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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3

광복절을 맞아 열린 아주 특별한 졸업식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
나라를 빼앗긴 슬픔과 분노는 나이나 자리를 가리지 않고 솟구쳤을 것이다. 십대이거나 학생이라고 하여 다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중 누군가는 행동했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 그들은 퇴학이나 정학 등 부당한 징계를 당해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 땅에서 살아가던 평범한 이들의 용기와 희생을 바탕으로 또 다른 역사가 쌓였고, 대한민국은 올해 78번째 광복절을 맞았다. 이날을 기념하며, 꾸준히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한 장학사업을 진행해 온 빙그레가 국가보훈부와 협력해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을 열었다.
▲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 캠페인 영상

8월 11일 졸업식 영상이 공개되었다. 5분 남짓한 영상은 공개되자마자 빠르게 퍼져나갔다.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눈가를 젖게 했다. 빙그레와 함께 이 졸업식을 기획한 광고·캠페인 대행사가 바로 디마이너스원(D-1)이다. 이들은 이동약자가 쉽게 축구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지도를 만드는 캠페인 〈모두의 드리블〉을 통해 지난해 세계적 광고제 클리오 스포츠 어워드에서 수상한 바 있다.

당시 진행한 헤이팝과의 인터뷰에서, 이들은 “선하고 영리하게” 캠페인을 제작하려 한다는 신념을 밝혔다. 그 신념이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 캠페인에서 또 한 번 빛났다. 디마이너스원의 구성원들에게도 매우 각별한 의미로 남았다는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 캠페인, 김동길 디마이너스원 공동대표에게 그 기획과 제작 이야기를 물었다.

졸업식 현장. 사진 제공: 디마이너스원
Interview 김동길 D-1 공동대표

부끄럽지만, 이번 캠페인을 보고 나서야 학생 독립운동가들이 퇴학이나 정학 등 부당한 징계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빙그레와 디마이너스원이 ‘학생 독립운동가들의 졸업식’을 테마로 캠페인을 진행하게 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빙그레는 이전부터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사업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작년 디마이너스원과 함께 〈그해의 계절〉이라는 제목의 TV 광고를 함께 진행한 바 있습니다. 올해는 디마이너스원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캠페인의 형태를 함께 기획하게 되었어요. ‘독립운동’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잡은 후 캠페인의 소재를 고민하다가, ‘학생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했던 학생 독립운동가’들의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생 독립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분들이 퇴학을 당하셨을 거라는 사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원치 않는 퇴학을 당하게 되면, 살아가면서 많은 불편이 따라올 텐데,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어려움까지도 감당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진 제공: 디마이너스원

그래서 이 사실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학생 독립운동가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캠페인을 가장 진정성 있게 알리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결국 내린 결론은, 퇴학을 당했던 분들이 지금이나마 졸업하실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졸업식’이라는 캠페인이 학생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가장 담백하면서도 진하게 전할 수 있는 콘셉트라고 생각했습니다. ‘약 100년이 지난 후에야 열리는 졸업식’이라는 의미를 담아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이라는 캠페인 이름을 지었습니다.

사진 제공: 디마이너스원
사진 제공: 디마이너스원

콘셉트를 잡은 후엔 어떤 과정이 이어졌나요.

후손분들께 연락을 취하는 일이었어요. 사실 그분들을 초청하는 일이 다소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캠페인에 관심이 없으시거나, 혹여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시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어요. 하지만 조심스럽게 한 분 한 분께 연락을 드리면서 그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통화하는 내내 눈물을 흘리시는 선생님, 90세에 가까운 연세에도 어떻게든 졸업식에 참석하시겠다는 선생님,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참석하시겠다는 선생님, 잊지 않고 이렇게 기억해 주어서 정말로 고맙다는 선생님…. 후손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면서 캠페인에 훨씬 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캠페인을 꼭 성공시켜야겠다는 의지도 강해졌죠. 캠페인을 잘 완성하는 일이 후손분들과 학생 독립운동가분들이 갖고 계시던 설움, 즉 졸업을 하지 못했다는 슬픔과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해드릴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후손들의 인터뷰 모습. 사진 제공: 디마이너스원

졸업식에 어울리는 졸업앨범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옛 사진을 구하는 일이 만만찮았을 텐데요.

빙그레는 기획 초반부터 끝까지 빙그레가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온전히 학생 독립운동가와 후손분들이 모든 조명을 받아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죠. 그래서 저희도 졸업식에 방문한 후손들께 잊지 못할 추억과 소중한 경험을 드릴 방법에만 집중해 활동을 기획했습니다. 졸업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졸업앨범’인데, 정말이지 독립운동가분들의 사진을 찾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교복을 입은 사진은 물론이거니와 젊은 시절의 사진조차 찾기 어려웠죠. 한참 고민하다가, AI를 통해 그분들의 생전 사진을 활용해 학창 시절 모습으로 복원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 사료관 내 퇴학/정학 기록과 사진 자료가 있는 총 아흔네 분을 교복을 입은 학창 시절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졸업앨범을 제작했습니다.

