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제였던 tvN 프로그램, ‘뿅뿅 지구오락실’은 시작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신개념 하이브리드 멀티버스 액션 어드벤처 버라이어티’라는 거창한 소개나 통통 튀는 개성을 가진 4명의 ‘용사’들의 활약도 재밌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Y2K라 불리는 2000년 대의 트렌드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 풀하우스의 송혜교, 패리스 힐튼과 반윤희의 패션…. 20년 전의 유행을 출연자들이 완벽하게 재현한 모습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 충분했다. 이들의 모습에서 ‘패션은 돌고 돈다’란 말이 절로 생각났다. 짧은 볼레로, 넓은 카고 바지, 화려한 색감의 벨벳 트레이닝 슈트 모두 현재 유행하기 시작한 아이템들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화제가 된 것 중에 하나는 오마이걸의 멤버, 미미가 재현한 ‘애니모션’의 ‘이효리’였다. 두 사람의 모습을 비교한 모습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효리의 애니모션과 미미의 애니모션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바로 두 인물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의 모습’이 큰 폭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애니모션에서 만날 수 있는 폰은 그 당시에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던 ‘가로본능’폰이었다.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기 위해 아예 물리적으로 화면을 돌린다는 아이디어는 사람들에게 혁신적인 기술로 보이기 충분했다. 가로본능 폰뿐만 아니라 그 당시 피처폰(feature phone, 스마트폰 이전 사용된 전화, 문자메시지 전송, 사진 촬영 등 특정 기능만 가능했던 휴대 전화)은 외적인 모습을 특징으로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히려 제조사별로 각기 다른 모습의 디자인을 볼 수 있어 사람들의 개성을 드러내기 한결 수월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그 시절에 나왔던 휴대폰 디자인을 추억하며, 현재의 스마트폰의 개성 없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지금은 사업부가 없어졌지만, LG전자는 피처폰 시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디자인을 선보이는 회사로 그야말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20여 년 전이지만, 여전히 촌스럽지 않은 휴대폰 디자인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진 폰은 바로 ‘초콜릿 폰’일 것이다. 총 1,500만 대가 팔리며 LG전자의 첫 번째 ‘텐밀리언 셀러’ 휴대폰이 되었던 이 폰은 이전에는 다소 캐주얼했던 LG 휴대폰의 이미지를 고급스럽게 바꾸며 LG 휴대폰의 전성기를 이끌게 된다.
이후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한 ‘샤인폰’,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와 협업으로 선보인 ‘프라다폰’ 등, LG전자는 당시 휴대폰 디자인의 트렌드를 이끄는 회사로 인정받았다. 내놓는 휴대폰마다 화제가 되고 흥행을 이어갔던 LG전자는 피처폰의 놀라운 성공으로 스마트폰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한 것이 큰 독이 되고만다. 스마트폰보다 프리미엄 피처폰 개발에 힘을 쏟았고, 결국 휴대폰 시장 경쟁에서 뒤처지고 말았다. 결국 큰 적자를 감당하지 못했던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부는 화려한 과거를 뒤로하고 해체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LG전자 못지 않게 디자인으로 유명했던 회사는 SK텔레텍과 팬택이었다. 이들이 만든 휴대폰 ‘스카이폰’은 잔고장과 약한 보드로 인해 기능적인 면에서는 다른 제조사에 비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디자인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덕분에 감각적인 광고와 더불어 독특한 외관 디자인이 탄생하며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스카이폰만이 가진 고유한 기능과 더불어 독보적인 디자인 덕분에 피처폰에 이어서 스마트폰에서도 그 명맥을 이어나갈 것이라 기대했던 이들이 꽤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무리한 기업 인수와 더불어 브랜드가 가지고 있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억지로 변화시키려는 마케팅의 실수가 겹쳐지면서 사그라들고 말았다. 이후 베가 시리즈로 다시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가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때 유행을 선도했던 폰으로 모토로라의 ‘레이저(Razr)‘가 있다. 2000년 대 초반 해외 유명 스타들이 들고 다니며 인기몰이에 나섰던 이 폰은 화려한 색감과 좋은 그립감으로 피처폰을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유명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폰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2019년에는 폴더플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스마트폰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5G 버전으로도 나와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는 중이다. 삼성전자의 Z 시리즈와 유사한 디자인이기에 종종 경쟁상대로 꼽히긴 하지만, 예전의 명성에 비해서는 아쉬운 면이 많다는 평이다.
