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식물을 처참히 죽였다. 안타까운 범죄 현장에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식물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든지 ‘식물킬러’가 될 수 있다. ’Serial Plant Killer’라는 주제로 풀어낸 이번 팝업스토어는 식물을 사랑하지만 매번 그들을 죽여왔던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는다.
누가 이 식물을 죽였을까?
바로 당신이 범인이라는 듯 올려다보는 의사와 서글피 우는 이의 모습이 팝업스토어의 시작을 알린다. 포스터를 따라 내려가니 연쇄식물킬러에게 당해버린 현장을 재현해 둔 공간과 수많은 증거품이 담긴 박스가 놓여 있다. 아마 박스 안에는 ‘몇 달 동안 수분을 섭취한 흔적이 없음’, ‘피해 식물1은 햇빛을 보지 못해 축 늘어져 있음’ 등 수 많은 사인이 담겨 있을지도.
팝업스토어는 식물이 묻힌 범죄 현장, 범죄 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부검실, 수집된 증거물들을 분석 중인 벽면 그리고 회개할 수 있는 고해소까지 크게 4가지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실제로 죽은 식물이 안치된 부검실을 지나 증거품들이 빼곡히 붙여져 있는 벽면을 따라가다 보면 왜 이 식물이 죽었는지, 어떤 환경에서 식물을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FATHER, I HAVE SINNED. I KILLED ANOTHER PLANT.
연쇄적으로 죽임을 당한 식물들을 지나 안쪽 공간으로 들어서면 성스러운 음악과 함께 분위기가 반전된다. 곳곳에 설치된 붉은색 십자가와 금방이라도 누군가 하늘에서 내려와 연설할 것 같은 무대는 ‘지금 너의 잘못을 털어놓으면 용서받을 수 있어’라고 말이라도 거는 듯하다. 만약 식물을 죽인 경험이 있다면, 고해성사를 하는 공간에 들어가 조용히 속삭여 보는 건 어떨까. ‘아버지, 저는 사실 식물을 죽인 적이 있어요’라고.
팝업스토어에서는 내추럴리내추럴과 스컬프터가 기획 단계부터 제작까지 함께한 협업 상품들을 선보인다. 범죄 증거물들을 그래픽으로 나타낸 티셔츠, 고해성사 문구가 적혀있는 숄더백과 장갑, 씨앗이 담긴 증거품 패키지, 흙이 잔뜩 묻은 무릎이 포인트인 조거팬츠 등 Serial Plant Killer 컨셉을 시각적으로 풀이한 이번 컬렉션은 일부 상품(씨앗 패키지, 장갑)을 제외하고 온라인에서도 만나볼 수 있으니 참고하자. 또한, 내추럴리내추럴의 스테디 제품인 ‘스프링스프링(Spring Spring)’과 식물들, 스컬프터 23ss 일부 라인업을 현장에서 구매할 수 있으니 놓치지 말 것!
끝으로, 내추럴리내추럴이 파격적인 컨셉에 도전한 이유가 궁금해 박동제 디렉터와 임다연 디렉터를 만나 팝업스토어 제작 비하인드를 물었다.
Interview with 내추럴리내추럴
박동제, 임다연 디렉터
이번 팝업스토어 컨셉은 평소 내추럴리내추럴이 전개하던 스타일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데, 협업을 진행하시면서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많았겠어요.
박동제(이하, 박): 최대한 내추럴리내추럴의 무드를 가져가되 기존에 저희를 알고 계시는 분들께 좀 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저희가 명명한 ‘연쇄살식마(Serial Plant Killer)’라는 컨셉을 진행하면서 너무 잔인하거나 혹은 너무 폭력적이거나 리얼한 느낌으로 전개하기보다는 식물을 지속적으로 죽여오던 사람들에게 위트있는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었어요.
임다연(이하, 임): 오히려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라서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동제씨가 말씀해 주신 것처럼 스토리를 너무 잔인하게 풀지 않고 소비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끔 다가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협업에서 공간 구성뿐만 아니라 제품 기획, 제작까지 모두 참여하셨다고요?
