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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 2022-12-12

패션 브랜드 ‘아크리스’가 100주년을 기념하는 법

아크리스 창립 100주년 기념 컬렉션

패션계를 대표하는 브랜드들이 수백 년의 역사를 기념하며 자사의 브랜드를 홍보하고 있다. 루이비통은 창립자 루이비통의 200살 생일을 기념하며 디자이너들과의 협업과 더불어 루이비통의 역사를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루이 더 게임(Louis the game)'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트렌드의 선구자의 자리에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구찌도 자사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아리아(ARIA)' 컬렉션을 선보임과 동시에 발렌시아가와의 협업을 진행하여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톡톡 튀는 트렌드를 조화롭게 선보인 브랜드들의 모습에서 왜 이들이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지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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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루이비통 못지않게 오랜 역사를 지닌 패션 브랜드가 있다. 바로 스위스 럭셔리 패션 하우스 ‘아크리스(Akris)‘이다. 최근 파리 패션위크에서 열린 2023 봄 컬렉션 쇼에서는 브랜드의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디자인들을 만나볼 수 있어 화제를 모았다.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와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Musée d’Art Moderne de Paris) 사이에서 열린 쇼에서는 마치 로마나 그리스 신전을 바로 가져온 듯한 웅장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 가운데 무지갯빛 배경이 인상적인 우고 론디고네(Ugo Rondinone)의 ‘We Are Poems’가 경쾌함을 더했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패션 컬렉션에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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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아크리스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는 알버트 크리믈러(Albert Kriemler)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고, 결과적으로 패션쇼의 중심이 되었다. 크리믈러는 “무지개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희망과 평화의 새로운 지평을 표현하고 있습니다.”라며 작품을 패션쇼장에 들인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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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작품은 그저 바라보는 옷이 아닌, 느낄 수 있는 옷을 선보이고자 하는 크리에이터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그는 동일한 드레스에 무지개색을 하나씩 입히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무지개의 모든 색을 담은 드레스가 선보이는 것으로 패션쇼가 마무리되며 그 의미를 더했다.

패션쇼에서는 브랜드의 지난 100년을 둘러볼 수 있는 요소들을 고루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쇼를 기획하는 데 있어 영향을 준 것은 브랜드의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책 〈Akris – A Century in Fashion Selbstverständlich〉를 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다소 길어 보이는 책의 이름 중에서 낯설어 보이는 독일어 단어 ‘Selbstverständlich’가 있는데, 이를 한국어로 바꾸면 꽤나 명쾌하다 ‘물론(Of course)’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단어야말로 디렉터의 마음속에서, 그가 패션 디자인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미적 이상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간결하지만 보자마자 단박에 감동을 받는 디자인을 선보여온 브랜드의 역사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브랜드 철학대로 간결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한 디렉터의 마음이 담긴 단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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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크리스의 세 번째 오너인 피터와 알버트 크리믈러가 편집했다. 이들은 앞치마를 만들던 작은 아틀리에에서부터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하이패션 브랜드로 발돋움하기까지의 여정을 책에 담았다. 스위스 섬유 산업의 중심지인 세인트 갈렌(St. Gallen)에서 브랜드의 뿌리를 찾는 이야기도 함께 수록되어 흥미를 더한다. 이어 패션 작가 제시카 아이레데일(Jessica Iredale)과 니콜 펠프스(Nicole Phelps)를 포함한 다양한 작가들의 기고문과 더불어 사진가 이완 반(Iwan Baan)의 사진 에세이가 독자들에게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매력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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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책에서 안무가 존 뉴미어(John Neumeier)와 예술가 토마스 러프(Thomas Ruff)와 진행한 협업 과정을 둘러볼 수 있다는 점도 재밌다. 아크리스는 2004년 파리 런웨이에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예술과 함께 했으며, 이제는 예술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패션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알버트 크리믈러가 여성복의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 사명을 느끼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담겨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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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다시 나타나거나 스스로를 새롭게 할 수 있는 지점을 반항적이고 일시적인 동기 부여라고 부르죠.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컬렉션. 새로운 세기로 나아가기 위해 뒤돌아봐야 합니다!

알버트 크리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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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크리믈러는 책을 제작하기 위해 1978년부터 1992년까지의 아카이브를 촬영하면서 즉시 이 아카이브들과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옛 컬렉션에 있는 디자인들을 새롭게 발굴해 내며, 그는 과거의 것들이 다시금 새로운 영감을 선사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이런 흐름에 따라 그는 자신의 아버지인 맥스 크리믈러(Max Kriemler)가 1978년에 선보인 브랜드 최초의 캐시미어 양면 코트 알파(Alpha)를 쇼의 시작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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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패션쇼에서 역사를 알 수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쇼 중간에 반복되어 나타나던 레이스는 1980년대 알버트 크리믈러의 디자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컬렉션을 위해 검색을 거듭했던 디렉터는 오리지널 레이스가 오늘날의 어떤 대체품에서도 찾을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새롭게 그 의미를 찾은 레이스들을 다시 재현하는 데에는 자그마치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끝없는 노력 끝에 탄생한 레이스는 변화무쌍한 매력을 선사한다. 부드러운 색감에서는 여성의 은은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며, 어두운색에서는 반대로 시크함을 느끼게 한다. 그야말로 레이스의 매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패션의 적재적소에 융합할 수 있는 자의 여유를 느끼게 하는 디자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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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션에서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풍기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게 만든 하트 패턴은 이탈리아 코모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프린트 제조업체 잔파올로 골디(Gianpaolo Ghioldi)가 아크리스를 위해 1989년 최초로 만든 패턴 프린트였다. 이는 ‘심장(Heart)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은 없으며, 이는 삶의 본질을 나타낸다’라고 생각하는 디렉터의 마음이 담겨 있는 프린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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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더불어 이 프린트는 30년 넘게 협업해 온 두 브랜드의 끈끈한 협력관계를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디렉터는 “패션은 결코 혼자만의 사랑이 아닙니다. 수년간 여성들이 탐내는 프린트를 디자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미래를 만들어온 기초 방식이었습니다.”라며 여성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고, 또 이를 100주년을 기념하는 쇼에 올린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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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하트 패턴과 더불어 패션쇼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한 가지 더 있다. 거칠게 그린 크로키를 바탕으로 한 자수와 프린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이는 모든 창작물이 스케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보여주었다. 창작물의 시작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 요소는 재치 있고 매력적이며 동시에 알버트 크리믈러와 그의 팀의 창작 과정의 민낯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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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완벽해 보이던 브랜드가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한 디자인은 한층 더 브랜드를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다. 브랜드가 100년 동안 창작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으며, 그와 동시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창작을 위해 땀 흘리겠다는 의지를 느끼게 했다. 이렇게 브랜드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패션쇼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디렉터의 따뜻한 마음과 열정이 담겨 있었고, 이런 진심이 담긴 컬렉션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박민정 객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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