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좋은 트렌드 소식을 엄선하여 받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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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9

세상을 비틀어 바라보는 시선, 버드핏 ②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확장되는 작업 세계
버드핏, 김승환의 드로잉을 보고 있자면 실없는 웃음이 샌다. 첫눈에 발견하기 힘든 흥미로운 장면들이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인데, 가령 수많은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는 장면 모퉁이에 담벼락 너머를 몰래 살피다 들킨 한 아이의 모습이 담겨 있는 식이다. 캐릭터가 짓는 의기소침한 표정도 한몫한다. 사람도, 새도, 의자도, 하물며 바닥까지 늘 침울한 눈이다. 작가가 일상의 장면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사는 세상을 비틀어 바라보는 시선, 버드핏 ① 에서 이어집니다.
Greetings Island | 제공: Bird Pit

ㅡ 요즘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프로젝트’를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기도 하지만 요즘은 공간이나 브랜드, 갤러리 등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아요. 홀로 작업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분명 즐겁지만 누군가와 협업하는 데서 오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더라고요. 제가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면서도 함께 하는 이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조율하고 있죠.

또 프로젝트에서 완전히 벗어난 작업에도 비중을 두려 합니다. 써본 적 없는 매체를 써보고, 익숙하지 않은 크기의 바탕에 그림을 그려 보기도 해요. 쌓아온 경험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실험적인 작업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적절한 때가 오면 결과물을 공개할 수도 있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전시 〈Greetings〉 전경 | 제공: Bird Pit

ㅡ 참여한 전시 중 기억에 남는 전시를 꼽는다면.

작년 대만의 ‘와일드 플라워 북스토어(WildFlowerBookstore)’에서 연 개인전 〈Greetings〉을 꼽을게요. 코로나19 유행으로 불가피하게 작업만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운송이 수월한 작업 위주로 전시를 기획했고, 가볍고 작은 크기의 미니 프레임 작업을 새롭게 준비했죠. 작업을 보낸 후 전시 디스플레이부터 홍보, 굿즈 제작과 같은 부분들을 전부 와일드 플라워 측에 맡겼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전 과정을 담당하지 않고 타인의 힘을 빌린 경험이었는데요. 저라면 하지 않았을, 또 제가 예상하지 못한 결괏값이 도출되어 흥미롭더라고요. 제가 갈 수 있는 방향이 A라면 B나 C처럼 다른 방향이 생긴 거예요. 어떤 파트너랑 함께 하고 얼마간을 분담하는지 협업의 과정 자체가 제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도 있겠더라고요.

〈Moving Dots, Speaking About Dots〉 | 제공: Bird Pit

ㅡ 그런 의미에서 리소 책 〈Moving Dots, Speaking About Dots〉도 짚어봐야겠어요.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출간된 책이죠?

네덜란드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인쇄소인 ‘크누스트 프레스(Knust Press)’, 서울 기반의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리소 전문 인쇄소 ‘코우너스(Corners)’와 함께 한 프로젝트예요. 두 스튜디오가 서로에게 로컬 작가를 추천했고, 작가로는 저와 그래픽 아티스트 로히어 아렌스(Rogier Arents)가 참여했습니다. 이미지나 프린팅의 기본 단위가 되는 점(Dot)이 프로젝트의 주제였어요. 참여 작가는 그 단위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야 했고요. 저는 스토리텔링에 기반한 이미지를 작업했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를 점으로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식으로요. 로히어 아렌스는 달이 움직이는 모습과 경로를 소재로 인쇄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실험을 한 것 같아요.

Moving Dots ⓒBird Pit
〈Moving Dots, Speaking About Dots〉 | 제공: Bird Pit

ㅡ 독특하게 상단에는 작가님 작업이, 하단에는 로히어 아렌스의 작업이 배치되어 있어요.

크누스트 프레스에서 기획한 부분이에요. 이런 면에서 〈Moving Dots, Speaking About Dots〉가 여러 사람이 모여 각자가 잘 다루는 부분을 담당한 협업이라고 느껴요. 책 표지와 내지 디자인부터 제본 방식 등 오롯이 홀로 결정했던 경험에 비해 해당 프로젝트에서 저는 이미지만 제공했을 뿐이에요. 출판된 책을 받았을 때는 마치 선물처럼 느껴졌어요. 이런 방식으로도 내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구나! 아마 올해 크누스트 프레스와 함께 책에 있는 이미지 중 한 가지를 A2 포스터로 제작해 유럽권 북페어에 출품할 것 같아요.

〈I love it and I hate it〉 ⓒBird Pit

ㅡ 손바닥보다 작은 책을 보고 그 귀여움에 환호했어요. 〈I love it and I hate it〉은 어떤 책인가요?

