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30

진심을 전하는 방법, 유한락스 <더 화이트 북> ②

제품과 연결되는 북 디자인
막 청소를 끝낸 세면대, 물 얼룩을 말끔히 훔친 싱크대….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산뜻해지는 장면이다. 유한락스의 첫 브랜드 북 <더 화이트 북(THE WHITE BOOK)>을 바라보고 있자면, 이러한 장면이 자아내는 깨끗한 기운이 느껴진다. 유한락스라는 브랜드가 지닌 고유함을 살리는 한편, 물성을 지닌 ‘책’ 자체로 완성도 높게 디자인한 덕분이다. <더 화이트 북> 디자인은 디자인 스튜디오 kontaakt이 맡았다. 대담하고 사려 깊은 디자인을 지향하는 kontaakt에게 흥미로운 브랜드 북 디자인 이야기를 들었다.
진심을 전하는 방법, 유한락스 <더 화이트 북> ①
▼ 1편에서 이어집니다.
| 이미지 제공: 어반북스

Interview with kontaakt

이원섭 디자인 디렉터

— <더 화이트 북>의 전체 디자인 콘셉트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유한락스’ 하면 떠오르는 색채와 깨끗하게 반짝거리는 느낌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한 방에 해결 가능하다”, “강력한 세정력” 등 카피만 봐도 유한락스는 강하고 믿음직스러우며 정확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BI(브랜드 아이덴티티, Brand Identity)에서도 느껴지죠. 그러면서도 락스는 우리네 일상에서 필수적으로 쓰이는 친근한 제품이기도 하고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어요. 유한락스가 브랜드 공식 홈페이지 Q&A 게시판을 통해 고객의 눈높이에서 섬세한 안내와 배려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 점이 유한락스라는 브랜드의 특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브랜드의 강력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한편, 내적으로는 인간적인 따스함과 배려를 담는 것이 디자인 콘셉트가 되었습니다.

이미지 제공: 어반북스

코너별 디자인이 다 같지 않은데도 그걸 느낄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콘셉트가 이어져요. 단조롭지 않으면서도 연결되는 책을 디자인하기 위해 어떤 점에 신경 썼나요?

BI 자체가 큰 도움이 되었는데요. 두툼하고 강한 타이포그래피와 선명한 색채로 중심을 잡고 나니, 그래픽 요소를 자유롭게 배치해도 지면에서 안정감이 느껴졌어요. 이런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과장되지 않도록 할 것, 그리고 그 특징을 부드럽게 책 전반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디자인에 있어서 중요했습니다.

내지 일부. 서체와 그래픽을 활용해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게 디자인했다. ⓒ 유한락스

강한 요소가 반복되면 책의 흐름이 지루해지기 십상인데요. 반짝거리는 요소와 곡선 그래픽이 지면을 지루하지 않고 유연하게 연결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락스는 액체이기도 하고 사람의 손을 타기 때문에, 특유의 유동성이 필요했거든요. 서체의 활용도 분위기를 잡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말씀하셨듯 서체가 기억에 남아요. 브랜드와도 잘 어울리면서 읽기에도 편안했습니다. 서체를 선택할 땐 무얼 고려했어요?

믿음직스럽고 든든하게 일상을 지켜주는 브랜드 이미지, 사람이 직접 활용한다는 제품 특성, 정확한 사용 지침이라는 정보, 락스와 함께한 일상적인 이야기까지 두루 들어간 책이에요.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서체를 유기적으로 조직하려 했습니다.

제목용 서체는 유한락스 로고와 같이 대담하고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 서체(Druk, 초특태고딕)를, 본문용 서체는 휴머니스트 계열의 서체 중 명확함과 온기를 함께 표현할 수 있는 서체(Balance, 그레타산스)를 활용했습니다. 인터뷰 페이지에는 편안하고 따스한 분위기의 서체(정체)를 사용했고요.

