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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2-09-07

방송국에는 디자이너가 산다 ①

KBS 프로그램 브랜딩 & 그래픽팀 총괄감독 김지혜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은 무섭다. 어느 날 불현듯 뜬 계정 하나 ‘@zzzzzzz_zi’. 계정 소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KBS 프로그램 브랜딩 & 그래픽 디렉터 김지혜’ 그리고 ‘KBS 프로그램 브랜딩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 기록자’. 방송국에도 으레 디자이너가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들이 방송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었다. 더욱이 오늘날 영상 매체와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디자인과 브랜딩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 상황. 공영방송 KBS가 송출하는 프로그램의 브랜딩과 그래픽을 담당하는 김지혜 총괄감독에게 방송국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의 업무와 역할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운영하는 프로그램 브랜딩 아카이빙 계정에 대한 궁금증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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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김지혜

KBS 아트비전 디자인부 프로그램 브랜딩 & 그래픽팀 총괄 감독
KBS 프로그램 브랜딩 & 그래픽팀 총괄감독 김지혜

일상에서 쉽고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매체가 방송인데 정작 그 안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를 인지하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방송국에서는 어떤 직함으로 활동하시며, 맡으신 업무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KBS 방송 프로그램의 타이틀 디자인과 키 컬러, 포스터, 오프닝 CG 등 전반적인 비주얼 제작과 디렉팅을 맡고 있습니다. 보통 KBS의 대형 프로그램을 담당하는데요. 삼일절, 광복절 등 국가기념일 행사와 가요대축제, 연예대상 등 연말연초 시상식 프로그램을 맡아 왔어요.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2021 한가위 대기획 ‘피어나라 대한민국 심수봉’, 2021 송년특집 ‘We’re HERO 임영웅’이 대표적입니다. 이 외에도 <연예가중계>, <6시 내 고향>, <아침마당>, <한국인의 밥상>, <걸어서 세계 속으로> 등 KBS 대표 장수 프로그램의 리브랜딩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2022 설대기획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 디자인
2022 설대기획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 방송 장면

학부에서는 동양화와 철학을, 대학원에서는 영상 디자인을 전공하셨어요, 미술과 철학을 전공하신 후 영상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저는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걸 한 장의 화폭에 담기에는 부족하더라고요. 만약 이미지가 움직인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디어 아트가 제가 원하는 바에 부합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영상을 공부하다가 지금의 직업까지 연결된 거죠.

한편 공영 방송사인 KBS를 선택하신 배경도 궁금합니다. KBS 이외에도 다른 옵션이 많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영상을 공부하면서 미디어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어요. 영상 프로그램 공부를 마치고 대학원 진학에 대한 생각을 부모님께 말했는데, 학업은 이제 제가 알아서 벌어서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늘 받기만 하던 외동딸 생활을 청산하는 순간이었죠. (웃음) 급한 대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어요. KBS 원서 공고 마감 하루 전날에 급하게 지원했는데, 우연인지 아니면 운명인지 KBS 아트비전 디자인팀에 입사할 수 있었어요.

방송국 안에서의 브랜딩과 그래픽 디자인의 특징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그래픽 디자인, 브랜딩 작업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방송에서의 그래픽은 시청자의 프로그램 내용 이해를 돕고, 시청에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시각적인 디자인 활동을 하는데요. 뉴스, 예능, 교양 등 각 프로그램의 다른 특성과 시청 연령대에 따라 디자인 콘셉트와 구성을 기획합니다. 프로그램 브랜딩은 모니터라는 프레임의 비주얼 영역에서 타이포그래피, 일러스트, 모션 그래픽, 세트 디자인 등 여러 분야의 디자인을 총체적으로 기획해 보여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1984년부터 2019년 11월까지 방영한 <연예가중계> 리브랜딩 작업물

방송 프로그램에 ‘브랜딩’이라는 단어가 적용되는 부분도 흥미로웠어요. 방송 디자인 영역에서는 프로그램을 하나의 브랜드 단위로 인식하는 걸까요?

보통 브랜딩을 말할 때는 기업 브랜드 혹은 제품 브랜드를 먼저 떠올리죠. 이들이 회사의 전체적인 큰 이미지를 브랜딩 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저는 한 프로그램의 타이틀, 그래픽, 컬러 키, 자막, 세트, 소품 영역 등 시각 디자인을 총괄적으로 디렉팅 하는 걸 ‘프로그램 브랜딩’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타이틀을 디자인하고, 그래픽물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브랜딩이라고 할 수 없어요. 프로그램 팬을 위한 굿즈, 유튜브 콘텐츠, 마케팅 등 전반적인 커뮤니케이션까지 아울러야지 브랜딩의 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KBS 대표 장수 프로그램인 <6시 내고향>과 <아침마당> 리브랜딩 작업

앞서 KBS 대표 장수 프로그램을 ‘리브랜딩’하는 작업도 하신다고요. 기존 프로그램을 따르는 팬층이 두꺼울수록 프로그램의 이미지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을 듯싶은데요. 리브랜딩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말씀처럼 새로운 프로그램의 디자인을 기획하는 것보다 더 조심스럽고, 여러운 일이 기존 프로그램의 리브랜딩입니다. 2, 30년간 이어진 프로그램에는 팬덤이 있어요. 애청자들 말이죠. 프로그램이 나이가 들어가는 만큼 시청자의 연배도 함께 익어가거든요. 장수 프로그램의 애청자는 보통 나이대가 있는 분들이세요. 리브랜딩 과정에서 프로그램 이름이 같다고 해서 디자인을 완전히 다르게 바꿔버리면 이들이 다른 프로그램으로 오인해서 ‘채널 탈락’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디자인에 큰 변화를 시도하기 보다 전통을 유지하면서 이를 재해석하는 방향으로 작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곧 추석 연휴잖아요. 어릴 적 추석 풍경을 떠올려보면 신문에 실린 방송국 특집 프로그램 편성표를 오려서 하나씩 챙겨 봤던 게 생각이 나요. 이번 연휴를 맞이해 준비하신 프로그램들도 있으시다고요.

9월 10일에 처음 방송될 ‘2022 KBS 추석특집 4부작 <한식연대기>’를 작업했습니다. 푸드 인문 다큐멘터리로 근현대 한식 120년의 역사를 정치, 경제, 사람, 문화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최초의 시도이자,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인물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기록하는 한식의 기억록입니다. 근현대 한식의 위대함을 재발견할 수 있는 깊이 있는 내용의 방송이에요. <종로사진관>이라는 프로그램도 추석 연휴에 방송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리얼 방송이 범람하는 시대에 진짜 사람 이야기, 농도 깊은 대화와 한 대의 필름 카메라로 이야기를 담아냈어요. 추석 연휴와는 별개이지만 세 번째로 리브랜딩 되는 <연중플러스(가제)>도 작업하고 있는 중입니다.

방송국에는 디자이너가 산다 ②

이정훈 에디터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김지혜 KBS 프로그램 브랜딩 & 그래픽팀 총괄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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