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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2-09-07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일러스트 작가 ② 정다은

동양화를 기반으로 펼치는 디지털 일러스트

국내를 넘어 넷플릭스 비영어권, 영어권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며 글로벌한 인기를 증명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흥미진진한 드라마 내용, 배우들의 준수한 연기력만큼이나 주목받는 것이 있다. 바로 드라마 엔딩에 삽입된 일러스트다. 매회 드라마 내용을 적절히 녹여낸 일러스트는 시청자들에게 ‘이번화에는 어떤 작가가, 어떤 장면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며 기대감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해당 일러스트를 활용한 드라마 디지털 굿즈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고. 어디서 영감을 얻어 그들만의 우영우를 만들어 냈는지, 엔딩 일러스트 작업을 맡은 작가 2명에게 작업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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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드라마 포스터 | 출처 : ENA채널 드라마 공식 인스타그램

정다은 작가와 다시 보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5~8화 엔딩 일러스트

5화 | 출처 : 활동 일환, 정다은 작가 인스타그램

우영우와 권민우의 대결 구도를 오락실 철권을 모티프로 작업했어요. 영우와 민우가 가진 주무기가 무엇일까 상상하면서요. 영우 마음속에는 때론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단단하게 뿌리 내린 나무가 있고, 민우의 마음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계산적인 모습의 사람이 있죠. 불똥도 막 튀고 있고요.

6화 | 출처 : 활동 일환, 정다은 작가 인스타그램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엄마 고래와 아기 고래, 그리고 고래를 타고 유영하는 ‘계향심’씨와 딸 ‘하은’의 모습을 그렸어요. 내가 고래였다면… 엄마도 날 안 버렸을까?”라는 대사처럼, 영우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엄마를 생각하고 있어요. 영우의 뒷모습이 조금 쓸쓸해 보이죠?

7화 | 출처 : 활동 일환, 정다은 작가 인스타그램

소덕동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한바다즈의 모습을 그렸어요. 책상 위에는 가득 쌓인 문서들이 있고 한바다즈의 뒤편에는 멋진 팽나무가 있는 소덕동의 풍경이 보입니다. 자세히 보면 영우와 준호가 함께 있는 풍경은 포스트지처럼 붙어 있고, 소덕동 풍경은 클립으로 고정되어 있어요. 이런 작은 장치를 통해 장면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8화 | 출처 : 활동 일환, 정다은 작가 인스타그램

태산과 한바다의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신경전을 그려보았습니다. 영우와 태수미는 빨강과 파랑이 섞인 보라색 우산 아래 서로를 마주하고 있고, 이 큰 우산은 팽나무를 감싸고 있어요. 비가 내리지만 무지개가 떠 있는 하늘처럼 복잡한 영우의 마음을 표현해 보았어요.

 

엔딩 일러스트 작업을 맡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Y아티스트에서 이번에 새롭게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제 그림 스타일과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작업 제안을 주셨습니다. 그 프로젝트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일러스트 작업이었고요. KT Y아티스트 프로젝트 팀에서 특정 장면에 구애받지 말고 크리에이티브한 표현을 가득 넣어주면 좋겠다고 한 덕분에 작업의 자유도가 높아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OST – Part.4 원슈타인 ‘기울이면’ | 출처 : 정다은 작가 인스타그램

드라마가 화제인 만큼 엔딩 일러스트에 대한 반응도 뜨거워요.

재밌고, 신기하고, 뿌듯합니다! 주변에서 그림 잘 봤다고 연락도 주시고 인스타그램에 다양한 국적을 가진 분들이 반응을 남겨 주셔서 드라마의 글로벌한 인기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핸드폰, 아이패드, TV에서 보는 느낌이 각각 다르더라고요. 그림이 매체에 따라 작업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앞으로 더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정다은

책 표지 작업이나 앨범 커버 작업 등 여러 활동을 해오셨다고.

<새들의 여행>이라는 주제로 풍경을 그리고 있어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의 시각을 빌려 제가 보았던 풍경의 모습을 그린 시리즈입니다. 2019년쯤 코로나로 집콕하면서 그림을 그리던 시기에 새처럼 훨훨 날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그리기 시작했죠. 제 작업의 시작이 된 그림이고 현재진행형인 작업입니다.

<지구를 위한 변론> 표지 작업 ©정다은

최근에 했던 책 표지 작업도 해당 작업의 연장선이에요. <지구를 위한 변론>,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 모두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가 있거든요.

(좌) 앨범 커버 (우) 가사지 ©정다은

윤딴딴 님의 EP앨범 <마음을 오르는 기록>도 기억에 많이 남는 작업이에요. 인생의 성장에 관한 내용의 앨범인데 전체적인 디자인은 가사 속 ‘마음의 시계’라는 단어를 모티프로 작업했습니다. CD는 인생의 나침반으로, 가사지는 인생의 나침반을 따라가는 지도로 표현했죠.

앨범 커버 & CD ©정다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침반이 향하는 방향과 마음의 시계를 일치시키는 과정을 담은 윤딴딴 님의 인생과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잘 드러난 앨범이에요. 저는 그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냈습니다. 고민을 많이 하면서 진행한 작업이라 제 이름이 적힌 실물 앨범을 받았을 땐 정말 뿌듯했습니다.

