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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2023-01-06

소설 쓰는 화가의 10번째 전시를 만나다

갤러리현대 박민준 개인전〈X〉

기간 2022.12.21 - 2023.02.05
장소갤러리현대 (서울시 종로구 삼청대로 14)

박민준의 그림 앞에 선 이들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함과 완벽한 구도에 놀라움을 표한다. “예술이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다. 박민준의 10번째 개인전에 국내외 컬렉터의 관심이 몰리는 이유다. 갤러리현대에서 2023년의 새로운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리는 전시로 박민준의 개인전 〈X〉를 12월 21일부터 2023년 2월 5일까지 개최한다. X는 로마자로 숫자 10을 의미하며, 작가의 열 번째 개인전을 기념하고, 추상화된 기호가 내포한 미지의 가능성, 작가의 과거 연작과 새로운 연작이 ‘컬래버레이션’ 하듯 연결되어 박민준만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전 과정을 폭넓게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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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준 개인전 〈X〉 2층 전경 |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X〉전에는 박민준의 회화 및 조각, 드로잉 40여 점을 대거 선보인다. 천재 곡예사인 형 라포와 평범한 동생 라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라포르 서커스 단원들의 별난 사연을 담은 <라포르 서커스(Rapport Circus)>, 미술사학자 알리자린이 600여 년 전 활동한 화가 사피에르의 베일에 싸인 최후의 작품을 추적하는 <두 개의 깃발(Two Flags)>, 두 연작을 포용하는 동시에 정물화와 풍경화의 형식과 조형성을 변주한 〈X〉, 16-18세기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즉흥극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초상화의 장르로 재해석한 <콤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 연작이 전격 공개된다. 

또한 작가가 집필한 두 편의 국문 소설 『라포르 서커스』(2018)와 『두 개의 깃발』(2020), 새로 발간된 『라포르 서커스』의 영문판과 작품 속 캐릭터에 맞춰 작가가 쓴 모놀로그 등을 함께 공개해 박민준 작품 세계의 중심축을 이루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를 다각도로 살핀다. 

박민준 작가
<라포르 서커스>, <두 개의 깃발> |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활동 초기, 작가는 이카루스, 사이렌, 다프네 등 서구 신화 속 인물을 동양인의 모습으로 옮기고, 미술사의 고전이 된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걸작을 재해석한 작품을 발표했다. 고전적 우아함과 초현실적 생경함을 동시에 간직한 그의 독창적 작품은 국내외 미술계에서 주목받으며 두터운 팬층을 확보해 갔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그는 서구 신화를 작품의 테마로 삼는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소설을 쓰고 자신만의 서사 세계를 구축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을 드로잉과 회화, 조각 등의 다양한 매체로 선보이는 것이다. 

〈X〉전의 2층 전시장에는 작가가 발표한 두 소설과 연계된 연작 <라포르 서커스>와 <두 개의 깃발>의 세계가 중첩된다. 라포르 서커스단은 집단 초상화의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고, 숫자 2와 3에 관한 개념을 담아 깃발로 제작된 바 있는 <두 개의 깃발>이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다시 캔버스 작품으로 전환되어 도상화된다. 또한 우스꽝스럽고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탈을 쓴 광대를 주인공으로 한 <곰탈의 귀를 잡고 있는 광대>, <이면공을 들고 있는 광대>, <화났거나 혹은 아니거나>는 인간 삶의 희로애락과 양면성을 초상화 장르로 포착한다.  

