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0

낯설고 흥미진진한 세계를 만들다, 프로덕션 디자인 팀 ‘반아트’ ②

박유미 미술 감독 pick! 반아트의 멋진 작업 3
비주얼을 구상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빚어내는 프로덕션 디자인(Production Design). 전통적으로 영화 미술을 일컬어 왔지만, 시각 요소가 필요한 영역이 늘어나면서 보다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게 됐다. 반아트(VANART)는 영화는 물론 뮤직비디오와 광고, 야외 뮤직 페스티벌 등을 오가며 신선한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프로덕션 디자인 팀이다.

▶ 1편에서 이어지는 인터뷰입니다.

위 사진을 클릭하면 1편으로 연결됩니다.

4. 유머를 잃지 않고 일하기

NCT DREAM ‘Beatbox’ MV 현장. 이미지 출처: 반아트 인스타그램

프로덕션 디자인이라는 일을 시작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일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요.

프랑스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하다가 빨리 돈을 벌고 싶어서 한국으로 왔습니다. 제 전공을 살리면서도 재미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촬영 현장으로 뛰어들었어요. 미술팀 막내로 일을 시작한 뒤 움직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반아트를 열고 처음 한 해 동안은 이 일을 계속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우유 하나 사 마실 돈이 없었기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회사를 유지했거든요.

NCT DREAM ‘Beatbox’ MV 현장. 이미지 출처: 반아트 인스타그램

막상 일을 하다 보니 맡은 작업도 늘고, 공부해야 할 것도 산더미처럼 쌓였어요. 근데 공부하는 게 싫지 않고 오히려 공부하고 싶은 것이 무척 많아지더군요. 자연스럽게 이 일을 최대한 오래오래 하고 싶어져 버렸죠.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도 참 재미있고, 일하면서 생기는 여러 변수를 해결해 나갈 때 짜릿합니다. 히어로가 된 느낌이랄까요? 과정이 고되더라도 좋은 결과가 나오면 기쁩니다. 프로젝트를 끝내고 팀원들과 맛있는 걸 사 먹고 발 뻗고 잠들면 행복합니다. 노동이 주는 숭고함이 있잖아요, 거기 중독된 것 같아요.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일. 사진 제공: 박유미
촬영 현장. 사진 제공: 박유미

재키와이의 ‘Go Back’ 뮤직비디오 작업 현장을 ‘웃기고 또 웃긴 현장’으로 기억하더군요. 프로덕션 디자인 일의 기쁨이나 보람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그 현장에선 정말 우스운 에피소드가 많이 생겼어요. 지금도 떠올리면 실실 웃게 됩니다. 작업을 의뢰할 때, 확실한 콘셉트를 전달하면서 “반아트를 믿습니다. 알아서 해주세요.” 하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 말을 들으면 우리 내면의 뭔가가 꿈틀댑니다. ‘덕력’을 자극하는 말이랄까요. 재키와이 ‘Go Back’ 뮤직비디오 의뢰 역시 그러했고요. 누가 일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다들 너무 신난 채로 일했어요. 2주가량 전국의 온오프라인 상점을 뒤지고 합숙하면서 디자인과 제작에 매달렸습니다.

‘Go Back’ MV를 위한 차 디자인. 이미지 제공: 박유미

그리고 촬영에 들어갔는데요, 현장의 모든 스태프가 우리 같은 오타쿠들이었어요. (웃음) 현장은 덕력으로 폭발하고 촬영이 끝나고 정리할 때쯤 언덕 너머에는 해가 뜨고 있더군요. 멋있는 사람들과 일한 시간이 멋진 결과물로 탄생할 때, 이 일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Go Back’ 촬영 현장. 사진 제공: 박유미
▲ 재키와이 ‘Go Back’ MV

현실에 없는 것을 상상하기도, 현실에 있는 것을 극적으로 과장하기도 해야 하는 일일 텐데요. 끊임없이 새롭게 상상할 재료는 어떻게 채워요?

유머가 제일 좋은 재료가 됩니다. 의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밈(meme) 공부를 많이 합니다. 짧은 사진이나 글 속에 그 시대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센스가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어요. 그뿐 아니에요. 이 일은 여러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사람들과 함께할 때 유머는 아주 큰 힘을 발휘해요. 사람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죠. 상상력도 키워주고요. 또 프리랜서 생활을 하다 보니, ‘일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임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됐어요. 갑자기 일이 없어질 땐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다같이 건축이나 자재, 공구 박람회에 가거나 미술 전시회, 서점에 가기도 해요. 영화를 많이 보고 여행도 다니고요. 성실하게 공부한 것에 대해 함께 떠들면서 미래 계획을 그려봅니다. 창의성이란 훈련으로 길러지는 거구나, 싶습니다.

팀원들과 공부하는 시간. 사진 제공: 박유미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나요.

