 건 일도 아니지, 하고 팔 걷어붙이는 태도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아웃풋, 또 아웃풋을 내야 하는 일인 만큼 소진되는 순간도 많겠습니다. 디자이너의 회복법이라면.

저는 일단 가드닝이죠. 식물이 저를 키워요. 꽃집에 있는 절화들은 가장 예쁜 때에 잘라서 꽃집 냉장고에 들어갔다가 누군가의 집에 가서 보고 버려지지요. 땅에 심은 식물들은 스케줄이 달라요. 365일 계속 뭔가를 하고 있습니다. 단 한 순간도 같은 씬이 없어요.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순간을 매일 맛볼 수 있는 겁니다. 비가 많이 오거나 너무 뜨거우면 식물들이 쓰러지고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두고 봐요. 그대로도 좋으니까요.

또 하나가 있다면 전시 보는 것. 미술 전시는 물론이고 브랜드와 작가들의 컬래버나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형태의 전시를 봅니다. 전시란 오랫동안 쌓아 온 에너지를 단기간에 폭발시키는 거잖아요. 그걸 제가 보는 건 응축된 보약을 먹는 것과 같지요. 어떤 사람이나 현상의 포괄적인 부분을 한데 모아놓은 거거든요. 그걸 계속 본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죠. 전시를 보러 갈 수 있는 건강한 다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할 정도로요.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기대해도 좋을까요.

아트 작업을 열심히 해보고자 해요. 라인 드로잉도 있지만 돌아보면 사물의 모습에 개념을 담으려는 시도도 오랫동안 해왔더라고요. 프로젝트 역시 제게 허락되는 날까지 이어갈 거예요. 새로운 클라이언트, 훌륭한 팀과 함께. 재미있는 일들을 더 적극적으로 하려고 해요.

 
 
*Oh! 크리에이터 켈리타앤컴퍼니 최성희 편 인터뷰 전문은 이곳에서 확인하세요.
Ⓒ designpress (이명수)

최성희 디자이너가 추천하는

영국식 프라이빗 정원 6

Ⓒ Kelita Choi

 

작가이자 가드너였던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이 1884년부터 50년간 살면서 가꾸었다는 정원입니다. 지금도 가드너와 농부들이 늘 일하고 있지요. 쉐프님이 직접 채집한 꽃과 채소들로 식탁을 차리는 꿈의 정원입니다.

Ⓒ Kelita Choi

숲속 가득 온통 눈부신 아미초가 가득하고 하나 하나 범상치 않은 꽃들로 채워진 가든입니다. 작은 티룸에는 밀크티와 동네 할머니들의 꽃수다가 가득해요.

Ⓒ Kelita Choi

시인 비타 색빌웨스트Vita Sackville-West의 색의 정원. 뒤뜰 드넓은 목초지의 자연스러운 야생화들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 Kelita Choi

아름다운 마을 그래서미어Grasmere에 위치한,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가 살던 집. 정원 곳곳의 돌에 새겨진 시를 보며 산책할 수 있습니다.

Ⓒ Kelita Choi

시인이자 작가이자 아티스트이자 가드너였던 천재 할아버지 이안 해밀턴 핀레이Ian Hamilton Finlay의 프라이빗 정원입니다. 런던에서 차로 7시간 달리면 스코틀랜드 목초지 한복판의 스파르타 유적들과 조각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의 생각이 담겨 있는 시의 정원이지요.

Ⓒ Kelita Choi

셰익스피어의 부인이었던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가 결혼 전에 머물던 집의 코티지 가든입니다.

최성희 디자이너가 추천하는

세계의 화방 3

Ⓒ Kelita Choi

1830년에 오픈한 화구 브랜드입니다. 세잔도 모네도 이집에서 물감을 샀다는데요. 파리 센강변에 있는 작은 화방에서는 언제 들러도 핸드메이드 붓들과 예쁜 화구를 만날 수 있습니다.

Ⓒ Kelita Choi

1909년 문을 열었다는 페인트상이자 화방입니다. 코펜하겐 뒷골목에 있었던 매장은 아쉽게도 문을 닫았습니다. 멋진 붓과 이젤이 있는 가게였어요.

Ⓒ Kelita Choi

밀라노에 갈 때마다 오래된 가구 사이를 탐험하게 하는 화방입니다. 브레라 예술대학 근처에 1880년에 문을 열었어요. 계산을 해 주시는 저 분은 창업주 할머니의 6대 손자라고 하네요.

에디터
CURATED BY 유미진
타임라인을 훑으며 멋진 것들을 좇는다. 17년 된 자동차를 타고 오늘의 팝업스토어로 향하고, 19세기 의자에 앉아 BTS의 싱글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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