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21

퍼피북클럽의 다정하고 유연한 세계

침대인 듯 침대 아닌 핸드메이드 북 커버?
색색의 이불 덮은 폭신폭신한 드로잉북은 깨끗이 비어 있어 무엇을 기록하더라도 늘 내 것이다. 그러니 언제든 책을 펼쳐 끄적여도 좋다. 시간 사이 흐르는 생각들이 글로 또 그림으로 차곡차곡 쌓이면 책은 제 이름, ‘퍼피(PUFFY)’처럼 두둥실 피어오르고 말 테니까!
퍼피북클럽 로고 | 이미지 제공: 퍼피북클럽

퍼피북클럽(PUFFYBOOKCLUB)은 손끝에서 읽히는 언어를 양분 삼아 태어났다. 대학생 시절 참여한 봉사 프로그램에서 처음 촉각도서*를 접한 이미소 대표는 보편의 책이 가진 특성에 낯선 감각을 더하고자 했다. 고심 끝에 떠올린 건 각기 다른 질감을 가진 천들을 기워 만든 북 커버. 어떤 이에게는 당연한 문자(文字)가 또 어떤 이에게는 그렇지 못해서 세상에 나온 촉각도서와 손으로 만지고 느끼며 서서히 친밀해지는 북 커버는 모두에게 다정하다는 점에서 꼭 닮아 있다. 

* 촉각도서: 형태의 질감과 점자(點字), 묵자(墨字)를 함께 그려 넣어 만지며 읽는 형태적 도서 

Interview with 퍼피북클럽

이미소, 이지우 공동대표
‘PUFFY BED BOOK’
이미지 제공: 퍼피북클럽

ㅡ 퍼피북클럽의 북 커버는 침대를 연상시켜요. 

이미소 책은 대부분 사각형이잖아요. 각이 진 모서리를 4개나 지녀서 딱딱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기본 공식처럼 자리 잡은 책의 형태에 어떤 식으로 변화를 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어느 밤, 잠에 들기 직전 번뜩 스친 생각이 시작점이에요. 침대가 주는 평온함 내지는 다정함을 북 커버에 반영해 보자! 딱딱한 책 모서리 위에 완전히 다른 감각을 더해보는 거예요. 아이디어를 토대로 곧바로 샘플을 제작해 동생에게 달려갔어요.(웃음)

 

이지우 언니가 “짠!” 하며 침대를 꼭 닮은, 천으로 만든 북 커버를 내보이더라고요. 폭신폭신한 북 커버라니. 제 눈에도 귀엽고 신선한 디자인이라 반응이 좋을 줄 예상은 했지만, 기대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 설레요. 브랜드 론칭 초반에는 한 달에 한 번, 폐원단을 업사이클링 하는 ‘Only One’ 라인에서 침대 디자인을 선보였어요. 한정 수량으로 진행해 구매하지 못한 분들이 많았는데, 현재는 퍼피북클럽의 시그니처 디자인이 되어 ‘Order Made’ 라인에서 편히 만나 보실 수 있어요. ‘Only one’ 라인에서 인기가 많은 디자인은 ‘Order Made’ 라인으로 옮겨 가기도 해요.

최근 출시한 퍼피북클럽의 신제품 ‘PUFFY BED BOOK (fluffy)’ | 이미지 제공: 퍼피북클럽

ㅡ 마치 샘플 테스트 같은 느낌이네요.(웃음) 고객 반응에 따라 진행 방식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시스템이에요. 얼마 전 출시한 신제품도 ‘Only One’ 라인에서 시작되었다고.

이미소 최근 선보인 ‘PUFFY BED BOOK’ 역시 ‘Only One’ 라인에서 가장 재입고 문의가 많았던 디자인 중 하나예요. 폐원단을 활용하는 라인이다 보니 시중의 원단으로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는데, 동대문종합시장 구석구석을 살펴 동일한 원단을 찾아냈지 뭐예요. 북 커버를 구성하는 이불과 베개에 사용된 레이스 원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그재그 패턴이 있어요. 기하학적 구조와 포슬포슬한 질감이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부분이 특징이에요.

