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4

매튜 바니가 끌어낸 25번째 ‘구속’

17년 만에 열리는 국내 개인전 <구속의 드로잉25>
글래드스톤 서울은 올해 마지막 전시로 매튜 바니(Matthew Barney b.1967)의 <구속의 드로잉 25(Drawing Restraint 25)>전을 선보인다. 매튜 바니는 2005년 리움미술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열린 개인전을 계기로, 국내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이번 전시는 무려 17년 만에 열리는 그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매튜 바니는 새로운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큰 파장을 일으키며, 세간의 이목을 끌어온 현대미술 작가다. 그는 퍼포먼스와 설치미술, 영화, 사진, 드로잉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면모로 자신만의 길을 모색해왔다. 의학, 스포츠, 패션, 젠더 등 그가 다루는 주제들 또한 다양해 그 언어를 종잡을 수 없다.

Matthew Barney, DRAWING RESTRAINT 25, 2022 Color and black-and-white video, silent 28 minutes ©Gladstone Gallery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그가 예일대 학생이었던 1987년부터 지속해온 ‘구속의 드로잉’의 25번째 시도다. 고등학교 시절에 레슬링 선수이자 미식축구 선수였던 매튜 바니는 ‘구속의 드로잉 1, 2’를 통해 몸, 신체에 대한 실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바닥에 묶인 강한 고무줄을 자신의 허벅지에 묶은 다음, 작업실 벽 위로 올라가 드로잉을 하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몸을 묶고 속박하는 한편, 구속의 제약에 맞서는 드로잉을 실현하고자 했다. 여기서 ‘드로잉’은 무언가를 그려내는 기술을 뜻하기도 하지만 구속을 끌어당기며 극단으로 끌고 간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매튜 바니의 ‘구속의 드로잉’ 연작은 이후 진화를 거듭하며, 구속의 개념을 확장해 갔다. 초창기의 구속이 물리적인 영역에 국한됐다면 이후에는 일련의 서사와 심리적인 구속까지 포함됐다. 작가는 다양한 장면과 상황들을 연출해 구속의 이미지들을 제시했는데, 이는 육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인간의 유한함, 성의 이분법적 구별 등으로 매우 다층적이다.

Matthew Barney, DRAWING RESTRAINT 25, 2022 Color and black-and-white video, silent 28 minutes ©Gladstone Gallery

새롭게 선보인 ‘구속의 드로잉 25’에서 구속은 부모가 자식을 놓지 못하고 소유하려고 하는 관습을 다룬다. 사운드가 없는 28분 분량의 영상에 매튜 바니와 그의 딸 이사도라가 출현한다. 부녀가 함께 하는 퍼포먼스는 이번이 처음이며, 이들은 작업을 위해 2021년 1월 매튜의 작업실에서 소수의 제작진과 함께 촬영했다. 영상 속 연출 배경은 주조소이며, 딸 이사도라와 아버지 매튜는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행위를 하고 있다.

협소한 주조소에서 이사도라는 작업용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는 끝을 태운 나뭇가지를 이용해 벽에 걸린 종이에 자국을 그린다. 아버지인 매튜도 작업용 마스크를 쓰고 있고, 이사도라의 모습을 포착해 바닥에 놓인 나무에 딸의 초상화를 새기고자 한다. 아버지는 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사도라는 상대적으로 동적이다. 이사도라는 심지어 자신의 운동화에 나뭇가지를 부착하고 힘겹게 발을 뻗어 종이에 그어보는 시도를 한다. 이 영상의 절정은 주조소 직원이 딸의 초상화를 새기는 매튜의 작업에 황동을 부으면서다. 흑백이었던 장면은 이후 불꽃의 색으로 바뀌며 이사도라는 공간 밖으로 사라진다.

