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새로운 서체의 즐거움, DON’T WORRY BABY ①
▼ 1편에서 이어집니다.
— 디자이너 부부로 함께 스튜디오를 운영하기 전에는 각자 어떤 일을 하셨나요? 더불어 돈 워리 베이비 스튜디오의 시작도 궁금합니다.
원영 저희는 사실 처음에 같은 스튜디오에서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만나게 됐어요. 이후에 이직해서 저는 잡지 쎄씨(Ceci)의 디지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는데, 2018년에 매체가 폐간하면서 독립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마침 상현 디자이너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면서 함께 스튜디오를 시작하게 됐어요.
상현 처음에 함께 일했을 때에도 막연하지만 이후에 기회가 된다면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려서 활동하자고 이야기하곤 했거든요. 저는 출판물 위주의 디자인 일을 해오다가 마케팅 회사로 이직해 전시와 행사 디자인을 했어요.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하다 보니까 금세 적응하게 되더라고요. 앞서 말했듯이 원영 디자이너가 회사를 나오게 되는 시점에 저도 고려해 오던 퇴사를 하게 됐고, 서로의 시점이 맞물리는 지금이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할 수 있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어요.
— 무엇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스튜디오 이름일 텐데요. 개인적으로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어요. ‘돈 워리 베이비’라는 스튜디오 이름의 탄생 배경 말이죠.
원영 상현 디자이너와 제가 즐겨 듣는 노래 중 미국 록밴드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Don’t Worry Baby〉라는 곡이 있는데요. 대게 스튜디오 이름을 지을 때에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문장도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게다가 노래 가사에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라는 위로의 메시지도 마음에 들었어요. 여기서 말하는 ‘Baby’는 애인을 뜻하지만, 저희에게는 그 대상이 바로 클라이언트예요. ‘이 프로젝트는 우리만 믿어! 걱정하지 마!’라고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달까요. 저희 메일 주소도 저는 ‘마미(Mommy)‘이고, 상현 디자이너는 ‘대디(Daddy)‘인데, 클라이언트 미팅을 나가면 꼭 물어보시더라고요. 혹시 그 ‘마미(Mommy)‘시냐고 말이죠.(웃음)
상현 저 역시도 위로의 메시지가 용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스튜디오 이름은 큰 고민 없이 바로 ‘돈 워리 베이비’로 낙점했죠.
상현 전주국제영화제 디자인 작업 이후에 원영 디자이너와 같이 영화제를 다녀왔어요. 저는 일도 일이지만 축제에 가서 잘 먹고, 기념품도 꼭 사야 하는 사람이거든요.(웃음) 무엇보다 현장에서 직접 저희가 디자인한 결과물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전에는 늘 모니터 안에서만 결과물을 확인했거든요.
— 이후로도 영화제 작업을 꾸준히 하셨어요. 전주국제영화제는 물론이고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디자인도 참여하셨잖아요.
상현 물론 원영 디자이너와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 게 가장 큰 이유이겠고요. 전주국제영화제 작업 이후로 담당하시던 관계자들이 저희 스튜디오를 주변에 또 소개해 주시면서 연이 닿게 되더라고요. 그뿐만 아니라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의 경우는 ‘돈 워리 베이비’라는 이름으로 경쟁 입찰에 참여해서 일을 받아 내기도 했어요.
— 그간 주로 예술 및 문화 기관과 협업 작업을 하셨어요. 클라이언트 잡을 선별하는 돈 워리 베이비 스튜디오만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원영 사실 저희가 선별해서 일을 할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안을 주는 모든 일이 소중하죠.
상현 맞아요. 일을 가려서 하진 않아요. 다만, 우리의 디자인 작업을 해보겠다고 스튜디오를 시작한 만큼 보다 사회 참여적인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커뮤니티 중심의 동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콘텐츠를 소개하는 영화제가 그런 점에서 저희가 하고 싶은 일의 모습과 잘 부합한다고 생각해요.
— 디자이너에게 클라이언트 잡은 마치 ‘밀당’과도 같은 것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충족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말이더군요. 돈 워리 베이비 스튜디오가 클라이언트 잡을 진행하면서 의견을 조율하는 커뮤니케이션 노하우도 궁금합니다.