퍼피북클럽은 버려지는 자투리 원단, 입지 않는 옷 등 쓸모를 잃은 원단들을 활용해 북 커버를 제작하고 있다. | 이미지 제공: 퍼피북클럽

ㅡ 어쩌다 폐원단을 북 커버 재료로 활용하게 되었어요?

이미소 전공 과제나 졸업 작품을 진행하다 보면 별 수없이 버려지는 자투리 원단들을 목격하게 돼요. 늘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던 터라 폐원단을 활용해 조금이나마 낭비를 줄이고 싶었어요. 의도치 않은 재료에 저희의 의도를 담아 만드는 북 커버랄까요?(웃음) 실제로 과 동기들 그리고 소재실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에게서 원단을 수급하고 있어요. 브랜드를 운영하는 친구가 남는 원단을 모아뒀다 전해주기도 하고요. 

 

이지우 더 이상 입지 않는 옷도 북 커버로 재탄생할 수 있답니다.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작업을 저희만의 방식대로 꾸준히 이어가고자 해요.

이미지 제공: 퍼피북클럽

ㅡ 제작 과정에서 기계 재봉과 손바느질을 겸하고 있어요.

이미소 의상학을 전공해서 재봉틀 사용이 익숙한 편이에요. 원단을 재단해 조각을 만들고, 잘 어우러질 법한 짝을 지어 북 커버 밑판을 만드는 작업을 주로 맡고 있어요. 베개는 마감 시 손바느질이 꼭 필요해서 동생이 전담하고 있고요. 제가 준비한 밑판과 동생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베개를 이어주면 북 커버가 완성돼요.

 

이지우 바느질과 거리가 멀었던 제가 이제는 퍽 베개 다운 베개를 만들고 있어요.(웃음) 퍼피북클럽에 합류한 초반에는 제가 어떤 업무를 맡으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는데, 바느질이 제법 능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역할이 나눠졌네요. 

ㅡ 패턴과 질감이 제각각인 원단들을 조합하기란 쉽지 않겠어요. 디자인은 어떻게 구상해요? 

이지우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서 다듬어 가는 편이에요. 어떻게 진행하겠다고 미리 세세한 계획을 세우기 보다 가지고 있는 원단의 특성을 고려해 즉흥적으로 펼쳐보는 거죠. 앞서 언급한 ‘Only One’ 라인의 경우에는 특히나 발상이 자유로운데요. 헤어리(hairy)한 느낌의 원단을 가지고 있는 경우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강아지 형태의 커버를 떠올리는 식이에요.

‘PILLOW BOOK’ | 이미지 제공: 퍼피북클럽

ㅡ 북 커버를 드로잉북과 세트로 구성한 까닭이 궁금해요. 왜 다이어리도, 노트도 아닌 드로잉북이에요? 

이미소 무지 드로잉북은 누구든지 원하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거든요. 가능한 사용자가 자유도를 느끼기를 바랐어요. 제품명을 ‘북 커버’가 아닌 ‘북(Book)’으로 기재하는 것도 같은 이유예요. 사용자가 커버에 둘러싸인 책을 어떻게 채워 나갈지 기대하는 마음과 착실히 쌓인 기록들이 곧 당신의 ‘북(Book)’과 같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거죠.

이미지 제공: 퍼피북클럽

ㅡ 제품 연출 이미지가 인상적이에요. 퍼피북클럽만의 재치가 담뿍 묻어난다고 할까요? 직접 미니어처 모형까지 제작했다고요.

