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3

팀 얼룩의 따스한 흔적을 남기는 공간들

부산을 기반으로 다양한 공간을 만드는 팀 얼룩의 이야기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팀 얼룩의 공간은 최근 젊은 세대를 사로잡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의 그것처럼 화려하지 않다. 동시대의 트렌디하고 날선 디자인 감각을 내세우는 공간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가 무더운 날, 비 오는 날, 그리고 강한 추위에도 오르막길에 있는 팀 얼룩의 카페를 찾아가고, 골목 골목을 걸어 그들의 레스토랑을 방문한다. 아마도 빈티지한 공간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도, 스태프의 한결같은 편안한 환대와 배려, 그리고 식음료를 비롯한 브랜드의 다채로운 콘텐츠가 사람들을 모이게 만드는 것 아닐까. 그들만의 속도로 꾸준히 활동을 전개하며 공간을 찾는 사람들의 기억에 기분 좋은 흔적을 새기는 팀 얼룩. 브랜드를 이끄는 강바람, 이경준 공동 대표를 만나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커피 & 라이프스타일 스토어 얼룩 © awluk

Interview with 팀 얼룩

강바람, 이경준 공동 대표

팀 얼룩을 소개해주세요.

이경준 얼룩은 강바람, 김성훈, 김현건 그리고 저를 주축으로 총 12명의 멤버가 함께하고 있어요. 부산 전포동에서 카페 얼룩을 중심으로 술집 뜨빠께, 다이닝 레스토랑 스테디어까지 3개의 F&B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죠. 바람 대표님은 바리스타 업무를 메인으로 세 브랜드의 전체적인 디렉팅과 마케팅을 담당해요. 성훈님은 셰프로서 브랜드 콘셉트에 맞는 모든 메뉴를 개발하죠. 디자이너 현건님은 얼룩의 디자인과 사진 촬영에 많은 힘을 써주고요. 저는 얼룩이 가죽 공예 디자이너와 바리스타가 함께 만든 카페로 시작한 만큼 공예를 전문으로 업무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브랜드가 확장하며 공간 기획과 인테리어, 그리고 경영에 발생하는 모든 행정적인 부분을 책임지죠.

커피 & 라이프스타일 스토어 얼룩 © awluk

얼룩의 시작으로 돌아가 볼까요? 지난 2018년 카페 얼룩이 문을 열었어요.

강바람 저희는 얼룩을 만들기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어요. 당시 저는 다른 곳에서 바리스타로, 경준 대표님은 가죽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죠. 그때쯤 경준 대표님이 공방을 확장하며 카페를 함께 하고 싶어 했어요. 가죽 공예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낮추기 위해 이를 커피와 접목하고자 한 거죠. 저도 바리스타로서 독립을 준비하던 시기였고요. 서로 의견을 나누다 뜻이 맞아 함께 얼룩을 만들게 됐죠.

커피 & 라이프스타일 스토어 얼룩 © awluk

얼룩의 한글 네이밍도 기억하기 쉽고 참 잘 지은 것 같아요.

강바람 2016년 경준 대표님이 제게 선물로 줬던 가죽 티코스터가 있어요. 얼룩을 하고자 마음먹기도 훨씬 전이죠. 제 이름이 새겨진 코스터와 함께 준 쪽지에는 ‘가죽 코스터는 얼룩이 남는 게 참 예쁜 것 같아요. 오래오래 예쁘게 사용하세요.’라고 적혀 있었어요. 시간이 흘러 2018년 경준 대표님과 브랜드 네이밍 브레인스토밍 도중 이 메시지와 코스터를 찍어둔 사진을 우연히 발견한 거예요. 그 때 얼룩이라는 단어가 너무 빛나 보였어요. 그래서 얼룩으로 아이디에이션을 이어갔죠. 로고도 그 코스터에 새겨진 아이스 커피의 자국을 그대로 옮겨왔어요. 경준 대표님의 쪽지가 없었다면 가죽에 자국이 생겨버려 엄청나게 아쉬워했겠죠? 그런데 그 메시지가 생각나자 코스터에 남겨진 얼룩이 정말 예뻐 보였어요. 이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했다가 얼룩 로고로 사용한 거죠.

이경준 얼룩의 로마자 표기는 awluk이에요. 오울(awl)이 송곳을 의미하는데 작업자들은 가죽 타공을 할 때 올 그리프(Awl Griffe)나 오울(Awl)한다고 이야기해요. 가죽 공예에 대한 브랜드 정체성을 담아 awl을 로마자 표기에 사용한 거죠. 잘못된 표기지만 시간이 지나 얼룩의 브랜딩이 잘 잡히면 awluk이 어울럭, 오울룩도 아닌 얼룩으로 대명사처럼 자연스럽게 읽힐 거라 생각했어요. 어린 마음에 참 무모했었죠. (웃음) 처음부터 근사한 의미로 시작하기보다는 얼룩이라고 이름 붙인 후에 계속해서 의미를 더해갔어요.