페이지 성격에 따라 서체를 다르게 사용했다. ⓒ 유한락스

패키지가 독특해요. 마치 락스 한 통을 껴안은 기분이 들게 하는데요. 속을 판 상자 안에 책을 넣는 패키지를 만들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패키지를 제작한 계기가 있어요. 책 자체는 매뉴얼이나 사전처럼 어느 상황에서든 편히 들고 살펴보기 좋도록 작고 가볍게 디자인하게 되었는데요. 책이 작다 보니 누군가는 내용을 떠나서 소박하고 귀여운 책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이 점을 해결하기 위해 패키지를 만들기로 했고 여러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패키지가 단순 상자가 되는 일은 피하고 싶었어요. 상자를 만들려고 했다면 굿즈도 이것저것 넣게 될 것이고, 책을 제작한 본연의 목적에서 멀어졌겠죠. 책이 전면에 드러나면서도 유한락스 제품의 성격도 풍기는 패키지가 되었으면 했고, 책 외에 다른 요소가 없어도 부족하지 않은 형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파란색 패키지 안에 꼭 맞게 들어 있는 하얀 책 | 이미지 제공: 어반북스

유한락스 제품의 용기는 브랜드의 상징인 푸른색으로 힘차게 디자인이 되어 있는데요. 막상 제품 안에는 투명한 락스가 있지요. 패키지와 책의 관계에도 이를 적용해보고 싶었어요. 패키지는 락스를 안전하게 전달하는 용기이며, 책은 락스가 되는 것이지요. 패키지에서 책을 꺼내는 행위가 락스를 ‘직접 들여다본다’는 느낌과 연결되기를 바라요.

패키지 뒷면 락스 형태 그래픽 | 이미지 제공: 어반북스

아트 관련 작업을 두루 선보여 왔죠. <더 화이트 북>은 주로 해온 일과 사뭇 다른 결을 가졌을 텐데요. 상업 브랜드와 협업은 무엇이 달랐나요?

미술관과 관련한 작업을 주로 해 와서, 상업 브랜드와의 책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두 분야의 차이를 몸소 느껴보고 싶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도록과 브랜드 북은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디자인의 접근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이를테면 미술관 도록에서는 작품과 글이 스스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디자인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중립적인 역할을 수행하곤 합니다. 독자가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을 전제하고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일반 독자에게는 까다로운 부분도 있을 거예요. 반면에 브랜드 북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어떤 독자든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게 볼 수 있도록 디자인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본질만은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콘텐츠를 독자(관객)에게 온전히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품고 독자의 시점을 고려하며,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고민하고 구현하는 일이 기본이 되니까요. 이 프로젝트는 평소보다 그래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점이 숙제이자 흥미로운 포인트였고, 그 과정을 통해 배운 점이 많습니다. 프로젝트 관계자와 독자가 디자인에 만족하시기를 바라요. 그렇다면야 그것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과감한 디자인임에도 가독성이 높다. ⓒ 유한락스

늘 명료하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디자인할 때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듣고 싶어요.

견주는 마음이 없으면 창의력은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가진 매력과 아름다움이 제각각인 것처럼, 모든 내용과 콘텐츠에는 그 나름의 매력과 아름다움이 존재합니다. 내용과 본질이 무엇인지 집중하고 연구하고 상상하면 그 안에 모든 해결책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콘텐츠가 끌고 가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죠.

관계된 사람들의 생각이 모이고, 디자인에 반영되고, 한계를 느끼고, 가능성을 보기도 하는 그 모든 과정이 모여 결과물이 됩니다. 이때 디자이너는 배우이자 번역가이자 감독이 되어, 어떻게 하면 콘텐츠를 독자(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요. 우리는 콘텐츠 최초의 독자(관객)로서 콘텐츠가 가진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과장 없이 온전히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이렇게 탄생한 결과물이 어떤 독자에게는 가벼운 것일지 모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는 경험으로 다가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디자인을 하는 기쁨이자 사명감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kontaakt이라는 이름이 근사한데요. 어떤 의미를 담았어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프로젝트팀을 만들게 되었는데요. 각자의 개성과 전문 분야가 하나로 만나는 순간 마법이 펼쳐졌어요. 혼자서는 생각하지 못하던 것을, 함께함으로써 즐겁고 흥미롭게 상상할 수 있었죠. 미켈란젤로의 작품 <천지창조>가 묘사하는 장면처럼, 손가락을 맞대는 순간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으로 팀의 이름을 정했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순간뿐 아니라 디자인을 하면서 접하는 모든 순간에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의미를 담아 ‘contact(닿음)’라는 말을 떠올렸고, 아트 디렉터님이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공부했기에 독일어로 ‘kontakt’, 그리고 네덜란드어에서 종종 보이는 문자인 ‘aa’를 추가하여 합성어를 만들었어요. ‘kontaakt’라 이름 붙인 프로젝트팀이 현재의 스튜디오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김유영 기자

취재 협조 kontaakt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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