그 후 후손들이 방문하셔서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실 수 있도록 졸업식을 계획했습니다. 메모리얼 월(memorial wall)이자 포토존을 제작해 후손들을 맞이했고, 식사와 간식, 공연을 준비해 뜻깊은 졸업식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또 후손들께 기대하지 못한 경험을 드리고 싶어서, 학생 독립운동가 중 한 분을 대표로 선정하여 홀로그램 졸업사를 기획했습니다.

사진 제공: 디마이너스원

캠페인을 위해 독립운동가의 후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지요. 특히 마음에 남는 이야기가 있었다면요.

백 분이 넘는 분들과 직접 통화를 주고받다 보니,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선생님께서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다고,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을 거라 생각해 왔다. 어떻게 이렇게 전화를 주셨냐, 너무 감사해서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하시더군요. 연세가 있으셔서 먼 걸음 하기 어려우실 텐데도, “아버지를 위해 어떻게든 졸업식에 참석하겠다”고 하신 말씀도 기억이 납니다. 물론 교통과 관련한 부분은 최대한 불편함을 줄여드릴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사진 제공: 디마이너스원

독립유공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 일화를 이야기해 주신 분들도 있습니다. ‘독립운동을 했다’라는 사실이 있다고 해도, 그 사실을 증명하는 증거나 자료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후손 중 한 분은 그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청와대로 직접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하고, 국가보훈부 연구원과 끝까지 노력해 결국 자료를 찾아 인정받은 경험담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후손들 대부분이 연세가 지긋하신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독립운동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애쓰셨으리라 생각하니 괜스레 뭉클해지더군요. 무엇보다 모든 후손분들이 이 캠페인에 대단히 호의적이셨던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졸업식에 한 분도 참석하지 않으시면 어쩌지? 졸업앨범 참여에 동의하지 않으시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많았는데, 되레 이런 캠페인을 기획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졸업식에서는 학생 독립운동가 김찬도 선생님 모습을 AI로 되살려 축사를 진행했지요. 그 모습을 보니 학생 독립운동가들이 당시 얼마나 어린 나이였는지 생생하게 다가와 더 마음이 아팠어요.

졸업식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 중 하나가 대표 졸업생의 ‘졸업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졸업식의 졸업생 중에는 현재 이 세상에 계신 분이 없지요. 그래서 ‘학생 독립운동가 한 분을 복원하여 현장에서 등장하게 만들자’는 기획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표 학생 독립운동가로 김찬도 선생님을 선정했고, 그분의 생전 사진을 가지고 AI 복원하여 홀로그램으로 제작했습니다. 졸업사 내용은 실제 김찬도 선생님이 저술하신 자서전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직접 경험하신 일화와 어투 등을 반영했어요.

홀로그램 축사 모습. 사진 제공: 디마이너스원

실제 홀로그램 축사가 진행될 때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홀로그램 축사가 시작되자 적막해지는 졸업식장의 분위기, 모두가 집중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후손분들을 포함해 현장에 있는 스태프와 관계자도 뭉클한 마음으로 졸업사를 들었습니다. 그중에는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으시던 후손분도 계셨습니다. 복원을 하고 나서 보니, 새삼 이렇게 어린 학생의 모습으로 독립운동을 했을 학생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이 그려져 저희 또한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동지여, 보고 있는가
우리 대한민국이 독립을 했다
퇴학을 당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어려움도 있었고
학창 시절에 대한 아쉬움도 남아 있을 터이지만
오늘 이 자리에 가족들과 함께 있으니 그런 괴로움과 마음 따위야 다 무용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기억하고, 위로하듯 이러한 졸업식을 열어준 뜻에 진실로 감사합니다
동지들이여, 우리를 위해 마련된 이 졸업을 함께 축하하세”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 김찬도 졸업생 대표의 축사
(실제 독립운동가 김찬도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작성)
사진 제공: 디마이너스원

보통 졸업식 현장은 소란스럽고 들뜬 분위기가 감돌기 마련인데요,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 역시 마찬가지였나요?

