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7

동서양 조각 거장의 만남

알렉산더 칼더 그리고 이우환
모빌의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와 일본의 현대미술 운동 모노하(もの派)의 선구자 이우환의 개인전이 오는 5월 28일까지 국제갤러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두 작가의 전시는 비록 각각 열리는 개인전 형식이나 작품과 전시 공간이 상호 관계를 형성하며 영향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지닌다. 아울러 알렉산더 칼더는 9년 만에, 이우환은 12년 만에 국내 개인전을 갖는다는 점에서도 두 작가의 전시는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왼쪽) 이우환 작가 프로필 이미지, 사진: Claire Dorn, Courtesy of Studio Lee Ufan,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오른쪽) Calder with 〈Armada〉(1946), Roxbury studio, 1947. © 2023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사진: Herbert Matter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2관 1층과 3관에서 열리는 알렉산더 칼더의 개인전 <CALDER>에서는 그의 모빌mobile 작품과 과슈 작업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작품을 선별하여 소개한다. 이우환의 개인전 <Lee Ufan>은 1관 2개 공간과 2관 2층, 그리고 정원에서 열린다. 198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조각 6점과 드로잉 4점을 만날 수 있다.

국제갤러리 2관(K2) 알렉산더 칼더 개인전 《CALDER》 설치전경 © 2023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2관(K2) 2층 이우환 개인전 《Lee Ufan》 설치전경 ⓒUfan Le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3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한 가지 흥미로운 건 두 작가의 전시가 국제갤러리 전관에서 교차하며 펼쳐진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2관은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살았던 두 작가가 조우하는 공간으로 눈길을 끈다. 1층에는 ‘Black Squids'(1898-1976), ‘The Signed Balloon'(1976) 등 칼더의 화려한 색상의 과슈 작품이 자리하는 반면, 2층에는 ‘Relatum – The Sound Cylinder'(1996/2023), ‘Relatum – Seem'(2009) 등 이우환 작가의 대표 연작 <관계항Relatum>의 연장선에 자리한 작품이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처럼 동서양 현대 조각을 대표하는 두 거장의 작품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은 두 개인전을 감상하는 이번 전시의 관람 포인트인 셈이다.

움직이는 추상 조각 ‘모빌’

국제갤러리 3관(K3) 알렉산더 칼더 개인전 《CALDER》 설치전경 © 2023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오늘날 알렉산더 칼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모빌’은 움직이는 추상 조각이다. 철사를 구부리고 일그러뜨려 입체적으로 만든 칼더의 추상 조각에 모빌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다름 아닌 전위 예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었다. 프랑스어로 ‘움직임’ 그리고 ‘움직이게 하는’이라는 뜻을 지닌 모빌로 명명된 칼더의 조각은 초기에는 모터를 통해 움직임을 구현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작가는 인위적인 힘으로 움직임을 만드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이후 그는 공기의 흐름, 빛, 습도, 그리고 인간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그의 조각이 움직일 수 있도록 작품을 발전시켜 왔다. 자연 현상에 반응하고, 공간의 환경에 순응하는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은 바로 이렇게 탄생했다.

국제갤러리 3관(K3) 알렉산더 칼더 개인전 《CALDER》 설치전경 © 2023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3관에서는 공기의 흐름과 관객의 움직임에 반응해 미세하게 움직이는 모빌을 감상할 수 있다. 높은 층고를 갖춘 3관은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이 지닌 추상적 형태와 생동감 있는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별도의 공간 디자인을 적용했다. 알렉산더 칼더 재단과의 협업으로 완성된 전시 공간에서 관객은 그의 조각을 보다 입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다. 천장에 매달린 대형 조각 작품과 바닥을 고정한 스탠딩 모빌 작품은 간혹 찰랑거리며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그 소리가 기대만큼 마냥 상냥한 건 아니다. 와이어에 매달린 금속판이 서로 스치거나 부딪혀 나는 소리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모형을 구사한 그의 조형 감각과 빨간색, 흰색, 검은색, 노란색 등 원색의 조화로운 조합이 관객에게 환상(illusion)을 심어준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국제갤러리 3관(K3) 알렉산더 칼더 개인전 《CALDER》 설치전경 © 2023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3관(K3) 알렉산더 칼더 개인전 《CALDER》 설치전경 © 2023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한편 그의 모빌 작품은 구아바, 런던, 그랜드 피아노 등 독특한 작품 제목으로도 눈길을 끈다. 작품의 모양이 그 제목과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특별한 관계가 없다는 것이 갤러리의 설명이다. 당시 작업을 하던 작가가 떠오르는 걸 직관적으로 붙였을 뿐. 대상을 묘사하거나 또는 어떤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3관 전시장 한편에 자리한 브론즈 조각 군도 인상 깊다. 대형 콘크리트 조각을 위해 제작한 일종의 모형인데 아쉽게도 실제로 제작되진 못했다고. 하지만 높이 약 30m에 이르는 작품을 상상하며 인간과 공간 그리고 조각 작품의 관계를 탐구했던 작가의 고민과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흥미롭다.

