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익중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1984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1987년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했다. 당시 학업과 생계를 위해 하루 12시간 아르바이트하며 생활했는데, 지하철 안에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작은 캔버스에 그린 ‘3인치(3x3inch)그림’은 그를 상징하는 작업이 되었다. 한국인으로서 타지에서 겪는 문화의 차이, 경험, 과거와 현대의 중첩은 이후 서로 다른 것이나 끊어진 것을 연결한다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이후 전 세계 아이들의 그림을 모아 설치미술로 만드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해 왔다. 대표 전시로는 1994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 작가와 조우한 <멀티플/다이얼로그>,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참가(특별상 수상), 1999년 파주 통일공원 <10만의 꿈> 설치 등이 있으며 대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는 광화문 복원 현장 가림막 <광화문에 뜬 달>(2007-2010),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 전시 <내가 아는 것>(2010), 순천만 국가정원의 <꿈의 다리>(2013), 런던 템스강 페스티벌의 메인 작품 <집으로 가는 길>(2016) 등이 있다.
<달이 뜬다>는 1980년대부터 이어져 온 그의 작업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동시에 새롭게 시도하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1층 전시장과 두가헌 갤러리에서는 ‘달’과 ‘달항아리’를 주제로 대형 작업이 걸렸다. 달항아리는 만들 때 상부와 하부를 따로 만들어 잇는데 작가는 그 제작 방식과 형상이 ‘연결’의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고 봤다. 2층은 산, 집, 새 등 자연이 어우러지는 작업을 모았다. 전통 산수화를 ‘강익중 스타일’로 그린 드로잉 연작 <달이 뜬다>과 소나무 필렛을 붙인 뒤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그을린 <산> 그리고 언젠가 한민족이 다 같이 밥을 뜰 날을 기대하는 설치작품 <우리는 한 식구>다. 지하 1층에서는 그의 대표 작품인 <내가 아는 것>의 영어 버전이 설치되었다. <내가 아는 것>은 삶에서 체화되어 나오는 지혜를 짧은 문장으로 적는 작업으로 그의 언어 감각과 유쾌한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이 작업은 다른 사람의 참여하는 공공미술 형태가 되면서 집단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그의 핵심 작업이 되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모여 단어를 이루고 문장이 되는 장면은 한 사람의 목소리를 담아 수천, 수만으로 모이게 한다. 이로써 강익중 작가는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Interview with 강익중 작가
— “어제 달 보셨어요?”
갤러리 응접실에 만난 강익중 작가와의 대화는 인터뷰 전날 개기월식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강익중 작가는 갤러리 사람들과 저녁을 먹다 우연히 알게 되었고, 밖으로 나가 비현실적인 ‘블러드문’을 마주했다고 한다.
— 200년 만에 개기월식이라니, <달이 뜬다> 전시 중에 이런 달이 뜨는 건 참 대단한 우연이네요.
정말 몰랐어요. 근데 제목 <달이 뜬다>도 꿈에서 달을 보고 지은 거예요. 뉴욕 조그만 시골집에 커다란 달이 떠오르는 걸 봤어요. 어찌나 큰 달인 지, 마치 영화나 만화 속에 나오는 커다란 달 있죠? 그런 달이 눈앞에 떠오르니까 너무 놀라서 쳐다보다 꿈이 깼어요. 그래서 제목을 ‘달이 뜬다!’ 보통 개기월식은 일 년에 한 번 볼 수 있대요. 그런데 이번처럼 월식과 천왕성 엄폐가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은 200년에 한 번 볼 수 있다고 해요. 그것도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는 지점이 매번 바뀌죠.* 우리나라에 이런 달이 비추는 게 보통 일은 아닌 거예요. 오늘 아침에 시를 하나 썼어요. 세상일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다는 뜻인데요. 달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가 아팠던 게 다 지나가고, 새로운 희망, 좋은 기운이 한반도에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국립과천과학관 박대영 천문우주팀장에 따르면, 2022년 11월 8일 한반도 전반에서 관측할 수 있었던 월식과 행성 엄폐가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은 1600년부터 2300년까지 우리나라에서 단 한 번밖에 없는 날이었다. 출처: 연합뉴스
오해
세상이 요란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요란한 것을
세상이 어지러운 것이 아니라
마음이 어지러운 것을
세상이 바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바쁜 것을
강익중
— 2010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렸던 개인전 <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이어지고> 이후 12년 만에 갤러리 전시였습니다. 그 사이 국내외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하셨어요.
제가 하는 공공미술은 시간이 오래 걸려요.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 신경 쓸 일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냥 작업이 100미터 달리기라면 공공 미술은 거기에 허들을 뛰어넘으면서 달리는 것과 비슷해요.
