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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2-11-23

건축 디자인이 남다른 세계의 주유소 4

주유소를 습격한 디자인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는 '카밋(car-meet)'이라는 커뮤니티 모임이 존재한다. 카밋은 그 모임 시간도, 장소도, 구성원도 각양각색이다. 그 중에서도 전 세계에서 아름다운 카밋 장소로 손꼽는 곳이 있다. 바로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스코브쇼베드 주유소. 덴마크 현대 건축과 디자인을 대표하는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의 손에서 탄생했다. 주유소라고 불리지만 단순히 기름을 충전하는 공간 그 이상의 건축적 의미와 상징성을 지녔다. 스코브쇼베드 주유소와 함께 세계에서 남다른 건축 디자인으로 주목할 주유소 네 곳을 꼽았다.

아르네 야콥센의 ‘스코브쇼베드 주유소’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 한 스코브쇼베드 주유소 모습 |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코펜하겐 북쪽 외곽에 자리한 스코브쇼베드 주유소(Skovshoved Petrol Station)는 덴마크 건축가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이 디자인했다. 1936년 처음 문을 열었고 오늘날까지도 주유소로 사용 중이다. 아르네 야콥센은 사물의 본래 목적과 기능을 강조하는 기능주의 디자인을 추구했다. 그는 불필요한 장식을 없애고 최소한의 단위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주유소 건축에도 그의 디자인 철학이 반영되었다. 스코브쇼베드 주유소는 세라믹 타일로 덮인 직사각형의 건물, 2개의 주유기, 주유기 사이에 자리한 기둥과 그 위로 뻗은 타원형의 캐노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캐노피 디자인은 기둥과 분절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져 있어 마치 버섯과도 같은 모양이다. 실제로 스코브쇼베드 주유소의 또 다른 애칭이 ‘버섯 주유소’인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주유소 곳곳에서는 아르네 야콥센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하얀색으로 통일한 색상, 아날로그시계, 기둥과 건물에 부착한 램프 디자인은 그의 기능주의 디자인 정수를 보여준다.

카밋 장소로도 유명한 스코브쇼베드 주유소 | 사진 출처: Olivers Garage 페이스북

한편, 캐노피와 이어진 직사각형 건물의 정체도 흥미롭다. 보통 주유소 건물에 카페테리아, 편의점 혹은 자동차 용품 판매점이 자리하는 것과 다르게 ‘Oliver’s garage라는 이름의 유기농 아이스크림 매장을 만날 수 있다. 사실 스코브쇼베드 주유소는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밋(car-meet)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자동차 커뮤니티 모임인 카밋에는 자동차에 관심 있는 싱글부터 가족 단위까지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한다. 주말마다 열리는 카밋을 찾아온 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자동차를 살펴보고, 아르네 야콥센의 디자인과 건축을 이야기하며 자신들만의 휘게 라이프를 보낸다고.

포스터 앤 파트너스의 ‘렙솔 서비스 스테이션’

렙솔 로고 디자인 색상을 캐노피에 반영했다.
사진 출처: https://www.fosterandpartners.com
모듈 시스템으로 스페인 전역에 적용 가능한 디자인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사진 출처: https://www.fosterandpartners.com

1996년 스페인 최대 석유회사 렙솔(Repsol)이 영국 건축 사무소 포스터 앤 파트너스(Foster+Partners)에게 의뢰한 주유소 디자인도 흥미롭다. 당시 렙솔은 포스터 앤 파트너스에게 ‘도로변에 자리한 주유소의 정체성을 유지하되, 스페인 전역에 걸쳐 200여 개의 주유소에 쉽고 빠르게 적용시킬 수 있는 디자인’을 주문했다. 그 결과 탄생한 디자인이 바로 모듈러 캐노피. 모듈 형식으로 제작된 캐노피는 스페인 어느 지역에서든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높낮이가 각기 다른 캐노피 디자인은 브랜드 정체성 뿐만 아니라 눈, 비, 햇빛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도 갖췄다.
사진 출처: https://www.fosterandpartners.com