상현 오히려 클라이언트에게 먼저 디자인을 제안하는 것이 노하우라면 노하우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클라이언트도 저희가 제안하는 아이디어를 기대하고 일을 맡겼다고 생각하거든요. 완전히 클라이언트에게 맞춰가기 보다 저희의 생각과 색깔을 보여주고 조율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 돈 워리 베이비 스튜디오 디자인의 색깔 혹은 지향점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원영 유행을 좇지 않는 디자인. 거스르는 건 아니지만 현재의 방향을 되물어 보고, 다른 방향과 방식으로 가 보는 것이 저희만의 디자인 색깔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현 세 가지 키워드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호기심, 느리게 가기 그리고 불안에 맞서기.
— 한편, 디자이너 부부가 함께 일하는 방법도 궁금했어요. 일을 하다 보면 서로 의견이 다를 때도 있잖아요.
원영 보통은 상현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저는 작업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부부이다 보니까 서로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때그때 바로 말해서 갈등이나 오해가 있었다면 바로 해결하고 일을 진행하죠.
상현 게다가 저희는 회사를 같이 다니기도 했잖아요. 또, 일을 할 때만큼은 디자이너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도 필요하죠. 일을 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홈 오피스로 일하고 있지만,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것처럼 작업해요. 예컨대, 클라이언트에게 제안할 시안을 저희는 각자 만들어요. 이를 모아서 서로가 피드백을 주고받고, 이후 클라이언트가 선택한 시안의 디자이너가 프로젝트 메인 디자이너 역할을 하는 식이죠. 대부분 원영 디자이너의 시안이 많이 채택되더라고요.(웃음)
원영 과거에 함께 회사를 다닐 때는 상현 디자이너의 시안이 자주 채택됐어요. 당시로서는 수긍하기 어려웠지만 말이죠.(웃음) ‘음, 저 디자인이 더 상업적이라서 뽑힌 것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정신 승리를 하던 시절이었어요.
— 처음에 연락했을 때 돈 워리 베이비 디자인 스튜디오의 모습은 어떨까 내심 기대했는데, 홈 오피스 형태의 공간에서 일하신다고 하셔서 놀랐던 기억도 나네요.
상현 처음에 스튜디오를 시작하면서 집과 분리된 작업 공간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마침 그때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작업 중이던 외부 일이 무기한 홀드 됐고, 수입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대료를 지불하는 건 부담이 크더라고요.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할 때와 비교해서 경제 환경에 대한 고민을 늘 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 홈 오피스에서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궁금합니다.
원영 대게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규칙적으로 일하는 편이에요. 오후 3시에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하원할 시간이라 한 명이 나가 있는 동안 다른 한 명이 일을 처리하는 식이죠. 또, 저희가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까 작업할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자주 틀어 놓는 편이에요.
— 평소 작업의 영감을 얻는 원천도 두 분이 다를 것 같아요.
원영 서점, 패션 브랜드, 굿즈 제작까지 아우르는 미국의 액츄얼 소스(Actual Source)로부터 영감을 얻어요. 특히 협업을 통해 소개하는 다양하고 재밌는 굿즈가 마음에 들어요. 미국 장난감 회사 웜오(Wham-O ®)사에서 제조한 직경 10.5 인치 플라잉 디스크 ‘Official Disc’와 부엌 도구 브랜드 캠브로(Cambro)와 협업해 만든 트레이 ‘Actual Source x Camtray’가 대표적이죠. 또,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러 가는데 이 또한 영감을 얻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죠.
상현 저는 현대 미술가 톰 삭스(Tom Sachs)를 좋아해요. 물론, 제가 신발을 좋아해서 이기도 하지만 그의 작업이 늘 흥미롭더라고요. 얼마 전에 국내 전시를 위해 내한했을 때 로켓 론칭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신기하게도 그때 흐르던 첫 곡이 비치 보이스의 〈Don’t Worry Baby〉였어요!
— 그간 각자의 영역에서 디자이너로 일해 온 만큼 작업 스타일도 다르잖아요. 부부이기에 앞서 디자이너로서 서로의 디자인을 어떻게 바라보시는 지도 궁금하더라고요.
상현 저는 디자인을 할 때 아이디어를 먼저 떠올리고 출발해요. 그리고 서체를 하나 쓰더라도 이걸 써야 하는 이유와 이야기가 있어야 하죠. 반면에 원영 디자이너는 시각적으로 상대를 단숨에 설득해요.
원영 상현 디자이너는 콘셉트와 스토리텔링에 많이 할애하는 편이에요. 저는 다채로운 색감과 비주얼로 호감을 먼저 이끌어내는 작업을 선호하고요. 분명 서로 다른 스타일이지만 ‘돈 워리 베이비’라는 이름 안에서 서로의 장점이 시너지가 난다고 생각해요.
글 이정훈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돈 워리 베이비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