국제갤러리 2관(K2) 알렉산더 칼더 개인전 《CALDER》 설치전경 © 2023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2관(K2) 알렉산더 칼더 개인전 《CALDER》 설치전경 © 2023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알렉산더 칼더가 뛰어난 조각가였을 뿐만 아니라 드로잉에도 일가견이 있었다는 점이다. 일련의 과슈 작업은 곡선과 직선, 추상과 구상, 색의 조합 등 조각 작품의 개념적 바탕으로 기능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아울러 ‘Yellow Flower, Red Blossoms'(1974)와 ‘Black Squids'(1963)에서 드러나는 기하학적인 상형 문자와 식물, 산, 물 등 자연 등의 형상은 그의 조각에도 직간접적으로 투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관계’가 아니라 ‘관계항’

국제갤러리 1관(K1) 이우환 개인전 《Lee Ufan》 설치전경 c Ufan Le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3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1968년 처음으로 ‘관계항(Relatum)’을 선보인 이래 작가는 오늘날까지 동명의 연작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구작부터 근작까지 선보인 이번 전시에서 단연코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은 작가의 최신작이다. 1관 안쪽에 자리한 작품 ‘Relatum – Kiss'(2023)는 작품의 부제처럼 두 개의 돌이 마치 사람처럼 의인화되어 입맞춤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개의 돌 위로는 강한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떨어지며, 그 아래로는 두 개의 원형 쇠사슬이 교집합처럼 펼쳐져 있다. 이러한 주변 장치 덕분일까. 두 개의 돌이 맞닿은 면은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서로를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중력을 지녔음을 느끼게 된다.

국제갤러리 2관(K2) 2층 이우환 개인전 《Lee Ufan》 설치전경 c Ufan Le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3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

이우환 작가는 관계가 아니라 굳이 관계항이라고 제목을 붙인다. 이는 단순히 현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주체가 되는 개별 대상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인 관계에 놓일 수 있도록 한 작가의 의도이다. 관계가 아닌 관계항인 작품에서는 같은 공간에 서 있는 관객도 얼마든지 작업 세계에 개입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그의 신작도 마찬가지. 전시 공간에 들어서는 관객은 또 다른 주체로서 두 개의 돌의 입맞춤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물론 현실적으로 작품의 위치를 바꾸거나 쇠사슬을 거둘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관계항 속에 개입한 관객은 자신만의 해석으로 이들을 오해할 수도, 또 곡해할 수도 있는 이해의 자유를 얻게 되는 셈이다.

국제갤러리 1관(K1) 이우환 개인전, 《Lee Ufan》 설치전경 c Ufan Le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3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한편, 작가의 작품의 소재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는 자연물인 돌과 산업 자재인 강철판을 활용한 작품을 제작한다. 그는 “돌은 시간의 덩어리다. 지구보다 오래된 것이다. 돌에서 추출된 것이 철판이다. 그러니까 돌과 철판은 서로 형제 관계인 것이다. 돌과 철판의 만남, 문명과 자연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 내 작품의 발상이다.”라고 말하며 돌과 강철판을 활용하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돌과 강철판의 관계항에 자리하는 관객은 이곳에서 두 사물의 대화와 침묵에 참여하며 공명과 명상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이우환 작가의 작품의 특징이다.

국제갤러리 1관(K1) 이우환 개인전 《Lee Ufan》 설치전경 c Ufan Le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3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알렉산더 칼더의 과슈 드로잉을 소개한 것과 대등하게 이우환 작가의 전시에서도 그의 회화 및 드로잉 작업을 만날 수 있다. ‘Dialogue’라는 제목의 드로잉 4점은 작가의 동명의 유명 회화 연작을 떠오르게 한다. 정신과 호흡을 통제하고 가다듬어야 비로소 찍을 수 있는 ‘점’과 그을 수 있는 ‘선’으로 구성된 그의 드로잉 작품은 대형 회화 연작에서 느끼는 거대한 고요와는 또 다른 감동을 자아낸다. 아쉽게도 기사에 담는 글만으로는 두 거장이 만드는 예술의 하모니를 전부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삼청동으로 발걸음 해 직접 공간을 이리저리 오가며 체험하기를 권한다.

이정훈 기자

자료 제공 국제갤러리

프로젝트
〈CALDER / Lee Ufan〉
장소
국제갤러리 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삼청로 54
일자
2023.04.04 - 2023.05.28
이정훈
독일 베를린에서 20대를 보냈다. 낯선 것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쉽게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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