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찬 소장이 기획한 엔지니어링 클럽은 건축을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전개해 온 그의 철학과 경험이 자연스레 표출되는 공간이다. 그는 사물이 만들어지는 원리와 이를 손으로 구현하는 섬세하고 치밀한 장인 정신, 그리고 그에 따른 물리적 실체에 관심이 많다. 사물주의를 예찬하는 그의 태도는 완벽한 커피를 위해 세밀하고 엄격하게 원두를 로스팅하고 커피를 내리는 엔지니어링 클럽으로 이어져 공간만의 오라를 선사한다. 오늘도 커피 한 잔에 세심함과 치열한 열정, 두려움 없는 창의성을 담아내고자 고민하는 박희찬 소장을 만나 엔지니어링 클럽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Interview with 박희찬 소장
스튜디오 히치
ㅡ 먼저 박희찬 소장님 본인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 ‘스튜디오 히치(Studio Heech)’의 디렉터, 소장을 맡고 있는 박희찬입니다. 스튜디오 히치는 2018년에 서울을 기반으로 설립됐어요. 지난 5월에는 서울 삼각지에 ‘엔지니어링 클럽’이라는 커피하우스를 오픈했습니다.
ㅡ 오늘은 엔지니어링 클럽을 좀 더 알아보고자 하는데요. 엔지니어링 클럽은 어떤 공간인가요?
엔지니어링 클럽은 삼각지 역 근처 인적 드문 골목길 안에 있어요. 커피에 진심인 사람들이 공간과 시간을 채우는 커피하우스입니다. 열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바리스타들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커피와 디저트를 내어드리죠. 이 모든 과정이 솔직하게 드러나고 경험되는 공간입니다.
ㅡ 엔지니어링 클럽을 선보이기 전부터 운영하고 계신 스튜디오 히치는 건축, 인테리어, 가구, 인스톨레이션 등 다양한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죠. 스튜디오 운영만으로도 일정이 꽉 차는 바쁜 하루를 보내고 계실 듯한데요. 엔지니어링 클럽까지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올해 초부터 갑자기 스튜디오 히치에서 진행하던 여러 건축 디자인 프로젝트들이 멈추게 됐어요. 스튜디오에서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많지 않던 시기였죠. 저는 소장이니까 고민스러운 상황이었어요. 고심 끝에 ‘스튜디오 자체 프로젝트를 만들어서라도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마침 임대할 수 있는 공간이 사무실 아래층에 생기면서 막연하게만 상상했던 계획들을 실현했습니다. 우리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이니 ‘공간을 만드는 일은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 생각했어요.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은 자신에게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집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커피를 즐기고, 친구들을 만나고, 연인들이 시간을 보내고, 혼자서도 찾아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들이죠. 상상하지 못했던 기발함과 놀라움을 가진 많은 카페가 매주 새롭게 생겨나는 서울에서, ‘우리는 어떻게 스튜디오 히치만의 이야기를 담은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쌓여가는 시기였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엔지니어링 클럽이죠.
ㅡ 엔지니어링 클럽 이름만 들었을 때는 쉽게 카페로 연상되지는 않는데요. 브랜드명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한국에서 스튜디오 히치를 설립하기 전까지 영국에서 8년가량 공부하고 일했습니다. 이 시기에 내가 배운 한국 건축을 향한 질문이 많이 생겨났죠. 건축에 담긴 유교적인 관념 문화보다는 물리적으로 만들어지는 실체, 만들어 내기 위해 작동하는 원리와 장인 정신 등 사물주의적인 태도를 예찬하는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었어요. 이런 생각이 바탕이 되니 자연스럽게 ‘엔지니어링 클럽’이란 네이밍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엔지니어링 클럽이란 이름을 가지고 내가 생각해 온 것들을 펼칠 수 있길 희망했어요. 다만 엔지니어링 클럽의 구체적인 형태로 카페를 생각했던 것은 아니에요. 그보다는 저와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건축가, 디자이너, 예술가, 장인들의 모임과 같은 클럽을 상상했죠.
엔지니어링 클럽은 커피 한 잔이 주는 경험을 위해 노력합니다. 세밀하고 엄격하게 커피 원두를 고르고 로스팅 하죠. 이러한 철학과 태도는 스튜디오 히치가 건축을 대하는 방식과 온전히 연결됩니다.
ㅡ 삼각지에 엔지니어링 클럽을 열었습니다.
