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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 2023-01-19

11명의 큐레이터가 함께 꾸려가는 공간

기획자 공동 운영 플랫폼 ‘WESS’

국내 미술 시장 호황과 더불어 한국 미술에 대한 국제적 관심 역시 높아지고 있다. 미술관 및 갤러리 역시 조류를 잘 타 현재의 흐름을 지속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모색하는 요즘이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대중들의 이목도 작가 그리고 전시, 시장에 쏠리고 있는 추세다. 분명 이러한 방향과 흐름은 긍정적일 터. 하지만 현시점에 미술 시장 분석, 작가 발굴과 더불어 도모해야 할 이해가 있지는 않을까? 미술관과 갤러리를 구성하는 필수 인력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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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S | 사진: Choi, Yoonsuk

‘보살핀다’는 뜻의 라틴어 큐라(Cura)에서 유래한 큐레이터는 미술관 전반에 대한 관리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미술관, 갤러리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쓰여있다. 이들은 단지 작품의 수집과 보존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작품이 관람자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연구, 기획, 조사, 설치, 관리, 기타 등등 다각도의 업무를 수행한다. 

 

미술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 때문에 그럴까? 큐레이터는 우아한 백조 같지만 실은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직업이다. 대부분이 석사 이상의 고학력자임에도 다른 직군보다 월급을 많이 받지 못한다. 무엇보다 이들이 주장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업무 전반을 잘 기획하고자 해도 (한정된 기금, 기관의 뜻과 불일치, 다양한 소통 오류 등) 맞닥뜨리는 한계나 저지하는 대상이 늘 발생한다는 데 있다. 

 

제약과 한계를 덜어내고, 큐레이터의 사유와 관점에 더 집중한 곳은 없을까? 그렇게 WESS가 눈에 들어왔다. 11명의 큐레이터들이 모여 자신들의 사유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기획자 공동 운영 플랫폼’이다. 공동 운영자들이 함께 꾸리는 물리적, 정신적 공간의 이야기를 WESS의 공동 조직자인 송고은, 장혜정 큐레이터에게 들어 봤다.

Interview with WESS

공동 조직자 송고은, 장혜정
WESS 홈페이지 ©WESS

— WESS를 창립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WESS는 기획자 공동 운영 공간이자 프로젝트입니다. 현장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큐레이터들의 전시 및 프로젝트가 하나의 공간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남으로써 관심사와 태도를 발견할 수 있는 ‘플랫폼’을 시도해 보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동시대 미술 현장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흥미로운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큐레이터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과 태도에 집중하는 플랫폼은 부재한 실정입니다. 큐레이터의 솔직하고도 의미 있는 피드백 교환 부족 등에 대한 아쉬움으로 WESS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WESS는 단일한 공동 주제 의식이나 미션을 함께 이야기하기보다는, 각각의 프로젝트에 대한 솔직하고 깊이 있는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와 기회를 꾸준히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나아가 또 다른 동료 기획자, 예술가, 비평가, 연구자들과 대화를 확장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기획자 공동 운영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 해에 많은 전시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또 목격하게 되지만 오롯이 기획자 개인의 관심사와 타임라인으로 진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불완전한 시도라도 다른 개입 없이 큐레이터 개인의 태도와 관심사가 투영된 프로젝트를 하고 싶고, 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아쉬움과 바람이 WESS의 시작이었고, 더 나아가 ‘함께 기획하는 동료들끼리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장이 되면 좋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이어지게 되었죠.

one a a time (curated by Jeeyoung Maeng), courtesy of the artists and curator ©WESS

— WESS는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합니다.

WESS는 공동 조직자)(Co-organizer)인 송고은, 장혜정과 공동 운영자(Co-curator)의 구조를 가지고 운영됩니다. 공동 운영자에는 송고은과 장혜정도 포함되어, 현재 총 11명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2019년~2021년에는 김정현, 김성우, 김선옥, 권혁규, 맹지영, 박수지, 송고은, 신지현, 이성휘, 장혜정, 최희승이 함께 하였고, 2021년부터는 김성우, 권혁규, 노해나, 맹지영, 박수지, 송고은, 신지현, 윤율리, 이규식, 이성휘, 장혜정이 공동 운영 중입니다. 