— 어린아이들의 그림을 수천 장 모아 다리를 만들거나 실향민들의 이야기를 모아 런던 템스강 다리 위에 소망을 띄우기도 합니다. 그 프로젝트들을 보면서 ‘시대적 소명을 다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작업하면서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해요. 나에게 지도가 주어졌는데 아무리 훌륭한 지도라도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You are Here’ 표시가 없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잖아요. 나의 위치를 파악해야지 어디든 연결될 수 있어요. 저는 그림을 그리든 뭘 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각자 벽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구멍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철학자라고 생각해요. 세상과 연결되려면 전제 조건이 ‘나의 위치 파악’이라는 거죠.
세상의 법칙은 두 가지로 이뤄져요. ‘콜링(Calling)과 앤써(Answer)’. 부름이 있으면 응답이 있는 거 거든요. “네가 이거 해볼래?”하는 질문이 있어야 “예 혹은 아니오”가 있는 거겠죠. 1998년, 작업 때문에 북경에 처음 가봤어요. 남북 아이들의 그림을 한데 모아 임진강에 꿈의 다리를 만들어 보려고 고민하던 때인데요. 북경 공항에서 비행기들이 쭉 늘어서 있는데 그중에 고려항공 비행기도 있더라고요. 한 부산 할머니가 그걸 보시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비행기는 와이리 작노.” 분명 경상도 사투리인데 왜 북한 비행기를 ‘우리’라고 하시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잘 생각해보니 그분이 살아온 세월은 북한도 우리인 거예요. 그분에게는 한 나라였던 거죠. 와, 저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어요. 그때 저는 마음속으로 손을 들었어요. ‘누가 끊어진 남북을 잇는 일을 해볼래’ ‘네가 한번 그런 역할을 해볼래?’ 하면 제가 해보겠다고 손을 든 거예요.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을 하는 거고요.
— 평양 아이들의 그림은 모으셨나요?
평양에는 두 번 방문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림은 못 모았어요. 오로지 종이와 크레용만 공급해 줄 수 있는데 대가를 지급하는 건 안 되거든요. 경제적인 어떤 걸 제공한다고 하면 가능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서로 간의 합의나 동등한 위치에서 온 게 아니면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기다리는 벽’으로 남아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 전시는 층마다 주제가 뚜렷하게 느껴지도록 구성되었어요. 1층은 달과 달항아리, 2층은 산과 자연, 지하 1층은 내가 아는 것 연작과 아카이브 작업이 설치되었는데요.
일단 뉴욕에서 작품을 다 보냈는데 갤러리현대 큐레이터분들이 구성을 잘 해주셔서 만족했어요. 제가 하는 작품은 결국 다 ‘연결’에 대한 것이거든요. 연결, 끌어안음, 나눔. 모음과 자음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처럼, 달항아리를 만들 때 하부와 상부를 만들어 이어 하나로 만드는 것처럼, <우리는 한 식구>에서 엎어져 있는 밥그릇이 하나가 되어 뒤집을 수 있을 때처럼요 아직 남북이 합쳐지지 않았지만, 언젠가 밥에 뜸이 들어서 함께 먹을 때를 기다리는 거죠. 발상을 전환해 보면 분단선도 이음선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저는 항상 인간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요.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잖아요. 그래서 안테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의 역할도 마찬가지예요. 예술이 직관을 가지고 낚싯대를 던지고, 과학자는 잡은 고기를 끌어 올리고 경제는 도마에서 고기를 자르고 정치는 그걸 잘 분배하는 역할. 각자 다른 것이지만 연결돼 있다고 생각해요.
— 달항아리를 표현한 〈Moon Jar〉도 있고, 색색의 달무지개를 그린 〈달이 뜬다〉도 있는데요. 달항아리는 작가님에게 ‘연결’의 사상을 내포한 존재로 기능합니다.
코로나에 걸려서 며칠간 끙끙 앓은 적이 있어요. 숨이 잘 안 쉬어져서 밖에 나와 하늘을 보니 달무지개가 정말 예쁘더라고요. ‘이건 찍어야 해’하며 허둥지둥 카메라를 찾고 보니 달무지개는 이미 사라졌어요. 행복은 바라보는 건데 그걸 잡으려고 하니 놓친 거죠. ‘내가 참 바보구나.’ 달무지개를 그려봤어요. 저는 달항아리를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목이 짧고 속이 빈 사람이요. 그 모습이 자기는 텅 비었지만, 세상을 담으려는, 세상을 향한 욕심인 것 같아요. 생로병사에 사로잡혀 사는 삶 그 이상인 거죠. 달항아리에서 사람을 빼고 나도 빼버리면 결국 달만 남아요. 그달은 내 안에 떠 있는 달이에요. 실제 우주와 내 마음속 우주는 결국 같은 크기일 거예요.
— 신작 중에 전통 산수화를 재해석한 드로잉 연작 <달이 뜬다>는 산과 들, 폭포 그리고 새와 사람이 등장합니다. 마치 ‘안빈낙도’ 같이 즐거운 분위기가 느껴지는데요.
