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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7

오색찬란한 물감의 향연, 베르나르 프리츠

서울에서 만난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 회화 작가
서울 종로구 팔판동 페로탕에서 6월 8일부터 7월 15일까지 베르나르 프리츠의 개인전 <최신작(LES DERNIÈRES PEINTURES)>이 진행된다.
서울 종로구 팔판동 갤러리 페로탕에서 열리는 베르나르 프리츠의 개인전 모습 ⓒ perrotin

오색찬란한 폭죽이 터지고 밤하늘을 따라 빛의 잔상이 흘러내린다. 화려한 색채와 역동적인 붓놀림으로 가득한 이 그림은 프랑스 현대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 베르나르 프리츠(Bernard Frize)의 솜씨. 70대에 접어든 원로 화가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에너지가 넘치지만 관람객을 압도하는 분위기는 없다. 물감에 레진을 섞은 덕분에 안개가 살짝 내려 앉은 듯 몽환적이고 부드럽다. 작품이 위압적으로 보이지 않길 바란다는 작가 의도를 존중해 전시를 여는 갤러리에서도 은은한 빛을 내는 작은 조명을 설치하고 평소보다 10~20cm 낮은 높이에 작품을 걸었다.

ⓒ perrotin

베르나르 프리츠는 프랑스 생망데(Saint-Mandé) 출신의 회화 작가다. 올해로 73세. 작가는 엑상프로방스와 몽펠리에에서 예술 학교를 다녔지만 졸업하진 못했다. 사회적으로 큰 동요가 있던 시대를 살아가던 청년은 그림으로 자신의 정치적 사상을 표현하고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고 결국 붓을 놓았다. 그런 그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10년 후. 예술 작품은 정치적이기 전에 먼저 예술 작품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작가는1977년 가로, 세로 획으로 채색한 작품을 들고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다.

#A01, Bernard FRIZE, Ader, 2022 ⓒ perrotin
#A02, Bernard FRIZE, Iseg, 2022 ⓒ perrotin
#A04, Bernard FRIZE, Silus, 2022 ⓒ perrotin

작가는 45년 동안 자신만의 개념적 추상회화를 전개해왔고, 이제 진정으로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장이다. 2019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베르나르 프리츠: 후회 없이(Bernard Frize: Sans Repentir)>가 그러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말해준다. 프리츠의 1977년 초기작부터 2019년 근작까지 총 60여 점을 선별해 기획한 퐁피두의 전시는 ‘추상(abstraction)’이라는 어렵고 무거운 관념을 눈부신 색채와 역동적인 붓질이 가득한 화면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2022년, 퐁피두 전시 못지 않은 흥미로운 자리가 서울에서 열린다. 이번에는 더욱 ‘복합적인 감각의 회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작가 특유의 ‘직선의 붓질을 기계적으로 반복한 패턴’ 위에 비정형이고 유기적인 이미지를 얹힌 작품들이다. 투명에 가까울정도로 맑은 색채의 아크릴 띠가 수직으로 칠해진 배경 위에 다양한 색 덩어리가 얹혀져 있다. 작가 스스로 “색에 무관심하다”고 말하지만, 유기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색의 향연은 창조적인 추상화를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 perrotin

페로탕 서울에서 6월 8일부터 7월 15일까지 열리는 이번 개인전의 제목은 <최신작(LES DERNIÈRES PEINTURES)>. 제목 그대로 베르나르 프리츠의 신작 10점으로 구성된다. 지극히 프리츠다운 제목이다. 관람객들이 그림에 몰입되거나 종속된 느낌을 주지 않도록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오로지 그림이 주는 기쁨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프리츠의 <사일루스(Silus)>와 <에이파(Apa)>(2022)는 마치 오색찬란한 폭죽이 큰 소리를 내며 터지는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처럼 우리의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즐겁게 한다. 분명 눈으로 보는데도, 수직의 줄무늬 위에 뜬 원색 덩어리들이 ‘팡-’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또 안료의 크고 작은 입자들과 레진이 융합하면서 캔버스 사방으로 ‘촤아-’ 퍼져나가는 상황을 소리로 듣는 것만 같다.

<아더(Ader)>,<사보(Sabo)>, <코바(Kova)>(2022) 를 감상할 때 우리의 지각은 또 어떤가? 마치 화려한 지느러미를 한껏 펼치며 맑고 차가운 물속을 느릿하게 유영하는 금붕어를 볼 때처럼 우리는 촉각적이 된다. 물의 온도와 물고기의 매끈한 몸의 살랑거림이 내 살에 닿아 피부로 느끼듯이 말이다.그래서 요컨대 프리츠의 최근 회화는 ‘시각, 청각, 촉각이 앙상블을 이루는 추상화’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 미술 비평가 강수미
프랑스 현대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 베르나르 프리츠(왼쪽)과 그의 베를린 작업실 (사진출처=www.instagram.com/bernardfrize)

Interview with 베르나르 프리츠

 

 

작품이 입체적일 것 같은데, 가까이서 보면 굉장히 평면적이다. 물감에 레진을 섞어서 칠했기 때문인데, 어떤 의도가 있었나?

일부러 평면성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 로마에서 2년 동안 살았는데,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를 복원하는 과정을 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레진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레진을 내 작품에 쓰게 되면 더욱 견고하고 튼튼하게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화 작품은 유화 물감이든 아크릴 물감이든 쉽게 빛이 바래고 훼손된다. 내 작품이 해외 전시를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훼손되는 일을 종종 겪었다. 레진을 사용해 작품이 조금 더 오랫동안 견고하게 유지되길 바랐다.

 

누군가는 폭죽이 터지는 듯한 그림이라고 표현한다. 개인적으로는 샤워기에서 무지개가 쏟아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작품 해석은 관객의 몫이겠지만, 작가로서는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생각을 했나?

생성과 소멸이다. 탄생과 죽음. 두 순간이 하나의 캔버스 위에서 이뤄진다. 관객들은 내 의도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감상하게 될 것이다.

ⓒ perrotin

아더, 세이 등 작품 제목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나?

항상 그랬듯 이번 작품들 역시 구분을 위해 임의로 붙인 것이다. 특별한 의미는 없다. 나는 베를린에서 작업을 했고, 내 작품을 받은 파리의 어시스턴트가 그림을 분류하기 위해 알파벳을 붙였다.

 

베를린과 파리에서 지낸다고 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강력한 도시 봉쇄가 이뤄진 곳들인데, 이 기간 동안 어떻게 지냈나? 작품 활동에 영향을 받기도 했나?

큰 변화는 없었다. 항상 하던 대로, 매일 작업을 했다. 아침에 나를 일어나게 만드는 유일한 감정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무엇을 그릴지 생각하고,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감정. (외출이 자유롭지 않아 답답하지는 않았나?) 집이 커서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웃음). 정원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유제이 기자

프로젝트
<최신작(LES DERNIÈRES PEINTURES)>
장소
페로탕 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팔판길 5
일자
2022.06.08 - 2022.07.15
참여작가
베르나르 프리츠(Bernard Frize)
유제이
디자인 중심의 라이프스타일 분야를 취재한다. 농담처럼 쓴 필명으로 글을 쓴지 수년 째. 자연을 동경하지만 매번 도시에서 휴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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