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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4

빈티지 매거진 리딩숍, 도탑다

을지로 인쇄골목에 자리한 아지트같은 북카페
도탑다는 을지로 인쇄골목에 자리한 북카페다. 이 곳에 놀러온 손님은 마음에 드는 빈티지 매거진을 골라 공간에 머무르는 동안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 원한다면 값을 치러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빈티지 굿즈도 눈에 띈다. 만듦새가 빼어난 세컨핸즈 패션 아이템, 일본 경제호황기의 풍요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매거진 포스터 아트워크, 시대를 풍미한 수십년 전 빈티지 테크제품까지. 인현동 인쇄골목 상가건물 특유의 좁고 깊은 공간감을 활용해 내 친구의 비밀스런 아지트같은 분위기를 전한다.

모세혈관처럼 복잡한 을지로 인쇄골목. 당신은 오래된 ‘쁼딍’ 입구 앞에서 “여기가 거기야?”라며 머뭇대는 이와 조우할 것이다.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건물 속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면, 속는 셈치고 꽁무니를 쫓아가보자. 을지로 상가건물 특유의 좁고 기다란 계단을 오르면, 그 끝엔 육중한 철문이 등장한다. 붉은 벽돌을 톡톡 두들겨 다이애건 앨리에 들어가는 해리 포터의 마음으로 문을 여니 그곳에 카페가 있었다.

36년 묵은 종이잡지에 지갑을 터는 이유

 

커피를 주문하고 읽을 거리를 골랐다. 일본산 빈티지 종이잡지가 많았다. 지면을 빈틈없이 꽉 채우는 일본잡지 특유의 레이아웃은 눈을 즐겁게 만든다. 수북히 쌓인 잡지무더기 속에서 ‘뽀빠이 매거진 1987년 7월호 – 뽀빠이의 한국대특집’을 건졌다.

80년대 한국산 디자인 굿즈를 소개하는 특집기사 ‘MADE IN KOREA CATALOG’가 흥미롭다. ‘한류’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의 기록물이다. 미지의 세계였을 한국으로 건너와 88서울올림픽을 앞둔 한국의 의식주를 살핀다니. 36년 전, 일본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가 한국문화를 관찰하는 시선을 짐작할 수 있는 보물이다.

n년 전 A라는 지역에 사는 직업인 B의 안목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 빈티지 매거진 수집의 매력이다. 물론 SNS에 자신의 일관된 취향을 전시하는 데도 유익한 오브제로 기능한다. 아무튼 자기 멋대로 즐기면 그만이겠다. 다시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 번역 앱을 켠다. 종이에 적힌 내용을 수초 내에 번역해 주는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감사하며 동시에 번역된 내용에 전율했다. 그리고 이런 귀한 자료를 수집해 판매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부지런히 핸드드립 커피를 추출하고 있는 도탑다 사장님을 붙잡고 잠시 대화를 나눴다.

층고가 비교적 높고 길쭉한 모양의 건물이 많은 을지로의 풍경이 흥미로워 찾아본 자료. 을지로20길 상가건물의 평면도 일러스트다. 도탑다도 이런 건물 중 하나에 위치한다.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2016)
건물 내부로 들어와야 유휴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을지로 건축물의 특성을 적극 활용한 창작자들이 이곳에서 독특한 로컬씬을 탄생시키고 있다.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2016)

Interview with 도탑다 민준식 대표

민준식 대표ㅣ출처: @dotapda

매거진 리딩숍이란 콘셉트로 북카페를 열었다. 어쩌다 오픈했나

 

처음에는 종이 잡지와 소품을 파는 소품샵을 준비했었다. 그런데 잡지를 손에 쥐고 직접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리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잡지를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은 많다. 하지만 직접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구매하는 공간은 적다. 오시는 분들도 재미있고 나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공간 콘셉트’는 무엇이었나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10대 남자의 방’과 ‘남쪽나라 도시의 칠링 무드’. <중경삼림> 같은 영화 보면 느껴지는 차가운 분위기 있잖나. 동남아 지역 호텔 가면 날씨는 덥고, 시멘트 바닥에 카펫 한 장 깔려있다. 여기에 라탄처럼 시원한 물성을 지닌 가구가 배치된다. 그런데 실제로 꾸미니 구상한 콘셉트대로 완벽히 나오진 않더라. (웃음).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10대 남자의 방’이라는 콘셉트가 흥미롭다. 용돈을 취향 탐색에 재분배하는 시기 아닌가. 사람의 취향이 가장 다채롭게 성장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맞다. 도탑다는 그런 10대 소년의 취향을 담은 공간으로 꾸리려 노력했다. 당연히 그 10대 소년의 취향은 나의 취향이었기도 하다.

 

 

시장 트렌드라거나 타 카페 내부 플랫폼을 참고한 게 아예 없나

 

최대한 참고를 안 하려고 노력했다. 영향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되거든. 내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이 공간에 펼치고 싶었다. 물론 내 머릿속에 있는 그림도 어딘가에서 영향을 받은 거겠지만 말이다. 매거진 리딩샵, 잡지를 읽고 현장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카페도 그래서 하게 된 것 같다. 만약 시장과 트렌드 조사를 했다면 이걸 하진 못했을 것이다. 매우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잡지 놓을 공간에 테이블을 더 놓았겠지.



책이 주인공이군

 

맞다. 도탑다는 카페지만 시그니처는 잡지다.

