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가 열리는 공간이 굉장히 큰데도 불구하고 공간의 각 섹션마다 영감을 주는 좋은 전시 디자인과 제품으로 선보였던 것들, 독특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여러 형태의 작품까지 볼거리로 가득하다. 전시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 가다 보면 한 예술가의 여정과 생각, 그리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장 줄리앙의 전시가 오픈되기 하루 전, 함께 전시를 준비한 허재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스테레오 바이널즈를 성공적으로 구축해 나가는 동시에 전시 기획부터 공간 브랜딩 작업, 그리고 영상 작업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것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허재영 디렉터는 장 줄리앙과 브랜드 누누를 런칭해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도 했다. 두 사람은 런던 센트럴 마틴스 디자인 스쿨에서 티셔츠를 만드는 수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하며 이후 긴 시간 친구로, 또 동료로 좋은 시너지를 내는 중이다. 허재영 디렉터는 장 줄리앙을 1, 2만 점이 넘는 작품이 있는 작가라고 얘기하며 ‘자기 자신에게 진솔한 작업을 하는 친구’임을 설명했다. 그러한 부분은 전시 내용 중 일부인 100여 권의 공책에 담긴 내용만 봐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장 줄리앙은 이번 전시 내에 자신이 기록해 뒀던 그림일기를 재해석해서 벽면에 다시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장 줄리앙은 2주 동안 직접 전시 공간에 드로잉을 했고, 천여 점이 넘는 작품을 세팅하는 데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공이 들어간 전시인데, 예술가 본인의 의도와 작품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럽게 담겨 있는 만큼 전시는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아도 빠져들게 된다.
허재영 디렉터의 설명처럼 젊은 작가가 큰 규모의 전시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그만큼 많은 작품이 있고, 또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작가와 그를 가까이서 오랜 시간 지켜본 이가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한 만큼, 지금까지 해온 여러 형태의 작업들이 어렵지 않게 눈에 들어오며 그만큼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각자의 내면을 보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또 한 예술가에 관한 관찰과 경험이 솔직하고 진솔하게 담겨 있는 만큼 작품과 작품, 작품과 제품 사이에 그 어떤 간극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한 작품이 다른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동시에 그가 직접 전시 공간 벽면에 그려 놓은 많은 드로잉은 전시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번 전시를 구성하는 그의 작품이 그렇다고 해서 일상적인 부분만 담은 것은 아니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나 장 줄리앙 특유의 따뜻함과 유머러스함이다. 때로는 피식 웃게 되고, 때로는 귀여움에 탄성을 내게 되는데 그 안에서도 깊이 생각할 여지와 일차원적으로 즐기게 되는 것들이 공존한다. 대형 조형물, 상품 형태로 나온 것들, 그리고 회화까지 꽤 많은 작품이 서로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다 보니 단조로움을 느낄 새도 없다. 이 다양함이 한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이 오히려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러한 부분이 시간의 흐름과도 닿아 있어서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오며 집중할 수 있는 요인인 듯하다.
장 줄리앙의 작품은 브랜드 누누에서도 볼 수 있는 특유의 유쾌한 눈코입 이미지부터 코로나19 속 자신의 경험까지 많은 것을 담았다. 그는 “나는 비판적인 성격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기 보다 불쾌한 것들을 유쾌하게 바꿔 사람들을 웃게 하고 싶다”며 작품 활동의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여기에 “나의 주변 세계를 관찰하고 타인과 소통하기에 드로잉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드로잉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만나도 통역이 필요 없다. 내가 단순하게 작업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드로잉을 하나의 언어로 간주하는 그의 가치관 덕에 좀 더 많은 사람이 직접적으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 형제인 니코와의 이야기, 가족에 대한 본인의 이야기 등을 한 섹션으로 두기도 했다.
전시 공간 외에도 잔디 언덕에는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대형 조형물이 있다. 장 줄리앙과 허재영 디렉터 두 사람의 합을 상징하는 ‘퓨젼(협력, Working together)’도 있고, 문어를 나타낸 ‘오또’도 있다. 전시 공간 내부에도 흥미로운 설치물들이 많이 있으니 눈으로 담아 보길 권한다. 누군가는 따뜻한 긍정 에너지를, 누군가는 사색의 기회를 얻게 될 좋은 전시에는 그 끝자락에 대미를 장식하는 회화 작품까지 있으니 여유 있게 감상해 보자.
글 박준우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지엔씨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