매월 정해진 금액의 월세와 관리비를 공동 부담하고, 정해진 일정에 따라 11명 각자의 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합니다. 이때 콘텐츠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구현을 위해 들어가는 모든 비용과 인력, 과정에 대한 책임과 권한은 개별적으로 갖습니다.

2020 WESS '전시후도록 전경' ©WESS | 사진: Choi, Yoonsuk
‘전시후토크’는 전시 공간에서는 사라졌지만 출판물로 남겨진 전시를 다시 소환하는 프로그램이다. '전시후도록'의 연계로 진행된다. 작가를 통해 전시에 대해 다시 듣고 출판물을 통해 새롭게 이해하며 되짚어 보는 자리다. 2022년 '전시후토크' 프로그램 장면 ©WESS | 사진: Lee Euirock
2022년 '전시후토크' 프로그램 장면 ©WESS | 사진: Lee Euirock

— 공동 운영자들은 어떻게 합류하게 된 것인지.

공동 운영자분들은 창립의 과정을 함께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초기의 아이디어와 큰 구조는 공동 조직자인 송고은, 장혜정이 제시했지만, 결국 ‘공동 운영’을 위해서는 서로의 이해와 희생이 필요했죠. 아이디어를 다듬은 후 공동 운영자를 개별적으로 만나서 설명하고 제안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멤버를 구성할 때는 기관의 소속 여부나 나이, 관심사 등을 최대한 넓혀보려고 했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것이고 재정적 구조 역시 취약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WESS의 방향성에 대한 동의와 함께 동료로서 존중과 신뢰가 중요한 조건이 됐습니다. 

 

 

— 총 11명이 공동 운영자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운영자 수가 많은데, 장단점이 있을까요? 

저희 2명이 초기의 아이디어와 틀을 제안했지만, WESS는 처음부터 11명이었습니다. 11명이라는 숫자는 어떠한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비용과 연결되어 있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에서 기인했습니다. 공동 운영자들이 없었다면 절대 시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장단점을 꼽자면,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일 수 있는 ‘11명의 인원이 함께한다는 것’ 같은데요. 공간 운영의 부담과 어려움을 함께 짊어지지만, 또 각각의 기획자들의 생각과 관점이 있다 보니 WESS의 공동 활동이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보통 ‘운영자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지 않을까’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서로를 배려하기 때문에 WESS 내에 더 자유로운 상상과 활동에 제약이 있지 않나’라는 고민이 더 큽니다.

WESS 2019-2021 프로그램 ©WESS

— 프로젝트와 더불어 프로그램도 선보이고 있어요. 프로젝트와 프로그램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프로젝트는 WESS의 공동 운영자 11인이 개별적으로 기획하는 전시, 워크숍 등을 칭합니다. 프로그램은 WESS가 공동으로 기획한 것으로 연속성을 염두에 두거나 WESS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행사, 프로그램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 3회 진행된 ‘전시후도록’이 프로그램에 속합니다. 또한 지난해 프리즈 서울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진행한 ‘2022 프리즈 필름’이 있는데요. 이는 미국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큐레토리얼 그룹 GYOPO교포와 공동 기획하여, 공동 프로젝트라고 불렀습니다.

 

 

— 특정 큐레이터가 전시를 기획할 때, 또 다른 큐레이터들도 기획에 참여하는지.

WESS 내의 공동 운영자들이 서로의 기획에 참여한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 멤버 이외에 다른 기획자와의 협업이라면 열려있습니다. 개별 프로젝트일 경우는 해당 큐레이터가 결정한 뒤 초대할 수 있고, WESS 공동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의 경우에도 다른 큐레이터 또는 콜렉티브 그룹과의 협업도 항상 열려있습니다.