강바람 처음 친구들한테 ‘우리 가게 얼룩으로 정했어!’ 말하면 ‘얼룩말도 아니고 뭐야?’라며 놀림당했는데 지금은 이름 정말 잘 지었다고 얘기해주죠. (웃음)

2018년의 전포동은 지금처럼 핫한 동네가 아니었어요. 어떻게 이곳에 공간을 만들게 됐나요?

강바람 땡볕 아래서 발품을 정말 많이 팔았어요. 예산, 공간 컨디션 등 다양하게 고려했을 때 가장 적합한 곳이 여기였죠. 그때 이 골목에는 가로등도 없었어요. 밤에는 못 다닐 정도로 어두워서 저녁 장사는 거의 못 했죠. 그런데도 공간과 거리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전포동에 자리 잡게 됐어요.

커피 & 라이프스타일 스토어 얼룩 © awluk

이름과 로고도 정했고, 공간도 생겼어요. 다음으로 얼룩은 어떤 브랜드가 되고자 했나요?

이경준 일반적으로 얼룩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은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얼룩지다, 얼룩 묻었다’처럼 지저분하고 더럽다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저희는 얼룩이란 누구에게나 남겨지는 거고, 남아야 할 때가 있고, 그 흔적 때문에 그때를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항상 이 생각을 품고 브랜드 활동을 펼치죠. 그래서 공간을 운영하거나 새로운 공간을 기획할 때도 가장 기본으로 가져가는 생각은 화려하고 멋진 공간보다는 ‘무언가 계속해서 남겨질 수 있고 꾸준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얼룩은 취향을 담은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절대 우리 취향을 강요하지 않아요. 얼룩은 이에 참 적합한 단어죠. 강요하지 않더라도 우리와 결이 맞는 분은 자연스레 흔적을 새기고, 아닌 사람은 기억이든 흔적이든 깨끗하게 유지하면 되죠.

캐주얼 레스토랑 스테디어 © awluk
한식 다이닝 펍 뜨빠께 © awluk

팀 얼룩에서 전개하는 공간들의 빈티지한 무드도 인상적이에요.

이경준 얼룩을 만들며 바람 대표님과 시장 조사를 하고 레퍼런스도 모으며 회의할 때마다 교집합이 되는 부분은 빈티지한 무드와 우드톤이었어요. 저희는 절대 멋있어 보이지 않고, 편안함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죠. 이제는 벌써 4년째 바람 대표님과 함께 공간을 운영하다보니 취향이 상당 부분 비슷해진 것 같아요. 공간 연출은 이견이 없다시피 하죠.

커피 & 라이프스타일 스토어 얼룩 © awluk

얼룩은 종종 가죽 공예 디자이너와 바리스타가 함께 만든 카페로 소개되죠. 얼룩에서만 만날 수 있는 콘텐츠가 있나요?

강바람 가죽 책갈피요. 즉석에서 만드는 나만의 이니셜이 각인된 책갈피죠. 자신이나 같이 온 분에게 선물하기 좋은 아이템이에요. 운영 초기에는 이 오르막길에 저희밖에 없었어요. 단지 커피 한 잔 마시러 얼룩까지 더운 날씨에 고생해서 올라오신 손님들에게 너무 죄송했죠. 그래서 여기까지 온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볼거리를 하나둘 추가하게 됐어요. 책갈피도 그랬고요.

이경준 처음부터 가죽 공방과 카페를 결합한 이유는 공예에 대한 문턱을 낮추기 위한 것이었어요. 얼룩을 찾은 분들이 책갈피를 통해 자연스럽게 가죽 공예를 접하고 즐거워하시니 저희는 감사할 따름이죠. 책을 읽는 중간에 내가 멈춰야 할 때나 여기까지 읽었다는 것을 기록하기 위한 게 책갈피의 역할이잖아요. 기록한다는 책갈피의 의미도 얼룩이 지향하는 가치와 부합해 많은 분이 좋아해 주세요.

커피 & 라이프스타일 스토어 얼룩 © awluk

대표 메뉴도 소개해주세요.

강바람 자신 있게 얼룩커피를 소개할게요. (웃음) 평범한 플랫 화이트이지만 얼룩커피라고 부르고 있어요. 얼룩만의 레시피로 적당한 양, 적당한 얼음, 적당한 잔에 제공하는 시그니처 메뉴죠.