책 출간을 염두에 둔 작업은 아니었어요. 2018년 반려동물 용품 브랜드 하울팟(Howlpot)과의 협업 전시를 위해 준비한 신작이었는데요. 반려동물과 사람의 관계를 비틀어보고자 했어요. “강아지가 보호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보호자는 강아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만 하는 걸까?” 같은 물음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모든 강아지가 보호자에게 충성심을 가지고 있을 거라 여겨지지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도 속으로는 “아이고, 재미없다” 할 수도 있잖아요.(웃음)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처럼 어떤 대상을 오롯이 사랑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에요. 정말 아끼는 대상이 간혹 번거로운 존재로 느껴질 수도 있고요. 강아지와 보호자의 관계를 지질하게 그려낸 면이 있어서 책을 보는 이들도 비슷한 느낌을 풍겼으면 했어요. 작은 책에 고개를 푹 박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게 연출될 것 같아 손바닥만한 원화 사이즈 그대로 책을 펴냈죠. 아무래도 첫 국외 북페어 참가를 준비하던 시기여서 가지고 다니기에 용이하도록 준비한 부분도 있고요.

전시 〈I used to be your neighbor ♡〉 전경 | 제공: Bird Pit
제공: Bird Pit

ㅡ 손바느질로 작업한 인형들도 인상적이었어요. 인형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평면인 드로잉이 입체가 되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로 만들고 싶었고, 마침 가지고 있던 부직포가 눈에 들어와 펠트 작업을 시작했죠. 제가 떠올리는 이미지를 입체화하는 것도 드로잉의 또 다른 방식일 수 있잖아요.

〈California Dreams〉 ⓒBird Pit
작업 ‘California Dream’을 선보인 전시 〈California Dreams〉 전경 | 제공: Bird Pit

ㅡ 〈California Dreams〉는 책과 애니메이션, 두 가지 매체로 제작했어요. 어떤 이야기를 담은 작업인가요?

제 기억을 다루고 있어요. 사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가장 개인적인 작업이기도 해요. 미국에서 유년 시절을 지내고 한국에 온 이후로 줄곧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과연 내 고향은 어디인가. 이 물음에 대해 작업적으로 들여다볼 생각을 않고 있다가 작년에 미국으로 가 제가 살았던 곳, 막연하게 기억하고 있던 곳들을 찾아다닌 시간이 계기가 되었어요. 기억 속 장소는 전혀 다른 모습이고, 그 상실을 마주하니 헛헛하고 텅 빈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명명할 수 없는 감정을 그리기 시작했고, 책과 애니메이션이라는 형태로 완결 시켰죠. 작업 과정 자체가 제게는 ‘리추얼’처럼 느껴져 의미 있는 작업이에요.

입춘을 맞아 제작한 네이버 로고 | 제공: Bird Pit

ㅡ 어느 날, 네이버 메인 페이지에 접속했더니 좌측 상단에서 심통 난 표정의 나무가 움직이더라고요. 알고 보니 입춘을 맞아 작가님이 제작한 로고였어요.

처음 선보인 디지털 작업이에요. 커다란 캔버스에 비해 PC나 모바일 화면은 작은 디지털 영역이잖아요. 확실한 제약이 주어지니 흥미로웠어요. 도전하는 김에 액션도 넣어보자 싶었죠. 심술궂은 겨울나무와 발랄한 새싹이 대비를 이루고, 동물들은 봄을 반기는 장면이에요. 처음으로 아이패드를 사용해 봤는데 편하더라고요. 실제 도구를 쥐고 그리던 드로잉 작업과 이질감이 느껴지지도 않았어요. 손으로 스케치한 이미지를 아이패드에 옮겨 작업한 터라 기존 작업과 같다고 봐도 무방해요. 결국 종이에서 시작했으니까요.

제공: Bird Pit

ㅡ 스스로의 작업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닿기를 바라나요?

손에 잡히는 무엇이어야 해요. 화이트 큐브(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전시되어 특유의 아우라를 풍기는 예술도 관심 있지만, 제 작업은 보다 사람들이 쉽게 손에 쥘 수 있기를 바라요. 북페어에 참가하며 체득한 감각일 수도 있는데요. 애써 만든 결과물이 사람들과 접점을 가질 때 기쁘더라고요. 소장이나 판매가 될 수도 있고 그저 재미있게 관람하는 것일 수도 있죠. 최소한 누군가 “어? 이거 갖고 싶다”라는 마음이 든다면 제가 의도한 바가 잘 작용한 거겠죠.(웃음)

ㅡ 예정된 작업에 대해 이야기 들려준다면.

미니 프레임 작업을 발전시켜 보려 해요. 국외 전시에만 출품했던 터라 아직 국내에서 선보인 적 없거든요. 아울러 미니 프레임 작업과 같은 맥락에서 그림과 오브제 사이의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그림으로 느끼면 벽에 걸고, 오브제로 느끼면 화분 옆에 두고.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아서 오히려 손쉽게 쥘 수 있는, 정체가 모호한 것들을 만들 예정이에요.

김가인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Bird P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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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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