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02

송은미술대상을 가리는 후보작가 전시

시대성을 반영한 주제와 매체 경향성, 그리고 서로 다름을 보기
미술 작품에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개인의 취향이나 시장의 기호에 따른 위계와는 구분되는, 동시대성을 갖춘 역량 있는 작품과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우리는 '수상제도'라는 형식을 미술에 대입해왔다. '예술작품에 어떻게 우열을 가릴 수 있느냐'는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경쟁구도의 제도를 이어온 것은 작품을 감식하고 비평하는 전문적 판단과 지지의 과정이 예술에 선순환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상제도는 특정 국가와 인종, 이념을 대변해온 것이라는 오명을 의식한 행보를 보이고도 있는데, 미술계의 올림픽으로 비유되는 베니스비엔날레가 올해 '황금사자상' 수상 작가로 흑인 여성인 시몬 리(Simone Leigh)를 선정한 것도 그런 배경을 짐작하게 한다.
송은 입구 전경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s. All rights reserved
Welcome Room 설치 전경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s. All rights reserved

예선 및 본선 전시 형식으로 시상되는 미술상

국내의 수상제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국공립미술관과 사립미술관, 민간재단과 언론사 등 여러 기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국립현대미술관이 1995년부터 2010년까지 개최한 《올해의 작가》 전시를 모태로 SBS문화재단과 후원 협약해 시행하고 있는 ‘올해의 작가상’이 대표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개최 10회를 맞은 ‘올해의 작가상’을 기념하여 그 연혁과 성과를 아카이브한 《올해의 작가상 10년의 기록전시를 내년 3월 26일까지 계획해 열고 있다. 수림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수림미술상’은 2017년 제정된 이래 예선, 본선을 거쳐 수상작가를 선정해왔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수림미술상 후보작가전 2022》에서는 서인혜 작가가 최종 영예를 안았다. 송은문화재단은 (주)에스티인터내셔널(구 삼탄) 유상덕 회장이 2001년 제정한 ‘송은미술대상’을 운영해왔다. 박혜수, 전소정, 손동현, 김세진, 김영은, 김준, 권혜원, 조영주, 권아람 등 다수의 작가가 이를 거쳐왔다.

송은 B2 설치 전경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s. All rights reserved

송은문화재단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해 ‘송은미술대상’에는 503명이 지원해 그중 20명의 작가가 예선에 진출했다. 이들 중 최종 1인은 내년 1월 대상 작가로 발표되어 상금과 함께 개인전 개최 및 작품 매입, 레지던시 입주 프로그램 등의 지원을 받는다. 12월 21일 개막한 《송은미술대상전》은 20명의 후보작가-고재욱, 김영글, 김현석, 노은주, 박그림, 박아람, 박윤주, 손혜경, 안성석, 애나한, 이수진, 이희준, 장종완, 전보경, 전혜림, 전혜주, 정지현, 정희민, 최고은, 황원해-의 작업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다. 이들은 각기 매체는 다르지만 1979년에서 1989년생의 비슷한 연령대로 그간 국내의 다수 전시에서 두각을 나타낸 작가들이다. 어느 작가의 작업이 ‘대상’을 수상할 만큼 가장 역량 있고 대표적이라 할 수 있을까? 수상제도 및 그와 연계된 전시가 지닌 의의와 한계는 무엇일까? 《송은미술대상전》은 관람객에게 이런 질문을 생각하게끔 한다.

이희준_(왼) A Raindrop, 2022_캔버스에 아크릴, 포토콜라주_225x225cm_(오)The Rehearsal, 2022_캔버스에 아크릴, 포토콜라주_225x225cm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s. All rights reserved
노은주_사물들, 2022_캔버스에 유채_193.9x450cm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s. All rights reserved

회화: 무엇을 그릴 것이며, 어떻게 그릴 것인가. 그리고 어디에서 볼 것인가.

송은 신사옥 1층에 들어서면 보라색 페인트가 칠해진 거대 철판 조각이 보인다. 박아람의 신작 <그림들>은 ‘그림이 건물의 벽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에 대한 실험으로 회화이자 조각이며 상황이다. 한편, 종말론적 증후가 감지되는 불안과 섬뜩한 감각을 자연의 유토피아적 풍경과 대중문화의 도상을 혼합·가미해 독자적 화풍을 만들어온 장종완의 회화는 2층 전시실 벽 끝에서 눈에 띈다. 그가 창안한 이미지는 환경 및 종에 대한 미래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3층 전시실 입구에서 그림이 있는 벽까지 걸어가는 관람자의 긴 동성과 시선 스케일 변화도 생각했다는 노은주는 흐르거나 움직이는 것 같은 시간성과 동세의 변화가 있는 대상을 회화로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에 대한 탐구를 더했다. 따라서 노은주의 회화는 멈춘 정물의 그림이면서 움직이는 순간의 포착이자, 회색조로 다소 메말라 보이는 사물의 장면을 회화적 표현을 가미해 재해석하는 효과를 드러낸다. 노은주가 회화로 대상을 옮기는 과정에서 사진을 활용했다면, 이희준은 사진의 매체적 특징을 보다 더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정방형 비율의 화면에 흑백 사진의 포토콜라주 이미지와 추상 도형으로 분할된 색면을 함께 연출하는 것으로 말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평면작품 3점 옆에 작은 크기의 설치작 1점을 더했으며, 이를 통해 시각성에 관한 그의 다각도적 관심을 표현했다. 전혜림은 회화의 화면을 분할하고 투시 방향에 변화를 꾀해 파노라마적 연출을 하며 설치 오브제를 더하거나 캔버스를 입체화함으로써 회화를 변형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녀가 선보인 <면면체>는 일종의 입체 퍼즐과 같은 시각적 유희와 교란을 준다.

