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번 전시 이전에도 한국에서 몇 차례 작품을 선보인 바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기도 하며, 무엇보다 셰퍼드 페어리라는 작가가 지니고 있는 몇 가지 근간이 되는 정체성을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어서 좋은 전시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난 전시들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물론 셰퍼드 페어리의 뿌리는 스트릿 아트다. 1989년 레슬러 앙드레 더 자이언트(Andre the Giant)의 초상을 모티프로 하여 만든 스티커 작업과 그래피티 작업이 초기 형태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러한 앙드레 더 자이언트를 테마로 삼은 오베이 자이언트 캠페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전시 말미와 중반에 등장하지만 그가 스트릿 아트로부터 출발한 것은 말 그대로 스트릿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아서이다. 그가 영향을 받은 스트릿 문화는 힙합, 그리고 스케이트보드 문화, 펑크와 같은 것들이었고 그것은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영미권 서브컬처의 근간 중 하나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보더들의 커뮤니티, 힙합 음악을 표현하는 이들의 커뮤니티 사이에서 그는 여전히 높은 인지도는 물론 존경도 받고 있다. 그러한 문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표현했고 그것이 알려지는 과정에서 높은 인지도를 얻으며 문화를 널리 알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가 문화를 존중하고 존경한다는 것은 보드 데크부터 음악가들의 초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번 전시에 담긴 작품 수는 총 470여 점이다. 그만큼 그에 관해서 방대한 양의 자료가 준비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환경, 인권, 정치, 경제, 사회를 넘나들며 메시지를 전달했다. 반전에 관한 이야기부터 지속 가능성, 다양성 존중 등 그가 지향하는 방향은 좀 더 열린, 다채로우면서도 그것을 서로 인정하고 평화롭게 나아가는 세상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도 그는 급진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롯해 과거 문화를 만들어 오고 사회적으로 활동해 온 이들의 얼굴을 담아냈고, 사회적으로도 좋은 영향력을 갖추고 있다. 일례로 2020년에는 타임지 커버를 장식했는데, 97년 만에 표지에서 TIME 로고를 빼고 VOTE를 넣었으며 그 커버의 제작을 맡았다. 여기에 그는 세계 곳곳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하지만, 여전히 대형 벽화를 통해 그래피티의 의미와 메시지 전달이라는 것을 실천한다. 비주류를 주류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저항의 표현 역시도 실천한 것이다.
그가 담는 문구 ‘OBEY’는 1988년 영화 <화성인 지구 정복>으로부터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오베이라는 문구를 반대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전복하여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처음에는 실험처럼 했다가, 이후 자신의 작품에 관한 반응을 접하며 예술가로서 사회적 책임과 사명감을 지니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의 표현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여전히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주제로 한 작품, 그리고 소수 민족 여성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드는 중이다. 그러한 메시지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몇 차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인종차별, 성차별, 혐오 범죄, 환경파괴, 전쟁에 반대한다. 인권 운동가인 안젤라 데이비스(Angela Davis), 제시 잭슨(Jesse Jackson)의 얼굴이 담긴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 자신이 영향을 받은 음악에 존경을 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여기서 등장하는 음악가는 단순한 음악, 음악가 그 이상이다.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슬릭 릭(Slick Rick)과 같은 힙합 문화의 파이어니어에 해당하는 이들부터 조 스트러머(Joe Strummer), 이안 맥케이(Ian MacKaye) 같은 펑크 음악의 입지적 인물까지 고루 담겨 있다.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에 대한 존경부터 투팍2Pac,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 엘엘 쿨 제이(LL Cool J)까지 힙합 역사에 남는 인물도 담았다.
이번 전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에 관해서 좀 더 본질적인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전시다. 물론 최근의 작품도 많이 있고, 좀처럼 보기 힘든 작품도 여러 점 공개했으며 무엇보다 전반적인 전시 구성을 통해 그가 몸담고 있는, 뿌리내리고 있는 스트릿 문화 자체를 이해할 수 있기도 하며 그것이 어떤 식으로 메시지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셰퍼드 페어리라는 예술가는 어떻게 그것을 표현하고 또 작품으로 구현하는지를 만날 수 있다. 의류 브랜드부터 정치적 이슈의 중심에서 발견하게 되는 작품, 그리고 여전히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벽화까지 그를 구축하고 있는 아이덴티티의 구성 요소는 굉장히 단단하다.
더불어 그러한 힘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이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그의 커리어 초기부터 하나씩 찾아보다 보면 여러 가지를 배우고 얻어 갈 수 있기도 하다. 누군가는 스케이트보드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누군가는 힙합에서의 그래피티에 관해서 찾아볼 수도 있다. 더불어 누군가는 스트릿 패션을, 누군가는 여러 펑크 음악가와 힙합 음악가를 찾아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반전 메시지부터 소수자 이슈까지 천천히 하나씩 찾아보다 보면, 그것이 곧 셰퍼드 페어리가 이야기하는 소통 방식이자 예술을 직접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이다. 심지어 직관적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지도 않다. 전시는 11월 6일까지 롯데뮤지엄에서 열린다.
글 박준우 객원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