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5

네덜란드 디자인 스토어를 매료시킨 디자이너, 정선우

시선 사로잡는 세라믹 미니어처 의자 컬렉션
올 11월이면 오픈 30주년을 맞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콘셉트 스토어 '프로즌 파운튼(Frozen Fountain)'. 까다롭기로 유명한 프로즌 파운튼 큐레이터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신진 디자이너, 정선우를 소개한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콘셉트 스토어 프로즌 파운튼에 전시된 정선우 디자이너의 타이니 프렌즈 | 출처: 프로즌 파운튼 인스타그램

암스테르담의 가장 역사적인 운하 중 하나인 프린센흐라흐트(Prinsengracht)를 마주하고 있는 프로즌 파운튼을 일반적인 디자인 스토어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위트 넘치는 더치 디자인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90년대 초반, 프로즌 파운튼은 피트 하인 이크(Piet Hein Eek)와 리하르트 후텐(Richard Hutten) 등 전설적인 더치 디자이너들의 뒤를 잇는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해 이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디자인 플랫폼이자 차세대 디자이너의 등용문이었다. 마튼 바스(Maarten Baas), 디르크 반 데르 코지(Dirk van der Kooji), 사비나 마르셀리스(Sabina Marcelis) 등 프로즌 파운튼이 선택한 디자이너들의 명단도 화려하다. 네덜란드에 적을 두고 활동하는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은 프로즌 파운튼에 자신의 작품이 소개되는 것을 바라는 이유기도 하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 중인 세라믹 디자이너 정선우 디자이너 | 출처: 정선우 디자이너 제공

2021년 암스테르담의 명문 디자인 학교인 헤릿 리트벨트 아카데미(Gerrit Rietveld Academie)에서 세라믹 학과를 졸업한 후 세라믹을 주재료로 가구와 관련된 조각과 디자인 오브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정선우 디자이너. 그가 세라믹으로 제작한 미니어처 가구 시리즈 ‘타이니 프렌즈(Tiny Friends)’의 프로즌 파운튼 입점 소식과 함께 암스테르담의 NDSM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정선우 디자이너를 직접 만나 네덜란드와 디자인으로 인연을 맺은 계기, 프로즌 파운튼 입점 에피소드, 또 디자이너로서의 앞으로의 포부를 향긋한 커피 향과 함께 들어봤다.

정선우 디자이너의 세라믹 시리즈 '타이니 프렌즈' | 출처: Pierre Banoori

현재는 세라믹을 소재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세라믹 디자이너지만 한국에서 정선우 디자이너의 전공은 미디어 디자인이었다. 학부를 마친 후 영상 디자인 분야의 회사에 근무한 적도 있었지만 사무실에 앉아서 컴퓨터로 하는 업무에 전혀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다양한 탐색을 했고, 퇴근 후와 주말에는 동네에 있는 작은 공유 작업실에서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작업을 틈틈이 이어나갔다.

 

“​

사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가구와 오브제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가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8살 때 우연히 접한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책 때문이었는데요. 형형색색의 가구들이 공간에 자유롭게 배치된 유기적인 광경은 당시 제 주변 환경의 모습과 너무도 달라 정말 큰 인상을 받았어요.

저는 특히 제가 있는 공간의 분위기에 따라 기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성격이어서 매일, 매 순간을 보내는 일상적 공간이 주는 영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일상적 사물을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라믹이 저와 가장 잘 맞는 매체였는데 어떻게 보면 이것을 찾기 위해 중간에 꽤 많은 샛길을 걷게 되었고, 그렇게 돌아서 흙과 유약의 소성 결과물인 매체로서 세라믹을 만나게 되었어요. 제 머릿속에는 항상 수많은 추상적인 이미지와 선들이 얽혀서 돌아다니는데요. 이러한 아이디어를 가장 즉흥적이면서도 흥미로운 방식으로 현실 세계로 이끌어주는 매체가 바로 세라믹이었던 것 같아요.

앙증맞은 디자인의 미니어처 세라믹 의자 시리즈인 '타이니 프렌즈' | 출처: 정선우 디자이너 제공

이러한 운명과도 같은 세라믹에 본격적으로 매진하게 된 것은 예상치 못한 외부 요인도 있었다. 한국에서 다니고 있던 영상 디자인 회사가 갑자기 문을 닫게 된 것. 앞날이 걱정될 상황일 수 있지만 오히려 이것이 기회처럼 느껴져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급하게 유학을 결정하다 보니 평소 눈여겨보았던 암스테르담의 헤릿 리트벨트 아카데미의 지원이 마감된 후였다. 순수 미술과 디자인 관련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유한 헤릿 리트벨트 아카데미는 세라믹 전공이 있는 몇 안 되는 디자인 학교 중 하나다. 특히, 모든 전공이 순수 예술적인 작업을 지향하고 결과물을 미리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예상 밖의 결과물로 흘러가도록 하는데 집중하고 계획보다는 먼저 손을 움직이기를 권유하는 점이 정선우 디자이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원이 마감되긴 했지만 그냥 포기할 수 없었어요.