박그림_尋虎圖_春秀 심호도_춘수, 2022_비단에 담채_250x340cm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s. All rights reserved

지하 2층에는 박그림의 <심호도 춘수>가 세 폭 제단화 내지 병풍을 차용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인간, 그리고 여성의 모습은 그 자신 및 모친의 페르소나이자 매체, 그리고 상징적 체계 안에서 이분법적 경계를 탈피하려는 예술적 시도다. 동서양의 요소가 혼합된 화풍을 가졌으며, 퀴어 정체성을 드러낸 작가로서 진정성 있는 자기 서사의 투영이 엿보인다. 미술에서 전통매체라 할 수 있는 회화를 지속하고 탐구하는 작가들이 그 자신의 조형언어를 개발하면서 기성의 관념에 저항하고 새로움을 모색하려는 열망과 경향성을 볼 수 있다.

 

 

도시의 건축적 질감과 평평한 디지털 매체 환경에서의 실존성

도심의 건축은 작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준다. 황원해는 도시 공간의 수직성과 건축물 표면에서감지되는 패턴에서 유기적 리듬을 지각해 캔버스에 옮겨 담는다. 그의 평면 화면에서 여러 도시 이미지의 레이어가 축적되어 있다면, 건축 현장을 사진으로 담아 퇴적층의 수직적 단면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표현하는 정지현은 실재하는 지면 아래의 물질이 내포한 시간성을 사진으로 감각하게 한다. 정희민은 라이트박스 위에 ‘꽃’에 비유한 아크릴 미디엄 등의 여러 비물질 재료를 결합한 <연결된 댄서들과 들뜬 밤>으로 물성과 실존 감각을 연결했다.

정희민_연결된 댄서들과 들뜬 밤, 2022_아크릴 미디엄에 잉크젯 전사, UV 프린트, 라이트박스에 실_194×530×10cm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s. All rights reserved
애나한_Pink Snare, 2022_캔버스에 아크릴릭, 나무, LED, 은박, 아크릴, 유포실사_300×300×300cm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s. All rights reserved
최고은_나의 른손이를 보셨습니까(물음표), 2022_시트지 프린트, 아크릴, UV프린트, 미러_디크로익 필름, 라즈페리파이, 카메라_250x150x350cm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s. All rights reserved

최고은은 광고 모니터와 CCTV, 그리고 나르시즘적 욕망을 자극하는 거울이 설치된 엘리베이터 공간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공공장소이자 폐쇄된 공간이기도 한 엘리베이터가 상징하는 사회문화를 게임, 만화, 광고의 이미지를 차용해 담았다. 김영글은 제목 <머뭇거리는 사이> 뉘앙스 그대로 전시 과정에서의 자취를 도심이 비치는 유리창 앞 공간에 남겼다.

애나한의 설치물은 실제 송은의 공간에서 모티브를 받은 만큼, 전시장에서 건축적으로 호응하며 빛을 반사하는 은박의 소재와 투명/불투명의 요소를 넣은 가벽의 구성으로 인해 관람객에게 장소적 경험을 유도한다. 박윤주는 가상의 영상 속에서 혼재된 건축의 요소와 장소, 그것의 무한한 교차와 반복 순환을 보여주며 판타지적 세계에서 끊임없이 수행하는 존재의 기시감을 연출한다. 이상 작가들의 작업에서 지금 환경에 대한 인식과 시대적 교감, 혹은 교감의 실패에 따른 상실의 미감을 읽을 수 있다.

전보경_MiRRORING, 2022_5채널 HD 영상_13분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s. All rights reserved
박아람_그림들, 2022_철판에 페인트_3면 각 180x180x0.7cm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s. All rights reserved

새로운 스토리텔링과 과학적 연계

이번 전시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와 기술발달에 따른 인간성의 유실 내지 새롭게 주어진 과제와 같은 문제에 반응한 작가의 작업도 여럿 볼 수 있다. 안성석은 익명의 군중이 아닌 개인의 관점으로 사회 문제를 보고자 하는 한편, 디지털 매체에 제의적인 성격을 부여해 사물에 일종의 인간성을 이식하고 확장하려는 모습이다.

 

전보경은 인공지능의 텍스트에 안무가가 신체 언어로 동작하는 영상 퍼포먼스로 연구를 이어갔고, 김현석도 두 개의 인공지능이 대화하는 것을 영상으로 실험했다. 이수진은 SF적 이야기를 구현한 영상과 설치 작업을, 전혜주는 꽃가루의 생태 법칙과 군사 무기 기술 간의 비교 나열한 채집 오브제 작업을, 고재욱은 서구중심적 사고에 반한 아시아인의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버섯 효모를 조형물의 재료로 써 환경 문제를 의식하며 새로운 매체를 탐색하는 작가적 면모를 보였다.

주최·주관 송은

협력 서울시립미술관

후원 까르띠에

오정은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송은

프로젝트
<송은미술대상전>
장소
송은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441
일자
2022.12.21 - 2023.02.18
시간
월 - 토 11:00 – 18:30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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