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재그는 ‘쿨’하게 인정한다. 기존의 지그재그는 원하는 것을 쉽고 빠르게 구입할 수 있는 실용적인 ‘툴’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고. 지난 8월 22일, 카카오스타일이 운영하는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지그재그’가 새로운 BI를 공개하며 개인별 상품 추천을 넘어 스타일의 발견을 돕는 서비스로 진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카카오스타일 심준용 크리에이티브 부문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Interview with 심준용
카카오스타일 크리에이티브 부문장
심준용, 카카오스타일 크리에이티브 부문장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출신. 학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도전과 시도를 거쳤다. 대학 졸업 후 미국 아트센터칼리지오브디자인(ACCD)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후 디자인 에이전시를 거쳐 나이키, 애플, 구글에서 일했다. 미국에서 14년을 보냈고 최종 직함은 구글 Geo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다. 애플 뮤직, 애플 앱스토어, 구글 지도 등 굵직한 글로벌 프로젝트의 리뉴얼을 진행한 리브랜딩 전문가로 지난해 12월, 카카오스타일의 전격 스카우트로 한국에 왔다.
지난해 카카오가 지그재그를 인수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지그재그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기대가 컸는데, 이번 리뉴얼이 그 변화의 시초로 여겨진다.
지그재그는 2015년 쇼핑몰 즐겨찾기 앱으로 시작해 2019년 통합 결제 서비스를 도입하며 국내 여성 의류 플랫폼 가운데 거래액 기준 1위로 크게 성장했다. 2022년에는 뷰티관, 라이프관을 오픈해 현재는 대략 9000개 이상의 스토어가 입점해 있다. 그럼에도 서정훈 대표는 좀 더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크셨다. 2년 전부터 리뉴얼에 대해 고민했다고 들었고, 그 부분이라면 내가 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미 잘하고 있는 회사 말고 변화가 필요한 회사,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선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 소개로 뉴욕에서 서정훈 대표를 만난 후 여러 차례 줌으로 대화를 나눴고, 이직을 결정했다.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진행한 프로젝트가 구글 지도 리뉴얼이었다. 브랜드 론칭보다 어렵다는 작업이 리뉴얼 프로젝트이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가.
현업에서 디자인을 하는 동안 리브랜딩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해본 것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한번 브랜딩 하면 6,7년이 지나야 리브랜딩을 진행하기 때문에 나는 운이 좋았다. 애플 뮤직과 애플 앱스토어 리브랜딩에도 참여했지만, 빅 브랜드일수록 변화를 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브랜드의 미션과 정체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그래픽과 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서 미세하게 변화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공 법칙이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을 되살려보니 어떤 회사가 잘 되려면 브랜드의 철학을 구축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물론 이 일이 쉽지 않다.
브랜드 철학을 잘 구축한 곳을 꼽는다면?
구글의 미션이 브랜드 중에서 가장 명징하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의 정보를 오가나이즈하여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하게 한다. 나이키의 비전은 이 세상의 모든 운동선수들에게 영감과 혁신을 가져오는 것이고, 그 아래에 조그맣게 써 있다. 신체가 있으면 모두 운동선수다. 브랜드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미션과 비전, 코어 밸류이다. 조직의 미션은 기업이 생존하는 한 변하지 않는 목적과 같은 것이다. 비전은 장기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좀 더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코어 밸류는 그래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 무엇, 무엇이라고 나올 수 있다.
지그재그의 리뉴얼 과정은 어떠했나?
브랜드의 전략 수립을 위해 가장 먼저 리서치를 진행했다. 국내 커머스 환경을 분석하면서 뚜렷한 목소리를 지닌 서비스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에서 희망을 보았다. 물론, 개성 있는 보이스가 필요하지 않은 서비스도 있다. 저렴하고 많은 물건을 재빠르게 공급하는 것만으로도 기업 가치를 증명하는 곳들이 그러하다. 반면, 지그재그는 서울이라는 도시, 그 안에서도 패션을 다루고 있으니 우리만의 목소리를 일관되게 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 잘한 것과 앞으로 보강해야 할 점을 분석했는데, 잘한 점은 서비스 측면이다. 지그재그는 개발자 기반의 회사다. AI로 개인 맞춤형 상품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가 잘 되어 있어 그 부분에서 만족도가 높게 나왔다. 반면, 콘텐츠와 브랜딩 측면은 보강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재정립한 지그재그 미션과 비전은 무엇인가.
이전에는 개인별 상품 추천을 통해 쉽게 빠르게 구입할 수 있는 툴이었다면, 이제는 영감을 통해 나만의 스타일을 발견하는 놀이터가 되고자 한다. 브랜드 비전은 ‘무한한 콘텐츠 안에서 개인화된 서비스를 통해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코어 밸류로는 유저 중심, 발견, 다양함, 큐레이션, 개인화 등의 가치를 담았다. 그 이후에 비주얼 아이덴티티와 톤앤보이스, 미디어 패키지 등이 순차적으로 등장한다.
리뉴얼 방향성을 패션 에디토리얼 콘셉트로 잡았다고.
패션 뿐 아니라 뷰티, 라이프관이 더해지면서 전체적으로 스타일 커머스로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어 로고와 컬러 시스템 등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전격 개편했다. 패션 매거진에 등장할법한 대담한 이미지와 컬러, 볼드한 타이포그래피 등 트렌디한 시각 언어를 사용하려 했고 이에 맞춰 이미지 사용이나 컬러 정책을 새롭게 정리했다. 지그재그하면 떠오르는 ‘핑크’ 컬러를 바꿔야 하느냐에 관한 것도 많이 고민했다. 막상 리서치를 해보니, 가장 바꾸지 말아야 하는 요소를 핑크로 꼽았다. 경쟁 앱을 보면 블랙과 화이트가 대부분이라 오히려 기존에 가진 색을 전략적으로 가져가려 했다. 다만 ‘핫핑크’ 계열이라 눈이 피로하고 다른 컬러와 섞이기 어려운 점을 보완했다. 기존보다 톤을 낮추고 약간 차가운 느낌이 들게 조정했다. 새로운 핑크와 짝을 이루는 컬러를 매치하고, 계절 제품을 반영할 수 있는 컬러 팔레트도 새롭게 제안했다.
지그재그 앱에서 다소 아쉬웠던 콘텐츠 측면은 어떻게 보강했는가?
‘스타일의 발견을 돕는 서비스’라는 BI 취지에 따라 실제 앱 내 ‘발견 탭’을 신설했다. 발견 탭은 누구나 새로운 트렌드와 아이템에 대한 영감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매거진 형식으로 스타일을 추천하는 코너다. 내부에 있는 콘텐츠팀이 한 달에 60여 개 이상의 콘텐츠를 제작할 예정이다. 추후에는 유저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발행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지난 7월부터 지그재그 글로벌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패션, 뷰티 등의 K 스타일을 해외에 소개하는 역직구 플랫폼인데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는가. 아니면, 미국에서 십여 년 지낸 입장으로서 K 컬처에 대한 관심도가 어느 정도인지 대답해달라.
한국에 오니, 미국에서 알던 친구들이 내게 물어보곤 한다. 세상에서 가장 쿨한 도시에 사는 기분이 어떠냐고.(웃음) 넷플릭스로 알려진 한국 영화, 그리고 케이팝에 대한 관심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실제로 크다. 반면, 한국에서 태어난 비즈니스 브랜드는 그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다. 뛰어난 IT 기술이 한국의 패션, 뷰티 브랜드와 만났을 때 꽤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그재그가 그러한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서비스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현재 내 목표다.
글 김만나 편집장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카카오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