사실 삼각지에 엔지니어링 클럽을 만드는 데 깊은 고민이나 리서치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희 건축 스튜디오가 같은 건물 2층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1층에 엔지니어링 클럽을 선보인 거죠. (웃음) 2층의 스튜디오 히치 디자이너들과 1층 엔지니어링클럽의 바리스타들은 지속적으로 폭넓게 교류하면서 아이디어들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ㅡ 소장님께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최근 삼각지 상권이 주목받고 있죠. (웃음) 엔지니어링 클럽이 있는 골목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삼각지에 새로운 에너지가 유입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여요. 많은 사람이 찾아주는 곳이죠. 실제로 특색 있는 레스토랑, 가게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어요. 도시 서울의 중심부에 있으면서도 변두리나 모서리 같은 낯섦이 함께 존재하죠. 반대로 엔지니어링 클럽이 자리 잡은 한강대로62다길은 유동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삼각지 뒤편의 모퉁이 같은 곳입니다. 평일 낮이나 저녁에 찾아오시면 더없이 조용한 공간에서 자신에게 집중하며 커피, 차를 즐길 수 있어요.
ㅡ 브랜드 네이밍처럼 기계적이면서도 미니멀한 공간 디자인이 인상적이에요. 엔지니어링 클럽에서만 볼 수 있는 제작 가구들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단순히 공학적 엔지니어링을 의미하는 이름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공간을 기획하며 빅토리아 시대에 열기구, 글라이더를 발명해 세계를 여행하는 고귀한 장인, 엔지니어들을 상상했어요. 우리들이 만드는 커피 한 잔에 그런 세심함과 치열한 열정, 두려움 없는 창의성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엔지니어링 클럽의 바리스타들은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면서도 섬세하게 커피를 생산하는 장인 또는 창의적인 엔지니어와도 같아요.
엔지니어링 클럽은 열정적인 바리스타들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커피와 디저트를 완벽하게 준비해 내어드리는 모든 과정이 솔직하게 드러납니다. 전통적인 카페는 바리스타의 작업 영역과 방문자들이 커피를 마시는 영역이 바와 카운터를 통해 명확하게 구분되죠. 반면에 엔지니어링 클럽은 바와 카운터의 방향을 바꿔 바리스타와 방문자 영역의 경계를 흐려지게 했어요. 방문자들이 바리스타와 한 공간에서 커피와 디저트가 준비되는 과정과 동작을 선명하게 음미할 수 있게 한 거죠.
방문객이 직접 높낮이 조절을 하며 조도를 맞출 수 있는 도르래 조명, 대형 평판 유리를 이동할 때 사용하는 ‘유리 흡착기’를 이용한 바 테이블, 직접 제작한 구조목을 활용한 벤치와 스툴, 비행기 날개의 금속 접합 디테일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카운터까지 내부를 채우는 가구들은 스튜디오 히치가 그동안 만들어 온 것입니다.
ㅡ 상업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과 운영하는 일은 분명 다를 듯합니다. 직접 공간을 운영해 보니 어떠신가요?
이미 만들어져 있는 브랜드의 상업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경험입니다. 직접 공간을 운영해야 하므로 ‘본질적으로 공간이 전달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심도 있게 고민했어요. 단순히 인스타그램용 사진 잘 나오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닌,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의 스토리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죠.
ㅡ 대표 메뉴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엔지니어링 클럽은 직접 커피 생두를 큐레이션, 로스팅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브루드 커피(Brewed coffee)를 선보이고 있어요. 고소하면서 다크(dark)한 원두, 산미가 있는 라이트(light)한 원두 모두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싶은 메뉴들이죠. 엔지니어링 클럽의 모든 커피를 경험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디저트로는 스페인의 셰리 와인 풍미가 느껴지는 셰리 티라미수를 손님들께서 꾸준히 찾아 주고 계세요. 시즌마다 새로운 음료와 디저트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ㅡ 식음료 외에도 공간에서 특별히 소개해 주실 콘텐츠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엔지니어링 클럽은 바리스타의 작업 공간이 완전히 오픈되어 있습니다. 앞서 소개했듯이 클럽의 열정적인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만들고 디저트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온전히 드러나는 공간이죠. 정교하게 짜인 리추얼(ritual)같기도 한 바리스타의 움직임을 관찰해 보세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하게 됩니다.
글 이건희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스튜디오 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