정말 그곳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학교 측에 먼저 연락을 해 보았는데 ,

일단 지원 서류를 한번 보내보라는 답변을 받았어요. 열심히 준비해 서류 전형을 다행히 통과하게 되었어요.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면접 때에는 영상 디자인 회사 근무 시절에 틈틈이 만들었던 세라믹 제품들을

모두 두 개의 대형 캐리어에 빼곡하게 담아 가 직접 보여드렸어요.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세라믹 제품들이 깨질세라 조심스레 가방을 끌고 네덜란드까지 와서 정말 우여곡절 끝에 받은 입학 허가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오브제 로테르담에 전시된 정선우 디자이너의 타이니 프렌즈 | 출처: 정선우 디자이너 제공

헤릿 리트벨트 아카데미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2021졸업과 함께 본격적으로 프리랜서 세라믹 디자이너로 첫 발을 내딛게 된 정선우 디자이너. 지난 5월 로테르담에서 열린 오브제 로테르담(OBJECT Rotterdam)에 전시한 세라믹 시리즈 ‘타이니 프렌즈’에 반한 프로즌 파운튼의 큐레이터에게 그 자리에서 전시와 입점 요청을 받게 되었다. 신진 디자이너로서는 정말 믿기 힘든 꿈과 같은 일이었다. 특히 자신의 작품을 오프라인으로 보여줄 수 있는 상시적인 공간이 생겼다는 것은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수익 창출의 기회를 넘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큰 의미가 있다.

 

프로즌 파운튼은 자유롭고 재치 있는 더치 디자인의 핵심 정신을 담은 작가뿐 아니라 네덜란드의 떠오르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작품 또한 함께 만나볼 수 있는 중요한 디자인 공간이라 네덜란드에 오기 전부터 늘 관심이 있었어요.

 

혼자서 ‘5년 정도 네덜란드에서 열심히 작업 활동을 이어나가면 프로즌 파운튼에서 내 작품을 보여줄 기회가 올까?’ 하는 생각을 내심 하고는 했었는데, 그 기회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와서 저도 사실 놀랐어요.

앙증맞은 디자인의 미니어처 세라믹 의자 시리즈인 타이니 프렌즈 | 출처: 정선우 디자이너 제공

프로즌 파운튼에 소개된 정선우 디자이너의 타이니 프렌즈는 손바닥 위에 얹을 수 있는 크기의 앙증맞은 세라믹 미니어처 의자 컬렉션이다. 헤릿 리트벨트 아카데미 입학 2년 차에 온 코로나 봉쇄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공간 제약으로 대형 작품이 힘들어져 자연스럽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소규모 작업으로 시작된 것이다. 세라믹으로 만든 미니어처 의자들은 실제 가구로 사용될 수는 없지만, 그 자체로 아카이빙 작업이 되기도 하고, 또한 향후 실제 크기의 의자로 만들어질 작업의 축소 모형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정선우 디자이너의 설명이다.

 

타이니 프렌즈는 미니어처 의자지만 ‘의자’라는 사물의 일괄적인 기능에서 벗어나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사물의 모습도 가지고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각각의 아이템에 ‘벤(Ben), 피터(Peter), 올리버(Oliver), 앨리스(Alice) 등 마치 사람처럼 제 친구들의 이름을 붙여주었어요. 기능적인 도구로서의 의자를 만든다기보다 그날 그날의 일상적 감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와 색, 표면을 표현한 행위들의 축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평소에 습관적으로 일상에서 마주한 장면이나 이미지를 바탕으로 목적 없는 드로잉을 하고는 하는데, 이 미니어처 의자들 또한 공간에 표현하는 연습장의 드로잉과 같아요. 이 작업은 현재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기한을 정해두지 않고 계속해서 진행할 예정이에요.

 

타이니 프렌즈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지난 7월에 프로즌 파운튼에 1차로 입점된 미니어처 의자 시리즈 전체를 통째로 한 명의 컬렉터가 주문을 넣었다. 그 때문일까. 정선우 디자이너와 프로즌 파운튼의 인연은 타이니 프렌즈 전시와 입점으로 끝나지 않을 듯하다. 타이니 프렌즈가 입점된 날 오픈한 전시에서 정선우 디자이너의 작품을 인상 깊게 본 프로즌 파운튼의 공동 대표인 콕 드 로이(Cok de Rooy)가 추가 협업을 제안해 온 것.

정선우 디자이너의 세라믹 시리즈, 타이니 프렌즈를 감상 중인 관람객 | 출처: Pierre Banoori

프로즌 파운튼을 위한 정찬용 식기 세트 제작을 의뢰받았는데,

어떠한 가이드라인도 없이 전체 세트의 디자인과 구성 모두 저에게 맡겨주셨어요.

저에게 온전한 자유가 허락되어 다소 부담이 되면서도 즐거운 긴장감을 느끼고 있답니다.

또, 올 11월에 4일에 열리는 프로즌 파운튼 오픈 30주년 기념행사를 위한 화병 제작도 의뢰받아 현재 제작 중이에요. 이러한 기회 역시 디자이너에게는 매우 드물고 특별해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멀고 먼 길을 돌아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매체인 세라믹을 통해 디자이너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정선우 디자이너. 그녀에게 세라믹은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세라믹 디자이너로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일까.

정선우 디자이너의 세라믹 시리즈, 타이니 프렌즈를 감상 중인 관람객 | 출처: Almicheal Frray

세라믹은 제가 가장 자유롭고 흥미로운 방법으로 제 내부의 세계를 외부에 표현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에 평생을 두고 더 깊게 탐구해가고 싶은 재료예요. 흙을 만져 형태를 만들고 유약을 연구하고 칠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저에게는 그 어떤 시간보다 즐겁기 때문에, 제가 가진 시간을 이 행위에 최대한 많이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작업적인 희망이라면, 18살 때 했던 다짐처럼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사람들이 미소를 짓는 일상적 사물을 꾸준히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또, 제가 만든 작업물을 보는 분들이 바로 ‘정선우’라는 이름을 떠올릴 수 있도록 저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만드는 것 또한 디자이너로서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김선영 객원 필자

헤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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