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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9

남겨진 이들이 기억하는 법, 애도의 디자인과 건축

헤아릴 수 없는 상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인이라는 말의 가장 적합한 정의란 ‘함께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라고, 공연예술이론가이자 작가 목정원은 썼다. 그런 의미에서 2022년을 함께 보낸 우리는 슬프게도 동시대인이고야 만다. 말을 얹기 어렵도록 아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슬픔 속에서도 해야 할 일을 찾아내는 것이 또한 인간일 테다. 앞선 비극을 더듬으며 거기 남겨진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지 짚었다. 우리에게도 어떤 실마리가 되기를 바라며, 지면 디자인과 건축, 예술 분야의 사례를 소개한다.

텍스트로만 가득 채운 <뉴욕타임스>의 1면

2020년 5월 24일, 미국의 신문 〈뉴욕타임스〉 1면은 글자로만 빼곡하게 채워졌다. 보통의 ‘신문 1면’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편집 디자인이었다. 헤드라인은 ‘미국에서 10만 명 가까이 사망했다. 헤아릴 수 없는 상실U.S. DEATHS NEAR 100,000. AN INCALCULABLE LOSS’. 지면을 틈 없이 가득 채운 글자들은 코로나19로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이름과 나이, 살던 도시, 그리고 그가 가졌던 빛나는 특징을 말하고 있었다.

 

몇 줄을 여기 옮긴다. ‘로저 에카트, 78세, 인디아나주, 은퇴한 소방관이자 올드스쿨 이발사Roger Eckart, 78, Indiana, retired firefighter and old-school barber’ ‘리라 A. 펜윅, 87세, 뉴욕주,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최초의 흑인 여성Lila A.Fenwick, 87, New York City, first black woman to graduate from Harvard Law School’ ‘윌리엄 D. 그릭, 55세, 메사추세츠주,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를 아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William D.Greeke, 55, Massachusetts, thought it was important to know a person’s life story’ ‘마리아 가르시아-로델로, 52세, 네바다주, 매일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던 사람.Maria Garcia-Rodelo, 52, Nevada, would walk her children to school every morning’.

ⓒ The New York Times

이 지면을 위해 〈뉴욕타임스〉는 수백 개 매체의 부고 기사를 샅샅이 뒤져 1천 명을 선정했다. 또한 코로나19 상황을 주시하는 데 지친 이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이슈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러한 구성을 택했음을 밝혔다. 이는 수치나 그래프로 표현되는 죽음이 아니라, 고유하게 제 삶을 꾸려갔던 개인이 떠났음을 보여주는 구성이기도 했다.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동일본대지진 직후 인터뷰에서 한 말이 부쩍 다시 회자된다. 이 기사에 또 옮겨본다.

이 지진을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면, 피해자의 마음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중략) 그런 게 아니라, 거기에는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2만 건 있었던 것이다.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 잡지 <주간 포스트>와의 인터뷰 중에서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름으로 1면을 가득 채운 〈뉴욕타임스〉의 결정 역시 기타노 다케시의 말과 이어질 것이다. 오직 하나뿐인 생이, 곁에 있던 몸이 떠났다는 사실, 목숨은 숫자로 치환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는, 그리고 남겨진 이들이 해야 할 일을 사유하게 하는 지면이다. 때로 종이 한 장의 힘은 실로 거대하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을 추모하며 이렇게 쓴다. ‘그저 명단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다.They Were Not Simply Names on a List. They Were US.’ (〈뉴욕타임스〉는 ‘우리가 잃은 것들Those We’ve Lost’이라는 이름으로,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이를 조명하는 시리즈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9·11 메모리얼 파크: 부재의 반추

9·11 테러가 일어나고 10년이 흐른 2011년 9월 12일, 꼭 그 자리에 9·11 추모공원(메모리얼 파크)이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추모공원 디자인을 위한 공모전에는 전 세계 63개국에서 5201개의 응모작이 출품됐다. 당선작은 이스라엘 출신 건축가 마이클 아라드Michael Arad의 설계였다. 그의 디자인은 꾹꾹 눌러담기보다는 비우는 쪽에 가까웠다. 비워진 공간에서는 길 잃은 감정이 쉬다 갈 수 있을 것이었다. 완성된 공원의 이름은 ‘부재不在의 반추Reflecting Absence’. 당시 붕괴된 빌딩의 흔적을 남기는 한편, 초대형 인공 폭포 두 개와 기념비를 만들었다. 정사각형 모양의 폭포 안에는 거대한 구멍이 있어서, 폭포의 물은 끊임없이 그 속으로 흘러내린다. 흐르는 물의 양은 분당 1만1400리터에 달한다. 방문객은 쏟아지고 흘러내리고, 또 쏟아지는 물을 바라보면서 옆에 있었으나 멀리 간 사람들이나 마른 듯하다가 다시 터지는 울음을 떠올리게 될지 모른다.

이미지 Wikimedia Commons

인공 폭포는 검정 대리석이 둘러싸고 있다. 여기에는 2001년 9·11 테러와 1993년 세계무역센터 테러의 희생자 3000여 명의 이름이 쓰여 있다. 이름은 원래 폭포 아래에 쓰일 계획이었으나, 캄캄한 무덤에 묻는 듯해 괴롭다는 유족의 의견에 따라 빛이 내리쬐는 바깥쪽에 쓰이게 됐다. 이 이름들은 알파벳순으로 나열되지 않았다. 희생자 간의 관계를 파악해 연결고리가 있는 사람들을 가까이 배치했기 때문. 친구나 가족, 동료 등 일상을 나누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근처에 둔 것이다. 희생자가 타인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개인이었음을 드러내는 한편, 그들을 아끼는 이들에게도 얼마간 위안이 될, 인간적인 배열이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콩배나무. ‘생존의 나무Survival tree'라고 불린다. 이미지 filckr

하지만 우리 유가족들에게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에요. 사랑하는 가족들이 마지막까지 일했던 곳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이곳이 공공의 장소가 되길 바랐어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는 곳이요.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위고,2021), 192쪽. 9·11 희생자 가족모임 ‘9/11 가족연대’의 일원 앤서니와의 대화 중에서.

이미지 Wikimedia Commons

희생자의 이름뿐 아니라, 이곳에는 당시의 상흔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요소가 여럿이다. 공원의 설계에는 조경 디자이너 피터 워커Peter Walker가 함께했다. 공원에는 400그루의 늪지백참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유일하게 다른 종인 콩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 나무는 테러 당시 살아남은 유일한 나무로, 현재는 강철 펜스로 보호돼 있다. 또한 부지 한편에는 9·11 메모리얼 박물관이 자리한다. 건축가 데이비스 브로디 본드Davis Brody Bond가 설계해 2014년 오픈한 곳이다. 이곳에는 당시 깨지지 않은 단 하나의 유리창과, 끝까지 서 있었던 철기둥이 전시돼 있다. 9·11 메모리얼 파크는 똑바로 보고 제대로 기억하라는 의미를 품은 모뉴먼트인 동시에, 무언가 잃은 자가 울 수 있는 터가 된다.

동시대 아티스트들의 창작물

예술은 분명히 애도의 방식이 될 수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창작자들은 애도하는 마음으로 창작물을 만들었다. 긴 설명 없이, 그러한 작품 중 몇 가지를 다만 덧붙인다. 이들의 그림과 음악이 누군가에겐 따뜻하게 내려앉을 것이다.

작가 콰야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그림. @qwaya_
작가 토코토코진 작품 162x130cm, acrylic on canvas, 2022
▲ 이랑, 삶과 잠과 언니와 나(2022)

김유영 기자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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