박민준, Strange Land, 2021, 린넨에 유채, 73 x 100 cm |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박민준, X002, 2021, 캔버스에 유채, 72.7 x 90.9 cm (F. 84 X 102 X 5(d) cm) |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소설 『두 개의 깃발』에서 빈 캔버스로만 남아 실체를 확인할 수 없던 <신념의 탑>과 <영원의 탑>은 대형 작품으로 ‘현실화’되어 2층 전시장에 등장한다. 보라색으로 칠해진 전시장에 매달린 거대한 두 회화 작품과 그 앞의 계단식 좌대에 놓인 두 조각 작품 <소년(아인)상>은 전시장을 성스러운 제단의 일부처럼 느껴지게 만들며 관람객을 압도한다. 일종의 알레고리화인 두 작품은 소설에서 개념화된 인간과 신의 영역의 차이를 회화의 형식으로 드러낸다. 

<신념의 탑>은 인간의 영역을 암시한다. 여기에서 숫자 2는 삶/죽음, 남자/여자, 음/양, 시작/끝 등 인간 세계의 대칭성을 상징한다. 화면의 모든 요소와 대상이 기념비적 탑을 중심으로 대칭적 구도를 이루며 자리한다. 작가는 인간의 ‘신념’이 현실화된 듯한 탑에 다양한 상징을 세심하게 삽입하여 묘사한다. 거대한 두 손이 두 마리의 호랑이를 컨트롤하고, 지혜의 대리물인 부엉이와 곰의 탈을 쓴 웅크린 인물이 탑의 중간 지대에 있다. 

박민준, X-XX, 2022, 린넨에 유채, 112.5 x 162.2 cm (F. 130.5 X 180.5 X 8.5(d) cm) |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박민준, 소년(아인)상, 2022, 레진, 116.7(h) x 24 x 32 cm (53.7(h) x 24 x 30 cm (Sculpture only)) |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빨간 문과 파란 문, 문 위에 서 있는 의뭉스러운 두 인물, 탑을 감싼 두 무게추, ‘adoremus in aeternum(우리는 숭배할 것이다)’와 ‘ad vitam aeternam(영원한 삶을)’이라는 라틴어 문구가 새겨진 끈을 물고 비행하는 두 마리의 새, 인공 탑의 꼭대기에서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며 두 개의 깃발을 들고 뛰어내리는 인물, 중세 연금술에 등장하는 우로보로스를 은유하는 도마뱀 등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저 멀리, 먹구름 사이로 성스러운 분위기의 빛이 쏟아져 내린다. 

반면, 숫자 3은 삼위일체,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 케르베로스 등 신의 영역을 의미하며, 그 세계는 <영원의 탑>에서 구체화된다. <신념의 탑>과 대구를 이루는 이 작품에는 인공의 탑과 대조되는 신성함이 느껴지는 자연의 오래된 나무, 그 나무 위를 걷는 요정, 봉을 들고 줄타기하는 세 인물과 세 개의 방울, 신의 세계를 관장하는 듯한 거대한 고양이 등 인간을 초월해 신의 영역에 가까워지는 아이콘들이 담겨있다. 

박민준 개인전 〈X〉 1층 전경 |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신작 〈X〉 시리즈는 1층 전시장에 전시된다. 경쾌한 노란색 벽면에 모여 걸린 이 연작은 2021년부터 시작해 현재 12점이 완성되었다. 간결한 제목만큼 초현실적 분위기로 가득한 이 연작은 환상적인 픽션을 기반으로 완성된 여타 시리즈와 달리, 구체적인 서사에 제한되지 않고 즉흥적으로 완성된다. 작가는 떠오른 장면이나 그려보고 싶은 대상을 ‘드로잉’처럼 자유롭게 캔버스에 옮기며 〈X〉 연작을 시작한다. 주제나 작품의 크기, 표현 기법을 규정하지 않고 작가 내면의 감정과 감각적 단상, 의식과 무의식이 자연스럽게 투영된다. 

현재 〈X〉 연작은 전통적인 풍경화나 정물화 양식을 따른다. 뉴욕 센트럴파크, 스코틀랜드의 바닷가, 이탈리아의 정원 등 실제 풍경에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나 색의 패턴, 구체적인 상황을 삽입함으로써 박민준만의 코드를 만들어 낸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몽환적이고 혼종적인 화면은 수수께끼 같은 매력을 지닌다. 채색된 목각 손, 사슴 뼈, 고양이, 나무로 만든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 등의 대상은 퍼즐처럼 개별로 그려지거나 한 화면에 모여 연작의 세계관을 구성한다. 

