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는 아르텍과 스툴 60에 얽힌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전시장 중앙에서는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스툴 60의 변천사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아르텍이 2007년 오픈한 <세컨 사이클(2nd CYCLE)>을 통해 수집한 제품들이다. 벼룩 시장, 오래된 공장, 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모아 온 스툴 60은 시대별로 상이한 매력을 뽐낸다. 두 번째는 파이미오 요양원 90주년을 기념하는 에디션 스툴 60과 파이미오 암체어 41이다. 알바 알토는 결핵 환자를 위해 파이미오 요양원을 건축했는데, 당시 평면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녹색, 파란색, 노란색 대표 컬러를 스툴 60에 반영해 눈길을 끈다. 마지막이자 세 번째는 디자이너 듀오 포르마판타즈마(Formafantasama)와 아르텍의 만남이다. 이들은 기념비적인 가구 스툴 60의 90주년을 기념해 세 가지 버전의 스툴을 선보였다. 단순히 오래된 스툴을 기억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지속가능성’을 지향하는 아르텍의 미래 비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스툴 60의 시대
193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디자인 맥을 이어온 스툴 60의 아카이브 전시 〈Decades: Celebrating 90 Years of Stool 60〉은 단 세 곳에서만 볼 수 있다. 본고장 핀란드 헬싱키의 ‘아르텍 헬싱키, ‘아르텍 도쿄’, 그리고 서울의 ‘루밍’. 지금 루밍에서 볼 수 있는 시대별 스툴 60은 모두 아르텍 ‘세컨 사이클’로부터 제공 받았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단순히 스툴 60을 보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스툴 60을 둘러싸는 배송 상자까지 직접 제작하여 보냈다.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박스에는 두 개의 스툴 60이 포개져 들어가는데 흔들리지 않도록 맞춤 제작했다. 루밍 박근하 대표는 이 박스를 스툴 60을 소개하는 기단으로 활용했다. 아르텍 세컨 사이클의 로고와 가구 배송을 위한 사이니지 등 아르텍이 가구를 다루는 태도를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스툴 60은 탄생 이후 90년간 끊임 없이 제작되어 왔다. 하지만 딱 한 번 기존과 다르게 제작된 적이 있다. 바로 1940년대 세계 2차 대전의 시기. 핀란드 자작나무를 L자 모양으로 구부려 만든 ‘L 레그’ 기법에 필요한 접착제 원료를 당시 수급할 수 없었기에 핑거 조인트로 대체했다고. 이 때를 제외하고 스툴 60은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같은 재료와 기법으로만 생산됐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스툴 60을 자신의 취향에 맞춰 커스터마이징 하는 문화도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아울러 아티스트, 브랜드와 협업으로 선보이는 에디션 제품도 눈길을 끌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영국 저널리즘 디자인 매거진 모노클(Monocle)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제작된 스툴 60도 만날 수 있다. 루밍 박근하 대표는 스툴 60을 두고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공간 어느 곳에 두어도 해를 끼치지 않는 가구”라고. 단순하고 무해하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남다르다. 국내에서 스쿨 60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전시를 볼 기회는 흔치 않다. 이번 전시를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다.
파이미오 요양원으로부터
이번 전시를 놓치지 말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알바 알토가 설계한 파이미오 요양원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90주년 에디션 스툴 60과 파이미오 암체어 41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핵 환자의 치료를 위해 건립된 만큼 알바 알토는 청소에 용이한 환경에 대한 고민을 가구에 녹여냈다. 파이미오 암체어에 적용된 곡선이 대표적인 예다. 덕분에 먼지가 쉽게 쌓이지 않아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관리할 수 있다. 더욱이 사용자가 의자에 앉았을 때 폐가 활짝 열릴 수 있도록 신체를 반영해 구조를 고안한 점도 주목할 점이다. 알바 알토는 파이미오 암체어를 당시 휴게실 공간에 두었는데 전시장 벽면에는 암체어가 가득 놓인 당시 휴게실 사진이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앞으로는 실물 암체어가 놓여 있다. 기능주의적 요소를 고려한 알바 알토의 디자인이 9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은연 중에 암시한다.
파이미오 요양원의 평면도에서 발견된 녹색, 파란색, 노란색 컬러를 차용한 스툴 60 에디션은 루밍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파이미오 요양원 식당 칸에 설치된 차양막부터 계단, 실내 조명, 로비 등 공간 곳곳에 적용된 컬러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작된 스툴 60도 눈길을 끈다. 박근하 대표는 “몇 해 전 파이미오 요양원을 직접 가봤다. 건축물부터 실내의 작은 조명 하나까지도 알바 알토의 디자인 철학이 녹아 들어 있었다. 그곳을 연상케 하는 색상이 적용된 스툴 60을 루밍에서 소개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스툴 60의 미래를 그리다
최근 아르텍은 디자인 듀오 포르마판타즈마(Formafantsama)와 함께 스툴 60의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그간 아르텍은 스툴 60 제작을 위해서 핀란드에서 자란 자작나무를 엄선하여 사용해 왔다. 스툴 60의 수요는 점차 증가했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벌목이 필요했다. 하지만 기후 위기가 대두된 현 시점에서 이러한 프로세스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유효하지 않다. 이를 위해 포르마판타즈마는 90년 간 이어온 제작 과정을 재고했다. 스툴 60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된 목재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 그 결과 이들은 ‘야생’이라는 뜻의 스툴 60 빌리를 공개했다. 루밍에서의 전시에서는 스툴 60 빌리를 직접 만날 수 있다. 벌레가 나무를 파먹은 흔적, 자라난 나뭇가지를 제거한 흔적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의자 하나에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 싶겠지만 스툴 60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은 전시를 보고 나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스툴 60처럼 단순하고 완벽하며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의자는 또 없을 거란 사실을.
글 이정훈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루밍, 아르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