포스트 앤 파트너스는 프로젝트 클라이언트인 렙솔의 로고에 적용한 세 가지 색상(레드, 오렌지, 화이트)을 캐노피 디자인에 활용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덕분에 먼 거리에서도 렙솔 주유소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캐노피의 색상에 따라 다르게 제작된 높이도 흥미로운데 빨간색 캐노피가 가장 높고, 그다음으로는 오렌지 캐노피가, 그리고 화이트 캐노피의 높이가 가장 낮게 제작됐다. 높낮이가 다른 캐노피는 단순히 흥미 요소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다. 엇갈리는 높낮이 덕분에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해가 내리쬐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주유하는 자동차는 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오피스 디에이의 ‘헬리오스 하우스’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주유소 ‘헬리오스 하우스’
사진 출처: https://www.johnstonmarklee.com

영국 정유사 BP가 만든 주유소 ‘헬리오스 하우스(Helios house)’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도로와 로버튼슨 도로가 교차하는 곳에 자리한다. 현재는 미국의 편의점 체인 스피드웨이 익스프레스(Speedway Express)가 운영 중이다. 헬리오스 하우스는 다가 올 미래 친환경 주유소를 표방한다. 보스턴의 건축 사무소 오피스 디에이(Office dA)와 건축가 샤론 존스턴(Sharon Johnston)과 마크 리(Mark Lee)가 설립한 건축 회사 존스턴 마크리(Johnston Mark Lee)에서 설계를 맡았다.

미래지향적 디자인과 더불어 친환경 기능도 주목할 점이다.
사진 출처: https://www.johnstonmarklee.com

헬리오스 하우스는 삼각형을 이어 붙인 기하학적인 외관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다. 친환경 주유소라는 콘셉트에 따라서 외관 건축 소재는 모두 재활용된 스테인리스강을 사용했다. 멀리서도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외관과 함께 환경친화적인 건축 기능도 돋보인다. 지붕에는 90개의 태양 전지를 부착했다. 태양열에너지를 주유소 관리에 활용하면서 에너지 소비의 16% 절감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아울러 지붕 위에 심은 식물은 지면으로 쏟아지는 태양열을 흡수해 주유소의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빗물을 받아 모을 수도 있어 공간 세척 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헬리오스 하우스는 물, 열, 에너지, 빛, 그리고 소재 시스템까지 다섯 가지 지속 가능 요소에 초점을 맞춘 공간으로 미래 주유소의 새로운 형태를 제안한다.

스튜디오 푸이스토 아키텍츠의 ‘니멘하주’

유럽 최남단 고속도로 E75에 자리하는 휴게 시설 ‘니멘하주’
사진 출처: https://studiopuisto.fi/en/home
교통과 자연의 완충지라는 콘셉트를 지닌 휴게 시설 ‘니멘하주’ 모습.
사진 출처: https://studiopuisto.fi/en/home

핀란드 헬싱키를 기반으로 한 스튜디오 푸이스토 아키텍츠(Studio Puisto Architects)가 디자인한 주유소 겸 휴게시설 ‘니멘하주(Niemenharju)’는 핀란드 중부를 지나는 E75 고속도로에 자리한다. 유럽 최남단 고속도로인 E75는 총 길이 5,639km로 노르웨이에서부터 그리스까지 이르는데, 장거리 노선인 만큼 푸이스토 아키텍츠는 주유소 뿐만 아니라 호텔, 사우나, 야영장 등 다채로운 휴게 시설을 함께 갖춘 휴게 단지를 구축했다.

니멘하주 안에는 지역 식재료를 사용한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을 만날 수 있다.
사진 출처: https://studiopuisto.fi/en/home

니멘하주의 메인 콘셉트는 교통과 자연의 완충 지역. 주유소와 식당 그리고 호텔을 갖춘 메인 건물은 검은색 외관으로 블랙박스라고도 불린다. 어둠이 내려 앉으면 자연 속에 자취를 감추는 점이 특징이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한편, 블랙박스는 24개의 나무 형상을 한 기둥과 지붕으로 감싸져 있는데, 기둥마다 가로 8m, 세로 8m의 지붕 범위를 지탱한다. 모든 지붕이 이어져 있어 그 아래에 서 있는 동안 마치 울창한 나무가 하늘을 가린 숲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연출했다. 식당에서는 지역 식재료를 사용한 음식을 맛볼 수 있으며, 2층에는 10개의 방이 마련되어 있어 장거리 운전에 지친 이들에게 휴식을 제공한다. 아울러 니멘하주는 여름 동안 근처 호수 리일리람피(Lylylampi)에 캠핑이 가능한 야영장도 운영한다. 일부러 여름이면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고. 잠깐 들렸다가 떠나는 임시 공간이 아니라 자연 속 휴식을 경험하기 위한 휴양지로도 손색이 없다.

이정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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