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with 데시그노 파타고니아
디렉터 마누엘 라포포트
— 아르헨티나 남쪽 바릴로체에 가구 스튜디오이자 공방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궁급합니다. 산업 디자인 중 가구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들려주세요.
저는 동료 마르틴을 코르도바 대학에서 만났습니다. 원래 저는 졸업하고 제 고향인 바릴로체에 와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르틴도 일심동체로 저와 함께 아르헨티나 남쪽에 와서 함께 일을 하기를 바랐어요. 그때가 2001년이었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에는 경제 위기가 찾아와 사회 전체가 무너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이곳 남쪽의 파타고니아로 와 작은 공방에 자리 잡고 주변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디자인과 가구 생산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 2001년 아르헨티나의 상황은 극단적이었습니다. 냄비 시위(Cacerolazo)를 하는 시민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전체를 울리는 모습이 세계 곳곳에서 방송됐어요. 아직까지도 델 라 루아(Fernándo de la Rua) 대통령이 카사 로사다(Casa Rosada)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도망치던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아르헨티나 전체가 침체를 겪고 많은 사업체들이 폐업을 할 무렵에 ‘데시그노 파타고니아’를 창립하셨단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웃음) 비록 상황이 좋지는 못했지만, 하고 싶었던 디자인을 마음껏 펼치고 구현했습니다.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 이것이 모든 디자이너들이 바라는 꿈 아니겠습니까. 저희는 심플한 오브제부터 복잡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가구와 전등 디자인을 선호했어요. 역량에 따라 새로운 사람도 고용하고 새로운 기술도 들이면서 다양한 제품들을 디자인할 수 있었지요. 이후 저희 제품이 지역 호텔과 도시에 알려지게 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고, 발릴로체가 최근 몇 십 년 동안 아르헨티나 도시 중 가장 큰 성장을 이룬 도시로 거듭나게 되면서 저희도 함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ㅡ ‘데시그노 파타고니아’ 스튜디오의 전망은 환상적입니다. 바릴로체의 명소인 세로 카테드랄(Cerro Catedral) 스키장 앞에 자리 잡고 있는데, 처음부터 지금의 위치에 있었나요?
아니지요. 저희가 시작할 때는 제 집 뒷마당 창고에 자리를 잡고 헐값에 재료를 사서 디자인했습니다. 아주 밑바닥부터 시작했다고 보시면 돼요. 그렇기 때문에, 버려지고 남는 소재들의 심미성을 살리는 방법을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이런 디자인이 하나둘씩 제작되고 팔리고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차차 스튜디오를 키워갔습니다. 무려 20년이 지났습니다.(웃음) 이런 시간이 지나자 저희가 꿈꿔왔던 회사를 차리게 되었어요. 특히, 제가 바라던 중소기업을 차리게 되었지요. 이렇게 저희는 항상 천천히 그리고 침착하게 저희가 원하고 계획했던 길을 향해 걸어왔고, 지금도 걸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경제가 요동치는 나라에서 디자인으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지역 경제에 맞게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사실 제가 지금 앉아 있는 곳이 바로 저희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공방인데 15평 조금 넘는 작은 공간입니다. 심지어 1층에는 저와 제 가족들이 사는 가정집이고요. 그러나 작은 스튜디오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고객들이 저희를 찾아오곤 합니다. 동네 주민들부터 아르헨티나 여러 곳에 있는 유명 건축가들이나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저희에게 디자인을 의뢰합니다. 그래서 생산량을 높여야 할 경우에는 외부 업체나 공장, 공방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아직 스튜디오의 규모를 더 키울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는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 없이 소소하고 행복하게 공기도 맑고 산이 보이는 곳에서 산책도 하고 낚시도 하면서 디자인을 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 좋아요.
— ‘데시그노 파타고니아’의 디자인은 아르헨티나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전시와 수상도 했고, 부에노스아아이레스 현대미술관(MAMBA)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 만큼 굿 디자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통나무, 난쟁이 동상 등 파타고니아 전통 제품들이 가진 흔한 장식을 넘어선 디자인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떠신가요?
맞습니다.(웃음) 저희는 최소한 다소 키치(kitsch)한 아르헨티나 남쪽의 전통성을 피해서 제품들을 디자인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르헨티나 남부 지방은 지역성이 매우 강합니다. 건축이나 인테리어 가구에 여기저기 생뚱맞게 통나무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통나무이즘(tronquismo)’이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서 집 한가운데 2미터 넘는 거대한 통나무를 잘라서 장식으로 설치한다거나 앉기 불편한 통나무로 만든 소파를 호텔에 가져다 놓은 인테리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누가 처음으로 가지고 왔는지,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우후죽순 나타나는 해괴망측한 난쟁이 동상들을 보고 ‘난쟁이즘(duendismo)’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 데시그노 파타고니아는 어떤 방식으로 자연의 원료를 선정하며 디자인에 사용하는지 궁금합니다.