2022 WESS '전시후도록' 전경 ©WESS | 사진: Lee Euirock
2022 WESS '전시후도록' 전경 ©WESS | 사진: Lee Euirock
2022 WESS '전시후도록' 전경 ©WESS | 사진: Lee Euirock

— 2022년에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나요?

전시는 아니지만 ‘2022 WESS 전시후도록’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전시 이후 출간되는 도록을 함께 나누며 지난 전시를 다시 호출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자리를 공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어느덧 3회차를 맞이했는데, 변함없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마다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 전시는 휘발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휘발되는 전시의 특성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송고은)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전시는 휘발되고 임시적인 상태라는 점에서 그 가치와 의미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전시를 기획한다는 건 매우 위험하고 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만, 전시의 도록이나 전시를 기록하기 위해 촬영한 사진이 사건을 기억하는 장치 정도로 활용됩니다. 그래서 전시 출판물에는 최대한 전시의 많은 면모를 담으려고 노력하는 것이고요. 

장혜정) 전시의 휘발성은 숙명 같은 것입니다. 그 숙명이 의미의 무게를 더하기도 하고,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같아요. 저는 전시가 관람자 개인의 공감각적 경험, 일종의 깨우침의 순간을 통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순간이 가능한 길에 대해 고민하는 편입니다. 어쩌면 큐레이터와 작가가 준비 과정에서 함께 나눈 대화와 경험들이 토양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2022 WESS '전시후도록' 전경 ©WESS | 사진: Lee Euirock
2022 WESS '전시후도록' 전경 ©WESS | 사진: Lee Euirock

— WESS의 프로젝트는 약 2주 혹은 짧게는 하루 동안 이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점점 짧아지는 전시 주기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기도 하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WESS는 기획자마다 약 6주 정도의 기간을 온전히 갖게 되는데요. WESS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나 프로그램은 ‘전시’라는 고정된 형태는 아니기에 각 큐레이터의 기획 의도에 따라 기간과 형태가 고유한 방식으로 결정됩니다. 길게는 5주 이상 진행되는 프로젝트도 있고, 일주일 혹은 무관객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짧아지는 전시 주기는 사실 기금과 상대적으로 부족한 공간 수 사이에서 만들어진 함수일 수 있습니다. 저희도 관객의 입장에서 조금은 더 긴 호흡으로 전시를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 WESS의 공간은 성북구에 위치해 있는데, 이유는 무엇인가요? 

송고은) 서울 시내 몇몇 곳을 돌아봤지만 아쉽게 마땅한 공간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혜정님이 우연히 동네를 지나다가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죠. 그곳이 지금의 WESS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큰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2년 '전시후토크' 프로그램 장면 ©WESS | 사진: Lee Euirock
2022년 '전시후토크' 프로그램 장면 ©WESS | 사진: Lee Euirock

— 지속 가능한 큐레토리얼을 위해서는 무엇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송고은) 호기심을 전제조건이라고 했을 때, 나머지는 ‘건강과 동료’라는 생각이 드네요. 

장혜정) 저도 동료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로를 응원하고 비판적인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요. 그리고 스스로도, 외부에서도 큐레이터를 ‘연구자이자 창작자’로 인식하는 태도가 있어야 큐레토리얼 실천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WESS가 동시대 미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저희도 매우 궁금합니다! WESS는 어떤 특정한 커뮤니티나 대의를 염두에 두고 있다기보다는 플랫폼에 속한 공동 운영자 개인의 요구와 실천이 지속할 수 있는 것을 꿈꿉니다. 기획자 개인의 요구와 실천이 지속되다 보면 WESS도 동시대 미술에 조금이나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요?

 

 

— WESS의 계획과 포부 및 방향성에 대해 들려주세요. 

WESS는 물리적 공간보다는 유연한 형태의 ‘플랫폼’을 지향합니다. 형태와 구조에 한계를 두지 않고, 미술계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창조적 생산물에 대한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비평과 감상이 이어지는 기회를 계속해서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하도경 에디터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WESS, 송고은, 장혜정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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