동양화의 기본 화면 비율은 6:4예요. 여백이 ‘6’이고 나머지가 획인데 저 역시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의 비율을 ‘4’만 가져가자고 생각했어요. 그림에 이기려 들지 말자, 힘을 빼자고요.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은 세 명인데 저와 아내 그리고 아들입니다.
— 한편 <산> 연작은 나무 조각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산을 그리고 모아 붙인 뒤 표면을 불로 태우거나 그을리는 방식으로 장엄한 흔적을 드러냅니다.
달무지개가 비친 산을 생각했어요. 태어나서 성장하고 스러지는 순환의 산. 재료는 소나무예요. 처음에는 소나무 펠릿을 주워서 그렸는데, 두께가 다 달라서 산이 튀어나오고 들어가 보이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지금 작업은 주워온 재료는 아니지만, 높이를 다르게 맞춰서 만든 거예요. 순환은 제가 늘 생각하는 것 중 하나예요. 존 케이지는 하루에 한 번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서서 명상을 했어요. 공기 중에 먼지를 보면서 내가 먼지가 되는 경험, 그래서 그 먼지를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는 경험을 했다고 해요. 이 산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산과 연결되어 더 멀리 바라볼 수 있어요. 예술가의 사명 중 하나는 산에 올라가 보는 건데요. 그러려면 잔뜩 짊어지면 안 돼요. 늘 세 가지를 명심하려고 합니다. ‘단순한 생각, 욕심 없는 마음, 부지런한 몸.’
— 그림은 작지만, 그림들이 모여 만드는 스케일은 어마어마합니다. 일산 호수공원에 띄운 <꿈의 달>(2004)은 12만 6천여 점,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2013)에 공개된 <꿈의 다리>는 14만 5천여 점으로 구성되었지요. 한편, 영구 설치작이 아니라면 전시가 끝난 뒤 작품들이 어디로 갈지도 궁금합니다.
다 스캔해두고 있어요. 종이에 그림을 그린 거라 오래 가지 않거든요. 코팅하는 경우도 있지만,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설치한 작품도 십 년이 지나서 이제 바꿔야 해요. 햇빛과 비바람에 노출되면 변색할 수 밖에 없거든요. 기록으로 남겨두는 이유는 보존성 때문이에요. 지금까지 100만 장 정도 모았고, 스캔한 건 60만 장 정도 됩니다. 백 년 뒤에 2022년 사람들은 꿈이 뭐였나, 아이들은 어떤 것을 좋아했나 알아볼 수 있는 문화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 그러고보니 순천만국제정원에 설치한 작업에 참여하신 분들이 궁금하네요. 10년 전이면 벌써 성인이 된 친구도 있을 거고요.
안 그래도 이번에 한국에 와서 만났어요. 순천시에서 감사하게도 연락을 해줘서 250명이 신청했고 그중 50명을 만나 몇 시간을 함께 보냈어요. 지금 뭐 하는지 앞으로 뭐하고 싶은지 질의응답도 하고요. 내년 4월이 정확히 10년이 되는 해예요. 참여한 친구들은 저와 <꿈의 다리> 하나로 같은 기차여행을 안 셈이죠. 저에게도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 예전에 전시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한글의 위상이 바뀐 것을 느끼셨나요?
네, 그럼요. 한국인의 신바람이 결국 세계를 움직이는구나 싶어요. 신바람이란 신명 나는 바람이요. 외국에 가면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요.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면 혼자서 배웠대요. 한글이 정말 매력적인 언어거든요. 세계 사람들이 한글에 매료될 만해요. 한글에는 호환성, 유연성, 확장성이 있어요. 살아있는 생물체 같으므로 제가 ‘새로운 한글 표기법’을 계속 제안하는 거고요.
— 앞으로 기획하거나 진행하고 계신 프로젝트가 있다면?
전시는 여러 가지 있지만 지금 제가 굉장히 중점으로 생각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내가 아는 것’의 한글 버전을 세계화하는 일이에요. 스페인 한글문화원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거든요. 거기서 한글을 배우시는 분들에게 각자 ‘내가 아는 것’을 한글로 써서 각자 위치를 파악해 보는 거죠. 지금은 작게 시작하지만 예산이 더 주어진다면 유럽 각 국가와도 함께 해보고 싶어요. 유럽, 아프리카, 동남아.. 각 나라에 한글을 배우는 곳들이 있으니까 한글을 통해 연대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 거예요. 전 세계인들의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일지, 그게 한글로 드러난다면 좋겠어요.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물론 아니고요. 많은 관심이 필요해요. 저는 정말 해보고 싶어요. 매우 큰 프로젝트가 되더라도 꼭 해보고 싶어요. 이렇게 공공미술이 제 마음의 불씨를 계속 꺼지지 않게 합니다.
글 이소진 수석 기자
자료 제공 갤러리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