저희로서는 준비한 졸업식에 참석해 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했는데, 오히려 후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수없이 돌려받았습니다. 메모리얼 월에 걸린 액자 중 자신의 부모님 사진을 찾는 분도 계시고, 그 사진 앞에서 셀피를 찍는 분도 계셨어요. 대가족이 함께 졸업식을 방문하여, 가족 간 뜻깊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며 소감을 전해주신 분도 계셨지요. 복원된 사진 속 얼굴이 본인의 아들딸과 닮았다며 신기하다는 말씀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80~90세의 연세에도 사진을 찍어 달라며 해맑게 웃으시던 모습은 기분 좋은 추억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사진 제공: 디마이너스원

모두 먼 길을 오신 분들이다 보니, 기분 나쁜 일 하나 없이 좋은 추억만 가지고 가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어요. 행사 후 몇몇 블로그로 올라온 후기를 보니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진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졸업장은 그저 학교를 일정 나이까지 다니기만 하면 받는 것일지 몰라도, 후손분들께는 그 이상의 커다란 의미가 있었습니다. 독립운동가분이 살아 계실 때 졸업을 하지 못한 서러움에 관해 자주 이야기하셨다고 전해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후손분들께는 부모님의 졸업이 마음 한편에 남은 숙제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사진 제공: 디마이너스원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 캠페인 명을 표기한 서체도 캠페인과 무척 잘 어울렸습니다. 어떤 느낌의 서체를 사용하려고 했나요.

‘세상에서 가장~’ 이라는 말은 한국인에게 매우 익숙한 표현이잖아요. 그래서 디자인으로 새롭게 풀어내 분위기가 달라 보이게 하고 싶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명조체이면서도 무겁거나 딱딱하지 않게, 트렌디하면서도 장식이 과하지 않게 콘셉트의 정도를 조절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사진 제공: 디마이너스원

그렇게 완성한 전체 캠페인의 콘셉트나 분위기가 타이틀 디자인에도 잘 담긴 것 같아 내부에서도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이번 졸업앨범과 타이틀 디자인은 스튜디오 닷츠에서 함께해 주었습니다. 이번에 후손들께 전달한 졸업앨범 외에, 학생 독립운동에 관한 내용과 캠페인 전반을 담은 책이 새로 제작될 예정입니다. 11월 3일 학생 독립운동 기념일에 맞춰 전국 도서관과 서점에서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과 기대 부탁드립니다.

졸업앨범. 사진 제공: 디마이너스원

이 캠페인이 디마이너스원에게는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 궁금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 캠페인은 저희가 그간 진행해 왔던 캠페인 중에서도 규모가 매우 큰 편입니다. 여러모로 저희에겐 각별한 의미를 가진 캠페인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단순히 제작 범위나 규모 때문이 아니라, 후손분들 각자 품고 계신 ‘졸업’에 대한 마음이 너무도 간절했기 때문이에요. 어떤 캠페인을 진행할 때보다도 어깨가 무거웠어요. 사실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우리가 너무 큰 일을 벌인 건 아닐까? 싶어 종종 무서웠습니다. (웃음)

사진 제공: 디마이너스원

하지만 지금 캠페인이 큰 화제가 되고, 많은 분이 학생 독립운동가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보며, 그 부담만큼의 보람을 느낍니다. 직접 캠페인이 구현된 현장 모습을 보다 보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벅참을 느끼곤 하는데요, 이번엔 특히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아요. 후손분들이 졸업식에 오셔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마주하니 이번 캠페인 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또 한 번 들더군요. 그리고 많은 분이 캠페인에 공감해 주시는 모습에 큰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졸업식 준비 모습. 사진 제공: 디마이너스원

“좋은 크리에이티브는 주목하게 하고, 좋은 취지는 함께하게 한다.” 디마이너스원이 초기부터 외쳐 온 말이자 저희의 신념입니다. 이번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그 말이 옳음을 다시 느꼈습니다. 캠페인 영상이 공개된 지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뉴스, 미디어 등으로 캠페인이 퍼져 나갔습니다. 크리에이티브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취지를 통해 함께하게 만든 대표 사례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아 기쁩니다.

사진 제공: 디마이너스원

클라이언트 빙그레

협업 기관 국가보훈부

 

총괄 기획 및 운영 디마이너스원

(김동길, 김장한, 황호진, 홍민지, 송준우, 이지우, 김홍균, 이성민, 한예담, 김민서)

캠페인 영상 프로덕션 에피소드

(최은우, 최정환, 윤석원)

타이틀·앨범 디자인 DOTS

(윤성준, 강은혜, 김세훈, 조이슬)

졸업식 운영 슈필렌

(송현우, 이채리, 김은채, 이현수, 이교녕, 공준희, 김은수, 성락훈, 김한빛, 배준원)

사진 및 홀로그램 복원 엠버추얼, 성균관대학교

다큐멘터리 프로덕션 씨네넛츠

(김한솔, 유근욱, 김국태, 김진관, 김진용, 박준용, 이창훈)

 김유영 기자

프로젝트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
링크
유튜브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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