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5

디자인 미디어의 동시대적 실험, 월간 <디자인> 리뉴얼 프로젝트

국내 디자인계를 하나로 엮는 온라인 플랫폼이 온다!
월간〈디자인〉547호 표지

1976년 창간한 이래 국내 유일의 종합 디자인 전문지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월간 <디자인>이 통권 547호(2024년 1월 호)를 기점으로 과감한 리뉴얼을 시도했다. 제호와 커버, 판형, 기사 구성 방식 등을 새롭게 리뉴얼한 것이다. 일찍이 통권 500호를 기점으로 원 이슈(특집) 중심의 매거진으로 재구성하며 한 차례 변화를 꾀한 바 있는 이들이 왜 다시 한번 이른 리뉴얼을 감행했을까?

월간〈디자인〉547호

“독보적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에 잠식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죠.” 월간 <디자인> 최명환 편집장은 이렇게 운을 뗐다. 경쟁자가 없는 만큼 꾸준히 자기 쇄신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 잦은 리뉴얼이 외부에서 보기에 혹 ‘불필요한 겨울철 도로 재포장 공사’처럼 여겨질까 걱정도 컸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이번 프로젝트를 단행한 건 동시대적 감각을 수렴하지 않곤 더 이상 매체가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오늘날 거의 모든 산업이 레드 퀸 효과(진화하는 상대에 맞서 끊임없이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가설)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미디어라고 예외가 아니죠. 종이 매체의 정통성을 버리진 않겠지만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를 일궈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이번 리뉴얼에서 방점을 둔 건 디지털 플랫폼과의 연계성이다. 종이 잡지가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넘어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행하는 마중물이 되겠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 이를 위해 디자인하우스와 네이버의 합작 회사 디자인프레스와 느슨한 연대를 이루며 TF를 결성했다. 또 오랜 인연을 맺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 실천을 디자인 파트너로 낙점했다.

2024년 상반기 오픈을 앞둔 디지털 플랫폼 ‘디자인플러스’(www.design.co.kr)는 종이 매체의 기사를 미러링 하는 수준의 웹사이트가 아니다. 국내 디자인계를 하나로 엮는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이를 위해 ‘독자 제보 시스템’ 등 참여형 콘텐츠의 비중을 늘리고 디자이너 DB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물론 국경의 의미가 무색해진 오늘날 많은 국내 디자이너가 <디진> <디자인붐> <이츠나이스댓> 등 해외 웹진에서 영감을 얻고 있지만 디자인이 단순히 조형에 국한된 산물이 아닌 만큼 국내 시장 상황과 환경을 균형 있게 다루는 토종 디자인 플랫폼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디자인 플러스가 공식 오픈하면 월간 <디자인>의 콘텐츠 구성 방식에도 변화가 있을 겁니다. 최소한 1년간 온 오프라인의 유기적 조합을 구상하고 실험해 나갈 예정이죠.”

산세리프 서체를 변형해 완성한 새로운 제호. 일상의 실천이 양희재(양장점)과 협업해 완성했다.
지난해 5월 무신사 스탠다드 홍대에서 진행한 일상의 실천 10주년 전시 현장. 무신사 스탠다드 홍대 오픈 이래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했다.
일상의 실천은 월간 이 주관하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EI를 리뉴얼하며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변화는 제호와 판형. 특히 판형은 228 x 275mm에서 200 x 266mm로 다소 줄었는데 이는 햇수로 무려 20년 만에 변화다. 미디어가 다종다양해진 상황에서 종이 매체가 주는 물리적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했다. 대신 콘텐츠 구성 방식에 있어서 밀도를 높였다. 특히 크레디트 영역을 최대한 강화한 점이 눈에 띈다. 포토제닉한 미디어가 아닌 실질적인 정보를 충실하게 전달하는 전문지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명과 같다.

일상의 실천이 제안한 다양한 표지 예시들

모듈과 그리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커버는 디자인의 본질이 지닌 체계성, 계획성 등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디자인을 맡은 일상의 실천은 모더니즘의 정통성 위에 현대적 감각을 입혀 표지 디자인을 완성했다.

월간〈디자인〉547호 내지

바뀐 것은 외형만이 아니다. 월간 <디자인>은 오늘날 디자인 전문지가 갖춰야 할 소명 의식에 몰두했다. “디자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시기에는 디자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도 전문지의 명분은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디자인을 외치고 있고, 모든 게 디자인이라고 말하는 시대에 도달했어요.”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디자이너와 여러 산업 군을 잇는 연결자connector이자 번역가translator, 조력자 facilitator가 되겠다는 것. 이를 위해 디자이너 외에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고 산업과 시대적 관점에서 디자인을 이야기할 계획이다. 불혹(40세)을 훌쩍 넘어 지천명(50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디자인 미디어의 실험은 과연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월간〈디자인〉547호 내지

Interview with

최명환 월간 <디자인> 편집장

(왼쪽부터) 김경철, 권준호, 김어진 일상의 실천

월간 <디자인>이 2020년에 이어 다시 한번 리뉴얼을 진행했다.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최명환​: 이전까지 리뉴얼이 종이 매체 자체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것이었다. 일차 공개한 종이 매체와 오픈을 앞둔 웹사이트 ‘디자인 플러스’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리뉴얼을 진행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판형이었다.