박: 네 맞아요. 아마 이 부분이 재미 요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의류나 굿즈에도 저희가 투입되어 제작되었기 때문에 내추럴리내추럴과 스컬프터의 감성이 함께 녹아든 모습을 보실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대표적으로 이번에 출시된 협업 상품 ‘크라임 씬(Crime Scene)’ 티셔츠의 식물 그래픽은 실제 저희가 촬영한 이미지예요. 사건 현장에서 플래쉬를 터트려 사진을 찍는 것처럼 강한 느낌을 주기 위해 빛을 이용해 작업을 진행했어요.
임: 그래픽을 자세히 보시면 식물에 내추럴리내추럴 택이 달려있는 걸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박: 같이 출시된 팬츠는 고해성사 문구가 적혀있고 무릎 부분에 흙이 잔뜩 묻어져 있는 형태인데요, 분갈이를 하거나 가드닝을 할 때 흙이 묻어도 티가 잘 나지 않게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제작했어요. 아, 뒷주머니는 삽을 꽂아도 되는 삼각형 형태로 제작했습니다.
부검실에 실제 죽은 식물들을 배치해 두셨던데, 이 식물들은 어디서 온 식물들인가요?
박: 저희가 식물을 소개하고 판매하기도 하지만 간혹 병이 들거나 아픈 친구들이 있어요. 병든 식물들을 그냥 버리기에는 그 자체로도 멋스러워 데리고 있던 친구들이었는데 마침 ‘연쇄살식마’라는 컨셉의 팝업스토어를 진행하게 되어 데리고 있던 식물들을 그대로 연출에 사용했습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찌보면 리사이클링을 한 셈이네요. (웃음)
오프라인 한정으로 판매하고 있는 씨앗 패키지(Evidence Seed Package Clear)의 구성이 궁금해요.
박: 식물을 처음 키워보는 분들도 ‘살식마’가 되지 않게 이번에는 미니 양배추, 케일, 당근, 루꼴라같이 친근하면서도 쉽게 키울 수 있는 씨앗들로 준비했어요. 패키지는 증거물 백에 수집된 것처럼 연출했는데요. 키트 안에는 식물을 키워볼 수 있는 작은 유리 접시와 물에 넣어서 불리면 흙이 되어 바로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지피펠렛’이 동봉되어 있어요. 아마 씨앗에서 새싹이 발아하는 데는 1주에서 2주면 충분해서 살식마였던 분들도 짧은 기간에 생명이 싹트는 재미를 느껴보실 수 있을 거예요.
초록빛 감성에 빠져 식물에 막 뛰어든 분들이 연쇄 살식마가 되지 않게 쉽게 키울 수 있는 인테리어 식물은 없을까요?
임: 자취를 하거나 방 안을 꾸미는 거라면 저는 화분을 걸어두는 ‘행잉 식물’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행잉 식물은 바닥에 놓여 자리를 차지하는 게 아니라 어딘가 매달린 그 자체로도 인테리어가 되는 식물이라 생각해요. 저는 그중에도 ‘뽀빠이 선인장’이라는 식물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뽀빠이의 알통, 팔근육을 닮아 모양이 독특하고 힙하게 생기기도 했지만 선인장 자체가 키우기 쉬운 식물이라 초보자분들도 돌보기가 좋거든요.
박: 행잉식물 중 한 가지 더 추천해 드리자면 ‘반다’라는 식물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이 친구는 따로 화분이 필요 없고 공중에 있는 습도를 머금으며 살아요. ‘반다’에서 자라는 푸른색의 꽃은 한번 피면 보통 한 달에서 두 달 가까이 피어있기 때문에 오브제처럼 걸어두며 키울 수 있는 식물이에요.
마지막으로, 팝업스토어에 방문하시는 분들이 꼭 체험해 주셨으면 하는 공간이 있다면요?
박: 죽은 식물에 대한 증거를 수집한 공간이요. 벽면에 증거품들을 그냥 붙여둔 게 아니라 왜 이 식물이 이렇게 죽었는지 등 나름의 스토리가 담겨 있으니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임: 첫 번째 공간에서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해하고 두 번째 공간으로 넘어와 고해성사를 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영수증 프린터기를 체험하시면 아마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거예요. (웃음)
▼내추럴리내추럴의 브랜드 스토리가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