박민준, 엘카드몬, 2022, 레진, 136.5(h) x 120 x 20(d) cm |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1층 전시장 중앙에 놓인 조각 <엘카드몬>은 소설 『라포르 서커스』와 『두 개의 깃발』에 등장하는 목각인형으로 두 세계를 잇는 캐릭터다.『라포르 서커스』의 예술가 아트만은 ‘이 세상에 아직 순수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겠다’고 마음먹고 인간의 원형과도 같은 순백색의 인형 ‘엘카드몬’을 제작한다. 양팔을 수평으로 곧게 올리고 두 다리는 일자로 편 포즈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인체 비례도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을 연상케 한다. 

관람객은 지하 전시장에서 가상의 연극 무대를 체험하게 된다. 1, 2층과 달리 조명이 어둡게 조성된 전시장에는 <콤메디아 델라르테>라는 타이틀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관람객은 전시장 입구의 선반에 놓인 리플렛을 손에 쥐고, 펜스가 쳐진 안쪽 공간으로 홀린 듯 빨려 들어간다. 어디에선가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전시장 중앙에는 개, 올빼미, 토끼, 고양이, 당나귀, 곰, 원숭이, 다람쥐, 여우 등 9마리 동물의 털 가면을 쓴 듯한 인물 초상화가 반원을 그리며 공중에 매달려 있다. 

박민준 개인전 〈X〉 지하층 전경 |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마치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받고 이제 막 무대에 첫인사를 올리러 온 배우처럼 말이다. 페페나파, 판탈로네, 카피타노, 브리겔라, 풀치넬라, 도토레, 스카라무슈, 콜롬비나, 알레치노 등 금색 명판에 새겨진 이름을 통해 그들이 누구인지 확인하게 된다. 박민준은 서커스와 광대 등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으며 이들의 예술, 문화사적 기원을 추적했고, 그 과정에서 ‘콤메디아 델라르테’를 새로운 연작의 테마로 삼게 된다. 

콤메디아 델라르테는 16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8세기까지 전 유럽에 걸쳐 유행한 즉흥 가면극이다. 작가는 콤메디아 델라르테의 캐릭터의 정형화된 포즈와 복식, 캐릭터 등을 참조하면서도, 이들을 인간의 모습이 아닌 동물로 생경하게 변주한다. 나아가 마치 그들의 입에서 나올 법한 대사를 만들어 거짓말, 수와 돈, 돈을 향한 욕망, 정의와 살인, 영생과 죽음, 기억과 행복 혹은 불행, 사랑, 감각과 마음의 소리 등 과거뿐 아니라 동시대 삶에서 유의미한 가치와 덕목에 관한 주제를 강조한다. 이 연작에서 작가는 즉흥극인 콤메디아 델아르떼의 형식을 참조하고, 인물의 외양에 관한 간결한 묘사와 그 캐릭터에 시대의 미덕과 주제를 담은 대사를 매칭함으로써, 이미지와 텍스트가 통합된 캐릭터 만들기 작업을 시도한다. 

박민준, 알레치노, 2022, 캔버스에 유채, 72.7 x 60.6cm (F. 84.3 x 72 x 5(d) cm) |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박민준, 카피타노, 2022, 캔버스에 유채, 72.7 x 60.6cm (F. 84.3 x 72 x 5(d) cm) |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X〉는 인간 삶의 내밀한 풍경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박민준의 회화와 조각, 드로잉 등 40여 점과 작가가 집필한 소설과 대사를 통해, 서로 다른 연작이 중첩되며 확장되는 그의 광범위한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heyPOP 편집부

자료 제공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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