최명환: 햇수로 20년 만에 판형 교체를 결정했다. 얼핏 크기를 줄인 게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공력이 드는 일이다. 레이아웃이나 기사의 구성 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오랜 광고주들도 설득해야 한다. 심지어 책을 운반할 때 쓰는 댐지(책보호대)도 새로 제작해야 한다. 신경 쓸게 한두 개가 아니다.(웃음) 하지만 독자들의 세대가 바뀌고,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면 이에 맞춰 콘텐츠를 담는 틀 역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종이 매체라는 정체성은 버릴 수 없지만, 콘텐츠의 밀도와 함께 휴대와 소장의 용이성을 높였다. 예전 월간 <디자인>이 작업용 데스크톱 옆에 두고 읽는 책이었다면 이제 디지털 노매드의 작업용 랩톱 가방, 디자인 스타트업 CEO의 출장길 가방에 들어갔으면 했다.

2020년 파격적인 한글 제호로 큰 사랑을 받았는데 다시 한번 로고를 바꿀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제호 디자인의 특징이 궁금하다.

최명환: 가장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부분이다. 이전 제호도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인 매거진이라는 상징성을 은유적으로 잘 드러낸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 강화를 목표로 삼자 이야기가 달라지더라. 최근 한국 디자인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그동안 국내 서점 유통망에 의존해야 했던 우리도 좀 더 글로벌한 접근이 필요해졌다. 한글 제호는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데 분명 장점이 있지만,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기에는 한계가 느껴졌다.

 

일상의 실천: 한글 제호의 상징성을 넘어 조금 더 보편적인 의미의 디자인design에 초점을 맞추고자 노력했다. 근대적 의미의 디자인은 모더니즘에 기반해 발전해 왔고, 타이포그래피 역시 그로테스크 서체의 활용이 다양한 매체에 적용되면서 현대적 의미의 디자인이 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디자인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월간 디자인의 제호는 전통적인 모더니즘 서체(헬베티카, 유니버스 등)의 골격을 기반으로 G, N과 같이 글자의 특징을 구분 지을 수 있는 부분의 변주를 통해 완성되었다. 일반 명사인 ‘design’의 보편성을 유지하며, 동시대에 통용되는 형식적인 실험을 담아내는 것은 디자이너로서 매우 도전적인 과제였는데, 로만 서체 디자이너 양희재(양장점)와의 협업으로 전통과 현대의 조합이라는 난제를 풀어갈 수 있었다.

일상의 실천은 제호와 함께 커버 디자인도 맡았다.

일상의 실천: 월간 디자인의 커버는 시스템 구축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작업을 진행했다. 타이틀과 매거진의 기본 정보, 특집 기사, 서브 인덱스 등의 위계를 정립하고 동일한 간격을 설정해서 독자가 정보를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도록 의도했다. 또한 각 호마다 특집 기사를 정해진 그리드에 따라 배치하여, 2단, 3단의 구성이 용이하도록 디자인했다. 2024년 1월 호의 커버 이미지는 기술의 발전과 장르의 탈경계 시대에 하루가 다르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지의 영역을 경험하는 디자이너의 오늘을 시각화한 이미지다.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디자이너의 역할과 방향은 매 순간 다른 궤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무작위로 얽혀 있는 라인과 픽셀의 형태로 시각화했다.

디자인플러스 로고

서두에 밝혔듯 이번 리뉴얼은 웹사이트를 포함하고 있다.

최명환: 월간지는 콘텐츠 발행 속도에 상대적으로 덜 구애를 받는다. 현실적으로 온라인 매체나 소셜미디어의 속도를 따라갈 수도 없고. 월간지 게재를 희망하며 제보하는 이들도 프로젝트를 ‘신속하게’ 알리는 것보다 권위 있는 매체에 게재되고 기록되는 것 자체에 더 가치를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속도전이 생명인 이 시대에 과연 이게 맞는 방식인지 계속 고민이 있었다. 부분적일지언정 온라인 퍼스트를 이뤄내는 게 웹사이트의 미디어 전략이다. 그리고 예전처럼 매체의 기사를 미러링하는 수준을 넘어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플랫폼으로 포지션을 설정했다. 월간 <디자인> 웹사이트로 소개하지 않고 ‘디자인 플러스’라는 별도의 네이밍을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상의 실천: 기존의 웹사이트가 월간지의 기사 일부를 게재하는 방식이었다면, 새로운 웹사이트에는 온라인에서 가능한 다양한 구독・참여형 콘텐츠가 포함될 예정이다. 또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쌓아온 방대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디자인 플러스’만 가능한 콘텐츠들도 선보이게 될 것이다. 새롭게 디자인된 월간지의 제호와 커버의 디자인 시스템이 웹사이트에도 적용되어 시각적으로 통일된 느낌을 주고, 미리 정의된 그리드와 계층 구조를 기반으로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를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었다. 특히 지난 47년간 누적된 디자이너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한국 디자인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웹사이트로 구축될 예정이다. 방대한 규모의 사이트이기 때문에 2024년 말을 목표로 순차적으로 오픈할 예정이다.

이번 리뉴얼은 앞으로 장장 1년에 걸쳐 진행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올해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나?

최명환: 1, 2월 중 웹사이트가 오픈하면 본지의 구성 방식도 이에 맞춰 지속해서 바꿔나갈 것이다. 구심점은 월간 <디자인>과 디자인플러스가 되겠지만 이외에도 팟캐스트, 뉴스레터 등 다양하게 콘텐츠를 노출하는 전략을 구상 중이니 기대해도 좋다.

이경희 객원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월간 <디자인>, 일상의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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