Matthew Barney, DRAWING RESTRAINT 25, 2022 Color and black-and-white video, silent 28 minutes ©Gladstone Gallery
Matthew Barney, DRAWING RESTRAINT 25, 2022 Color and black-and-white video, silent 28 minutes ©Gladstone Gallery
전시 전경 ©Gladstone Gallery

매튜 바니는 퍼포먼스 영상을 제작하면서 사용했던 요소들을 전시장 중앙의 유리 진열대에 넣어뒀고, 딸 이사도라가 만들어낸 작업은 전시장 벽면에 걸었다. 벽면에는 이사도라의 작업물뿐만 아니라 매튜가 그린 색감이 두드러지는 드로잉-프레임 조합도 함께 걸려 있다. 매튜는 ‘구속의 드로잉25’ 영상뿐만 아니라 최근에 자신이 제작한 영화 ‘Redoubt’에서 차용한 이미지와 ‘구속의 드로잉 25’ 주제를 중첩한 색지 드로잉을 함께 전시했다. 

영화 ‘Redoubt’에서 매튜가 연기한 캐릭터는 아이다호의 황야를 가로질러 세 여성을 추적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성들을 감시하고, 여성들의 행위를 드로잉으로 남기는 캐릭터를 통해 또 다른 구속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작가가 대상을 묘사하는 행위를 통해 어떻게 대상을 소유하는지’ 살펴보는 일이었다. 작가와 대상 사이에 있는 모종의 소유욕과 경계심, 권력의 역학 관계는 ‘구속의 드로잉25’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딸 이사도라의 서사에 중첩된다.

Matthew Barney’s Redoubt, 2018 | 이미지: The Guardian
Matthew Barney’s Redoubt, 2018 | 이미지: ARTnews

특히 ‘DRAWING RESTRAINT 25: Headlamp’ 드로잉에는 작가가 ‘Redoubt’에서 연기한 판화가의 모습이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판화가는 머리에 헤드 램프를 쓰고 있고, 램프에서는 빛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작품의 특징은 모든 장면이 흑백으로 이뤄져 있지만 흘러나오는 빛의 끝단에 기하학적 평면들이 있다는 점이며, 이들이 모두 다채로운 색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DRAWING RESTRAINT 25: Headlamp, 2022 Graphite and gouache on paper in highdensity polyethylene frame 10 1/4 x 13 inches (26 x 33 cm) 14 3/8 x 17 1/8 x 1 1/4 inches (36.5 x 43.5 x 3.2 cm) framed ©Gladstone Gallery
Matthew Barney, DRAWING RESTRAINT 25: Cause, 2022 Charcoal and gouache on paper in highdensity polyethylene frame 8 x 10 1/2 inches (20.3 x 26.7 cm) 11 5/8 x 14 1/8 x 1 1/4 inches (29.5 x 35.9 x 3.2 cm) framed ©Gladstone Gallery
Matthew Barney, DRAWING RESTRAINT 25: Blue Foundation, 2022 Charcoal and gouache on paper in highdensity polyethylene frame 16 1/2 x 12 inches (41.9 x 30.5 cm) 20 5/8 x 17 1/8 x 1 1/4 inches (52.4 x 43.5 x 3.2 cm) framed ©Gladstone Gallery

구속이 창조의 원천이라는 작가다. 그가 지난 20여 년 동안 ‘구속의 드로잉’이라는 제목을 고집하며, 드러내 보인 구속들의 형태들은 다양했다. 그는 구속을 경험하고, 어떻게 해석하며 또 어떻게 구현할까? 작가가 구현할 ‘창조의 근원으로서 구속 이미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전시는 오는 12월 2일까지.

하도경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글래드스톤 서울

프로젝트
<구속의 드로잉 25(Drawing Restraint 25)>
장소
글래드스톤 서울
주소
서울 강남구 삼성로 760
일자
2022.10.14 - 2022.12.02
링크
홈페이지
하도경
수집가이자 산책자. “감각만이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라는 페소아의 문장을 좋아하며, 눈에 들어온 빛나는 것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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