(좌) 봄산책, 2021 (우) wishes in the valley, 2021 ©정다은

단순한 선을 이용해 다채로운 풍경을 그려내는 것이 인상 깊었어요. 수채화 같기도 하고, 색연필로 그린 것 같은 그림체도 색달랐고요.

제 그림에는 네모난 테두리가 있어요. 만화의 컷에서 차용한 것인데, 제가 그리는 장면을 한 컷씩 강조하고 그림에 평면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장치예요. 약간 심심한 듯한 느낌이 제 그림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단순하게 그리려고 해요. 직선과 곡선, 동그란 것과 네모난 것. 세상이 복잡해서 그런지 단순하고 심심한 것들이 오히려 마음을 울리더라고요. 덜어낼수록 풍부해지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새들의 여행_드로잉 ©정다은

노란색 배경색을 자주 사용하시는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림은 작가의 언어이고, 작품을 진행하는 과정은 자신만의 문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종이와 연필은 문장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주어와 서술어고요. 노란색 종이와 파란색 연필이 제 그림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거죠. 따뜻한 노란색과 차가운 파란색이 함께 있을 때 만들어내는 그 특유의 느낌을 좋아하기도 했고, ‘정다은 그림’으로 규정할 수 있는 나만의 종이와 연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동양화를 전공하셨다고 들었는데, 어쩌다 디지털 일러스트 작업을 하게 되었나요?

저는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습니다. 동양화 특유의 한지에 물감이 스미는 느낌을 좋아해요. 유화는 캔버스 위로 물감을 쌓아 올려서 그림이 완성된다면 동양화는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한지 아래로 물감이 스며들어서 그림이 완성되기 때문에 은은하고 깊은 느낌이 나죠.

(좌) calm evening, 2022 (우) calm evening, 2022 ©정다은

순수 회화를 공부하면서 그림의 쓸모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어요. 예술은 쓸모없음으로 그 가치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림으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림은 다른 분야와 결합했을 때 서로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를테면 갤러리 벽에 걸려있는 그림보다는 매일 만지는 컵에 내 그림이 들어있으면 좋겠고, 매일 사용하는 핸드폰 화면 안에 내 그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죠. 그렇게 일러스트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동양화를 공부하면서 익혔던 여백과 단순함의 미학, 따뜻하고 깊은 색감, 종이의 질감 등이 지금의 제 그림을 이루는 단단한 초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광치기 해변 ©정다은

여행에서 작업의 영감을 주로 얻는다고.

혼자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해요. 제 작업 시리즈 <새들의 여행>도 여행하면서 보았던 풍경을 엮은 시리즈죠. 학생 때는 제주도에 자주 갔어요.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 기분을 흠뻑 느끼면서 서울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볼 수 있거든요. 혼자 여행을 가면 일과가 단순해져요. 에너지를 온전히 저에게만 쓰니까요. 일과가 단순해지니, 세상을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느낀 제주도는 색깔로 꽉 차 있는 곳이었어요. 빨간 해, 푸른 바다, 초록 풀, 까만 돌. 뚜벅이로 느긋하게 여행하면서 보았던 풍경들과 자연의 색깔에서 작업의 영감을 받습니다.

경포호 노을, 72.7x90.9cm, blue pencil and color on korean paper, 2021 ©정다은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경포호 노을>이라는 작품이에요. 친구와 강릉으로 여행을 갔을 때 경포호에서 봤던 노을을 떠올리면서 그린 그림입니다. 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듯이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늘 생각하는데 이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즐겁게 그린 것 같아서 특히 애정이 갑니다.

 

작업하시면서 힘든 점은 없나요?

작업은 늘 즐겁지만 불확실성이 가장 힘들어요. 언제 작업 의뢰가 들어올지도 모르고 전시를 해도 작품이 판매될지도 확실하지 않으니까요. 수입이 일정치 않아 불안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제는 즐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웃음) 불필요한 시간은 없더라고요.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 않을 때도 너는 예술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거야’라는 문장처럼요. 목표의 성취보다는 행위 자체에 가치를 두고 꾸준히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면 기회는 오는 것 같아요. 그 기회를 멋지게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도전해 보고 싶은 작업도 있나요?

뮤직비디오요! 이경돈 작가님이 작업하신 AKMU의 〈Stupid love song〉 뮤직비디오를 보고 감동받았거든요. 움직이는 그림은 정말 멋지더라고요. 애니메이션은 그림의 시간성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라고 생각해요. 언젠간 제 그림도 움직이게 만들어보고 싶어요.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이겠지만 짧은 영상으로 단편 영화제에 출품해 보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궁금합니다.

매번 즐겁게 작업하고 싶어요. 원래 즐기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고 하잖아요. 천천히 꾸준하게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을 인생의 동반자이자 친구로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언젠가 <뉴욕타임스>와 <뉴요커>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네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일러스트 작가 ① ‘정5’

서현숙 객원 에디터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정다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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