워크 라이프 밸런스를 맞추기란 정말 힘든 일인 것 같아요. 다만 팀원들과 최대한 재미있게, 스트레스받지 않는 노동을 하기 위해 연구합니다. 됨됨이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부터 태도를 끊임없이 가다듬어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한 체계를 잡아 나가고 있습니다. 미술팀이 존중받는 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우리도 완벽하게 일하자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우리 팀장님이 지은 사훈이 ‘권토중래(捲土重來)’입니다. 실패하더라도 힘을 쌓아서 다시 도전해 성공에 이른다는 의미예요. 그 뜻을 마음에 품고, 우리 팀을 잘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무실 내부(좌)와 사무실 입구(우) 사진 제공: 박유미

바라는 일이나 목표를 물을게요.

프로덕션 디자이너, 프롭 마스터라는 직업이 좀 더 알려지고 존중받기를 바라요. 먼 미래의 목표도 있어요. 해외의 웨타 워크숍이나 스탠 윈스턴(Stan Winston) 등 영상업계의 특수한 전문 회사처럼, 반아트와 디자인사무소 공장, 동빙공업을 합한 형태의 회사를 꾸리고 싶다는 거예요. 미술과 건축, 특수 소품 제작이 한데 이뤄지는 회사겠죠. 회사 이름은 ‘헥사’로 생각 중입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반아트의 두 번째 워크숍을 미국 LA로 가고 싶어요. 그곳에서 스튜디오 슈퍼 슈트 팩토리(Super Suit Factory)*의 바네사 리(Vanessa Lee) 선생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 할리우드 영화 속 특수 의상을 여럿 제작한 스튜디오. 〈아이언맨〉 〈토르〉 등의 특수의상을 제작했다. 이 스튜디오를 설립한 패브리케이터(fabricator, 특수 의상 제작자)가 한국에서 태어난 바네사 리(한국명 이미경)다.
제네 더 질라 ‘강원 FC’ MV 현장. 이미지 출처: 반아트 인스타그램
작업에 몰두하는 반아트의 모습. 사진 제공: 박유미

소개하고 싶은 반아트 작업 3

박유미 미술 감독 pick!

1. 애쉬 아일랜드 ‘Error’ 뮤직비디오(2020)

“신체의 본을 뜨는 바디 캐스팅 방식으로 수트를 만들었던 작업입니다. 우리가 처음 도전하는 특수 소품 제작의 영역이었죠. 늘 해 보고 싶었던 분야였는데, 믿고 맡겨 준 분들 덕분에 더 많은 시도를 할 수 있었어요. 바디 캐스팅부터 경질 우레탄 몸체 제작, EVA foam 가공, 크롬 도장, EL 필름 삽입 등 다양한 공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작업을 위해 큰맘 먹고 레이저 컷팅기도 구매했어요. 이 장비도 큰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자 CG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는데요, 천장에서 떨어지는 불꽃과 화면에 뜨는 글자 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실사로 제작한 것입니다. 이 작업 이후 SF 장르 관련 일이 여럿 들어왔어요. 반아트와 동빙공업에겐 역사적인 작업이에요.”

관련 작업 과정. 이미지 출처: 반아트 인스타그램

2. 최하나 감독 〈애비규환〉 영화(2020)

“첫 장편 영화 작업이어서 의미가 깊습니다. 최하나 감독과 좋은 분을 많이 알게 된 것도 좋고요. 여담이지만 감독님과 처음 만난 것이 작업 때문이 아니에요. 제가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할 때 PD님을 통해 인연을 맺었거든요. 그마저 특별해서 좋습니다. 저의 고향인 대구에서 촬영한 것도, 바위 소품을 등에 진 채 산에 오르는 경험도, 그저 다 좋았습니다. 공부도 많이 되었고요.”

〈애비규환〉 현장. 이미지 출처: 반아트 인스타그램

3. ‘리그오브레전드’ 2021 유니버스 광고(2021)

* 팝업북과 미니어처를 반아트가 담당. 스톱모션은 다른 팀이 담당했다. 로봇암Robot Arm으로 촬영.

“팝업북과 미니어처 세트를 통해 리그오브레전드의 세계관을 소개하는 작업이었어요. 처음 의뢰가 들어왔을 때 국내에서도 이런 광고를 기획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신나고, 빨리 작업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종이로 팝업북을 설계하는 일이 세트를 설계하는 일보다 훨씬 더 복잡한 시스템임을 알고 좌절했습니다. 연출 감독 두 분과 CG 실장님까지 반아트 사무실로 오셔서, 팀원들과 함께 밤새 미니어처를 칠하고 종이를 접었어요. 당시 새해로 넘어가는 때였는데요, 1월 1일이 되자 새해 인사를 종이와 가위를 든 채 나누었던 기억이 나요. 작업 면에서도 추억 면에서도 오래 기억할 프로젝트입니다.”

관련 작업 과정. 이미지 출처: 반아트 인스타그램

 김유영 기자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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