제품뿐만 아니라 제품을 보여주는 방식까지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장치니까요. 잠에서 깨면 거품처럼 희미해지고 마는 꿈속의 방을 떠올리며 연출해 봤어요. 북 커버가 진짜 침대가 되는 마법의 방이죠.(웃음)

(좌측부터) 의류 브랜드 ‘랑파랑파(rangparangpa)’와 협업한 제품 ‘STRIPED BOOK COVER’, ‘POLKA DOT BOOK COVER’ | 이미지 제공: 퍼피북클럽
(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포토제니아굿즈(Photozenia Goods)’와 협업한 제품
(우) 홈웨어 브랜드 ‘폴리(Föli)’와 협업한 제품 | 이미지 제공: 퍼피북클럽

ㅡ 브랜드 론칭 후 오래지 않아 의류 브랜드 ‘랑파랑파(rangparangpa)’, 스테이셔너리 브랜드 ‘하이홉스(HIGH HOPES)’,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포토제니아굿즈(Photozenia Goods)’, 홈웨어 브랜드 ‘폴리(Föli)’ 등과 협업을 진행했어요. 협업 제안이 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궁금해요.

협업을 통해 신선한 즐거움이 탄생해야 해요. 무엇보다 협업의 중심이 소통인 만큼 서로가 지향하는 방향을 공유하며 양 측에 긍정적인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하고요.

스테이셔너리 브랜드 ‘하이홉스(HIGH HOPES)’와의 협업 제품은 드로잉북이 아닌 다이어리와 함께 구성했다. | 이미지 제공: 퍼피북클럽
이미지 제공: 퍼피북클럽

ㅡ 그중 기억에 남는 작업을 한 가지 꼽는다면요? 

아무래도 주력 제품이 북 커버인지라 그 규격에 맞는 다이어리를 판매할 계획은 없냐는 물음을 많이 받아왔는데요. 우연의 일치인지 다이어리를 중점으로 하는 스테이셔너리 브랜드 ‘하이홉스(HIGH HOPES)’ 측에서 협업 제안을 주셔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어요. 사실, 하이홉스와의 협업 제품은 베개가 하트 형태여서 제작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바늘을 어르고 달래며 작업해도 못난이 하트가 나타나더라고요.(웃음) 다행히 작업 후반에는 완벽한 하트 만드는 법을 터득했지만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가득한 데다, 북 커버 디자인부터 원단 선정 등 전과정에 서로의 의견이 녹아 든 작업이라 가장 기억에 남아요. 

ㅡ 올해 꼭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이미소 퍼피북클럽의 단독 팝업을 열고 싶어요. 브랜드의 색과 신념을 조금 더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또 그분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가 될 테니까요. 가끔 “이런 디자인도 만나보고 싶어요”라고 적극적으로 의견 주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제안 주시는 디자인에서 종종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답니다.

퍼피북클럽의 시그니처 디자인이 적용된 ‘PILLOW HAIR CLIP’ | 이미지 제공: 퍼피북클럽
‘PILLOW SCRUNCHIE’ 역시 베개 장식이 포인트 | 이미지 제공: 퍼피북클럽

이지우 힘닿는 한 제품 카테고리도 확장할 예정이에요. 티셔츠, 모자, 오브제 등 퍼피북클럽의 ‘클럽다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굿즈들을 구상하고 있어요. 눈앞의 목표 지점들을 하나씩 밟아 나가다 보면 퍼피북클럽이 어떤 브랜드인지 더 또렷해지겠죠.

이미지 제공: 퍼피북클럽

ㅡ 미래의 퍼피북클럽은 어떤 브랜드이기를 바라는지.

이지우 예측 불가능한 브랜드. 이전에 협업한 브랜드 측에서 ‘퍼피 북’을 보고 “이런 디자인은 처음 봤다”라고 하신 말씀이 인상 깊었어요. 좀처럼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는, 톡톡 튀는 새로움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이미소 제작자와 소비자가 연결되는 커뮤니티 역할도 함께 한다면 뜻깊을 것 같아요. 진짜 ‘북클럽’을 만들어도 자연스럽겠고요. 물론 북클럽의 멤버를 희망하는 분들이 계셔야 가능하겠지만요.(웃음) 북 커버와 드로잉북을 함께 제안하고 있는 만큼 저희 작업이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어 또 다른 창작으로 이어지는 게 저희가 바라는 지점이에요. 퍼피북클럽이 창의적인 일상을 위한 작은 도구가 되었으면 해요.

김가인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퍼피북클럽

김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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