피처폰의 다양한 디자인에 비해, 현재의 스마트폰의 디자인은 다소 밋밋한 감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느 폰이 어느 회사 폰인지 살짝 헷갈릴 정도로 서로가 서로를 닮아있다. 이는 성능 위주로 디자인을 한 결과다. 피처폰에 비해 스마트폰의 기능은 놀라울 정도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것은 물론, DSLR 카메라 못지 않은 촬영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길을 찾고, 화려한 그래픽의 게임을 즐기며, 집 안 내에 있는 기기들과 연동해 컨트롤도 가능하다. 이제는 일상의 다양한 일들이 스마트폰과 연계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또한 화면이 넓어짐과 동시에 TV 못지 않은, 아니, 그보다 높은 해상도를 자랑하는 디스플레이는 휘어지기까지 한다.
기능을 중심으로 개발되어 다양한 기능을 즐길 수 있고 일상의 편의가 해결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피처폰 시절 우리가 즐겼던 개성과 감성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폴더블 폰이 조금이나마 이런 갈증을 해소해주고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일상에서 가장 오래 몸에 지니고 있는 만큼, 스마트폰 자체가 개성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일까? 이런 답답함은 전 세계 사람들이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인 듯하다. 획일적인 스마트폰 디자인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디자이너와 회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스마트폰을 선보이는 회사가 있다. 바로 영국의 IT 제조 기업인 ‘낫싱(Nothing)‘이다. 이 기업은 중국 원플러스(OnePlus)의 공동 창업자 칼 페이(Carl Pei)가 2021년에 창립한 회사이다. 그는 점점 똑같아지는 스마트폰 세계에 지루함을 느끼고 그 대안을 구상해왔다. 작년에는 무선 이어폰 이어원(Ear (1))을 먼저 선보이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회사 이름이 ‘아무것도 없는’이라는 뜻인 만큼, 이어원의 디자인은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싸여 있어 속이 훤히 보이는 것이 특징이었다. 투명한 디자인에 어울리도록 무게가 가벼운 것도 사람들의 만족도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이어 올해 7월 21일에 영국과 유럽 등 40개 이상의 국가에서 출시한 ‘폰 원(Phone (1))’ 또한 이어폰과 마찬가지로 투명한 모습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양은 50 MP 듀얼 카메라, 120HZ OLED 디스플레이, 퀄컴 스냅드래곤 778G+ 칩셋 등 다른 브랜드의 중급 모델과 비교했을 때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회사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제품인 만큼, 최고 사양을 바라는 것은 아직 시기 상조인 듯하다.
이 폰의 차별화 포인트는 ‘글리프 인터페이스(Glyph Interface)‘라 불리는 뒷면에 내장된 LED의 모습이다. 폰이 투명해진 것도 이 LED가 비치는 모습을 확연하게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이를 통해 앞면과 마찬가지로 뒷면을 통해서도 휴대폰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900개의 LED로 구성된 빛 패턴이 바로 글리프 인터페이스의 핵심이다. 이 패턴을 보고 사용자는 휴대폰이 어떤 상태인지 한 눈에 알 수 있게 된다. 충전 상태, 앱 알림을 알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벨 소리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조명의 패턴에 따라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다.
공부를 할 때, 일에 집중해야 할 때 집중도를 방해하는 것은 휴대폰의 알림이다. 알림이 뜨는 것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할 일을 잊고 휴대폰을 가지고 딴짓을 했던 상황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폰 원은 휴대폰을 보지 않게 하는 동시에 정말 중요한 알림이 오는 것을 놓치지 않게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 외에 휴대폰의 어떤 면에 상관없이 인식률이 높은 지문인식, 자주 쓰는 앱의 실행 속도를 높여줄 수 있는 앱 최적화 시스템 등이 특징으로 꼽힌다. 그와 더불어 환경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여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고 재활용 부속품을 사용한 점 또한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런 디자인과 기능만으로는 스마트폰의 디자인에 혁신을 이루었다 보기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외신들 또한 최신폰이라고 하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성능과 기능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에서는 폰 원을 언박싱하며 감탄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만날 수 있다. LED가 보이는 빛 패턴이 생각보다 실용적이라는 평과 함께 LED를 활용하여 재미 요소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반응을 만나볼 수 있다. 기능과 성능만을 냉정하게 따지고 들자면 다른 브랜드가 선보이는 스마트폰과 차별화 포인트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감성적인 면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는 듯하다. 제품의 이름에 ‘1’이 붙은 만큼, 앞으로 회사가 보여줄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기대가 되는 것과 동시에 이를 시작으로 앞으로 스마트폰 디자인이 얼마나 흥미로워질지 기대가 된다.
글 박민정 객원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