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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2022-09-15

위기의 난파선인가 구원의 방주인가

전시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작은 방주》

기간 2022.09.09 - 02.26
장소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지하1층(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9월 9일 개막한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작은 방주》는 2017년 국립대만미술관에서의 마지막 개인전 이후 오랜만에 돌아온 최우람의 대형 신작 등 50여 점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2013년 서울관 개관 당시 천장 위에 매달려 수십 쌍의 거대한 날개가 꿈틀대는 장엄한 움직임을 보여주던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Opertus Lunula Umbra)>의 미감은 이제 새로운 신작을 통해 서울관에 찾아온 기계생명체에 이식돼 스스로의 진화와 공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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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방주, 2022, 폐종이박스, 금속 재료, 기계 장치, 전자 장치 (CPU 보드, 모터), 210 x 230 x 1272 cm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작은 방주, 2022, 폐종이박스, 금속 재료, 기계 장치, 전자 장치 (CPU 보드, 모터), 210 x 230 x 1272 cm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기계생명체(anima-machine)’. 최우람(b.1970)의 작업에 고유명사처럼 따라붙는 이 말은 그가 작가로서 30여 년간 보여준 연작의 특징-생명체에 준하는 기계 매커니즘과 키네틱 미학의 아성-을 보여준다.

 
작가가 유년기 보았던 애니메이션 ‘마징가 Z’처럼 구원자로서의 로봇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상상은 자율주행자동차와 AI로봇 같은 오늘날 기기공학의 편리와 유용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재난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과학의 힘을 빌어 탄생한 로봇 영웅의 서사는 조각에 퍼포먼스를 더하고 여기에 세계관을 축적한 최우람의 시도를 거치며 계속 진보해왔다. 생명체의 호흡처럼 느리고 반복적인, 그러나 살아있음에 가장 본질적이며 주체적인 동세를 보여주는 기계, 아니 새로운 종의 유기체는 시대가 간과한 철학적 사유를 이끌며 동시대의 위기를 성찰하는 것이기도 하다.
(좌) 검은 새, 2022, 폐종이박스, 금속 재료, 기계 장치, 전자 장치, 가변설치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우) 원탁, 2022, 알루미늄, 인조 밀짚, 기계 장치, 동작 인식 카메라, 전자 장치, 110 x 450 x 450 cm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지푸라기로 된 인간 군중 형상이 잃어버린 자기 머리를 찾아 몸을 움직인다. 둥근 원탁을 받치고 있는 몸체와 원탁 위에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머리. 허리를 들었다 숙이며 규칙적이고 숨 가쁘게 움직이는 그들 움직임은 사실 매우 기계적이다. 끝내 머리를 차지할 수 없는 무한 노동과 관성마저 붙은 실패가 순환하는 <원탁>의 상공 위로 검은 날개를 펴고 유유히 회전하는 <검은 새>가 보인다. <검은 새>는 모션 캡처 카메라를, <원탁>은 로봇축구의 정교한 기술이 구현됐다는 장치의 비밀을 알면 지푸라기 같은 그들 외피의 남루함은 이 상황을 이끄는 거대 주체에 대조되어 현실의 속내를 더욱 비극적으로 극화하는 것만 같다. 관람객은 이 밀짚맨(strawman)이 발을 딛고 있는 지면에서 그들의 처절한 제스쳐와 그들 위로 구르는 머리, 그리고 그것을 감시하듯 비행하는 검은 새의 역설적인 상황 장면을 응시한다.

 

가려진 채 지푸라기 몸체의 움직임만을 보여 주는 <원탁>은 알베르 까뮈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굴러 떨어질 것을 알고도 바위를 밀어 올리는 벌을 반복하는 시지프스의 상황을 두고 부조리라고 평한 것을 상기시킨다.

국립현대미술관

작은 방주, 2022, 폐종이박스, 금속 재료, 기계 장치, 전자 장치 (CPU 보드, 모터), 210 x 230 x 1272 cm | 사진: 오정은

5전시실을 채운 거대 설치작 <작은 방주>를 보자. 흑백의 프레임으로 구성된 거대한 배가 장대한 군무를 추듯 몸체를 펴 낱개의 기계장치를 움직이고, 선체 중앙에는 한쪽 팔을 들어 방향을 지시하는 두 선장이 등을 마주하며 정 반대 방향을 보고 있다. 선박의 항로를 표시해야 할 등대는 배의 원형 철제 프레임 상부에 속해있다. 세로축 12미터, 궤의 움직임 최대 폭이 7.2미터, 등대 끝까지의 높이는 5.5미터에 달하는 대형 크기의 기계 선박이 ‘웅-‘ 묘한 기계음을 내며 약 20분 간 노를 펼치고 접는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뱃머리 장식이어야 할 <천사>는 제 위치에서 떨어져 날개를 축 늘어뜨린 채로 벽면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 매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벽에 박힌 <닻>과 닫힌 문의 형태만 끊임없이 연속되는 영상 <출구>가 장엄하지만 모순적인 퍼포먼스에 동참한다. 인간 신체의 한계를 자각하고 점멸하듯 위태로운 인류 생존의 문제를 각성하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방주, 그 방주에 오르거나 오르지 못하는 선택과 차별, 권력과 위계의 문제를 직시한 작가가 기계 생명체에 투영한 동시대의 면면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좌) 닻, 2022, 레진, 아크릴릭, 스테인리스 스틸, 73 x 60 x 54 cm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우) 천사, 2022, 레진, 24K 금박, 스테인리스 스틸, 162 x 133 x 56 cm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문명사회와 인간 욕망의 도착지로 맞이한 팬데믹의 암은 기계 생명체를 만드는 예술가의 숙고를 경유하여 트랜스휴머니즘의 담론으로 나아가고 있다. 코로나 검사와 진료 의료진이 착용한 방호복의 섬유와 같은 소재 타이벡(Tyvek)으로 만들어진 <하나>는 천천히 피고 지는 꽃의 순환을 따르며 생사의 존재감을 발한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대립되는 감각을 이끄는 이들의 동력은 때로 야심차고 때로 절망적인 것으로, 그러나 예민하고 숭고한 삶의 항해로부터 치환된 서사로 계속 열리고 닫힌다. 방향감각을 잃고 표류하는 난파선은 노아의 방주가 될 새로운 통찰이 필요하다. 지금, 그것을 최우람의 기계생명체를 통해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간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는 2014년부터 10년간 매년 국내 중진 작가 한 명(팀)을 지원하는 연례전이다. 2014년 이불, 2015년 안규철, 2016년 김수자, 2017년 임흥순, 2018년 최정화, 2019년 박찬경, 2020년 양혜규, 2021년 문경원&전준호에 이어 2022년에는 최우람이 선정됐다.

오정은 객원 에디터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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