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을 빈다’라는 의미의 이번 전시에서 두 작가는 퐁피두센터-메츠의 그랑 네프, 포럼 및 옥상 갤러리를 다양한 인공 환경으로 과감하게 탈바꿈시킬 예정인데, 퐁피두센터 메츠가 거대한 천장 그물로 이루어진 공간인 그랑 네프 갤러리를 작가에게 내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덴마크 출신 미카엘 엘름그린(Michael Elmgreen)과 노르웨이 출신 잉거 드락셋(Ingar Dragset)은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이들은 밀라노 폰다치오네 프라다(2022), 댈러스 내셔널조각센터(2019-20),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2018-19), 텔아비브 미술관(2016), 베이징 UCCA(2016), 서울 삼성미술관 플라토(2015) 등 전세계 저명한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2009년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 북유럽관과 덴마크관의 동시 대표 작가였고, 뉴욕 록펠러센터 앞에 세워진 거대한 수영장인 ‘Van Gogh’s Ear'(2016), 텍사스 사막 한가운데에 프라다 매장을 실물 크기로 재현한 ‘Prada Marfa'(2005), 땅을 뚫고 달리는 자동차와 트레일러를 담은 ‘Short Cut'(2003) 등의 공공조각 작품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1995년부터 협업해온 엘름그린과 드락셋은 미술관이라는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공공 및 사적 공간을 위한 임시 건축물과 실물 크기 모형을 고안하여 전시 형식을 재정의했다. 이 듀오 작가는 작품을 중립적인 공간에서 정적인 오브제들의 집합으로 간주하기보다는, 각각의 개별 작품을 더 큰 이야기의 일부로 포함시킨다. 따라서 작품은 다른 맥락에서 전시되는 상황에 따라 새로운 생명을 부여 받는다. 퐁피두센터-메츠에서 이들은 기존의 조각 작품들과 최근작을 장소별 별자리에 모아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한다. 사실적인 설치 작품은 우리 대부분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일반적인 도시 환경을 재현한다.
관람객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지만 미술관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환경은 대부분 황량해 보이지만 간혹 실물 크기의 실리콘 피규어가 다양한 역할을 한다. 관람객은 이 공간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단서를 조합하고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보도록 초대받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은 탐정 혹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 혹은 침입자의 역할을 맡아 직접 협엽하는 공연자가 된다. 오프닝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전시 기간 내내 랜덤의 시간에 라이브 퍼포먼스가 펼쳐질 예정이다. 아티스트 특유의 파토스와 전복적인 유머로 가득한 전시 <본 샹스>는 일상이 재구성되어 비범해지는, 친숙하면서도 불안한 세계가 펼쳐진다.
엘름그린&드락셋은 전시의 시작부터 외부를 내부로, 내부를 외부로 뒤집어 우리의 시공간적 좌표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들은 본 전시를 위해 반 시게루(Ban Shigeru)와 장 드 가스틴(Jean de Gastines)의 건축에 대한 일반적인 경험을 재구성하는 예상치 못한 구조물인 실물 크기의 아파트 건물 〈The One & the Many〉를 건설할 예정이다. 두 작가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모든 공간에는 숨겨진 분신이 있으며, 이를 변형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The One & the Many〉에서는 베를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독의 사회주택 블록, 이른바 ‘plattenbau(플라텐바우)’를 재현했다. 모든 창문이 블라인드나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관람객은 외부에서만 아파트 내부를 볼 수 있다.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건물 밖에 주차된 낡은 메르세데스 승용차 트렁크에는 두 남자가 포옹하고 있는 사실적인 형상의 〈The Outsiders〉가 미술품 취급자의 것들로 추정되는 패킹된 작품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무대 뒤에서 진행되며 사회적 스펙터클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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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와 사무실로 구현된 설치 작품은 모두 우리 시대의
금기로 여겨지는 인적 자원을 저장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간, 반복, 우연, 퍼즐, 역설과 같은 다른 측면도 이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죠.
우리 작업의 출발점은 지속적인 대화이며, 그 대화는 일상 생활의 광기를 상당히 많이 반영합니다.
엘름그린&드락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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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네프에서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더욱 불분명해진다. 엘름그린&드락셋은 플레이어가 미로 같은 공간을 탐색해야 하는 컴퓨터 게임과 같은 레이아웃을 구상하여 다음 턴이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알 수 없게 한다. 관람객은 전시장 곳곳을 이동하면서 극장 강당, 공중 화장실, 실험실, 회의실, 영안실, CCTV 감시실, 황량한 사무실 풍경 등 다양한 생활 속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악몽을 꾸듯 각각의 일상적인 장면들은 더 이상 일반적인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일관성 없는 논리를 따른다. 너무나 익숙한 이 시나리오는 불편함과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하고, 토끼 분장을 한 채 회의실 테이블 위에서 잠을 자는 청년, 미끄러져 한 손으로 줄에 매달려 있는 줄타기꾼과 같은 특이한 캐릭터를 만나면 그 기괴함은 더욱 증폭된다.
엘름그린과 드래그셋은 전시를 통해 관람객이 다양한 경험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완전한 참여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회의실에 있는 두 개의 문은 서로 연결된 긴 보안 체인으로 잠겨 있어 그 기능을 완전히 쓸모없는 무력한 구조물로 만들어 버린다. 〈Marriage〉에서는 욕실에서 손을 씻으려고 해도 세면대 파이프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는다. 거울처럼 광택이 나는 표면에는 숫자가 없는 〈Wheel of Fortune〉은 결코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 많은 방은 공동체 생활의 상실로 인해 패배와 배제가 이 공간에 내장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운을 시험해 볼 수도 있고, 지름길을 택할 수도 있지만, 엘름그린&드락셋의 미로에서 게임은 애초에 근본적으로 이길 수 없고 구체적인 목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컴퓨터 게임과 달리 여기에서는 승리가 아니라 규칙을 재정의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처럼 느껴진다.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우연의 게임에 굴복하지 않고 변화의 게임을 만드는 방법을 모색한다.
엘름그린&드락셋은 <본 샹스>를 통해 익숙한 것을 과장하고, 역설을 이용하고, 목적 없는 것을 극한으로 밀어붙이고, 무엇보다도 부조리함을 확대함으로써 미술관의 공간 구조를 무력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 공간이 제도적이든 일상적이든 기계적인 통제 시스템에 의해 미리 결정된 승패의 개인주의적 게임의 한판승부가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들 듀오는 이러한 구조는 컴퓨터 게임과 달리 언제나 변화하거나 상호 교환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구조를 받아들이는 한, 권력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본 샹스>는 희망이 우연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글 김정아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퐁피두센터-메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