캐주얼 레스토랑 스테디어 © awluk
한식 다이닝 펍 뜨빠께 © awluk

팀 얼룩에서 운영하는 또 다른 F&B 브랜드 스테디어와 뜨빠께는 어떤 공간인가요?

이경준 하나의 콘텐츠에 국한되지 않고, 음식이든 옷이든 다채롭게 팀 얼룩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난 2020년 론칭한 브랜드가 이탈리안 레스토랑 스테디어죠. 스테디어는 꾸준함을 의미하는 스테디(Steady)와 무엇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의 합성어에요. 튀거나 멋있는 것 말고 꾸준한 사람 꾸준한 공간이 되자는 의미를 담았어요. 스테디어의 음식, 공간, 그리고 직원 모두 꾸준하고 편한 동네 레스토랑이 되길 바라죠. 그리고 저희 멤버들이 술을 좋아해요. 우리가 좋아하는 분위기로 술집을 만들어보자 해서 작년에 문을 연 한식 술집이 뜨빠께에요. 기획 단계에서 멤버들과 서로 제일 기억에 남는 술집이 어딘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요.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술집에서 가장 깊은 감동을 했다는 기억에 모두가 완전히 공감했죠. 그래서 아무 계획 없이 찾은 가게였지만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던 가게를 콘셉트로 브랜딩을 풀어 갔어요. 네이밍도 뜻밖의 경험, 뜻밖의 행운 같은 아이디어를 나열하다가 결국 뜻밖의를 뜨빠께로 표기해 사용하기로 했고요. 저희가 한글 네이밍을 좋아하기도 하고 뜨빠께는 된발음의 연속이라 기억하기도 쉬울 것 같았어요.

한식 다이닝 펍 뜨빠께 © awluk

브랜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최근 주목하고 있는 화두가 있다면요?

이경준 주목할 수 있는 화두가 없는 게 화두인 것 같아요. 새로운 콘텐츠가 정말 쉽게 생겨나요. 미디어는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노출하고요. 주목할만한 것이 생기는 순간 이는 곧 사그라져버리고 다시 또 새로운 콘텐츠가 이슈가 되죠. 주목받는 순간 가장 주목하면 안 되는 콘텐츠가 되는 것 같고… 모든 게 정말 빠르게 생기고 사라지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우리대로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을지, 얼룩의 색을 잃지 않을지 고민이 많죠.

강바람 저는 사진이 떠올라요. 기록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죠? 요즘 거리 곳곳에 카메라 자판기부터 무인 사진관까지 정말 많이 생기잖아요. 누구든 친구를 만나면 가볍게 찍고 남기고. 어떤 형태로든 기록하는 콘텐츠는 계속해서 주목받을 것 같아요.

캐주얼 레스토랑 스테디어 © awluk

얼룩의 공간을 찾으시는 분들이 어떤 기억을 안고 돌아가길 바라세요?

강바람 좋았다… 그런 여운이 남는 공간이 되길 바라요. 얼룩 화장실에 가보면 손님들이 남겨주신 메시지가 정말 많아요. 좋은 시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같은. 우린 그냥 카페를 만든 것뿐인데 그걸로 좋은 공간, 좋은 시간 만들어 주어 고맙다는 글이 가득해요. 운영자의 입장에서 정말 큰 위로를 받죠.

이경준 처음 방문하신 분들이 나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올 때가 되게 좋더라고요. 부모님에겐 공간이 너무 트렌디해도 불편할 거예요. 내게 가장 밀접한 사람한테 요즘 내가 다니는 좋아하는 공간을 소개하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얼룩은 세대 구분이 크게 없는 공간인 것 같아요. 그건 반대로 젊은 세대 기준에 트렌디하지 못하다는 역설적인 의미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저희는 다양한 세대가 편하게 머무르고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커피 & 라이프스타일 스토어 얼룩 © awluk

팀 얼룩이 펼칠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해요.

이경준 정해진 건 없지만 앞으로도 얼룩의 색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 거에요.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과 해보고 싶은 것 그 중간에서 계속 도전할 것 같아요. 얼룩의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매출도 많이 늘었고 외형도 크게 성장했어요. 하지만 정말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죠. 그래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맞게 잘 가고 있는 건지 돌아보는 시간도 계속 가질 예정이에요.

 

 

마지막으로 전할 말이 있을까요?

강바람 인터뷰에 참석은 못 하셨지만 성훈 셰프님도 정말 고생 많이 하시고, 우리 팀 얼룩 멤버들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이 친구들 덕분에 저희는 저희대로 고민할 시간도 만들 수 있고 계속해서 얼룩이 발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정말 늘 감사해요.

이건희 객원 필자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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