자연 재료 선정의 경우, 오랜 시간 동안 숙달되어 만들어진 지혜와 직감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의 깊은 관찰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시행착오를 겪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구나 램프에 쓸 만한 재료인지 아닌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 오래 살면서 자연의 원자재를 잠깐 빌려 쓰는 개념으로 디자인을 해오다 보니, 저희도 모르게 스칸디나비아 디자인과 유사한 점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저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무는 남방 너도밤나무 속 푸밀리오(Nothofagus Pumilio)라고 불리는 파타고니아 토종 나무인데, 이 나무의 톤이 밝고 스칸디나비아에서 주로 사용하는 파구스 실바티카(Fagus sylvatica)와 닮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디자인을 북유럽 가구 디자인과 유사하다고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 유용한 재료를 제품에 사용한 예시를 소개해 주세요.
예를 들어서 제 뒤에 있는 옷걸이가 보이시나요? (곡선이 매우 특이한 나무로 만든 옷걸이다. 옷걸이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고정돼 있다.) 이는 메이플 나무(Madera de Arce)로 만든 옷걸입니다. 메이플 나무는 사실 토종 나무가 아니고 소나무보다 훨씬 더 가늘고 빨리 자라기 때문에 일종의 골칫거리입니다. 똑바로 자라지도 않고 구불구불하게 웨이브가 있는 것이 특징이라서, 저희는 이런 자연의 형태를 보고 옷걸이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잘라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길이도 꽤 있기 때문에 집이나 천장 높이에 맞게 맞춤형으로 제작이 가능하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제품입니다. 이를 설치하면 마치 자연의 동상을 방에 둔 것 같아 보이지요. 저희 디자인은 심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대한 자연의 질감과 소재의 심미성을 살려서 질서 있는 디자인을 하려고 합니다.
— 디자인은 대부분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서 시작되는 건가요?
창조의 과정이란 여러 경로로 열리게 됩니다. 어떨 때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독특한 디자인을 맡기도 하고, 어떨 때는 정부의 국립 기관이 가구를 의뢰하기도 하죠. 그럴 경우 저희가 그들의 요구사항에 맞게 적합한 재료와 형태, 기술을 연구해서 디자인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마르틴과 저는 남쪽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지역들을 탐방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산과 강을 돌아보는 모험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자연의 원료, 아이디어와 디자인 소재가 떠오르곤 합니다. 예를 들어서 저희 제품 중 마테 스툴(banquito matero)은 파타고니아에서 사용되는 염소 가죽을 보고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제품이지요. 여러 방식으로 제품들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소비자들의 필요에 따라 더 크게 혹은 더 작게, 더 높게, 더 낮게 변형되고 진화하면서 시리즈가 형성되곤 합니다.
— 현재 지구 오염이나 온난화 문제가 기후를 바꾸고 있습니다. 현재에는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일지라도 이후 사라지거나 사용이 제한될 수도 있는데 데시그노 파타고니아는 어떤 주로 재료를 사용하나요?
나무는 재생 가능한 자원이기 때문에 아직 큰 걱정은 없습니다. 저희 지역에서는 쓰는 만큼 철저하게 다시 심기도 하니까요. 나무야말로 이산화탄소도 줄이고 지구 온난화 문제에 맞서 대응할 수 있는 최상의 자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정부가 목축을 금지해서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이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는 나무도 있습니다. 알레르세(alerce)라는 라틴아메리카 남쪽에서 구할 수 있는 노송나무과(科)는 전통적으로 건축에서 쓰여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무분별한 목축 때문에 재생 속도가 느려지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남쪽에서 알레르세 나무의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그러자 사용하기 위해 잘라진 나무들이 버려지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저희는 버려진 재료를 가구 디자인에 재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뿐만 아니라 저희가 사용하는 또 하나의 자원은 돌입니다. 이 또한 아직까지는 파타고니아에서 매우 풍부한 자원이기도 합니다. 저희가 사용하는 모든 원료가 지구 친화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불필요한 과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디자이너들이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질문이 다소 어렵네요. 저는 디자이너로서 늘 생각하고, 추진하는 일에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앞서 나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하던 일을 언제나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이 디자인하는 일에 대해 깊이 사고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작품에서 한 발자국 멀리 서서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자신의 디자인 작업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 사람들을 넘어설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세계적인 문제는 심각한데, 이를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비판적이 사고가 더욱 필요하다고 봅니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관찰하고, 생각하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글 김엘리아나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Manuel Rapo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