최대 5팀을 수용할 수 있다. 이후 방문객은 서서 이용하게 된다

 

카페의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걸 안 좋아한다. 손님들이 프라이빗한 기분을 얻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손님들이 서로 등지게 만든다거나 테이블을 적게 뺀 이유다. 사실 도탑다를 만든다고 했을 때 지인들이 크게 반대했다. 이런 콘셉트의 북카페가 없다는 거다. 옛날 잡지 갖다 놓고 커피 마시는 곳이 있냐고.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거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빈티지 잡지들을 모으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디깅하는데 시간도 꽤 많이 소비된다. 결정적으로 중간이윤이 그렇게 크지도 않다. 아마 그래서 다들 안 했던 거 같다.

 

노동 대비 수익이 크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이 일을 정말 좋아하고 관심이 있지 않으면, 운영하기 어려운 공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손님이 잡지에 관해 물어보았을 때, 신나게 설명하는 게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계속하기 힘들지 않겠나? 나는 손님들이 내가 마련해 둔 잡지를 재미있게 볼 때, 너무 신나고 재미있다.

 

주변 의견을 많이 묻는 편이긴 하지만, 난 내가 좋고 확신이 서면 ‘그냥 한다.’. 그리고 재미있으니까. ‘어쨌든 뭐…. 해보지’ 라는 생각이 컸다. ‘망하진 않을까?’ ‘이게 사업적으로 통할까?’라는 생각보다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재밌는 공간이다’는 발상이었다.

콘셉트를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반드시 구현하고 싶었던 인테리어가 있다면

 

매거진 진열대 한복판에 있는 매킨토시와 구형 아이맥이다. 구하는데 공을 많이 들였다. 작동 가능한 맥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 어렵게 가져오면 고장 나기 일쑤였다. 아마 3대 째일 거다. 나의 청소년기는 2000년대다. 당시 테크 제품을 그래서 유독 많이 가져가는 것 같긴 하다.

 

 

주로 어떤 빈티지 매거진을 이곳에 끌어모으고 있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 주로 남성 패션 라이프지가 많다. 70년대 <뽀빠이(popeye)>부터 2000년대 스트리트 패션을 다룬 <쿨(cool)> 이나 <스마트(smart)>, ‘아메카지’ 패션을 다루는 <라이트닝(lightning)>이나 <프리엔이지(Free&Easy)>. 그리고 <앙앙(an·an)> 이나 <논노(non-no)>, <케라(KERA)>나 <에그(egg)> 같은 여성 패션지도 많다. 히데(hide)나 시이나 링고(Sheena Ringo)같은 해외 뮤지션의 잡지. <에반게리온(Evangelion)>, <아키라(AKIRA)>같은 8,90년대 애니 관련 서적도 있다. 사실 특정 카테고리를 모은다기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모으고 진열해 둔다.

당신은 3만여 명의 팔로워를 모은 빈티지 아카이브 계정, @lolliestreet의 주인이기도 하다

 

도탑다는 롤리스트릿의 타협점이라고 해야 할까. 롤리스트릿은 내가 올리고 싶은 비주얼 콘텐츠만 극한으로 추구하는 곳이고 시각적으로도 드센 인상을 준다. 반면 도탑다는 물리적인 공간이기도 하고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것도 내 성향 중 하나다.

 

사람을 특정 성향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래서 내가 MBTI를 안 좋아한다. (웃음) 롤리스트릿도 민준식이고 도탑다도 민준식이다. 인스타그램 아카이브 계정과 을지로 북카페. 둘 다 정말 내 취향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아무튼 여러 가지 면을 즐겨주셨으면 한다.

매거진이 당신의 미적 감각에 어떤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나

 

잘 모르겠다. 미적 감각에 영향을 주었다기 보다는… 음…’무언가’를 알려줬다. 내가 패션업계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나에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 그런 걸 알려준 것 같다.

 

 

당신이 매거진에 매료된 순간이 궁금하다

 

이것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정말 좋아하면 구체적인 이유를 찾기 힘들지 않나? 어느 순간 빈티지 매거진이 너무 예뻐 보였다. 매료됐다. 그리고 소장하고 싶어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고, 어느덧 이제는 그것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평일 대낮부터 참 많은 손님이 드나들고 있다. 기억에 남는 공간경험 평가를 밝혀 주신다면

 

오늘 대화 나누며 ’10대 소년의 방’이라는 콘셉트를 밝혔다. 그런데 말하지도 않은 콘셉트를 맞추는 손님들이 계시다. “여기 되게 10대 소년 방 같다!” “뭔가 가정집 같다”라고 말하는 거다.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그 느낌을 의도한 게 맞으니까.

 

‘분위기 멋지다’ ‘커피 맛있어’같은 칭찬보다 좋았다. 내가 원하는 걸 남들도 느꼈다는 게 정말 기분 좋다. 내가 구상한 것을 내가 굳이 말로 떠들지 않아도, 손님에게 충분히 전달됐다면 성공한 거다. 내가 큐레이팅한 걸 손님이 받아들인 거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만히 묵묵히, 전하고 싶었던 게 전해진다. 진짜는 말이 없다.

마지막 질문이다. 도탑다 손님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

 

인스타그램에서 굿즈 큐레이션 스토리를 풀긴 하지만, 그냥 손님들이 이곳에 놓인 물건을 재밌게 즐기시고 갔으면 좋겠다. 빈티지 굿즈나 종이잡지 모두 주류문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허나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놀러 오고, 재밌게 놀다가는 공간이길 바랄 따름이다.

· 사진 김정년 객원 필자

장소
도탑다
주소
서울 중구 을지로3가 291-42
시간
12:00 - 20:00
(수요일 휴무)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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